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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얼굴」

  • 작성일 2018-02-22
  • 조회수 20,047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이영광 |「얼굴」을 배달하며…



본다는 게 저절로 되는 일 같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보고 있지만 안 보는 일이 태반이니까요. 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자 어머니가 그녀를 알아보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합니다. 솔닛은 그 질문이 참 짜증스러웠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병에 걸리기 전에도 엄마는 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을 비춰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 엄마가 계속 그렇게 나한테서 기적을 바라는 한 나는 절대 그것에 맞출 수가 없어요.”(『멀고도 가까운』) 누군가를 알아보려면 그의 얼굴에 차오르는 무수한 표정들에 충분히 잠겨봐야 합니다. 내 관심과 욕구에 취하지 않고서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때가 가장 많아요.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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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4건

  • 조원혁

    이 시를 읽고 새학기가 생각 났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아직 어색한 사이의 친구들이 많고 그러

    • 2018-06-08 10:20:19
    조원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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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erto

    상대방의 표정을 읽는 것과 얼굴을 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끔은 다른 사람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마음은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듯하다. ‘눈물을 닦으며 너는 너를 사랑한다/ 눈물을 닦으며, 나는 네 사랑을 사랑한다’라는 시인의 고백이 표정을 읽는 것과 얼굴을 보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누군가와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까 대화하는 동안의 내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내 말과 표정이 다르지는 않았을까, 웃음 띤 표정 뒤에 감쳐둔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드러나진 않았을까 걱정이 뒤따르곤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상대방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리베카 솔닛이 언급한 거울과는 다른 의미로. 이 거울은 백성공주의 계모가 사랑한 거울이 아닌 진실의 거울이 되어 주는 것을 말한다. 그 사람이 기분이 좋아 웃으면 그 웃음을 비춰주고 속상해서 울면 그 울음을 솔직하게 담아줌으로써 그 사람이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도록 함께 해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 2018-07-26 02:22:36
    ap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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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어릴 때부터 술취한 아버지의 얼굴을 살피고, 고단한 어머니의 표정을 읽는 재능(?)이 있었던 나는 오래동안 내 얼굴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상대의 슬픔에 위로의 얼굴을 장착하고, 상대의 원망에 미안함의 가면을 쓰고, 상대의 질문에 바보의 탈을 써 오다 보니 진짜 내 얼굴이 어떤지 알 수 없었습니다. 상대방의 얼굴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정작 내 자신의 얼굴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주는 평화로움과 혜택은 컸습니다. 상대가 울 때 내 기쁨에만 취해 웃고, 상대가 행복하게 떠들 때 내 슬픔에 젖어 운다면 그와 나의 관계는 진즉에 깨어졌겠지요. 나는 철저히 외톨이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외진 밤 골목을 걷는 것 같을 때가 있으니까요. 진짜 내 얼굴로 상대의 얼굴을 대하면서도 우리가 서로 좋을 수 있는 비법을 알지 못하네요. 아니면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일까요...

    • 2018-07-29 22:25:30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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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줄

    시를 읽게 되면서, 최근 새로 생긴 취미가 있다면 인물 사진을 찍는 일이다. 그것도 찰나의 스냅 사진으로. 기억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의 말과 상황을 복기하며 그 기억을 붙잡곤 했는데, 이 과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 된 탓이다. 그들이 말한 말(言)에는 이미 말(言)만 남아 있었을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물론 그의 얼굴의 표정에는 말에는 담지 못하는 무수한 의미가 들어 있어, 이를 읽어내고 해석해 내는 과정에도 거듭되는 시행착오와 오류가 있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존재로서의 서로를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어렵게, 오랜 시간이 걸려 시와 만난 것처럼 시의 바람 결을 느끼려 오늘도 한동안 시에 머무르는 것처럼, 그동안은 스치듯 지나쳐진 상대방의 표정의 결에 지금부터라도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 2018-07-29 23:37:11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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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야80

    누군가의 표정을 살핀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그래서 그 사람의 표정은 내 안의 표정과 만나 나 인듯 그 사람인 듯한 표정이 되어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꼭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동경이든 부러움이든 질투이든 내 것이기를 바라는 대상 혹은 대상의 것을 닮아갔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누군가는 제게 "너는 참 물들기 쉬운 사람이야"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기분 나쁘면서도 한편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 어떤 사람들과 있느냐에 따라 말도 글도 표정도 인상도 그 사람들을 닮은 저를 보며 진짜 내 것은 무엇인가 혼란스럽기도 했으니까요. 분명 내 것이 있는데도 내 것이 없는 듯한 저에게 저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사랑'이라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사랑하니까 살피고 닮아가며 그보다 내가 더 그를 사랑하게 되어 저를 잊어버리는 거 같다고... 하지만 이 시를 읽고 나니 누군가를 향한 표정이 아닌 저를 향한 표정을 더 많이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집니다. 이젠 타인의 얼굴이 아닌 저의 얼굴에 잠기고 싶습니다.

    • 2018-07-30 04:09:26
    희야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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