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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

  • 작성일 2014-11-19
  • 조회수 2,296


신미나, 「시」





닷새면 피가 상한다고 했다


선지피 받아온 날
한쪽 귀가 흔들리는 냄비를 들고 가다
눈 쌓인 마당에 자빠졌다


돈벌레의 작은 발처럼
수백갈래로 퍼져서
흰 눈을 갉아 먹는 붉은 다리들, 붉은 이빨들


응고된다는 것은
누군가 잰걸음을 멈추고
문득 멈춰 선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 지금 고인 것은
한사발의 붉음인데
처음 본 붉은빛은 다리를 달고 달아났다
뿔뿔이 흩어져 천만갈래 비슷한 붉기만 번지고 있다




▶ 시 · 낭송_ 신미나 - 신미나는 1978년 충남 청양에서 내어났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싱고, 라고 불렀다』가 있다.



배달하며

선지피가 담긴 냄비를 눈 쌓인 마당에 쏟은 일은 그 낭패도 뇌의 해마에 각인된 인생의 쓰라린 실패의 기억이겠지만, 백색을 잠식하는 붉은 색깔의 강렬한 인상만으로도 충격적인 경험이겠지요. 붉은 피가 백색 눈으로 번져가는 그 광경을, 다리가 많은 돈벌레의 재빠른 움직임, “수백갈래로 퍼져서/흰 눈을 갉아 먹는 붉은 다리들, 붉은 이빨들”이라는 이미지로 드러낸 것이 놀랍네요. 시란 무엇인가요? 시는 현실을 꿰뚫고 그 본질을 파열하듯이 드러내며, 흰눈을 삼키는 붉은 피와 같이 마음의 결로 파고들며 속절없이 적셔버리는 것! 시는 언어와 이미지를 넘어선 경험과 세계의 함의(含意)를 마침내 세상을 향해 까발리는 것! 무자비한 것, 지옥 같은 것, 닷새면 상하는 피 같은 것!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싱고, 라고 불렀다』(창비)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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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포엠스타

    신미나 선생님의 시는 겨울날 포근함이 느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정한다.♥♥♥

    • 2014-11-28 20:10:09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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