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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 작성자 인저
  • 작성일 2008-09-29
  • 조회수 249

하얀 보름달에서 꽃냄새가 났다
그 표면은 어머니의 이목구비처럼
아득히 멀고 희미했다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칼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월급봉투는
차가운 체온을 데우기엔 너무 얇았다.

급식소 칼을 놓고
기차를 타시던 밤
유난히 생글거리는 봄꽃이 얄미웠다
기차는 어머니처럼이나 슬피 울며
보름달 아래로 달렸지만

울음소리는 어둠 속으로 묻혀갔다
하얀 보름달이 서러운 꽃냄새를 풍기었다.

인저
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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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엔 전화상담원의 목소리가 창밖을 닮아 깊이가 보이지 않고 깜깜하다 드문 별처럼 졸음이 군데군데 끼어있고 친절이 옅은 구름처럼 천천히 미끄러진다 새벽의 전화상담원은, 낮보다 더 기계적으로 친절하게, 인터넷은 요금납부 후 10분 뒤에 재개통된다고 말해준다 나는 수화기를 한쪽 어께에 낀 채 프리셀을 하고, A이보세요 킹, 한쪽만 바라보세요 근심도 행복도 없는 표정으로 가운데에서 절래절래 고개 흔들지 마세요 기계처럼 가만히, 조금 전 밤에 전화를 받고 죄송하다던 상담원도 당신처럼 무표정이었을까요 올려놓은 다이아A 와 다이아2 는 꿈도 꾸지 마세요 당신은 그 사각형 안에서 나올 수 없어요 허튼 수작 부리면 꺼버리는 수가 있어요 킹, B아니 그러니까, 지금은 입금이 안되잖아요 아침에 은행 문 열면 바로 입금 한다니까요 죄송하다 말로 하지 말고 죄송하면 몇 시간 정도만 미리 개통해줘요 답답해죽겠네 내가 인터넷요금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있겠습니까-죄송합니다, 고객님 C스페이드 다이아 하트 크로버 5456이보세요 다이아 퀸, 당신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지금 주머니에 있는 왼손에는 커플링이 있다구요 그리고 지금은 당신이 깔아뭉개고 있는 크로버7이 필요해요 잠깐만 비켜줘요 내 표정을 읽는지 마는지밋밋한 표정으로 다이아를 자랑하는 부부, 금슬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데내 표정을 읽는지 마는지 수화기는 죄송하단 말만 토해내고

  • 인저
  • 200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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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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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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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저
  • 200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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