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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 작성자 당근매니아
  • 작성일 2006-11-25
  • 조회수 281

어두운 빛깔로 서있는 교문을 터벅터벅 걸어나올 적에 코트와 잠바를 뒤집어쓴 어느 망구스의 무리를 보았다. 발 동동 구르며 손 모이고 있는 폼은 사바나의 구덩이 위 언덕서 망을 보는 딱 그 모양새였으나 그들이 눈 데굴데굴 굴리며 쫓고 있는 것은 날선 발톱을 세우고 원을 그리는 맹금이 아니라 하루 꼬박 답안지를 검게 채워 피로한 표정의 누런 스폰지들이었다. 1년의 기다림은 이리도 소모적이고 이렇게나 검붉다.

당근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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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

푸른 통장과 지갑에 빼곡히 박힌 웃고 울리는 우스운 검은 숫자들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다 말고 푸른 라벨이 아직도 너덜거리며 감겨있는 투명한 생수 병에 손을 뻗어 탁한 뚜껑을 열고 들이키려 드는데 둔한 나는 그제야 담겨 있어야 할 물이 채 한 모금도 남아있지 않음을 깨닫고는 의자에 접착된 엉덩이와 손에 붙은 붉은 샤프 사이서 어쩔 줄 몰라 바둥거리다 가까스로 올챙이 꼬리 달린 음표로 진득함을 긁어내고 샤프 대신 비어버린 병을 들고 허연 피부 다 드러내고도 수줍어 하지 않는 정수기로 기어갔다. 손은 내 싸구려 청량을 받아 들이키는데 익숙한 리코더 맛 불쾌감이 식도를 찌르는지 콧속을 찢어 발기는지 아무 맛 없는 투명함의 앞뒤로 정제되지 않고 구정내 잔뜩 품은 역겨운 긍정주의자의 고랑맛이 나를 괴롭혀 나는 다시 물을 버리고 이제 만족스럽게 솎아져 결국에는 병적인 니힐로 적도의 사막처럼 타들어 가던 목구멍을 축여 만족한 신사적 돼지의 얼굴을 한 채 떼어버렸던 샤프를 다시 둔중하고 우둔한 앞발에 붙히고 의미없는 연산을 그저 반추하는 것이다. 방충망과 유리창 사이 끼어 버둥대는 회색 나방 한 마리가 마냥 즐거워 보였다.  뒤쪽이 너무 관념적으로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 당근매니아
  • 2006-11-22
낙엽

창백한 가로등을 머금은 가을 나무는 칙칙한 색으로 지쳐 있었다. 단풍처럼 타오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노란 축제를 열지도 못한 죽어버린 입사귀는 결국에는 자신의 무게조차 이기지 못한 채 새로 깔아 차가운 보도블럭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이제 서서히 썩어가는 섬유에서는 나무진의 여름향기보다는 펄프에 가까운, 아니 그보다는 모카 한 잔 홀로 옅은 김 토해내는 어느 나른한 소재의 그리운 냄새가 났다. 그 아래 누워있는 내 귀에 톡 하고 속삭인 것은 자기를 이길 수 없었던 어느 하나의 짤막한 진혼곡이었고, 나는 피빠는 날짐승에게 또다시 손등을 물렸다. 나를 위한 레퀴엠은 애초에 단음으로 충분하였는지도 모른다.   전에 쓴 것들을 보니 지나칠 정도로 장문을 써놓은게 눈에 걸려서 최대한 단문을 쓰려고 노력해 봤습니다.

  • 당근매니아
  • 2006-11-22
기계화된 양계에 감복하여

내가 사는 닭장은 먹물에 찌든 하늘 향해 뻗은 이 거대한 우리의 무리 중에서도 가장 윗단의 것이라 삐그덕 거리는 그 철망문을 열기 위해서는 작고 털털대는 상자에 갇혀 밖을 보지도 못한 채 올라가야만 했다. 마주 보는 두 면이 맑은 유리인 그 상자가 내 닭장 뿐만 아니라 예전 알고 지내던, 같은 반이었던 어느 여자아이가 눈붙이는 닭장으로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 건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정스레 마주 노려보는 유리 한 쌍과 달리 누군가와 같이 그 상자에 갇힐 때에 타인을 노려보기는커녕 무한히 거울 뒤로 뻗어나간 기묘한 공간에 나는 하나도 없고 불편한 표정으로 액정을 들여다 보거나 먼 곳을 바라보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낯선 눈알만 그 안에 동동 뜬 채 데굴거렸다. 그 때에 석고상 같다고 생각한 여자아이는 로뎅의 작품처럼 피곤한 눈으로 그저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 당근매니아
  • 200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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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스폰지 스폰지 정말 스폰지 같다면서요 시험 다 끝나고 오류점검하는 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바람이 슝슝 빠지는 고무타이어같이 슈우우우우우우우우 그래도 스폰지의 대부분이 다시 망구스가 된다는 사실

    • 2006-11-26 03:02:0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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