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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생활에세이 공모대회 《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 》

  • 작성일 2012-12-26
  • 조회수 7,542

청소년들이 다양한 갈등 상황을 에세이 쓰기를 통해 담담하게 응시하고 진솔하게 나눔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마련한 백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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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8건

  • 익명

    주제 : 세상속으로 제목 : 위험한 욕망 학교 : 포곡고등학교 번호 : 010 2200 7496 원조교제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는가 ? 물론 한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흔히 나이가 많은 사람과 어린나이의 학생이 사귀는 것 이라고들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나는 이러한 원조교제에 대하여 듣기가 거북하게만 느껴졌고 내 나이의 또래의 여성이 돈을 받고 음란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 충격적이고 또한 내 주변에서도 이런일이 벌어지고 있을것이 라는 것에 대해 한번더 충격을 받았다. 2000년도서부터 인터넷이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채팅프로그램으로 흔히 버디버디라는 프로그램에서 번개(즉석만남) 또는 화상캠으로 몸을 파는 것을 초등학생이라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채팅을 통하여 몸을 팔게된다는 것을 알게되고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수많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지금도 수많은 경로로 이런일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에 더 나를 충격받게 만들었다. 그 후 나는 과연 청소년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몸을 파는것일까 ? 라고 생각을 했었고 한때 방황으로 가출한 친구에게 물어봤었다. “ 대부분 성매매를 하는 청소년들은 돈이 부족하거나 가출했기 때문이야. 이런 일이 한두번 반복되다보면 집에 들어가거나 돈을 벌 수밖에 없거든 ? 청소년을 써주는 곳도 별로 없고 돈도 별로 못받다보니 여자 청소년들은 채팅으로 성매매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해 그리고 성매매를 하다보면 큰돈을 만질수 있어 많이들 빠지는 편이지 ” 이런 이야기를 하였고 청소년 성매매에 대해 나중에 결혼하고 내 자식에게서도 이런일이 일어 날수 있다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니 덜컥 겁이났다. 나는 한동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까 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과 근본적으로 가족 문제부터 해결해야할 것이다. 라는 결론이 나왔다. 대부분 성매매를 접하는 청소년들은 가출 청소년이였고 가정이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하니깐 불우하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커 청소년들이 뛰쳐 나와버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고 부모님께 물어보니 이런 경우 가족관의 대화가 많이 오고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조사해보니 우리나라 성매매 처벌에 관한 법률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 만원의 벌금이며 청소년에 경우 아동 청소년법에 의해 실질적인 처벌은 받이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고 법률이 매우 미약해 정부에서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라던지 성매매를 한 청소년을 소년원에 보낸다는지 강력한 처벌을 해야할것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청소년 성매매는 인간적으로 해서는 안될짓인거 같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청소년과 성관계를 한다니 상상으로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누군가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매매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자기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 청소년들이 돈에 의해 몸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대한민국 어디선가 청소년들이 돈을 구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있을 것이다 ..

