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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법

  • 작성자 파판
  • 작성일 2021-03-10
  • 조회수 549

첫 번째, 절대 이 얘기를 밖에서 꺼내지 말 것.

우리끼리 약속을 한다. 다음 학년이 되면 모든 게 나아질 거야. 확신 없는 말을 주고받고. 과자 한 봉지를 터 폭력을 나눠 먹는다. 나는 아빠한테 뺨을 맞아 봤어. 나는 딸치다 걸려서 죽도록 맞았어. 병신.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씁쓸해하며. 아냐, 모두 같은 일을 겪었다니까. 나도 말은 안 했지만. 수치는 수치스럽기에 조용해진다.

그러다 침묵. 이 정적 뭐냐. 하하하.

두 번째, 절대 이 얘기에 뒤끝을 가지지 말 것.

실은 말이야 너를 질투한 적 있어. 뭐래 낯부끄럽게. 너의 사물함에 우유를 뿌린 적 있어. 그게 나야. 그게 너였냐? 친구는 내 반대편 뺨을 때리고서는 이제 괜찮다고. 얼얼한 뺨을 만지며 이 얘기에 뒤끝을 가지지 말 것. 알겠어 새끼야.

세 번째, 절대 이 얘기를 거짓말이라 치부하지 말 것.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고 나는 아빠한테 술병으로 뒤통수를 깨져본 적 있다는 아주 평범한 얘기. 그러게 평범하네. 그리고 자살하고 싶었던 순간들. 야 갑자기 너무 갑작스럽다? 원래 자살은 갑작스러운 거니까.

네 번째, 야 너무 많잖아. 아무튼 들어봐. 네 번째, 절대 이 얘기를 실행하지 말 것.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 지나가던 개새끼에게 칼빵을 놓고 싶어. 괜찮아 너는 아니야. 친구는 낄낄거리고 나는 하하거리고 지나가던 선생님은 우리 뒤통수를 한 대씩 갈기더니 너희 뭐하냐.

정신이 번쩍 든다. 다음 학년이 되면 저 미친 선생을 보지 않아도 될 거야. 다음 학년이 되면 우리는 조금 더 커진 몸뚱이와 커진 고추를 부여잡고 집 밖을 뛰쳐나갈 수 있을 거야.

미친 새끼. 하하하. 그리고 우리는 운다. 그리고 네 가지 약속을 꼭 지키자고 새끼손가락을 건다. 진짜 초딩같냐. 남자는 언제나 초딩에 머무는 법이지.

하하. 하하.

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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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판
  •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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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판
  •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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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판
  • 20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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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주

    안녕하세요, 파판님. 친구와 함께 "폭력"의 대화를 나누는 시를 쓰셨군요. 그저 "폭력"의 경험이나 욕망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피해와 가해의 경험이 뒤섞인 이 시에서 "나"와 "너"의 진짜 내면을 들여다보려 애써보시기 바랍니다. 파판님만의 시선으로 "폭력"의 경험이나 욕망을 다시 검토하세요. 고민해보세요.

    • 2021-03-17 11:50:42
    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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