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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작성자 0 그리고 한나
  • 작성일 2023-01-21
  • 조회수 498

여름이다
얼음을 입에 물고 여름을 발음하면 얼음인지 여름인지 알 수 없는 여름이다
입안에서 얼음이 녹는 여름이다

예닐곱 적 여름이면 머리를 짧게 깎아 울곤 했다.
목에 땀띠가 난다고, 동네 미용실에 데리고 가 사내아이처럼 머리를 깎아달라고 한 아빠.
미용실 흰 바닥으로 떨어지는 검고 얇은 머리카락들
미용실을 나와 아빠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집으로 간다
지금은 스킨 냄새, 담배 냄새, 바람 냄새를 한 데 섞을 수 있을까

101마리 달마시안 그려진 여름 이불을 덮고 잘 때
강아지 한 마리 한 마리 세다가 잠들려고 할 때
발이 나오면 발을 채갈까
손이 나오면 손을 잡아서 데리고 갈까
얼굴이 나와 있으면 눈앞에 있을까
무서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지
삐질삐질 땀 흘리며 잠들었던 여름

초등학생이 되고 1학년 1반 14번 학생은 여름방학 숙제를 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 차미숙 선생님의 이름을 친구들과 참이슬이라고 말하며 키읔키읔
집에 가는 길 친구랑 콜라 맛 슬러시를 나눠 마시며
다 먹은 빈 컵을 누가 버릴 것인지 다투는 중

여름이다 다시 여름이 온다
여름은 가고 어김없이 돌아왔다

여름 햇살이 투명한 창문을 뚫고 들어와 아이들이 익어가고 있던 날
5학년 3반 이 씨 성을 가진 남자아이가 실종됐다
오학년 3반 아이들은 이 씨 성을 가진 남자아이를 찾기 위해
운동장으로 출동!
마치 거대한 파워레인저가 된 느낌 어쩌면 경찰 아저씨들
반에서 선생님보다 더 막대한 영향을 가진 아이가
이 씨 성을 가진 남자아이를 욕한다

씨-발어디간거야미친새-끼가부족하면장애인학교를가던가.

중학생의 여름은 하복이다
아이들의 치아보다 더 하얀 하복
수정이의 하복에선 뫼비우스 냄새가 난다
체육 수행평가로 탁구를 했다
에이를 받지 못한 효리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하복 반팔 아래로 효리의 팔뚝이
작열하는 태양에 까맣게 탔다
작고 통통하고 까만 손등 위로
핑퐁 핑퐁 눈물이 자꾸만
핑 눈물 돌고 퐁 떨어진다
멈추지 않는다
효리의 꿈은 서울대이다

5월 아직 여름이 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를 그만 가기 시작했다
여름이 질린 걸까 여름을 버려두고
북극으로 떠나고 싶었다
여름을 잠시 버리기로 했다
내가 나를 버리는 것보단 낫기에

여름 다시 여름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모르는 동네로 가 검정고시 시험을 봤다
비틀즈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그래서 시험을 잘 봤다
가방 속 도시락이 빨리 먹고 싶었다
김밥이 여름 햇살에 상해버릴까

몇 번의 여름이 오간 뒤
20살이 되었다
여름을 멈추게 할 순 없을까
시원한 수박이 먹고 싶다

내일은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야겠다
목에 땀띠가 나지 않도록

이게 글틴에 올리는 마지막 글이 될 거 같아요.
글틴 덕분에 청소년 시절이 조금 더 행복했네요.
시는 소설보다 더 모르고 1도 모르지만 어쩌다 쓰게 되었네요. 그동안 모두 감사했습니다.

0 그리고 한나
0 그리고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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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주

    안녕하세요, 0 그리고 한나님. 시 잘 읽었어요. 한 편의 시에 성장기를 압축시켜놓은 듯 해서 인상적이네요. 표현들이 아주 구체적이면서 감각적입니다. 입안에서 녹는 얼음, 미용실 바닥에 머리카락들, 여름 이불, 콜라 맛 슬러시, 치아보다 더 하얀 하복, 김밥, 수박 등이 여름이라는 계절감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다만 여름은 다시 온다든지, 하복에서 뫼비우스 냄새가 난다든지, “여름을 잠시 버리기로 했다 내가 나를 버리는 것보단 낫기에”와 같은 표현들은 아쉽습니다. 글틴 바깥에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응원합니다.

    • 2023-02-13 19:29:32
    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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