    • 2013-02-03 03:04:5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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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literature1028@gmail.com 확인해주세요

    • 2013-02-02 23:53:5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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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이메일로 보내요~ ~ lhj3070306@naver.com확인해주세요~^^

    • 2013-02-02 23:05:5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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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m

    열여섯. 2013년이 되면서 더하기 일이 된 나의 나이가 낯설다. 중학교 입학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냥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교복을 입던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훌쩍 커버린 내가 익숙하지 않다.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매 순간마다 나는 성장하고 또 변하고 있었다. 유년 시절, 요상한 풀꽃을 뜯어와 소꿉놀이를 하던 내가 생생하건만. 그 때의 나는 내가 활발한 성격에 수다쟁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잘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말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활짝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후인 지금, 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으며 말이 많은 편도 아니다. 미술 과목에 딱히 큰 재능은 없는 데다 장래희망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우습게도 어릴 적의 나도 지금의 나도 똑같은 ‘나’ 인데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내가 변했다는 증거일까. 시간에 몸을 맡겨 흐르다 멈춰서보면 참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지 않은가. 나는 나에 대해 단정 짓듯이 얘기할 때가 있는데 과연 그것이 몇 년이나 갈 지 궁금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릴 적엔 쉽사리 내 꿈을 늘여놓고 나는 이러이러 하다 잘도 재잘거렸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나를 잊어가는 것 같다.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어린 나는 마치 오래된 테이프 마냥 지지직 거리고 입을 굳게 다문 나만이 화면에 담겨있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살아갔던 어린 나와, 주어진 하루 속에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는 ‘나’가 참 비교된다. 서슴없이 무언가를 건드리고 호기심을 가지던 아이가 무감각해지고 무관심한 내가 되었다. 생각 할 머리가 생기면서 어찌나 수많은 고민들이 생겨나던지. 그 고민들을 매일 밤 꺼내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사귀고, 부딪히기도 하고 동화되기도 한다. 가지각색의 영화, 책, 연극을 보고 감동받고 비판하고 그 교훈을 곱씹어 보기도 한다.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하며 그렇게 내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 안에서 나를 찾아보았다. 세상 사람들 제멋대로 평가도 해보고 분석도 해보는데, 막상 나는 잘 모르겠다. 나 자신을 내가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나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어쩌면 무서운 걸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바라 본 내가 너무나 한심할까봐. 넓은 세상 속, 잘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데 그 중에서 난 아무것도 아닐까봐. 세상은 너무나 낡았고 나는 세상의 수많은 흠집에 불과할까봐. 언젠가부터 나를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과 숫자들이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내 생의 가치를 숫자에 두게 되었다. 배워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감추는 것도 많아졌고 참는 것도 많아져갔다.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점차 나를 잊어갔다. 나를 포장하고 또 포장하며 결국 그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 지,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물으면 띄엄띄엄 대답이라도 하는데 왜 라는 질문이 시작되면 나는 말문이 막혔다. 도리어 반문한다. 그러게요, 제가 왜 하고 싶어 할까요. 아직 번데기에 불과한 나는 앞으로가 두렵다. 꽁꽁 껍데기로 둘러쌓인 채 살던 내가 언젠가 사회 속으로 홀로 던져지게 될 때쯤 나는 어찌 되어 있을까. 일곱 살 적의 내가 지금의 ‘나’를 모르듯이 나또한 훗날의 나를 알지 못한다. 자라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내 모습이 있는 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가는 내 모습도 있을 것이다. 아직 나는 내 키 높이만큼의 세상밖에 보지 못하기에. 나는 세상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큰 도화지이고 나는 그 속의 점에 불과하다. 몇 십년이 흐르고 나면 그 큰 도화지에 선을 그리게 되겠지. 다만 어떤 선이 그일지는 지금의 내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내가 바라는 것, 내가 하고픈 것, 나의 위치, 나의 길. 나는 아직 어리다. 남들 다 갔던 길을 따라 밟는 것도, 미지의 땅에 첫 발을 디딛는 것도, 전부 내 선택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자취를 남기고 간 세상 속에서, 나 또한 선택하는 순간이 오리라. 수학문제처럼 정해진 답이 없는 나이기에 어떠한 풀이도 정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인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은 불가능한 것이라. 순간순간 하는 행동과 버릇, 바뀌어가는 겉모습과 가치관, 취미와 삶의 목표. 그 모든 것이 바로 ‘나’ 인데 어떻게 숫자마냥 딱 떨어질 수 있겠나. 이리 변덕스런 나를 객관적으로 정의 내릴 잣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다만 이리 변덕스런 나를 나만의 길에 세워야 할 것이다. 길을 이탈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할 것이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내가 별것 아니라 생각 될 때에 나 자신을 놓지 않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자. 최선을 다해 살자. 겁내지 말자. 솔직해지자. 이 모든 혼란은 결국 성장함에 생겨난 성장통이다. 겸허히 받아들이자. 시작점에 놓인 나는 때로 비틀리고 꼬이겠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운 선을 그을 것 이다. 그래, 살아가는 나를 지켜보자. 끈임 없이 변화하고 있는 나는 아직 미완성이다. 불완전하기에 미숙하고 어리숙하다. 나 자신을 알기보다 만들어가고 있음을 기억하자. 하나의 발자국으론 그 사람이 어디를 향해 갔는지 알 수 없다. 한 발자국이 두 발자국이 되고 이어지고 이어졌을 때서야 알 수 있다. 나는 때로 지도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기도 하며 내 길을 갈 것 이다. 훗날, 이 날을 되돌아볼 때에 비로소 그 때의 나를 알 수 있도록. 후회로 얼룩지고 멍울진 과거가 아니라 가끔씩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과거가 되기를.

