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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모일, 저녁」 중에서

  • 작성일 2019-07-18
  • 조회수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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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 「모일, 저녁」을 배달하며…


추억이랄 것까진 없지만, 붕장어인 ‘아나고’에 대한 기억이 있다. 소설 속 장면보다 좀 더 잔혹했던가. 널판의 튀어나온 못에 대가리를 박아 꿰고 목에 해당할 부위를 빙 둘러 얕게 칼집을 낸 뒤 펜치로 껍질 끝을 집어 아주 빠르게 꼬리방향으로 주욱 잡아당기면 눈 깜짝할 사이에 홀라당 껍질이 벗겨지며 ‘아나고’는 순식간에 백사처럼 희고 투명해진다. 꿈틀거리는 그것을 오이 썰 듯 송송송송 탕탕탕탕 썰면 ‘아나고회’가 되는데, 살아 있던 붕장어가 접시 위의 ‘아나고회’가 되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빠르기. 그 스킬이 생활의 달인이 되고도 남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토록 많은 ‘아나고’를 잡다보면 왠지 어느 때인가는 ‘아나고’들의 반격을 받지 않을까 무서웠는데……그럴 리가. 그럴 리가. 하지만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어진’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반격 받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맥락 단절을 피하기 위해 발췌 편집했으나 문장 훼손은 없었습니다.)


소설가 구효서


작가 : 김숨

출전 : 김숨. 『간과 쓸개』. 문학과 지성사. 55~67쪽.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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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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