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이성미, 「칠 일이 지나고 오늘」

  • 작성일 2014-02-18
  • 조회수 2,160

이성미, 「칠 일이 지나고 오늘」





한 사람이 가자 이어달리기하듯 다른 사람이 왔다. 그는 가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넘겨주었다. 나는 파란 바통이 되어 ...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칠 일이 지나고...


오늘은 일곱 개의 태양이 뜬 날.


오늘은 일곱 나라의 언어로 종알거린다.

나는 오늘의 입을 보고 있다.

오늘은 주름치마를 입고

사장 좌판을 펼치듯 하루를 펼친다.


오늘은 뜨거운 시간, 서늘한 시간, 밝은 시간...

각자 다른 길이와 온도를 가진다.


나는 시계 소리를 듣고 있다.

밤이 가까워질수록 오늘은 점점 느리게 간다.


오늘은 뒤섞이고, 오늘은 돌기가 있고,

마주 보다가 몸이 멍청해진다.


오늘 새벽의 공기는

하얀 스카프처럼 휘감으며 속삭였지.

나를 사랑해도 좋아.



▶ 시_ 이성미 -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1년 《문학과사회》에 시 「나는 쓴다」 외 3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칠일이 지나고 오늘』이 있다.

▶ 낭송_ 김성영 - 배우. 연극 <겨울동화>, <엘리베이터> 등에 출연함.



배달하며


살아온 모든 시간은 나를 떠나지 않고 내 몸에, 마음에 지층을 이루고 쌓이나 봐요. 한 사람을 겪으면 그 겪은 사람을 포함한 내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죠. 그러니까 사랑을 겪으면 그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부르는 거죠. 독립된 사랑이 없다니 생각해보면 그것도 놀랍네요. 우리는 ‘완전독립자치국가사랑’을 한다고 착각을 하고 사는데......

하늘에 하나의 태양만이 뜬다고 알고 있었는데, 하나의 달님이 두둥실 떠서 서쪽 나라로 간다고 믿고 있었는데 일 주일을 살면 일곱 개의 태양이 떠서 ‘일곱 나라의 말’을 종알거린다니. 참으로 맞는 말이네요. 보름을 살고 나서 열 다섯 개의 달이 떠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오늘부터 세겠습니다.

시는 이렇다니까요. 이렇게 엉뚱한 형식으로 참으로 맞는, 아름다운 말을 한다니까요. 우리 모두가 새벽 공기의 말귀도 잘 알아듣던 시절이 그립기만 해요. 새벽 공기가 이런 말을 한다니까요. ‘나를 사랑해도 좋아.’ 이렇게!


문학집배원 장석남


▶ 출전_ 『칠 일이 지나고 오늘』(문학과지성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추천 콘텐츠

숙희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봬요」

봬요 숙희 내일 봬요 그래요 내일 봬요를 처리하지 못해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내일 뵈요 라고 썼다가 그건 또 영 내키지가 않아 그럼 내일 뵐게요 라고 적어보니 다소 건방진 듯해서 이내 그때 뵙겠습니다 라고 고치자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고 내일 봐요에 느낌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두 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갈팡질팡하는데 가벼운 인사를 가벼운 사람으로 당신이 나를 오해할까 잠시 망설이다 숨을 고르고 다시 봬요로 돌아온다 그런데 봬요를 못 알아보고 세상에 이렇게 한글을 이상하게 조합하는 사람도 있네 라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봬요는 청유형 존대어라 어색한 걸 모르냐고 되물을까 봐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져 내일 봅시다 라고 따따따 찍어보니 참나 이건 정말로 더 아니다 싶어 결국 내일이 기다려져요 라고 보내버리고는 손목에 힘이 풀려 폰을 툭 떨어뜨렸다 『오로라 콜』(아침달, 2024)

  • 관리자
  • 2024-07-11
강우근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환한 집」

환한 집 강우근 나의 어린 조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너의 그 칙칙함을, 무표정을 좋아해” 가족 모임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부기라는 옆집 아저씨를 닮았다고 많은 것을 무서워해 바깥을 안 나가는 부기 아저씨를 소피라는 꼬마가 매번 불러내어 모험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조카를 하루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하얀 집에 살고 싶어” 조카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집을 꺼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오고, 가을에는 은행이 터져 나가고, 겨울에는 폭설이 떨어질 텐데. 하얀 집은 금세 검어질 것이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인 생크림 케이크는 작아질수록 포크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삼촌은 어떤 집에 살고 싶어?” 나는 검은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환한 집이라고 대답하며 애써 웃는다. 조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환한 집은 어떤 집일까, 생각에 잠기는 사이 생크림 케이크에는 검은 파리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치우고 조카가 돌아온 테이블에는 새롭게 놓인 생크림 케이크 “······삼촌이 배가 고파서” “삼촌에게 추천해 줄 케이크의 맛이 아주 많아.”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아무런 근심 없이 나눠 먹는다.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 관리자
  • 2024-06-14
김소연의 「내리는 비 숨겨주기」를 배달하며

  • 관리자
  • 2023-12-28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