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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겟패킹」

  • 작성일 2022-11-24
  • 조회수 1,261





 겟패킹 -임솔아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했다가 괜찮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괜찮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강을 바라보았다. 그냥 보기만 하는 돛단배가 강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정말 새까맣고 정말 아름다운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카페에 자리를 잡았을 때 친구는 모두에게 캐리어 한 개씩을 나누어 주었다. 게임을 하자고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캐리어에 물건들을 담아 캐리어를 닫으면 된다. 모자를 넣으면 오리발이 튀어나왔고 오리발을 뒤집어 넣으면 곰 인형의 엉덩이가 튀어나왔다. 가방을 싸는 동안에는 가방을 싸는 일만 생각할 수 있어서 우리는 가방을 싸고 또 가방을 쌌다. 이비사에 가기 위해 코란타에 가기 위해 보라보라에 가기 위해 손님은 점점 줄어들었다. 종업원이 다가와 폐점시간을 알려주었다. 한 사람을 남겨두고 우리는 돌아갔다. 잠깐 비가 왔다. 차창에 맺힌 물방울들이 부서지면서 점선이 되어갔다. 침묵을 깨고 누군가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 가방을 쌌다고.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가방을 싸두었다고. 작가 : 임솔아 출전 : 『겟패킹』(현대문학, 2020)



임솔아 ┃「겟패킹」를 배달하며


여행은 현실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떠날 이유를 백 개는 가지고 있고, 여행은 그 백 개의 이유 모두를 달랠 수 있다. 여행은 우리가 잠시나마 현실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고, 현실 밖으로 몸을 펴는 상상을 하게 한다. 가방을 싸는 순간, 우리는 이미 떠나는 자들이고 아무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방을 싸는 쾌감과 흥분이 여행의 에센스가 되기도 하다. 이 시에는 가방 싸는 일에 몰두하는 우리가 나온다. 친구들끼리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가방을 싸는 겟패킹이라는 게임을 한다. 실제 여행이 중요하겠지만, 게임만으로도 마음의 모든 거스러미를 달래고 잠재울 수 있다. 그래서 카페가 문 닫을 시간까지 게임을 즐긴 후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가방을 싸두었다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 위로를 나누며 현실로 돌아간다. 그런데 모두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을 남겨두고” 돌아간다. 가방 싸기 게임은 게임에 불과하고 모두 담담히 현실로 복귀할 뿐인데, 복귀하지 않고 카페에 남아 있는 이 사람은 누굴까. 계속 가방을 싸고 싶어 하는 사람, 진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 현실에 영원히 복귀할 수 없는 사람, 우리는 이 사람을 마음으로 잘 알고 있다.


시인 이수명


작가 : 임솔아

출전 :『겟패킹』(현대문학,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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