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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중에서

  • 작성일 2022-05-19
  • 조회수 1,445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중에서 - 김지연

눈을 감으면 이다음 해 여름의 풍경이 희미하게 일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래에 할 일들을 계획하다보면 그 여름은 이미 다 지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란 그 여름을 추억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수영은 못하고 해변을 걷기만 하다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무리 여름이래도 밤의 바다는 추울 테고 일 년 사이 더 늙어 있을 우리에게 호기나 오기 같은 건, 충동적인 농담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우리는 함께 해변을 걷다가 쓸모없는 것들을 잔뜩 주울지도 모른다. 예쁜 소라 껍데기를 하나 주워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워온 소라 껍데기를 서랍 속 상자에 잘 넣어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귀에 갖다대고 파도 소리를 듣고 또 서로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해변을 거닐다 충동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해는 쨍쨍하고 구름도 한 점 없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더위에 시달리다 내린 결정일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바다에서 알몸으로 수영을 한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해변에서 점점 멀어지다가 다시 팔다리를 내저으며 해변에 가까워진다. 소금물에 젖은 등짝이며 목덜미가 햇볕에 바짝바짝 타는 것을, 발끝에 닿는 차가운 물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여자친구는 입속으로 왈칵 들어온 바닷물을 뱉어내고 숨을 몰아쉬면서 “그런데 왜 다 벗고 수영을 하고 싶었어?” 하고 물어볼 것이다. 물에 젖은 여자친구의 머리칼과 속눈썹이 아주아주 검다. 푸른 수면 아래로 여자친구의 흰 팔다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몸뚱어리의 윤곽이 물렁하게 일그러진 것만 같지만 손을 뻗어 만져보면 몸은 곧게 이어진 채 그곳에 있다. 그게 안심이 된다. 차가운 바닷물에 오래 머문 살결은 더 탄탄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답할 말을 가다듬고 싶어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잠수했다가…… 아니다. 그 질문은 그때까지 남아 있지 않다. 뭐하러 그러냐니. 그런 물음도 물론 없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오래오래 한가롭게 수영을 한다. 힘이 다 빠져버리기 전에 헤엄쳐 해변으로 돌아온다. 모래사장에는 우리가 벗어놓은 옷들이 놓여 있다. 우리는 머리끝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바닷물을 닦고 옷을 챙겨 입는다. 그리고 잠깐 그대로 따끈한 모래에 맨발을 파묻고 서서 이다음 여름에는 무얼 할지 이야기한다. 그것들은 실현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당장은 모든 게 실현될 것처럼 말한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 때문에, 그에 대해 떠들어대는 일은 희한한 기쁨을 준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은 이제 모래바람에 파묻히고 없다. 물론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우리가 모아둔 방식으로는 더이상 없다 .우리는 커다란 비치 타월을 함께 뒤집어쓰고 해변을 떠난다. 천천히. 아직 오지 않은 날 쪽으로. 




작가 : 김지연
출전 : 『마음에 없는 소리』 (문학동네, 2021) p.36-p.38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중에서 - 김지연

눈을 감으면 이다음 해 여름의 풍경이 희미하게 일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래에 할 일들을 계획하다보면 그 여름은 이미 다 지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란 그 여름을 추억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수영은 못하고 해변을 걷기만 하다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무리 여름이래도 밤의 바다는 추울 테고 일 년 사이 더 늙어 있을 우리에게 호기나 오기 같은 건, 충동적인 농담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우리는 함께 해변을 걷다가 쓸모없는 것들을 잔뜩 주울지도 모른다. 예쁜 소라 껍데기를 하나 주워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워온 소라 껍데기를 서랍 속 상자에 잘 넣어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귀에 갖다대고 파도 소리를 듣고 또 서로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해변을 거닐다 충동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해는 쨍쨍하고 구름도 한 점 없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더위에 시달리다 내린 결정일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바다에서 알몸으로 수영을 한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해변에서 점점 멀어지다가 다시 팔다리를 내저으며 해변에 가까워진다. 소금물에 젖은 등짝이며 목덜미가 햇볕에 바짝바짝 타는 것을, 발끝에 닿는 차가운 물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여자친구는 입속으로 왈칵 들어온 바닷물을 뱉어내고 숨을 몰아쉬면서 “그런데 왜 다 벗고 수영을 하고 싶었어?” 하고 물어볼 것이다. 물에 젖은 여자친구의 머리칼과 속눈썹이 아주아주 검다. 푸른 수면 아래로 여자친구의 흰 팔다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몸뚱어리의 윤곽이 물렁하게 일그러진 것만 같지만 손을 뻗어 만져보면 몸은 곧게 이어진 채 그곳에 있다. 그게 안심이 된다. 차가운 바닷물에 오래 머문 살결은 더 탄탄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답할 말을 가다듬고 싶어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잠수했다가…… 아니다. 그 질문은 그때까지 남아 있지 않다. 뭐하러 그러냐니. 그런 물음도 물론 없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오래오래 한가롭게 수영을 한다. 힘이 다 빠져버리기 전에 헤엄쳐 해변으로 돌아온다. 모래사장에는 우리가 벗어놓은 옷들이 놓여 있다. 우리는 머리끝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바닷물을 닦고 옷을 챙겨 입는다. 그리고 잠깐 그대로 따끈한 모래에 맨발을 파묻고 서서 이다음 여름에는 무얼 할지 이야기한다. 그것들은 실현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당장은 모든 게 실현될 것처럼 말한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 때문에, 그에 대해 떠들어대는 일은 희한한 기쁨을 준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은 이제 모래바람에 파묻히고 없다. 물론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우리가 모아둔 방식으로는 더이상 없다 .우리는 커다란 비치 타월을 함께 뒤집어쓰고 해변을 떠난다. 천천히. 아직 오지 않은 날 쪽으로. 




작가 : 김지연
출전 : 『마음에 없는 소리』 (문학동네, 2021) p.36-p.38

 

 

김지연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을 배달하며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어쩐지 이미 겪은 시간을 일컫는 말 같습니다. 아예 지나간 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어쩌면 미래라는 말은 오지 않은 시간을 의미하는 낱말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의 꿈과 아스라한 기억이 반복되는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요.
가만히 이 장면을 읽고 있자니 오래 전 찬란한 햇빛 속에 보낸 여름이 떠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 여름에 좋아한 사람과 함께 한 일, 하려고 했지만 미처 하지 못한 일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한때 바닷가를 거닐며 모래사장에서 빛나는 뭔가를 주워올리던 때가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주운 것들은 대개 아름답지만 쓸모 없고, 유일하지만 귀하지 않은 것이어서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이내 버려지거나 흐지부지 잊혀지곤 합니다.
버려진다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자리에, 다른 기억으로 존재하게 되고, 그러다가 종내는 까맣게 잊혀지겠지요.
사랑했지만 지금은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의 희미한 기쁨과 먹먹한 슬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 고요히 떠오르는 소설입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그곳이 어디든 잠시 머물게 되지요.

 

소설가 편혜영

 

작가 : 김지연

출전 : 『마음에 없는 소리』 (문학동네, 2021) p.36-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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