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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주, 「가벼운 선물」

  • 작성일 2023-02-02
  • 조회수 1,539





 가까운 거리 -조해주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이용한다. 노란색 택시에 올라타면서 나는 소맷자락이 문틈에 끼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백미러를 통해 나를 보면서 양화대교를 건너겠다고 말하고 택시는 양화대교를 건너지 않는 동안 그는 색깔에 대해 변명한다. 택시가 노란색인 이유는 카카오 택시여서가 아니고 협동조합 택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내게 합정에는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묻는다. 내가 한국어능력시험 때문에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더니 자기도 대학시절에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불문학은 창신동에서 편의점을 하고 영문학은 목사님이 되어 일년에 반 정도는 더운 나라로 봉사하러 간다고 한다. 문과대학 동기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한다. 대단하시네요,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가 멈춰 있는 것인지 움직이는 것인지 생각하다가 나는 턱을 괴던 손을 거두고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낸다. 불빛을 앞두고 차가 멈추어 선다. 사거리를 지날 때 풍경은 답답함을 오래 견디게 된다. 택시가 사거리를 지나가지 않는 동안 굳이 말은 먼 길을 빙 돌아가고 있고 볼펜이 의자 밑으로 굴러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순간 나의 팔이 아주 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 손이 닿지 않는다. 작가 : 조해주 출전 : 『가벼운 선물』(민음사, 2022)



조해주 ┃「가까운 거리」를 배달하며


거리라는 말은 흔히 두 가지로 쓰인다. 실제 공간에서의 거리, 그리고 심리적 거리다. 어느 경우든 가깝거나 멀다고 느끼는 감각이 사실이 아니거나 반대로 나타날 때가 있다. 특히 심리적으로는 매우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아닐 수 있다. 시에 나오는 택시 기사와 승객인 나,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렇다. 택시 기사는 자신이 “국문학을 전공했”고, “동기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한다.” 문학과의 거리가 가까움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승객인 내가 보기에 그것은 문학에의 심리적 애착일 뿐, 현실에서 택시는 노동의 현장에 다름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비록 한국어능력시험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택시 안에서도 볼펜을 꺼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볼펜이 의자 밑으로 굴러가”고 그것을 집어올리지 못한다. 집어올릴 수 있을만큼 “팔이 아주 길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기사처럼 나도 문학과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합정이 가까운 거리인데도 택시가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멈춰선 것처럼, 우리들은 오늘도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생각처럼 쉽게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시인 이수명


작가 : 조해주

출전 :『가벼운 선물』(민음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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