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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오면 죽는 선인장 (퇴고)

  • 작성자 세빈
  • 작성일 2024-06-28
  • 조회수 338

선인장 같은 네 머리는


때 아닌 장마날이면


삐죽삐죽 서곤 했다 




너는 항상 머리의 축을


우산의 다리밑에 고정하고


물 먹은 삐죽한 머리칼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내보이며 




추위에 몸을 덜덜 떨면서도


기어코 허물을 다 벗어주고는


머리칼과 다르게 


서글서글한 눈매로 웃어 보이고




그런 기억 속 너는


어깨에 푸른 멍을 달고


이제는 색을 가지지 않는


오른편 어깨


그리고 푸석한 여름




나는 어깻죽지를 더듬다가


우산을 유기하는 날이 잦았어




몸을 온전히 가리는 일인용 우산이


버거운 날이 잦았어




우리 집 선인장이 여름을 맞이한 건


네가 무심한 듯 비를 내렸기 때문이잖아




그래 


이제 나는 선인장이고 


너는 내 목숨을 쥐었는데

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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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퇴고)

그 여름에 나는 검고 커다란 피아노가 싫었다 조금만 비껴나가도 질책하듯둥둥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 겁도 없이 예술가의 영역을 침범한 나의 오만을 탓하는 것만 같아서 손에서도 입에서도 뾰로통한 둥둥 소리를 내는 내게 너는 그것을 어르는 법을 가르친다 거리를 두고 편안한 자세로 손은 계란을 쥔 듯 구부려 그렇게 시범을 보이는 네 손이 꼭 피아노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어살짝 웃는 얼굴에 띈 옅은 보조개에어쩐지 마음마저 간질거린다마을 어귀 커어다란 교회에서 연주하는 피아노와는 다르게 마당이 커다란 네 집 하얀 피아노는 반질 반질 윤기가 났는데간지럽히면 하하 호호 소리를 내는 꼴이 퍽 좋았다쇼팽을 시팽이라 부르는 어른들에게어깨 한가득 무거운 찬사를 얹고발걸음은 가볍게 네 집 문을 두드린 이후그 집에 다시 온기가 피어나는 일은 없었지만...사람은 미워도 피아노는 죄가 없으니나는 옅은 갈색모에 우유 한 스푼을 탄 눈동자,피아노를 칠때 날카롭게 세워지는 손톱가볍게 드리우는 보조개 따위를 상기하며피아노를 쳤다 길게 말했지만 그냥 네 생각을 하며 피아노를 쳤다는 거지이제 너보다 내가 피아노를 잘 칠까 봐 두려웠던네가 만들어 준 악보집이 더 이상 몸을 부풀리지 않는 그 겨울에 나는 피아노가 좋았다 그맘때 너에 대한 원망인지 사랑인지이름 모를 응어리가 손 끝에 가득 차서 그 집에 다시 갈 수 없었어 편지인지 일기인지 모를 것을 적다가 어쩐지 낯이 부끄러워 글자들을 모아 악보를 썼다다시금 두툼해진 악보집을 들고하얀 네 피아노를 맞이하러 가야지둥-둥-그 여름에 나는시작을 알리는우리의 피아노 행진곡을 연주한다아네 고장 난 피아노 건반에는아직도 잔잔한 선율이 흐르는구나

  • 세빈
  • 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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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빈
  •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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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빈
  • 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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