    • 2013-02-02 22:56:48
    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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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m

      제목: 아름다운 성장통 주제: 자아정체성

      • 2013-02-02 22:58:34
      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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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학교:부산중앙고등학교 2학년 이름:김동호 연락처:010-9209-4127 주제:자아정체성 제목:미래의 내 모습은 내가 그린다 현재시각 약 새벽1시 중학교 2학년이였던 나는 몰컴을 하기위해 가족들이 자는 틈을 타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 30분이 지났을까 누나가 잠에 깼다는 것도 모른 채 게임을 하고 있던 나는 누나에게 강스파이크로 등짝을 맞고 짜증을 부리면 컴퓨터를 껐다. 그다음날 누나는 내가 가진 모든 돈을 빼앗고 컴퓨터에 비번을 걸었다. 그 뒤로 며칠간 나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전혀 할수 없게 되었고 돈이 없어 pc방에 가지 못했다. 게임 못하게 막는 가족들이 싫었고 게임도 못하는데 내가 이세상을 왜 살아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생각했고 가족들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게임을 하지못하는 고통을 내가 죽어서 가족들이 느끼는 슬픔으로 복수해주고 싶었다. 토요일 저녁 자살을 하기위해 문현로타리 사거리로 나갔다. 교통사고를 당하기 위해 차선 앞으로 갔지만 내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차선 앞 까지 가니 자살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자살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아들, pc방 안가고 집에있네?” 나는 어머니 한마디에 바로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 까지 나를 걱정해주시는데 방금 전까지 자살을 생각한 내자신이 어머니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는 그때 “나는 이제 절대로 자살 안한다. 안하는게 아니라 자살 할 수 없다” 라고 다짐을 했다. 어머니의 전화 한마디에 처음으로 게임을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게임을 접겠다는 생각은 작심삼일로 끝나버리고 또 다시 게임중독자로 빠져버렸다. 배고프면 많이 사먹으라고 주시는 어머니의 용돈을 pc방비로 다썼고 돈이 부족하면 누나 지갑에 손을 대서 돈을 구했고 문제집 사야된다 학용품 사야된다 핑계로 pc방을 가기위해 돈을 마련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1달에 pc방비로 쓰는 돈만 7~8만원 이였고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3학년까지 pc방비만 200만원 넘게쓴 것 같다. 그렇게 게임중독인 채로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공부는 뒷전이고 하루 대부분을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벼락치기와 남중인덕분에 내신 28%로 손쉽게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 할수 있게 되었다. 2011년 3월 3일 고등학교 입학식을 하고 첫 야자를 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동안 나는 새공책을 펴고 게임 템셋팅과 레벨업계획을 열심히 세웠다. 누가보면 공부 열심히 하는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고등학교에 와도 나는 달라진게 없었다. 그러던 며칠 뒤 선생님들께서 입시에 관한 설명을 해주시는데 입학사정관제 전형이라는 생소한 전형을 알게되었다. 잠재력과 발전가능성, 꿈에 대한 열정등등 21세기 미래인재를 뽑는 전형이라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무조건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을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에게 딱맞는 전형이라 생각됬다. 입학사정관제를 알고 나서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부산대 입학사정관제 창의적인재 전형으로 국어교육과에 합격할 것이라고 종이에 적었고 마음에 새겼다. 나는 입학사정관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신문에 있는 입학사정관제 기사도 보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기도 했다. 알면 알수록 “나에게 딱 맞는 것 같고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안가면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학사정관제를 점점 알아 나가는 그 순간 나에게 게임은 점점 더 멀어져갔다. 고등학교 입학 약 1주일 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게임을 해서 얻는 건 무엇일까? 나는 왜 게임에 미쳐있을까? 