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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을 찾으시거든

  • 작성일 2016-08-01
  • 조회수 1,154

기획의 말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을 찾으시거든

― 김달진문학관(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사로 59번길 13)

김륭

8월 표지 김달진문학관

이미 지난 세계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은 구(球)를 닮았다고 쓴다.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을 찾아 오늘을 멀쩡히 걷다가 순간 발목을 접힌 듯이 맞닥뜨리게 되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흔들린다. 목탁을 두드리는 문장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페이지 속으로 삐끗해진 발을 접어 넣은 듯, 그렇게 나는 문득 흔들리다 가만히 앉았다.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동그란 지구의 섬 위에”(김달진,「샘물」中에서) 앉아서는 무엇으로 대체되지도 다르게 변형되지도 않는 ‘복원의 서사’를 꿈꾸는 것이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사로 59번길 13. 문학관과 나란히 있는 선생의 생가는 그가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를 결심한 스물여섯까지 산 ‘웅천곡’의 집들 가운데 중심이다. “따스한 첫봄 한낮의 산기슭에 높인 마을/새로 이인 오막살이 여남어 집/수숫대 울타리에 빨간 빨래 조각들/사흘 전 기원절(紀元節) 축기(祝旗)를 아직도 달아놓은 집이 있다/홀로 추녀 끝 그늘 밑에서/도꾸방아 찧는 나이찬 처녀의 머리채여/수탉이 지붕에서 훼를 치며 길게 목을 빼는 한낮의 마을/멀리 보이는 바다 한 귀가 백금(白金)으로 빛난다.”(「웅천곡」전문) 선생의 생가에는 안채, 사랑채 등이 있고, 생가 입구 오른쪽에 우물이 하나 있다. 마당에는 비파나무와 가죽나무 그리고 감나무와 대나무가 바람을 지휘하고 있고 텃밭에는 열무가 나비를 꽃잎처럼 날리고 있다. “가끔 바람이 오면/뒤우란 열무우 꽃밭 위에는/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열무우꽃 -칠월의 향수」)던 바로 그 뒤란, 무위자연의 사상이 싹을 틔운 그 텃밭이다.

1933년 늦가을, 당시 스물여섯의 선생은 출가를 결심하고 집을 나서 금강산 유점사로 향했고 이듬해 주지 운악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나는 오늘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머리를 깎아버렸다. 구렁이같이 흉스러운 내 자신의 집착성에 대한 증오의 반발이었다. 그리고 장삼을 입고 합장해보았다. 외양의 단정은 내심의 정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겸손과 하심(下心)―얼마나 평안하고 화평한 심경인가? 높고 아름다운 덕이다.” 선생의 수상집 『산거일기(山居日記)』에 실린 출가당시의 심경이다. 그렇다. 우리가 선생의 한가운데 있었을 때는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그리하여 어느 소설 속 문장처럼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알 수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있을 뿐이라는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생각의 끄트머리로 뜬금없이 묻게 된다. “왜 사나?”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선생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1976년 4월 17일 조선일보에 발표한 글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이란 문장으로 우리를 휘감는다.

사람들 모두
산으로 바다로
신록新綠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 날은다.

