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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풍경화

  • 작성자 루댜
  • 작성일 2007-04-21
  • 조회수 376

 

노인병동 1026호
이정석 할아버지에게 세상은
고작 풍경화 한 폭 뿐이다
오래도록 물칠 한 번 하지 않아
희부연 먼지가 끼인
서글픈
그림 한 장
멀리
산 끄트머리 조금 비치고
텅 빈 하늘만 빽빽히 그려진
움직일 줄 모르는 풍경에 물이 한가득 괸다
나날이 침수하는 당신의 침대마냥
흐릿하니 잠긴다

 

「평안북도 정주가 내 고향이우
거기 하늘은 지금도― 무섭도록 퍼럴 거우다」

 

떨리는
그네 음성에선 연신 단 흙냄새와
그토록 시퍼렇다는 毒같은 하늘이 묻어 나왔다 그러나
흐릿한 별이 뜨는 하늘은
어느 한 곳도 고향 것이 아니다
作者조차 없는
텅 빈 풍경화 한 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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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그토록 바라시던 고향 하늘에 무사히 도착하셨길.

루댜
루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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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귀퉁이 닳은 성경책이 계시록의 마지막 구절을 되뇌며 철렁, 눈을 감은 밤 예고도 없이 돌아온 사내는 사라지던 것들이 마지막으로 뱉어놓은 독을 따라 오래 전에 지워졌던 길을 짚었다수많은 눈들이 그에게서 눈동자를 지워대던 계절, 차고 빈 하늘에 제 육신 걸어놓았던 나목의 기억에 그림자가 없다 차마 끄집어내지 못 했던 말의 토막이 기어이 가슴 끝에 서늘하게 지는데 몇 날을 굶주리다 기어이 제 살을 파먹고 마는 얼룩거미의 등 뒤로 날개 젖은 나비 한 마리약속처럼 슬며시 내려앉는다    

  • 루댜
  • 2007-12-08
그 가족의 초상

늙은 남자가 육교 위에 엎드려 있다 해진 노동자 점퍼를 걸친 육신이 깎아지른 절벽의 계곡을 달려 내려갈 때 팔꿈치가 닳은 그의 영혼은눈동자 위에 얹어진 은색 동전이 우는 소리에 맞춰 한 발 한 발, 삭정이 깔린 무덤가를 헤맨다말라붙은 강의 밑바닥에서 불타기 시작한 생애어린 딸아이는 아직도 목구멍 깊숙한 곳이 검붉게 부어 있고  발이 없어진 아들은 낡은 모자에 비늘 벗겨진 잉어를 건져 올리는데 수의를 걸친 아내는 남편이 잃어버린 새벽의 유리조각을 줍다 손가락을 잘려 붉은 문신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 루댜
  • 2007-11-23
길의 겨울잠

마른 바람이 뺨 위에서 뒤치더니 주르륵 흘러간다 몹시도 눈이 시리던 겨울밤, 한숨을 쉬자 해진 콧속으로 밀려들던 초저녁의 냄새를 기억한다 풀 먹어 빳빳한 머리를 하고 산 너머로 너울너울 날아간 연의 꼬리를 뒤쫓던 계집애가 발간 목으로 울었다 나는 주머니에 눈을 감춘 채 나무의 마른 뼈대를 모르는 척 핥았다 혀끝에 닿던 서늘한 겨울의 맛을 기억한다 입에서 겨울을 밀어내며 올려다 본 곳에는 계절을 낳느라 가엾게 늙은 어미의 젖가슴이 바싹 마른 채로 매달려 있었다 그것을 기억한다, 몸을 오그리며 길가에 눕자 얼어붙은 아스팔트 밑에서 헤엄치던 빙어의 치어들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한숨을 쉬자 감은 눈을 비집고 들어오던 겨울의 밤, 쪼그려 앉아 훌쩍이는 계집애의 치맛자락에 묻어있던 아직 이름도 모르는 푸른 그리움을 기억한다  

  • 루댜
  • 20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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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평안북도~하는 부분이 왠지 현진건의 고향이라든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좋네요-

    • 2007-04-21 01:05:0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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