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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보다 큰 동생보다 작은

  • 작성자 파판
  • 작성일 2020-07-27
  • 조회수 100

방과 후에 곤충채집을 나섰지만
잡히는 건 언제나 투명하고 힘없는 잠자리였다1)
동생은 잡은 게 아니라 잡혀 준 거라고 했다

중력을 만질 수 있다면 물풍선 같으면 좋겠다
내 중력을 받은 동생은 무거워지고
밀도 높은 공기 속에서 동생은 공룡만큼 커질 거야

잠자리가 죽어간다
통에서 머리를 부딪히며 날개를 찢기며
성급한 성격이야, 하루만 지켜보고 풀어줄 생각이었는데
동생이 깔깔거려서 하루만 더

통 안에 모래를 집어 넣는다
존재하지 않았던 게 생긴다
무에서 유, 신만이 할 수 있는 거였는데
(나는 잠시)

오줌을 누러 가다보면
감나무에 무서운 달이 걸렸다2)
죽어가는 잠자리 꼬리에 실을 건다
날아오른다, 나도, 같이

내 중력을 모두 자는 동생에게 주었다
팡, 팡, 터지는 중력, 동생은 공룡시대 잠자리만큼 커지고
머리를 박고 날개가 뜯기며 살진 않을 것이다

내가 다른 별의 신이 되었을 때 동생을 불러야겠다
신에게 잡혀준 모든 생명체를 사랑해야지
날개가 뜯겨도 죽지 않는 곳, 달아나기 싫은 곳을 만들어야지

우주에서 본 지구는 아주 작아서
잠자리 통에도 들어갈 것 같다

안녕 지구 나는 이제 다른 별로 간다3)

.
.
.
.
.
1)김이강 : 소독차가 사라진 거리
2)신미나 : 윤달
3)강성은 : 안녕 나의 외계인 아기

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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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법

첫 번째, 절대 이 얘기를 밖에서 꺼내지 말 것. 우리끼리 약속을 한다. 다음 학년이 되면 모든 게 나아질 거야. 확신 없는 말을 주고받고. 과자 한 봉지를 터 폭력을 나눠 먹는다. 나는 아빠한테 뺨을 맞아 봤어. 나는 딸치다 걸려서 죽도록 맞았어. 병신.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씁쓸해하며. 아냐, 모두 같은 일을 겪었다니까. 나도 말은 안 했지만. 수치는 수치스럽기에 조용해진다. 그러다 침묵. 이 정적 뭐냐. 하하하. 두 번째, 절대 이 얘기에 뒤끝을 가지지 말 것. 실은 말이야 너를 질투한 적 있어. 뭐래 낯부끄럽게. 너의 사물함에 우유를 뿌린 적 있어. 그게 나야. 그게 너였냐? 친구는 내 반대편 뺨을 때리고서는 이제 괜찮다고. 얼얼한 뺨을 만지며 이 얘기에 뒤끝을 가지지 말 것. 알겠어 새끼야. 세 번째, 절대 이 얘기를 거짓말이라 치부하지 말 것.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고 나는 아빠한테 술병으로 뒤통수를 깨져본 적 있다는 아주 평범한 얘기. 그러게 평범하네. 그리고 자살하고 싶었던 순간들. 야 갑자기 너무 갑작스럽다? 원래 자살은 갑작스러운 거니까. 네 번째, 야 너무 많잖아. 아무튼 들어봐. 네 번째, 절대 이 얘기를 실행하지 말 것.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 지나가던 개새끼에게 칼빵을 놓고 싶어. 괜찮아 너는 아니야. 친구는 낄낄거리고 나는 하하거리고 지나가던 선생님은 우리 뒤통수를 한 대씩 갈기더니 너희 뭐하냐. 정신이 번쩍 든다. 다음 학년이 되면 저 미친 선생을 보지 않아도 될 거야. 다음 학년이 되면 우리는 조금 더 커진 몸뚱이와 커진 고추를 부여잡고 집 밖을 뛰쳐나갈 수 있을 거야. 미친 새끼. 하하하. 그리고 우리는 운다. 그리고 네 가지 약속을 꼭 지키자고 새끼손가락을 건다. 진짜 초딩같냐. 남자는 언제나 초딩에 머무는 법이지. 하하. 하하.

  • 파판
  • 2021-03-10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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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판
  •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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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판
  •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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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민경

    파판님 안녕하세요. 늘 반갑습니다. 시 잘 보았어요. 잘 쓰이긴 했는데, 잠자리 이미지가 좀 빤한 거 같아서 아쉬웠어요. 곤충채집, 날개를 찢기며 죽어가는, 꼬리에 실 등의 이미지가 그다지 새롭진 않았어요. 물론 공룡시대의 잠자리 이미지가 나오긴 하는데, 그 중간의 연결고리가 약해서인지 확장된다는 느낌이 적었어요. 앞부분의 낡고 익숙한 이미지는 최대한 줄이고, 중력을 버리고 날아오르고 커지는 느낌이 잘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시간이 나면 수정해보시길 바라요.

    • 2020-08-05 16:24:30
    권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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