  ―김달진, 「씬냉이꽃」 전문

한국문학관협회의 2016년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된 김달진문학관(관장 이성모)은 지난 2005년 진해시가 창원시와 통합되기 전 건립됐다. 문학관 입구에는 선생의 흉상이, 오래된 소나무를 이끌고 방문객들을 반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돌담 모양의 벽면에 선생의 초상이 있고, 안에는 선생의 일대기와 함께 수많은 저서 그리고 역대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집 등을 비롯한 소중한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을 휘도는 골목 낮은 담장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본다. ‘박배덕 갤러리’와 ‘김씨 박물관’, ‘소사주막’ 등을 옆구리에 낀 풍경들 사이로 ‘부산라듸오’, ‘태양 카라멜’ 등의 이채로운 간판들이 마치 마술사의 모자처럼 걸려있다. “빨간 촉규화(蜀葵花) 낮에 지친 울타리에/빨래 두세 조각 시름없이 널어두고 시름없이 서 있다가/그저 호젓이/도로 들어가는 젊은 시악시 있다. ”(「유월」 중에서)는 이 골목의 담 모퉁이를 돌면서, 출가하기 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점사 이후 선생은 용성스님이 만든 항일불교단체 대각교가 운영하는 함양 화과원에서 반선반농(半禪半農)의 수행을 하며 용성스님이 번역한 『화엄경』 윤문작업에도 동참했다. 또 불교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 그는 서정주 김동리 등과 교우하면서 ‘시원(詩苑)’,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 등으로 활동했다. 졸업 후 다시 금강산 유점사로 돌아온 선생은 4년간 전국 70여 곳의 사찰을 돌며 강론을 펼쳤다. 이후 북간도에서 1년 정도를 보내고 다시 돌아와 유점사에서 해방을 맞이한 뒤 환속했다. 하산 후 춘원의 소개로 동아일보 기자생활을 했으며 이후 대구와 고향 진해 등지에서 교편을 잡았다. 퇴직 후 당시 동국대 역경원장이자 남양주 봉선사 주지 운허스님을 만나 고려대장경 역경사업에 뛰어들었으며, 1989년 영면에 들기까지 대장경 번역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월하’라는 호도 운허스님이 지어준 것이다. 작고 이듬해인 1990년에 선생의 문학 정신과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어 올해로 27회째를 맞는 2016년 김달진문학상은 유안진 시인과 이광호 평론가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1929년 『문예공론(文藝公論)』에 시 「잡영수곡(雜詠數曲)」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얼굴을 내민 선생은 시집 『청시(靑詩)』(1940)를 비롯하여 시전집 『올빼미의 노래』(1983), 장편 서사시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1984), 선시집(禪詩集) 『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1990), 수상집 『산거일기(山居日記)』(1990) 등의 저서를 남기고 있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동양고전과 불경번역사업에 몰두해 『고문진보(古文眞寶)』,『장자(莊子)』,『법구경(法句經)』,『한산시(寒山詩)』등의 소중한 역서를 남겼다. 특히 말년에 간행한 『한국선시』와 『한국한시』등은 선생의 오랜 역경사업이 한데 집약된 기념비적인 작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시인이자 승려였으며, 한학자이자 참된 교사로 일생을 살았음에도 왜일까?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노장(老莊)의 무위자연사상을 수용한 청정한 정신주의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선생의 시세계 앞에서, 그가 아직도 숨겨놓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시간 앞에서 열무 꽃처럼 다시 한 번 흔들린다. 그렇다. “부처보기, 사람보기 부끄러워라”며 말년을 시를 통해 부끄러워하며 고개 숙이던 그의 모습을 이즈음 이 나라 방귀께나 뀐다는 인사들은 알고나 있을까? “불빛 아래 비치는 흐릿한 모습/ 팔십세의 내 늙은 시력을 안타까와하다가/ 돋보기 쓰고 가까이 다가가니/ 처음 보는 그 얼굴의 주름살이여.//중도 아닌 것이, 속인도 아닌 것이/ 그래도 삼십여 년 불경을 뒤적였네./ 부처보기, 사람보기 부끄러워라./ 중도 아닌 내가, 속인도 아닌 내가.//기나긴 어둔 이 밤 언제 샐런가/다시 얻기 어려운 덧없는 이 몸을/천만 시름 속에 몸부림치네./어둠을 깨치는/새벽 종소리는 언제나 들릴런가. ”(「모월모일(某月某日)」전문) 선(禪)으로 시를 짜고, 시로서 구(球)로서 세계를 열었던 선생의 숭고한 정신주의는 산문에도 잘 나타난다.

“내게 오는 화심(禍心)을 알면서 전연 모르는 듯, 친히 사귀는 사술(詐術) 경모멸시(輕侮蔑視)하면서 능리 멀리하지 못하는 고읍(苦泣)—이것이 거세(居世)의 평상(平常)이라 생각하면 어(語), 묵(黙), 동(動), 정(靜), 실로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가 문제인 것이다. 사물에 무슨 귀천(貴賤)과 대소(大小)가 있으랴, 그것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에 진위(眞僞)와 염정(染淨)이 있을 뿐이다. 비록, 마당의 풀 한 포기를 뽑고, 방 한 번을 닦는 것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 진성(眞誠)일 때는 그 공덕(公德), 십방중생(十方衆生)에 회향(廻向)되어 위대할 것이요 국가를 책략(策略)하고 천하를 평정한다 하더라도 그 마음에 때가 끼일 때는 하나의 미미한 사사(私事)에 불과할 것이다.” (동아일보 1940년 3월 9일자)

그러니까 ‘왜 사나……’ 망설여지는 대답 앞에 놓인 질문을 찾는 일은 장자와 무위자연의 사상이자 선(禪)과 구(球)를 향한 복원의 서사, 이때의 복원은 한민족의 정신사가 아닐까.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선생의 세계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인 것이다. (끝)

김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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