이젠 진짜 게임 접어야겠다.” 고등학교 입학 약 2주일 후 나는 진짜 게임을 그만 둘수 있게 되었고 게임을 그만 둔지 한달이 되어서야 내 머릿속에서 게임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릴수 있게되었다. 내가 게임을 그만둘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게도 나에게 꿈이 생겼고 인생의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게임을 했던 시절로 되돌아보면 나는 꿈이 없었다. 꿈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몰랐고 게임을 하지 않으면 나는 인생을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당시 나는 꿈이 없었다기보다 의미 없는 꿈들이였다. 이유없이 하고 싶었던 국어교사, 게임만렙 5개, 신캐릭터 랭킹1위 그것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를 알고나서부터 내인생에도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고 가장 중요한건 내가 왜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알게 되었다. 2011년 8월 입학사정관제를 좀 더 알아보고 싶어서 Summer School 미리가본 입학사정관제를 신청했고 내가 몰랐던 정보도 알수 있게 되었다. 5개 대학의 입학사정관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한가지가 있었는데 꿈과 비전에 관한 진로에 대한 내용이였고 꿈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온 즉시 내꿈에 관한 일기를 썼다. “나는 나 자신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나를 모른다. 왜냐고? 나 자신을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취미가 내 특기가 내 꿈이 먼지 잘모르고 있었다. 내꿈 국어선생님 꿈 있는건 좋다. 말로만 국어선생님이다. 그것을 왜하고 싶냐고? 면접관이 묻는다면 나는 말문이 막힐 것이다. 이것은 내가 국어선생님이 정말로 되고싶은 이유를 못찾았다는 것이다. 단지 적성,흥미,성격 만을 가지고 국어선생님을 판단하고 있다. 내 자신에게 말해주고싶다. 꿈좀 제발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니가 진짜 국어선생님을 하고싶다면 왜 하고싶은지 생각해라. 생각 뿐만아니라 면접관이 물었을 때 대답할수 있을 정도로 연습해라.” 약 1년전 내가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꿈을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내자신에게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꿈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았다. 꿈을 꾸라는 글만 썼지 실제로 실천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흘러 2011년 9월 2일 야자 1차시 교내 Dream Speech 대회가 있었다. 나도 내꿈 국어선생님을 발표하기 위해 파워포인트를 작성해 대회신청을 했지만 파워포인트를 너무 대충해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 대신 본선에 오른 친구들이 발표하는 것을 들을수 있게 되었다. 몇몇 친구의 발표를 듣자 내 마음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꿈을 발표한 친구들을 보면 그 꿈을 하고싶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고 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발표를 보고 내 자신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국어선생님을 하고싶다는 뚜렷한 계기가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나는 사회선생님이 꿈이였지만 사회보단 국어 과목이 좋지않을까 생각해서 국어선생님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내가 현명하게 선택한 것인지 정말 내가 왜 그직업을 선택했는지 뚜렷하게 다른사람에게 말할수 없을 뿐만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설명할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꿈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다. 4년간 꿈꿔왔던 국어선생님이 나에게 확실히 맞지 않다는 것을 Dream Speech 발표를 보고나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집에 와서 바로 그동안 했던 심리검사, 진로검사, 나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펼쳤다. 교사를 제외한 몇가지 꿈리스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담전문가, 사회복지사, 작가, 임상심리사, 간호사 5가지 직업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싶은 일을 생각해보았다. 일기쓰기 편지쓰기와 같은 수필을 쓰는 것 그리고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동네에 도서관을 설립해주거나 상담해주기 또한 노인들 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설해주는 것 유니세프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고싶었다. 