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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여름과 루비」 중에서

  • 작성일 2022-11-02
  • 조회수 925





 여름과 루비 -박연준 모든 이별은 언덕 위에서 이루어진다. 사소한 이별이라 해도 그게 이별이라면, 올라선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기. 그게 이별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낙차 때문이다. 당신이 있는 곳과 없는 곳, 거기와 여기, ‘사이’라는 높이. 당신이 한사코 나와 떨어져 존재하려는 높이. (……) 루비와 헤어지고 난 뒤 깨달았다. 이제 내 언덕을 옮겨야 한다는 걸, 인생이 달라질 것임을 알았다. 내 앞에 다른 문이 열리고, 여러 가지가 변하리라. 그건 마치 신이 ‘나’라는 말을 다른 쪽을 향해 돌려세워놓은 것 같았다. 이제 이쪽을 봐. 여기, 이쪽이야. 다른 건 충분해. 충분히 봤어. 작가 : 박연준 출전 : 『여름과 루비』 (은행나무, 2022) 197p ~198p.



박연준 ┃「여름과 루비」을 배달하며


모든 이별은, 어떤 의미로든 강요된 것이다. 떨어지는 것이고, 떨어지되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떨어지다’라는 단어는 붙어 있다가 따로 떼어지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이별, 이 떨어짐은 수직하강의 움직임이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 반대는 아니다. 그 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낯섦에 대해 이 작가가 붙인 ‘낙차’라는 이름은 얼마나 선명한지. 흡사 낙인 같지 않은가.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에서 우리는 낙차를 극복하는 방법도 배운다. 언덕 옮기기가 그것이다. 내려오기를 옮기기로 바꾸는 것은 수직 하강을 수평 이동으로 바꾸는 작업이며, 그쪽은 충분히 봤으니 이쪽을 보라고 돌려세우는 신의 손길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그렇게 할 때 이별은 낙인이 아니라 성장이 될 거라고,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이 친절한 작가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소설가 이승우


작가 : 박연준

출전 : 『여름과 루비』 (은행나무, 2022) 197p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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