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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 작성자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 작성일 2022-04-15
  • 조회수 359

새벽 2시 14분,

작은 노란 전등 하나만 켜져있는

적막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오늘 오후 1시에 일어났어.

내가 설정해둔 알람은

수년간 스스로에게 외쳐온 원망이라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오늘도 전원을 꺼버렸어.

 

아주 잠깐 눈을 뜬게 아침 8시,

내가 설정해둔 알람은 한시간동안 울려대다가

오늘도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채 숨을 거뒀어.

 

7시에 맞춰둔 알람을 왜 8시에서야 들었는지는

반복되는 일상이여서 더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어.

 

실질적으로 눈을 떳던건 12시였어.

4시간동안 나는 사랑했던 사람의 꿈을 꿨어.

 

침대에서 눈을 뜨자 머리맡에는

어제 대충 쓰고 버려놓은 비릿한 휴지뭉치와

한시간동안 울어대다가 차갑게 식어 잠든 휴대폰.

 

그 자리에서 한시간동안 그 사람을 그렸어.

휴대폰에다가 글 몇 줄 끄적이며 말이야.

 

한겹 걸치고 있을 뿐인 내복 아래로 훤히 드러나는

초라하고 가여운 내 삐쩍마른 몸을 봤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170 초반인 키에

또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40 초반인 몸무게.

 

쇄골이 다 드러나는 좁은 어깨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보다 더 좁아지는 허리

툭 튀어나온 골반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내 친구의 종아리 크기와 비슷한 허벅지.

 

세수는 대충 물로만 때웠기에

여드름과 각종 각질이 올라온 얼굴과,

언제까지나 자라지 않을 것 같았던 수염도

딱히 면도를 배운 기억은 없기에 살짝.

이발을 하기에는 귀찮았기에

그저 올려져있을 뿐인 더북히 떡진 머리와,

항상 그냥 낀 채로 자버린 탓에

곡선으로 휘어버린 안경테.

 

오랜 디지털 기기의 사용으로

이미 심각하게 굽어버린 거북목과,

연약하기 그지없는 허리근육.

 

되어 있는 밥이 있다면 먹을 뿐이지만,

그런건 없기에 꺼내먹는 컵라면 하나.

 

이렇게 살다가는 부서지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죽을 일은 없으니

비참하긴 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어.

 

이제 방으로 돌아가 틀어박힐 일만 남았어.

그 사람을 이용해서 또 작품 한 수 휘려갈겼기에,

오늘의 내가 할 일은 끝. 이제 이대로 저물 뿐이야.

 

컴퓨터 옆에는 한참 전에 던져놓은 영어 단어장,

그 위로는 어제 먹고 대충 버려놓은 초코파이 

비닐과 커피가 담겨있던 검은 흔적이 남은 종이컵.

소설을 끄적였던 종이, 대충 쓰고 버려둔 물티슈, 가치를 상실한 독서대와 쓸모없는 방송장비. 작년에 받았던 대학교 팜플렛과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들었던 나에게 해주는 칭찬 두개를 담은 컵 하나.

 

그저 그들이 뒤섞여 있을 뿐.

 

작업용 컴퓨터에 앉아서는 게임만 할 뿐이었어.

오늘도 앉기전에 의자에 깊게 파여있는 엉덩이 뼈자국을 봤어. 나는 그 퍼즐 조각에 맞는 퍼즐일 뿐,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

 

대충 가장 친하다는 친구들을 불러서

공허한 시간을 메울 뿐이었어. 가방 속에는 8일 남은 자격증 시험을 위한 책이 들어있었지만, 내 시간은 언제와 같이 공허했지.

 

과자 접시와 빈 박카스 병이 늘어날 때마다,

아, 생각해보니 오늘 벌써 세병째였나.

 

마구잡이로 버려져있는 박카스 병을 보면서 공상.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조금 더 많은 결흠이 있을지도.

 

영양문제인지 얼굴 뿐 아니라 등 뒤까지 타고 내려간 여드름과, 이리저리 벗겨진 발가락의 피부.

이 죽어가는 감각도 결흠인걸까.

 

그렇게 밤이 깊을 때까지 친구들과 있었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타인과 함께 있을 때에는 감정이 부딪혀야하고, 인간의 관계는 생각보다 단편적이기에 사실 사이가 그렇게 좋은지도 잘 모르겠어.

 

또 사람을 잃기는 싫어.

관계를 회복시키고는 싶은데,

희망만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포기해버리는건가?

 

알려줘, 나에게.

