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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 「여름 별자리」

  • 작성일 2015-03-06
  • 조회수 2,417


이준관, 「여름 별자리」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에 가서
별을 보았다.
감자밭에서 돌아온 어머니 호미 같은
초승달이 서쪽 산자락으로 지고
감자꽃 같은 별들이 돋아났다.
어미곰과 아기곰이 뒹굴며 노는 큰곰 작은곰 별자리
은하수 물방울을 퉁기며 솟구치는 돌고래 별자리
나는 어렸을 때 배웠던 별자리 이름들을 다시 불러보았다.
그 이름에 대답하듯 별들이 온 하늘 가득
뽕나무 오디 열매처럼 다닥다닥 열렸다.
별똥별 하나 저 멀리 밤나무 숲으로 떨어졌다.
저 별똥별은 가을에 밤 아람으로 여물어
밤송이 같은 아이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리라.
아내는 세상에나! 별이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여기 다 모여 있었네 하면서 별처럼 눈을 빤짝거렸다.
그리고 옥수수를 따서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듯
별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서 있었다.
세상에나!
우리는 낮이나 밤이나 아름다운 별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살고 있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우리는 외양간이 딸린 민박집 방에서
별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송아지를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미 소는
가끔 깨어 송아지를 혀로 핥아주고
그때마다 별들은 잠을 깨어
딸랑딸랑 워낭 소리를 내곤했다.




_ 이준관 이준관(1949~ )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1974년 『심상』 신인상에 당선하여 등단했다. 시집으로 『가을 떡갈나무 숲』 『부엌의 불빛』 등이 있다.


낭송_ 정성익 - 배우. 연극 「미친극」, 「밤비 내리는 영동교」 등에 출연.



배달하며

자연에 대한 심미적 성찰이 빛나는 이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시의 언어는 세계의 깊이를 스스로 자각하게 이끄는 바가 있지요. 시는 곧 세계의 발견이요, 개시(開示)니까요.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밤하늘에는 다 멸종된 줄 알았던 별들이 쏟아져 나온다지요. 별들은 온 하늘 가득 뽕나무 오디 열매처럼 다닥다닥 열린다지요. 우리의 불행은 우리 머리 위에 낮이나 밤이나 이 별 바구니를 이고 산다는 사실을 잊은 데서 시작한 것은 아닐까요? 어미 소가 밤중에 어린 새끼를 뜨뜻한 혀로 핥아줄 때 하늘의 어린 별들도 잠을 깨어 딸랑딸랑 워낭 소리를 낸다는 그곳을 한번 찾아가 볼까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천국의 계단』(서정시학)

▶ 음악_ 심태한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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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hnbora

    이 시를 읽으니 제가 직접 여름날 밤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별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데 그걸 잊고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고, 그 점을 '옥수수를 따서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듯 별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 라고 표현한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밤하늘의 별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되었다는 것에 서글퍼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준 시를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 2017-07-09 15:25:31
    hnb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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