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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권, 「우리 동네 집들」

  • 작성일 2010-08-23
  • 조회수 6,333




우리 동네 집들

박형권

좋은 사이들이 말을 할 때 가만히 눈매를 바라보는 것처럼
손끝으로 입을 가리는 것처럼
겨드랑이를 쿡 찌르고 깔깔대는 것처럼
우리 동네 집들이 말을 한다
파란 대문 집은 아직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외등을 켜고
군불 때는 집은 쇠죽 끓이는 소리로 오래된 말을 한다
옥상에 노란 수조가 있는 집은 취직 시험 볼 삼촌이 있어서
옥탑방이 하얗게 말을 한다
오랫동안 살을 맞댄 이웃집들은 오래된 부부처럼 닮아간다
된장 맛이 같아지고 김치 맛이 같아지다가
우리 담장 허물까 한다
그러다가 한방 쓸까 한다
돌아설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에서는 등으로 말을 한다
뒤란으로 말을 한다 거기 목련 한 그루 심어둔다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마주한 집들은
활짝 열린 입술로
키스할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인다 문을 열고 사람이 나와
골목을 쓸면서
잘 잤어? 하는 것은
사람이 집의 혀이기 때문이다
집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달콤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 불 끌까?이다
밤에 집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옥상에서 귀를 기울이면
응, 거기 거기 하는데
우리 동네 밤하늘이, 반짝반짝 별들이 그런 밤에는 불끈불끈 자란다
우리 동네 집들은 다른 동네 집들보다 조금 크게 말을 한다
바다에서는 목청껏 말해야 파도 소리를 넘을 수 있기에
그런 어부 새벽마다 낳아야 하기에
배에 힘 가두고 출렁이듯 말을 한다

시 / 박형권 -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200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두커니』가 있음.

낭송 / 장인호 - 배우. ‘위선자 따르뛰프’, ‘갈매기’ 등 출연.
출전 / 『우두커니』(실천문학사)
음악 / 심태한
애니메이션 / 민경
프로듀서 / 김태형

이 천진스러운 시를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어려지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이의 말을 잃지 않은 사람, 굳어져 딱딱한 고정관념이 없이 말랑말랑한 새 말을 쓰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라 부릅니다. 그 어린 눈에라야 삐뚤삐뚤하게 어깨를 맞댄 집들과 그 집안에 사는 순하고 어수룩한 사람들이 한 몸이라는 게 보일 것입니다. 그 어린 귀에라야 집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인 사이처럼, 엄마와 아기 사이처럼, 사람과 집 ‘사이’에 서로 꼭 붙어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말들이 손으로 만져질 듯합니다. 이 말들을 우리는 시라고 부릅니다.

문학집배원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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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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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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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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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5건

  • 익명

    골목 하나 사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리 같군요. 사람이 집의 혀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머뭇거리는 집에게 키스를 선물하고 싶어지는 오늘...

    • 2010-08-23 10:06:3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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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언제쯤 책으로 나올까요?기다려집니다.~ㅎ

    • 2010-08-23 15:31:3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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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동굴

    좋은 사이들처럼 옆에 바짝 살을 맞대고 서있는 한골목 마을 집들의 표정과 마음들이 다정다감하게 스며나오는 것같습니다. 무에 그리 바쁘다고 사람 사이의 말도 귀를 닫고 지내기 일쑤인데 집들의 대화까지 들을 수 있는 시인의 열린 마음이 여간 부럽지가 않네요.

    • 2010-08-24 16:39:18
    바람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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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집들의 달콤한 속삭임.. 동네의 모습이 정말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보일 수가 있구나 생각이 됩니다. 집들과 집들의 그 골목길 사이를 서로 키스를 하는 모습으로 생각하다니~ 마음이 얼마나 포근하면 그런 생각을 할까요? 따뜻한 이미지가 눈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오늘 옥상에 올라가서 집들을 내려다 봐야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할 지 모르니까요, 몰래 귀기울여 들어볼까요~? 소근소근... 우리동네는 조용히 말할 거 같은데..

    • 2010-08-24 19:02:1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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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그러고 보면, 집들은 돌아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정감있고, 집안의 나무보다 더 고독한지도 몰라요... 사람이 보는 눈으로 집이 그러할진대 말입니다..

    • 2010-08-24 19:53:3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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