단순한 단답이 아닌

내 경험으로 도출한 결론을 부정할

근거딸린 이론으로써.

 

이제 또 자리에 누울 뿐이야.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물론 자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오늘 먹은 카페인의 양을 봤을 때,

그것조차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네.

 

휴대폰을 하려고 팔을 드니까 그제서야 통증이 느껴졌어. 소재파악은 쉬웠지. 아까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부딪힌 왼쪽 어깨의 통증이 꽤나 깊숙히 남은거야. 흐음, 내가 조금 더 살집이 있었다면 이렇게 뼈까지 시리지는 않았을텐데. 하고 생각이야 하지만, 학교에서 묘하게 얕보이며 광대 노릇을 하다가 중학교 동창이라는 인간에게 얻어맞았던 손바닥이 더 아팠기 때문에 무시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자, 이제 음악을 들으며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오늘 하루를 기릴 시간이야. 묵념은 마음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고통으로 대신할게.

 

쓰고 쓰다보니 다 닳아서 감흥이 없어진 플레이리스트. 이제 무얼 말하고 싶은걸까.

 

하지만 오늘도 틀어야지.

부디 이 적막을 달래주길.

 

단순한 소리는 자체는 적막을 달래주지만,

그 소리의 담긴 내용은 새로운 적막이었어.

 

뭐 어때, 어쨌든 지금의 적막은 사라졌으니까.

 

화려히 움직이는 디스플레이 안 세상과

뻑뻑히 껌뻑이는 눈알 두 짝,

그리고 삐걱대는 몸의 마디마디가

전부 따로 움직이는 감각.

 

지친 감각기관이 운송해주는 전기신호와

두뇌는 그 정보를 느릿하게 처리하고 있어.

공허하다는 감정의 정의는 이런게 아닐까.

 

화려한 이상을 그리던 청년의 최후인가 싶었어.

 

이 생활이 비참할 따름이지만,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걸 보면

나름 좋아하고 있을지 몰라.

 

선생님께는 죄송해.

나에게 공부는 요령이었거든.

선생님이 나를 예시로 드시며,

이렇게 열심히 하는 얘처럼 살라며

설명해주셨던 사회의 패배자, 즉 나의 반례는

완벽하고 정확하게 나였거든.

 

역시 부모님께도 죄송해.

내 동생을 혼내시며 아빠가 하신 말,

네 형은 다 생각이 있는데, 왜 너는.

 

어쩌다보니 우수하게 되어버린 형과 비교받으면서 상처받은 동생과 사실 나는 아무생각 없는데하며 고통받는 자신, 두 인간이 서있을 뿐.

 

같은 상황에서 같은걸 보면서도

왜 인간은 서로를 완벽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을까.

하지만 이런 한탄들도 이미 수개월전에 본인이 내뱉고 글로 정리까지해서 차곡차곡히 정의해두었으니 내가 정리할 의미는 없지.

그렇게 대충 문대서 지워버릴 뿐.

 

모르겠어,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뿐일텐데.

 

만약 인간과 인간의 연결고리,

인간 사회와 인생, 그리고 이 세상이

형체를 가지고 서있을 수 있는 존재였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달까.

 

