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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 작성일 2021-07-08
  • 조회수 1,092



화내는게 아니라 우는 거 같았어요. 너무 웅얼거려서 잘 들리지도 않고. 오히려 지난번에 했던 방식이 훨씬 더 좋으셨던 거 같아요.' 그때 갑자기 별이 말했다. 워리는 별의 말을 받아치며 그래도 바로 앞에 있던 자신에게는 비교적 정확하게 들렸으며 화를 내는 내용도 좀더 구체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프로틴은 스마트폰을 꺼내 두꺼운 손가락으로 열심히 액정을 두드리고 있었다. 작가:이원석 출전:〈까마귀 클럽〉 (쓺/문학의 이름으로, 2021년 상권) p.273-p.274



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지금 이 사람들은 뭘 하는 걸까요. 느닷없이 파이팅을 외치더니 ‘프로틴’이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프로틴은 민이 어머니나 춘희 아버지, 원장님 같이 이 자리에는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한바탕 분노를 퍼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잠자코 듣고 나더니 프로틴이 화를 낸 방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합평을 해줍니다.
‘까마귀 클럽’은 ‘화를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들을 ‘노력형 분노자’로 만들어주는 모임입니다. 말하자면 화내는 연습을 하러 모인 사람들이에요. 굳이 연습해서 화를 내야 할 만큼 평소에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못하는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도대체 왜 화를 못 낼까요. 착하고 순하고 마음이 약해서일까요. 이들의 직업을 알고 나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텔레마케터, 운전 학원 강사, 유치원 교사, 공부방 운영 교사 등 일종의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어요. 화를 못 낸다기보다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여겨지는 직종에 근무하고 있네요.
무례와 부당함 앞에서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화를 낼 수 없는 처지 여서 그저 참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이원석

출전 :〈까마귀 클럽〉 (쓺/문학의 이름으로, 2021년 상권) p.273-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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