오랜 고민 끝에 유니세프에서 난민아동을 돕는일과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설을 하는 사회복지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꿈을 정하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꿈을 찾아서 너무 기뻤다. 그뒤로 나는 사회복지사에 관한 정보를 찾고 꿈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사회복지사를 꿈꾼지 한달만에 내 꿈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유니세프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진정한 내꿈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내가 사회복지사가 되어 진정으로 하고싶은 것은 먼가?라는 의문을 풀기위해 걸어다니면서도 꿈을 생각했고 자기전에도 항상 꿈을 생각했다. 몇주정도 내 꿈을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 의문을 풀지못했다. 시간이 흘러 2011년 11월 19일 일요일 강서구 체육공원에서 개최하는 부산 진로박람회에 가게되었다. 여러프로그램을 하고 시간이 남아 현재부터 약100세까지 계획이나 하고싶은 일들을 적는 프로그램을 하게되었다. 진정한 내꿈은 없지만 사회복지사라는 내 꿈이 있기 때문에 나는 100세까지 계획을 다 적을줄 알았다. 하지만 50세 60세 까지 계획을 짜니 그 이후로는 내가 뭘해야할지 몰랐다. 70세 80세 때는 내가 도대체 뭘하고 살아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고 내 인생은 60세 까지 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박람회에서 프로그램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60세 이후에 내가 무엇을 할건지 꿈을 꿔야겠다. 이제 우리는 100세 이상의 세대니까 한가지의 꿈만으론 인생을 살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60세 70세를 넘어 제 2의 인생에서 내가 하고싶은 것은 뭘까? 라는 것과 여전히 사회복지사가 되서 진정으로 하고싶은건 뭘까? 라는 두가지 고민을 하게되었다. 12월이 되어서도 사회복지사가 되어 하고싶은 일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두가지의 꿈을 찾게되었다. 첫 번째는 작가 두 번째는 미래학자 였다. 작가가 되서 수필과 미래소설을 쓰고 싶었고 사회복지사와 작가를 병행하는 two job을 하고싶었다. 두 번째 미래학자는 60세 70세가 넘어 내가 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게 재미있었고 무엇보다도 시간여행을 가능하게하는 타임슬립 개발자가 되고싶었다. 하지만 내가 세가지의 꿈을 모두 이룰수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고 걱정을 풀기위해 겨울방학 직전 12월중순 학교 진로선생님과 상담을 하게되었다. 30분의 상담 끝에 진로선생님이 결론을 내려주셨다. “미래학자가 될려면 지금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도록하고 작가는 꼭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해도된다. 그러니 굳이 작가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진로선생님의 조언에 만족했고 굳이 작가를 할 필요까지는 없고 글쓰기를 취미생활로 해도된다 라는 진로선생님의 말에 즉시 내 꿈리스트에서 작가를 지워버렸다. 그렇게 또 다시 며칠이 지났다. 오늘도 나는 꿈을 생각했고 넓은 꿈의 의미에서도 내가 뭘 가장하고싶은지 생각했다. 마라톤과 상담,봉사, 그리고 글쓰기였다. 나는 여전히 작가가 되고싶었고 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작가를 꼭 하고싶은데 왜 취미로만 글을 써야할까? 진로선생님이 작가를 할 필요없다고 해서 진로선생님이 말한데로 내꿈을 결정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한가지 다짐을 했다. “다른사람의 조언도 좋지만 그 누구도 내 자신보다 나를 알지는 못한다. 내가 하고싶은건 내 꿈이 된다. 꿈을 꾸는것도 내가 하는거고 꿈을 이루는 것도 내가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작가가 될거다.” 내 꿈리스트엔 다시 작가가 추가되,었다. 2012년 2월 4일 벡스코에서 꿈꾸는다락방 저자인 이지성과 억대 CEO 황희철의 부산기부 강연을 듣게되었다. 대부분이 꿈에 관한 내용이였고 강연이 끝나고 비장한마음을 가지고 강연장 밖으로 나왔다. “나는 세상을 놀라게 할 꿈을 꿀 것이다. 그 어떤 꿈이라도 내꿈을 믿을것이며 지금보다 더욱 생생하게 꿈을 꿀것이고 R=VD를 실천할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TV에서 궁금중이야기Y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TV장면을 보자마자 23kg의 뼈 밖에 없는몸에 눈은 다친것같은 보기 흉한눈에 100세 가까이 될것같은 할아버지가 나와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58세였다. 58세? 나는 내 두눈으로 봤지만 도저히 58세라고 믿기지 않았다. 계속보니 그분은 베르너 증후군이라는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늙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먹어도 살이찌찌 않는 23kg의 몸에 한쪽 눈은 실명이 되어있었다. 