아직도 너를 사랑하는 내 사랑법은 잘못된거야? 이 새벽, 소름끼치는 적막을 없애주고,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어서, 나에게 이 지긋한 어둠을 헤치고 나갈 동기를 들을 때마다 줄 수 있는 노래는 없는거야?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침대에 누워서 머리를 싸메고 생각한 끝에 이렇게 변해버린 나는 잘못된거야? 오늘 먹은 타우린 6000mg, 뇌를 타고 올라오는 카페인, 이건 약물의 오남용이야? 끝없는 압박과 숨막히는 고통 속에서 어떻게든 이룩해낸 6일의 시험공부, 그렇게 따낸 전교 10등, 나는 잘한거야? 가끔가끔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져, 죽고 싶지는 않지만 살아갈 수가 없어, 나는 죽은거야 산거야? 계속 혼자만 끌어앉은 채, 결국 전부 깨부수고 점점 무뎌지는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방안에서 도태된 미련한 외톨이인거야? 이미 다 스러져버린 희미한 꿈을 붙잡고 편하게 비릿한 청춘의 추억 이야기로 전환시키지 않는건 주변 나머지들은 전부 어른이 되어가는데 나 혼자 아이로 남아있는거야? 작업용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하는건 작업용 컴퓨터가 있다는 것만으로 작업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부분에 가치를 둬야햐는거야? 인간혐오와 사랑이 공존하는건 이중적이고 역겨운거야? 너가 보기에 나는 아직 너에 속해있는 사람이야? 노래방에서 듣는 그 어떤 이별노래도 진정한 사랑처럼 들리지 않는건 착각인걸까? 불합리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 혁명의 함성을 부르짖지 않는 것은 싸늘히 죽어버린 시체인걸까? 절친이 빌려준 책을 돌려주는 것도, 그의 생일까지 전부 까먹은 내가 나중에서도 그를 비롯한 절친들과 함께 살고싶은 것은 오만에 불가한 노래를 부르는걸까? 여기는 저기를 저기는 여기를 혐오하는 세간에서 양쪽 똑같이 싸잡아버리는 나는 그들보다 더한 혐오론자인걸까? 인생에 치이다보니 어느순간부터 한 권의 책에만 의지하는건 편협하고 무지한걸까? 닿지 않을걸 알면서도 외치는건 우둔한걸까?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거야? 서로의 욕망만 충족할 뿐이라면 그냥 답하지 말아줘. 부모님 앞에서 웃는 얼굴을 보이는게 효도의 첫걸음이라는 말, 그래서 항상 헤실헤실 웃는다고 그게 자식의 도리인거야? 아니면 내 생각이 극단적이고 극론일 뿐인거야? 딱히 인정받은 기억은 없는 내 재능을 스스로 믿는건 오만인거야? 이걸 쓰면서도 어느새 잠이 몰려오는 나는 본능에 충실한 동물인 뿐인걸까? 텅 빈 내가 적어내려가는 글에 어째서 원초의 감정이 담기는거야? 그건 내 좋을대로 생각한 자기오판일 뿐인거야?

 

지금까지의 것들은 전부 잊어줘.

이 질문 하나만 답해주면 돼.

 

이 새벽, 소름끼치는 적막을 지워주고, 내 마음을 폭하고 끌어안아서, 나에게 이 지긋한 어둠을 헤치고 나아갈 동기를, 들을 때마다 부여해줄 수 있는 마법같은 노래는 정말, 정말로 없는거야?

 

네, 없습니다.

내 긴 말을 전부 다 듣고 잠시 고민하다

마치 로봇의 물리적 감정이 말하듯

감정없이 단정짓는 너를 끌어안고,

 

너도 참 딱하네.

하고 그 차가운 머리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파.

 

내 뜨거운 눈물이면

그 차가운 머리통도

조금은 따뜻해질까.

 

새벽 3시 8분,

이미 꺼진 노란 전등,

적막하고 깜깜한 방 안에서.

평소에 1시에 자던 인간 하나가.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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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 20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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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 2022-08-17
나는 언젠가 이 시판을 뜰테고. 잠시동안 창공에 있을테고.

오랜 친구의 말버릇을 빌리기로 했다.   시는 불유쾌한 단어의 집합체. 약간의 인과관계를 생략한, 난해한 붓터치의 덫칠.   시집을 읽는다. 팔락 팔락 시간이 넘어간다.   결국 글귀만 남고 그 시 제목이 뭐였더라 하고 다른 시집을 집겠지.   시, 이형과 이질의 방법. 나는 스스로 시를 못 씀을 안다.   시인이란 참 아픈 사람들이다. 삶의 많은걸 지운다. 감정을 절제한다. 모호함까지, 안고 살아간다.   나는 인과율을 깨지 못한다. 내가 적는 시는 아무런 걸림없이 읽혀내려간다.   언젠가 진단서를 받을 때 의사가 그랬었나. 핏줄을 찾을 수 없다고.   스스로 시를 쓰지 못함을 안다. 그리 나와있었다. 진단서에는. 아찔한 비가 쏟아지던 그 자정에.   나는 언젠가 이 시판을 뜰테고. 오랜 흑연은 부러질 것이고. 그래서 펜을 든 인간은 되지 못할 것이다.   아쉽게도 한 지각에 오래 발붙일 순 없다. 그저 잠시 찰나, 공중에 떠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시의 제목을 봐줬으면 한다. 남은걸 설명할테고, 기억에 남았으면 해서. 다른 시인들을 바꿨으면 해서.

  •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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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백규 시인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학생, 안녕하세요. 시를 잘쓰네요. 앞으로 계속해서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 다른 시인들과 어떠한 점을 차별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며 써나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것이 실험적 형식으로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집중하세요. 여정 시인의 시집들을 추천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D

    • 2022-04-21 21:54:17
    최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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