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기록
- 작성자 눈금실린더
- 작성일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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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336
눅눅한 여름 공기가 창문 사이로
들어와 교실 안을 채우고 있었지 우리는 제각기 다른 필기구와
글씨체를 갖고 똑같은 여름 교복을 입었다 파아란 소매가
필기를 할 때마다 움직이고 머리를 쓸어넘길 때 손 틈새에는 미세한 온기와 습기
시계를 볼 때마다 시간은 느릿하게 한 칸씩 흘러가고 있고
갑자기 비춘 햇빛에 눈이 따가워 창문가를 바라보면
하얀 해가
높게 자란 나무의 잎사귀에
옆 반이 수업 중인 운동장과 농구 코트에
책장, 화단, 칠판에
잠이 든 친구들의 머리맡과
수업을 듣고 있는 너의 귓가에
비추고 있었지 나는 어느 정도
그 풍경이 낯설어서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귀까지 따가워지는 느낌이 들어 그만두었다
교과서에 밑줄을 그어놨던
겨울보다 긴 여름의 낮, 을 뜻하는 단어가
녹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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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오늘이 될 수 없음에 괴로워했어 그저 흔적을 좇기에 급급한 사람이라서 발 밑에 남아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았어 피부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피와 땀과 살 대신에 그것이 흘러 넘치길 바라, 시계는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같은 방향으로만 도는 것 같아서, 그러한 사실이 이 모든 것을 뒤엎어주었으면 했는데 내가 멍청한건지 손에서는 계속 초침이 흘렀어 째깍거리는 소리가 나고그 때의 너를 너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지 아직 괴로움에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꿈이라는 것은 왜 이토록 잔인해서지나간 상념마저 떠오르게 하는지나는 무언가를 부숴트리는 일에 골몰하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모두 망가져버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착각에묶여있었지다만 혼란해진 채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변명해보아도손 안에 남아있는 건 끈적한 푸른색그러니까 이것은 매우 오래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당신이 우리를 알지 못했을 그 때의 이야기손을 덜덜 떨어도 알 수 있는 것은 살아있다는 감각 밖에 없고조언 따위는 모두 묵살시키기로 하였다 평생 의미없는 이름만 외우다가 바스라지더라도눈을 감는 것은 먼 미래의 일 방조는 안심과 맞닿아있다영원함을 빌미로 웅성이는 영원에 대해 생각한다울렁거리는 마음은 왜 항상누군가에게 닿을 수 없나
- 눈금실린더
- 2024-06-27
사랑은 병이고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무의미에 지나지 않아선이는 그렇게 말했다 꼭 우리를 금방이라도 유기할 것처럼왜 그렇게 말해?손톱 끝을 계속 틱틱거리며 부딪힌다왜그렇게왜?틱틱틱틱틱틱틱틱뜯어진 손톱 거스러미 사이로 앵두색 피가 뚝뚝 떨어진다손톱을 사랑하면 결국 피가 나는 것과 같아모두 버리면 버릴 게 없어진다는 건 몰라너를 바라볼 때마다 하늘에 낀 먹구름이 더 짙어지는 것 같다는 건 내 착각이 맞고먹구름흘러 내리면 까만 비가 되는 걸까눅눅함선아 너 오늘 따라 왜 그래 나는 말하지 못했다 버려지는 게 무서워서구름과 피가 섞이면 진득한 자국이 남을 것만 같아서 두렵다비는 그치기 일보 직전이지만톡톡톡물방울이 터지는 소리만 들린다 그것은 내 귀가 느끼는착각이 아니다
- 눈금실린더
- 2024-06-22
우리의 시작이 하나였다고 말했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잖아. 짧은 발과 무거운 껍질이 우리가 하나라고.얘기하고 있어. 그런 말을 할 때 너의 눈은 맑게 변하지, 나는 문득숨이 막힌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적응할 수가 없어요? 단순히 던진 말에 눌려서는 흐느적거리고. 이곳이 긴 바다의 끝이라고 말한다. 손가락에 희미한 소금 냄새. 온통 모래뿐인걸요. 혹은 말라붙은 물고기 떼만가득하다. 그게 같은 거라고 부어가는 부리를 내밀어도 다르다는 걸 확신할 뿐이었어. 미안해. 아가미에서 폐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분. 거품이 인다. 모래가 물로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안녕.
- 눈금실린더
- 2024-05-25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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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최근 올린 글들이 대체로 제목이 길더라고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짧은 제목을 가져와보았습니다 (˵•̀ᴗ-˵) ✧ 계절감은 조금 맞지 않는 제목인데, 사실 이 글도 저번 글과 같이 작성 시기가 꽤 된, 1월 경에 적힌 글이에요. 쓸 때와 내보낼 때 모두 반대의 계절에 있는... 웃픈 글입니다...
극 초창기에 적힌 시라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아끼는 시중에 하나에요. 행복한 기억을 담아서 쓴 글이라 읽을 때 스스로 가장 편안한 느낌! 지금 퇴고한 내용으로 만족하고 있으나, 전반부에 풍경 묘사가 많은데 비해 후반부에 등장하는 '너'의 묘사가 빈약하다는 평을 자주 들어서 조금 아쉬워요. 과하지 않은 선에서 그 부분을 덧대고 싶은데, 아무래도 어렵네요... 혹 괜찮으시다면 멘토님께 이 부분에 대해서 여쭙고 싶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 댓글 남겨주시는 글티너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감사히 읽고 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