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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중에서

  • 작성일 2013-05-02
  • 조회수 2,165



박찬일,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중에서



사실, 나는 그 씨칠리아의 바다를 좋아하지 않았다. 첫째는 둥실 떠오른 보름달처럼 바다는 묘하게 고향을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고향이 바다는 아니다. 다만, 저 바다 수평선 너머에 한국이 있다는 실체적인 존재감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지긋지긋한 귀환항로를 항해하면서 수평선 너머에 고향이 있다는 확신으로 버텼다는 얘기가 실감났다. (중략)

펄펄 끓는 도가니탕 같은 주방을 벗어나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어쨌든 시름은 잊을 수 있었다. 주방장 쥬제뻬는 이 대목에서도 요리사 티를 냈다. 갯바위 틈을 뒤져서 게를 한움큼 잡아왔다. 이걸 올리브유에 살살 볶고 파슬리 한줌과 바질을 넣어 빠스따를 볶아 요기를 했다. 아, 바다 냄새!

나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해초들이 좋았다. 이딸리아 사람들은 해초를 먹지 않는다. 미역 김 우뭇가사리 톳······ 수없이 많은 이름이 있는 한국과 달리 이 나라에선 그냥 ‘해초’로 통일 한다. 따로 학명이나 전문 이름이야 있겠지만 먹는 재료가 아니니 시중에서는 이름 분류가 없다. 말 그대로 해초, 미역도 해초고 김도 해초다. 그 말에는 ‘먹지 않는다’ 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바닷가 출신이 아니어서 종류를 구분할 수는 없으니, 내게도 그냥 해초였다. 그러나 난 그걸 먹는다는 점이 달랐다. 게다가 자연산 아닌가. 나는 갈색과 자주색, 청색 해초를 대충 한다발 챙겼다. 챙겼다? 참 적당한 말이 없다. 뽑았다, 주웠다, 건졌다, 모았다, 수집했다, 뭐든 어울리는 낱말이 없는 행위였다. 그냥 바다가 주는 거니까 ‘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 미역(이라고 추정되는 해초)을 마늘, 바지락과 함께 올리브유에 볶아서 미역국을 끓였다. ‘씨칠리아 최초의 한국인 요리사, 미역국을 끓이다’였는데 결과는 끔찍했다. 엄마야! 이럴 땐 엄마가 그리운 법이다. 국간장을 살짝 넣고 달달 볶은 쇠고기에 뽀얗게 국물이 우러나는 기장미역으로 끓여낸 내 어린 시절의 생일상이 떠올랐다.



● 작가·낭독: 박찬일 – 요리사, 칼럼리스트. 1965년 서울 출생.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하고 잡지기자로 일하던 중 이탈리아로 떠나 요리를 배웠다. 귀국후 요리사 및 요리연구가,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며 많은 책을 썼다. 지은 책으로『와인스캔들』, 『최승주와 박찬일의 이탈리아 요리』, 『박찬일의 와인 셀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등 이 있다.

● 출전_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창비)

● 음악_ sound ideas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유명 요리사 박찬일씨의 몇 년 전 책입니다.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장면이지요. 멀고 먼 이딸리아에서 그곳 요리를 배우고 있는 주인공이 바닷가 놀러 갔다가 주워온(전 이 표현이 맞다고 봅니다. 저도 간혹 바닷물에 밀려온 것을 ‘주워’ 오거든요) 미역으로 국을 끓이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바닷가로 캠핑 가본 분들은 한두번씩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미역국이 맛있었다면 고향 생각이 더 났을 것입니다. 타국에서의 고향 음식이란 그런 역할이니까요. 더군다나 우리 몸에서 가장 기억력 좋은 곳이 혓바닥이니까요. 그런데 맛이 없었대요. 짠해라. 근데 한여름에 ‘챙긴’ 해초이니 무슨 맛이 나겠어요? 생미역은 따서 한 번 데쳐 찬물에 행군 다음 기름 볶아서 끓여야 좋습니다. 그리고 역시, 좋은 젓국간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나저나 박찬일씨가 언제 이딸리아 요리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못 얻어먹고 있습니다. 근무하던 레스토랑 <라꼼마>도 그만 뒀다고 하더라고요. 먹을 거 주겠다고 해놓고서 안 주는 사람이 가장 얄미운 법이죠, 네.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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