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본능     맛을 느끼지 못 하는 혀 무려 열 개다 그 중 하나를 다친 나는 생채기가 굳어 딱지가 되는 걸 보았다 이런 연약한 곳에서도 본능이 앞서 피를 굳게 하고 살을 만든다 문득 맛을 느끼는 혀에도 딱지가 생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농담삼아 혀가 종이에 베이면 어떨까, 라며 친구와 히히덕대던 것이 생각났다 아무렴 피 통하는 곳인데 그래도 딱지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그냥저냥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난 후에 구강암 걸린 삼촌은 혀를 도려냈다 말은 할 수 있겠니 맛은 느끼니 재차 묻는 할머니에게 그저 손짓만으로 대답을 한다 올려 편 손가락마다 지문이 없다 공사장 일 하는 삼촌 딱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본능이 앞설 미각이 없다

• 라이리
• 2011-10-29

보온병의 무게     열이 나서 보온병을 가방에 담았다 책 한 권을 빼고 넣었다 머리보다 어깨가 아려왔다   다행스런 건 물을 따라낼 때마다 조금씩 보온병이 가벼워진다는 것인데   김 피어나는 물 상한 목에 넘길 때면 배를 기어 나오는 꼬르륵 소리   밤새 소화불량 과분한 무게 속에 마지못해 뒤척이는 내 어깨의 수증기

• 라이리
• 2011-09-01

먹     밤처럼 까만 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차창 넘나드는 차량 아닐까 고개를 빼꼼 그러다가 하품 쓴 입을 핥고 유리에 비친 내 모습 보고 떡진 머리 나이키 티셔츠 이 드러내며 웃는 연습 쉽지 않다 선풍기 차창 너머 달리는 소리 못 되듯 언제부터였을까 이 밤 도로를 내달리는 차들의 소리가 낯선 먹으로 내 안 한 켠 자리 잡고 밤 아닌 밤까지 길게 늘어지는 웃음 속에 잘 지어지지 않는 하얀 이에 녹아들기 시작한 건

• 라이리
• 201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