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 작성자 설담
- 작성일 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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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560
기지개를 켜는 짐승은
제 삶의 나지막한 목적을 알까
고목나무로 만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울한 시의 한 구절을 읊는
오후 세시 반
세상에 그 아이는
스스로 제 심장을 포기했다지 뭐야
매서운 눈빛을 하고는
제멋대로 지껄이는 것들을 모두 죽여버렸대
똬리를 튼 고양이는 나무를 타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튀어나온 꼬리를 사납게 지르밟았나 봐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앙상한 꼬리뼈를 갖고 있었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버림받는 건 싫어요
심장을 그러쥔 채 죽어나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서래요
저마다의 사랑을 하고 저마다의 삶을 살며
저마다 그러쥐고 태어난 것들이 다를 거래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와버린 사람들은
죽을 때조차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게 서러워
제 하나뿐인 것을 모조리 뜯어간대요
그때만큼은 꼬리 없는 짐승이 된대요
그 무엇보다 서럽게 울어대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가 없대요
쉿
수군거리는 기척 틈새로
누군가가 구슬피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꼬리가 없어진 자들은
저마다의 간악한 슬픔을 품고 살아가리라
우울한 시인들의 뼛속을 관통하는 추위와
정오가 되면 흘러나오는 달콤한 에튀드
창백한 얼굴로 뇌까리는 삶
그 무엇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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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네모난 창을 뚫고 온갖 것들을 내 안으로 들여보냈다 우울한 향이 넘실대는 파도와 물 속을 향유하는 고래 한 마리 기억 너머로부터 나를 찾아온 너까지도 내 안으로 슬그머니 밀려들어온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은 사랑을 모르는 것들이 대다수지만 내게 하나뿐인 낭만을 물어보는 목소리들은 그리 사랑스러울 수 없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네가 부산스레 전해주는 소식들이라는 걸 넌 알까 비록 바람의 이야기는 너무 오래된 것이라 누런 빛깔을 띠었지만, 바다의 이야기는 한참 먼 미래의 것이라 하염없이 수줍음을 탔지만 숱한 다정함을 만나보았지만 이처럼 따사로운 느낌을 또 경험한 적이 있을까 내 가슴팍을 헤치고 들어온 것들은 찌르르한 청사과 풋내가 났다
- 설담
- 2021-09-07
행복한 글을 쓰고 싶어요 우울한 것들은 꼴도보기 싫어요 눈물을 쏟고 싶지 않아요 그 대신 정적에 몸을 담그고 싶어요 살금살금 걷고 싶어요 시끄러운 것들은 딱 질색이에요 살고 싶어요 하지만 목숨을 갈구하는 이들은 경멸스러워요 전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목숨을 잃었어요 황혼을 닮은 눈동잘 갖고는 눈부신 찰나의 여명을 사랑했어요 입안에 쓴 걸 가득 욱여넣고는 단 걸 달라며 보챘어요 누구는 날 장난꾸러기라 하고 누구는 날 시인이라 하고 누구는 날 모순덩어리라 했어요 나는 단지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발바닥에서 나는 쩍쩍 소리가 싫었을 뿐인데 날 매섭게 노려보던 것들이 흘리던 눈물 한 방울이 싫었을 뿐인데 말이에요 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내 목에 칼을 들이밀곤 사랑한다 속삭이지 마세요 덧없이 흘러보낸 청춘을 되돌려달라 울지 마세요 난 모든 것에 질려버렸으니 다신 날 찾지 말아주세요 해가 태산같이 솟아오르는 밤에 우리 다시 만나요 그럼 안녕
- 설담
- 2021-08-23
내게 이름을 주세요 여름을 닮았거나 겨울을 동경하는 달콤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쓰기 그지없는 내게 이름 하나를 주세요, 라며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나는 내 이름이 싫었어요 괄괄한 목소리로 내뱉던 단어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죠 제 배를 갈라 속내를 보여주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는 듯 활짝 웃었거든요 그의 뱃속은 한없이 뜨겁기만 해서 그래서 난 내 이름이 싫었어요 그 아이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입꼬리를 귀까지 끌어올려 웃었다 이름이란 건 결국 자신의 정체성이래요 내가 누구인지 정할 수 있는 기회를 당신께 드릴게요 난 하나뿐인 당신의 수치가 될 수도 울지 않고는 못 배길 애증이 될 수도 제 몸을 불사르고도 남을 사랑이 될 수도 있어요 내게 이름을 주세요 당신을 평생 미워할 수 있도록 내게 단 하나뿐인 것을 주세요
- 설담
-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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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담 학생, 안녕하세요. 전체적으로 '꼬리 없는 고양이'라는 존재에 버림받은 것들이 투영된 것 같네요. 지금은 구체화시켜두지 않았는데, 누가 고양이와 같은지 특정시켜주는 편이 독자들이 이입하여 읽기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