볼수록 그분이 불쌍해보였고 돕고싶었다. 그런데 그분은 오히려 이웃집 할머니에게 고기를 사다드리고 보일러를 넣어드리는등 도움을 받아야할 입장인데 남에게 도움을 주고있었다. 의사는 그분이 아마 60세를 넘기기 힘들것이고 살아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셨다. 그분은 인생에 대한 희망을 받아야 할 입장인데 희망을 남에게 베풀고 있었다. 그분은 며칠 뒤 40년만에 어머니를 만났다. 왠만한 40년 세월은 모든 것을 잊게 해줄 정도로 오랜세월이지만 그분은 40년이 지난 세월 지금도 살아계신 어머니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찾으려는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에는 어머니를 찾게 되었고 40년동안의 희망이 성공으로 돌아가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나서 그분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샀다. 그 누군가는 부모를 잃어 부모를 찾고 있는 아이들이였다. 자신이 어머니와 40년간 만나지 못했던 것처럼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을 꼭 찾을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그분은 자신의 상태를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나누면서 인생을 살고있었다. 나는 그분을 통해 희망은 전파 된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되었고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말에 관심을 가지게되었다. 사흘정도가 지나 ‘나는 아버지입니다’ 라는 책을 읽었다. 사지마비 장애인 아들과 그의 부모님과의 일생을 담은 자서전이였다. 그의 아버지가 휠체어를 탄 아들을 밀며 마라톤을 하고 수영을 하는 것을 유튜브에서나 TV에서 본적이 있을 것이다. 살 가망성도 없던 사지마비 장애인 릭호이트가 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을 보고 ‘내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라는 나폴레옹의 명언을 이제 믿을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안된다, 좌절, 실패, 인생부정 이라는 마음들이 기적, 긍정, 가능성, 희망 이라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통해서 Yes You Can 이라는 말을 알게되었다. Yes You Can 나는 이것을 보았을 때 유명한 사람들의 명언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Yes You Can 이것은 나의 무한한 꿈을 이룰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메시지 인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미국 전역에서 강연을 하며 사람들에게 전하던 Yes You Can 메시지를 내가 그들의 대를 이어서 전세계에 Yes You Can 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시켜야 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책의 막바지를 읽을 때 쯤 약 4달간의 못풀었던 의문을 드디어 풀게되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내가하고싶은 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나는 희망관련 일을 할것이고 희망전도사가 된다. 전세계에 노숙자 장애인 희귀병환자등등 사회적약자들에게 희망에 관한 상담과 연설을 함으로써 인생에 재도전, 희망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꿈을 꾸게되었다. 꿈이 생겨서 나는 날아갈 듯이 기뻤고 카톡 배경화면, 폰배경화면에 책주인공의 사진을 넣어 항상 내 꿈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2012년 4월초 나는 꿈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고 꿈에 관심이 많아서 같은반 친구들과 같이 Vision School 이라는 학습동아리를 만들었다. 학습동아리 담당선생님께서 꿈꾸는 다락방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그 책을 1년전에 읽은적이 있어서 지금 읽어도 뭐가 달라질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1년뒤 그책을 읽는 순간 너무 공감이 가서 눈물을 흘려버렸다. 1년전에 읽었던 책이라곤 그때와 느낌이 차원이 달랐다. 꿈꾸는 다락방 이책은 한번 읽고 끝내는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방에 항상 넣고 시간이 날때마다 읽었다. 3개월동안 꿈꾸는 다락방1 3번 꿈꾸는 다락방2 3번 꿈꾸는 다락방 개정판 2번 꿈꾸는 다락방 실천편 1번 꿈꾸는 다락방 스페셜에디션편 3번을 읽었다. 꿈꾸는 다락방에 있는 내용들을 완전히 내것으로 만들기위해 읽고 또 읽었다. 2012년 7월 초 꿈꾸는 다락방에서 본 내용들을 서서히 실천이 되기 시작했다. 내꿈을 친구들에게 확신이 찬 듯이 말하고 내입에서 무조건한다 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꿈에 전혀 의심이 가지 않으며 내꿈을 매일 글로 적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을 준비한다. 