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학집배원 : 시배달을 시작하며_문정희(시인)
- 작성일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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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을 시작하며]
언젠가 집배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늘 앉아만 있기 때문에 뚱뚱해지는 시인보다
크고 불룩한 가방에다 새 소식을 싣고
외로운 가슴들을 향해
땀을 흘리며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앞으로 1년 동안
문학집배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정성껏 시를 골라 많은 사람들에게
상큼하게 배달해 드릴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문학집배원들이 시를 배달한 지 벌써 10년!
그동안 홀씨처럼 떨어진 수많은 시편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제법 큰 날개가 되어
허공을 힘차게 날고 있으리라는 상상도 해봅니다.
아름다운 악기의 언어보다 날카로운 무기의 언어가 난무하는 시대,
폭력적이고 기형적인 언어의 흙탕물을 헤치고
싱싱한 생명의 언어로의 전환이 절대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설레는 가슴으로 시를 골라 배달하는
즐거운 문학집배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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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집 강우근 나의 어린 조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너의 그 칙칙함을, 무표정을 좋아해” 가족 모임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부기라는 옆집 아저씨를 닮았다고 많은 것을 무서워해 바깥을 안 나가는 부기 아저씨를 소피라는 꼬마가 매번 불러내어 모험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조카를 하루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하얀 집에 살고 싶어” 조카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집을 꺼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오고, 가을에는 은행이 터져 나가고, 겨울에는 폭설이 떨어질 텐데. 하얀 집은 금세 검어질 것이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인 생크림 케이크는 작아질수록 포크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삼촌은 어떤 집에 살고 싶어?” 나는 검은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환한 집이라고 대답하며 애써 웃는다. 조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환한 집은 어떤 집일까, 생각에 잠기는 사이 생크림 케이크에는 검은 파리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치우고 조카가 돌아온 테이블에는 새롭게 놓인 생크림 케이크 “······삼촌이 배가 고파서” “삼촌에게 추천해 줄 케이크의 맛이 아주 많아.”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아무런 근심 없이 나눠 먹는다.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 관리자
- 2024-06-14
- 관리자
- 2023-12-28
- 관리자
- 2023-12-1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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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기쁘게 기다리겠습니다. 늘 앉아 있고, 이제는 자주 누워 있어 중간이 넓어졌지만, 시를 담을 가슴은 함께 넓어지지 않아서, 매주 잘 읽고 담아놓겠습니다.
평소 문시인님을 그리워하며 작품을 읽곤하였는데 이렇게 집배원의 모습으로 만나뵙게 되니 무척 설레입니다 매 한 주가 설레임으로 가득찰 것 같군요
와우! 한국시인협회장님 안녕하세요.^_^ 머리 모양은 무서운 사자 같으시지만, 마음 따뜻하신 문정희 시인님 환영합니다. 좋은 시 가슴에 담고 있답니다.~ㅎㅎ 문운과 건강을 항상 기원합니다.^ㅁ^ ―동시집 《세종대왕 형은 어디에》를 출간한 정민기 올림.
어머나! 문정희 시인님의 집배원 가방에서 매주 어떤 러브레터를 받을지 궁금합니다. 집배원 아저씨도 좋고 집배원시인도 더 좋습니다 편지 겉봉투에 우체부아저씨 수고라세요 요즘도 가끔 적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