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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가난의 골목에서는」

  • 작성일 2013-01-14
  • 조회수 362

 

박재삼, 「가난의 골목에서는」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닌 것가.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도 옳은 일쯤 되리라. 그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참말로 참말로 우리의 가난한 숨소리는 달이 하는 빗질에 빗겨져, 눈물 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이다.

 

 

시_ 박재삼 - 1933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남. 시집 『춘향이 마음』『햇빛 속에서』『천년의 바람』『어린 것들 옆에서』『뜨거운 달』『비 듣는 가을나무』『추억에서』『대관령 근처』『찬란한 미지수』『해와 달의 궤적』 등. 시조집 『 내 사랑은』. 수필집 『슬퍼서 아름다운 이야기』『빛과 소리의 풀밭』『노래는 참말입니다』『샛길의 유혹』『바둑한담』『아름다운 삶의 무늬』『미지수에 대한 탐구』. 1997년 지병으로 영면함.

 

낭송_ 빈혜경 - 배우. 연극 <블랙박스>, <큰아들> 등에 출연.

 

 

* 배달하며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입술을 달싹이며 절로 한 번 더 읽어보게 되는 시다. 아, 얼마나 흥건한 아름다움인가…….

. ‘흥부의 사립문’이 일러주듯이 가난한, 바닷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삶의 터전이 바다이니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나 있을 테지. 삶의 터전이기도 한 그 바다는,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닌 것가’, 우리 넋이 결국에 가는 곳이기도 하다. 즉 죽음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래,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고된 하루를 마치고 단잠에 빠져든 이들의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미묘하고 심오해서 독자의 마음은 아스라이 헤맨다.

‘우리의 골목에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도 옳은 일쯤 되리라.’

죽으면 육신은 결국 흙이 되고 안개가 되고, 물질의 형태만 그렇게 변할 뿐이고 넋이라든가 혼이라든가는 바다 같은 것으로 일렁이고 반짝이게 될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삶이라는 게 별 게 아닌데, 이 삶을 살아내기가 그토록 힘들구나! 해방촌에 있는 독일식 빵집 ‘더 베이커스 테이블’ 벽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을 견딜 수 있다.”  우리 삶에는 눈물, 즉 슬픔이 많은데 그 슬픔의 이유는 주로 가난이다. 휴…… 가난!

그런데 눈물 흘리는 일이 많다는 건 금방 수긍이 가는데, 그게 ‘옳은 일’이라니 무슨 뜻일까? 무슨 뜻일까! 무슨 뜻일까…… 마땅하다…… 그러니, 운명이다? 운명이라면 정면에서 맞아라, 맞서라, 뒤통수 맞지 말아라…… 팔자에 복무해라……. 어쨌거나, 가난한 어촌의 밤풍경을 얼레빗 같은 달빛으로 하염없이 빗어 내리는 참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시!

‘얼기빗’은 ‘얼레빗’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인 얼레빗의 다른 이름은 월소(月梳)다. 월소라니! 옛사람들의 작명 센스나 박재삼 선생님의 시 감각이나 어찌 이리도 절묘한가! 내친 김에, ‘빗살이 아주 촘촘한 대빗’은 참빗이라고 하는데, 참빗의 다른 이름은 진소(眞梳). 진(眞) 대 월(月)이라……. 진은 지구, 이 땅, 현실일 테고, 월은 달, 저 곳, 꿈? 국어사전은 참으로 내게 세계를 보는 창이어라!

 

문학집배원 황인숙

 

 

출전_ 『천년의 바람』(민음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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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test

    • 2013-01-16 14:32:5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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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너무 아프게 다가오는 시...

    • 2013-01-22 04:08:0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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