포스트잇에 5가지를 적는다. 1:나는 전세계 최고 희망전도사가 된다. 2:나는 전세계 최고 자기계발작가가 된다. 3:나는 전세계 최장수 마라톤 완주자로 기네스북에 오른다. 4:나는 전세계 30개국 이상의 대통령 앞에서 영어로 희망연설과 VD강연을 한다. 5: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스트잇을 책상과 방에 아무데나 붙인다. 일어날 때와 자기 직전 하루동안 포스트잇에 꿈을 두 번쓴다. 나는 그것을 보며 매일 읽는다. 매일 꿈을 생각한다. 그 꿈이 현실에서 일어난 상상을 한다. 나는 내방을 포스트잇으로 물들일것이고 항상 꿈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약 1년간 꿈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꿈도 상당히 많다. 미래학자에서 천문우주학자로 꿈이 바뀌었고 천문우주학자의 꿈이 또 다시 미스터리 연구학자로 꿈이 바뀌었지만 희망과는 거리가 멀어 꿈을 포기했다. 작가에서 문학작가로 문학작가에서 자기계발작가로 갈수록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꿈이 바뀌기도 했다. 나는 약 1년 동안 꿈에 미쳐있었다. 오직 꿈꾸기에 매진했다. 내가 약1년동안 꿈을 생생하게 꿀수 있었던건 단순하게도 마라톤 때문이다. 작년 8월 학교에서 주최하는 2박3일 지리산 국토순례에 참가했다. 3일에 걸쳐 쉴새없이 산을 타고 결국 나는 지리산 종주라는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정말 내가 지리산 종주를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전국에서 1%만 할수있다는 것을 그 1%가 될수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 의문을 풀고 당당히 지리산종주를 성공하게 되었다. 지리산 종주를 한순간 나는 목표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좀 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걷고 뛰고 하는 것을 좋아하니 마라톤을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도전을 12월 18일 제5회 낙동강변 마라톤대회에서 하프마라톤을 하기로 결정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연습에 돌입했다. 정확히 2달 남은 시점에서 체계적으로 어덯게 연습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동네를 돌기로했다. 나는 특히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해서 폰을 손에쥐고 노래를 들으면 뛰었다. 연습을 하면서 나는 어떤상황이 와도 무조건 완주 할것이라는 마음을 되새겼지만 21km라는 내가 직접 걷지도 뛰지도 못해 본 거리를 내가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멀게 느껴졌고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대회에 신청을 했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꿈을 생각하면 꿈이 이루어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생각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듯이 나는 긍정적인 생각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완주 할수있을까 많은 걱정을 했지만 나는 내가 생각한 완주기록보다 40분 일찍 완주했다. 내가 완주한후 30분쯤 지났을까? 82세 할머니가 나와 같은 하프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나도 저 할머니처럼 될것이라 라고 다짐했다. 내가 닮고 싶은 것은 단지 겉모습이 아니다. 체력, 도전하는 정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이 세가지를 내가 닮아가고 싶다. 사람들은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가 본 82세 할머니는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을 도전한다는 것은 인생을 만들어가고 계획하는 것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것같다. 내가 오늘 마라톤을 하면서 얻은 것은 목표달성과 완주메달 이두가지가 끝이 아니다. 행복해지는법, 영원한취미, 삶에대한 자신감, 새로운도전 이라는 네가지를 오직 마라톤 자체만으로 내가 얻을수 있게 되었다. 마라톤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마라톤 뿐만아니라 새로운 모험에 떠나고 싶다. 또 다른 도전을 통해서 인생을 배우고 싶고 나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싶다.” 그 뒤로 나는 어떤 도전을 할지 생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가지 도전리스트들이 나왔다. 풀코스는 물론 100km 200km 그이상 ,537km 한반도 횡단, 부산-서울 왕복 마라톤, 6070km 미국횡단 마라톤, 21800km 유라시아횡단 마라톤, 철인3종경기, 히말라야종주, 암벽등반,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기로 생각했다. 하프마라톤에 이어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 시간이 남으면 언제든지 밖으로 나가 뛰었다. 