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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젓가락 여자」중에서

  • 작성일 2013-11-21
  • 조회수 1,237




천운영,「젓가락 여자」중에서

왜 그 소설 있잖아요. 할머니랑 손녀랑 닭 잡아먹는 얘기. 노래하는 꽃마차. 맞아요. 그거 제가 해준 얘기거든요? 거기 나온 손녀가 바로 저예요. 자취방에서 둘이 닭 시켜 먹다가, 내가 시골에서 할머니랑 닭 잡아먹던 얘기 해줬거든. 영은 언니는 닭 먹을 때 다른 거 다 놔두고 모가지 먼저 집어요. 먹잘 것도 없는 거 왜 좋아하냐니까 야들야들해서 좋대. 난 모가지 절대 안 먹는데. 그래서 그 얘기를 해줬지.
나 어릴 때 할머니랑 둘이 살았거든요. 우리 할머니가 촌부여도 되게 고운 양반이었어요. 섬세하고 예쁜 거 좋아하고. 그래서 닭은 키우는데 정작 잡아먹지를 못하는 거야. 알은 자꾸만 가고 닭은 점점 늘어가고, 한 스무 마리 되었을걸? 하루는 내가 닭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막 졸랐어. 어쩔 수 있나. 잡아야지. 근데 할머니는 닭 뒤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잡지를 못해. 그래서 내가 나섰잖아. 열 살 땐가? 그냥 닭 목을 콱 잡고 비틀었어요. 그 어린애가. 그러게요, 진짜 닭고기가 좋았나 봐. 아님 뭘 모르는 어린애니까 그랬겠지? 지금 잡으라면 그걸 어떻게 잡아. 아무튼 그렇게 해서 닭을 잡아먹기는 먹었는데요, 털 벗기면서 보니까 이 닭 모가지가 다 으스러져 있어. 손에 얼마나 힘을 줬는지. 그런데 보통은 그런 일 있으면 닭고기 안 먹게 되잖아요? 그래도 난 닭고기가 너무 맛있어. 아직도 좋아해요. 단, 모가지는 안 먹어요. 이 얘기 해주니까 영은 언니가 진짜 재밌어하는 거예요. 모가지를 쭉쭉 빨면서. 뼈 마디마디를 다 해체해보면서, 몇 번이나 물어보더라구.
아깝기는요, 내 추억이 맛있는 소설로 되살아났는데. 나더러 쓰라면 그렇게 못 쓰죠. 언니니까 쓰지. 그리고 소설가가 어떻게 자기 경험한 것만 골라서 써요. 듣고서 꼭 경험한 것처럼 쓰기도 하는 거지 소설이 뭐 별거야? 세상에 떠도는 얘기를 수집해서 그럴싸하게 재구성하는 거지. 그것도 능력이지. 안 그래요? 그리고 고물상 주인이 물 퍼다 장사해요? 돈이 되니까 고물도 수집하는 거지. 병이든 깡통이든 다 쓸모가 없으면 그걸 왜 받겠어. 어머나 내가 미쳤나 봐. 혼자 떠들고 있었네.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기억이라는 게, 이게 고구마처럼, 한번 뽑아 올리면 줄줄이 따라오게 돼 있잖아요. 아이고 죄송해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작가_ 천운영 -- 소설가. 천운영은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바늘』『명랑』『그녀의 눈물 사용법』 장편소설『잘가라 서커스』『생강』등이 있음.

낭독_ 문형주 -- 배우. 연극 '당통의 죽음', '부활', '꿈속의 꿈' 등에 출연.
최윤형 -- 배우. 연극 '여섯시 퇴근', '선녀는 왜', '몽' 등에 출연.

출전_ 『엄마도 아시다시피』(문학과지성사)
음악_ backtraxx / mellow1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그녀는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천운영 소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육식성입니다. 언젠가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생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몇 번이고 침을 꼴깍 삼키더군요. 먹고 싶은 거죠. 이번에는 닭 잡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닭 모가지를 비틀어 죽였습니다. 제 손에 죽어간 물고기는 수천 마리였습니다만 육지 생물은 언젠가 후배 집에서 오리를 죽여 본 게 유일합니다. 그 꿈틀거림은 정말이지 괴로운 기억입니다. 그러나 우리 입으로 들어온 '남의 살'은 전부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음식의 기본은 엽기라는 것을 인정합시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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