이전에 하프마라톤을 연습할때는 마라톤에 관한 생각과 걱정을 하면서 뛰었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을 버리고 내가 풀코스 마라톤 완주하는 상상을 했다. 내가 완주할 때 지을 표정과 그뒤 행동, 주위 사람들의 반응까지 풀코스 마라톤 완주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인 것 같이 상상했다. 그렇게 며칠째 계속 마라톤 완주 상상을 했다. 그런데 문득 그상상이 내가 그토록 원하는 미래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것을 알고나서부터 마라톤완주 상상 뿐만아니라 내가 뭘 좋아하고 내가 뭘 하고싶은지 생각과 내 모든 미래를 생각했고 내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뒤로 나에게 마라톤 연습이 없어졌다. 내가 달리는 건 마라톤 연습이 아니라 꿈을 생생하게 꿀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꿈을 생각하고 싶으면 두귀에 이어폰을 꼽고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냥 밖으로 나가 달렸다. 주말에 많이 뛰면 토요일 4시간 일요일 4시간 뛰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내 기분은 상쾌했다. 그이유가 내가 꿈을 생각했고 꿈꾸기에 심취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내꿈의 90% 정도가 노래듣고 달리며 꿈을 꾼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라톤을 하는 궁극적이유는 단하나 꿈을 꾸기위해서 였다. 그런데 내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가 꿈을 꾸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지 한달 정도가 지났을 때 사회문화 선생님이 수업자료로 세상을 바꾸는 15분이라는 인터넷 강연을 보여주셨다.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아서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와서 바로 세상을 바꾸는 15분 사이트에 들어갔다. 강연이 수없이 많았는데 내눈에 들어온건 꿈은 이루어진다-오지레이스 전문가 유지성이였다. 오지레이스가 먼지는 모르지만 사진에 나와있는 것으로 봤을땐 마라톤과 비슷한 것 같아서 15분짜리 강연을 듣게 되었다. 오지레이스가 사람들이 살기 힘든 정글이나 남극,북극,사막에서 장거리레이스라는 것이라고 들었을 때 나는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김병만이 개콘에서 달인을 하던시절 나는 사실 김병만 같은 사람이 되고싶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불가능 할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내가 도전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바꾸어주고 싶었다. 오지레이스가 무엇인지 알고나서 마라톤 보다 내가 하고싶은 것은 오지레이스 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기본적으로 마라톤이 되야 오지레이스를 무리없이 할수있기 때문에 내가 마라톤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오지레이스를 하기위해서 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나는 마라톤에 더욱 관심이 많아졌다. 네이버 검색창에 마라톤을 쳤는데 뉴스기사가 내눈에 띄었다. 올해 100세인 세계최고령의 마라토너 파우자싱 이라는 기사내용을 보았다. 뉴스기사를 본지 3초만에 생각했다. “저자리는 내자리다 내가 전세계최장수로 마라톤을 완주해서 기네스북에 오를것이고 내이름을 딴 세계적인 마라톤을 매년마다 개최해서 마라톤축제로 만들거다” 내가 마라톤을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전세계 최장수 마라톤 완주를 하기위해서 라고 할 수 있다. 요즘들어 나는 매일 상상하는 것이있다. “ 20년뒤 나는 중,소 기업에서 강연을 요청받는다. 강연의 반응이 너무좋아 소문이 났고 대기업사장과 해외기업 사장이 강연을 해달라고 빗발친다. 얼마지나지 않아 내가 쓴 자기계발서가 출시 한 달 만에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 판매기록 1위를 차지했고 30개국이상의 언어로 번역출판과 5천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우리나라 기자들과 해외 기자들이 한마디 만이라도 인터뷰 해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한다. 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지경이다. 전국에 있는 교도소와 대학병원, 장애인학교, 청춘콘서트 등등 희망,꿈,인생을 중점으로 하는 강연과 VD강연, 희망연설을 하고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내 메일함에 ”자기계발서를 읽고 제 인생이 변했어요, 삶을 포기했었는데 다시 일어나야겠어요, 강연을 듣고 R=VD를 실천했더니 진짜 그꿈이 이루어졌어요 와같은 사람들의 글이 쏟아진다." 끝으로 나는 현재 꿈들을 더 발전시킬것이고 발전시키기 위해 매일 꿈꿀 것이다. 나에게 꿈꾸기는 너무나도 즐겁다. 꿈 하나가 내인생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 2013-02-02 20: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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