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 작성자 세빈
- 작성일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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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1
- 조회수 244
기억하는 것은
하늘을 향했던 깃과
아프게 스치던 바람
비상하는 철새들 뒤로
긴 겨울의 초입에서
푸른 잎을 기다리던 둥지
힘차게 했던 날갯짓은
진창이 된 젊음을
질질 무는 그늘이 되었으니
곧 다가올 황혼의 노래는
철새의 비상을 연주하는
그늘의 곡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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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에 나는 검고 커다란 피아노가 싫었다 조금만 비껴나가도 질책하듯둥둥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 겁도 없이 예술가의 영역을 침범한 나의 오만을 탓하는 것만 같아서 손에서도 입에서도 뾰로통한 둥둥 소리를 내는 내게 너는 그것을 어르는 법을 가르친다 거리를 두고 편안한 자세로 손은 계란을 쥔 듯 구부려 그렇게 시범을 보이는 네 손이 꼭 피아노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어살짝 웃는 얼굴에 띈 옅은 보조개에어쩐지 마음마저 간질거린다마을 어귀 커어다란 교회에서 연주하는 피아노와는 다르게 마당이 커다란 네 집 하얀 피아노는 반질 반질 윤기가 났는데간지럽히면 하하 호호 소리를 내는 꼴이 퍽 좋았다쇼팽을 시팽이라 부르는 어른들에게어깨 한가득 무거운 찬사를 얹고발걸음은 가볍게 네 집 문을 두드린 이후그 집에 다시 온기가 피어나는 일은 없었지만...사람은 미워도 피아노는 죄가 없으니나는 옅은 갈색모에 우유 한 스푼을 탄 눈동자,피아노를 칠때 날카롭게 세워지는 손톱가볍게 드리우는 보조개 따위를 상기하며피아노를 쳤다 길게 말했지만 그냥 네 생각을 하며 피아노를 쳤다는 거지이제 너보다 내가 피아노를 잘 칠까 봐 두려웠던네가 만들어 준 악보집이 더 이상 몸을 부풀리지 않는 그 겨울에 나는 피아노가 좋았다 그맘때 너에 대한 원망인지 사랑인지이름 모를 응어리가 손 끝에 가득 차서 그 집에 다시 갈 수 없었어 편지인지 일기인지 모를 것을 적다가 어쩐지 낯이 부끄러워 글자들을 모아 악보를 썼다다시금 두툼해진 악보집을 들고하얀 네 피아노를 맞이하러 가야지둥-둥-그 여름에 나는시작을 알리는우리의 피아노 행진곡을 연주한다아네 고장 난 피아노 건반에는아직도 잔잔한 선율이 흐르는구나
- 세빈
- 2024-08-06
나린 눈의 숨소리가 미약해서세게 밟아도 꿈틀거리지 않는 밤 네 몸에서 하얀 눈이 내리고 연탄처럼 새까만 눈은 그림자에 가둬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은 홀씨처럼 나뒹굴고 떨어지고 추락하고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힘껏 다문 네 눈 중 더 무거운 것을 잴 수가 없었어 저 눈은 벽난로의 열기에 녹고 이 눈은 완연한 냉기에 녹을 뿐이었어 같은 것은 사라진다는 것 발을 잃은 나무들아 제 축을 잃고 휘청일 때 허름한 우리의 집을 뭉개고 가세요 딱딱하게 얼어버린 벽난로 옆에서 흰 눈을 쓸다가 녹지 않는 저 눈을 원망하며 이 눈을 어루만졌어 흰 눈을 모아서 스튜를 끓이고 마지막 온기를 나눠 허름한 우리의 집을 뭉개고 가세요 이제 인몰의 재가 몽땅 녹아버렸으니 꿈틀거리지 않는 밤문을 열면 누구 하나 얼지 않는 이가 없었고
- 세빈
- 2024-08-03
그와 바다는 자음 하나 겹치는 게 없었으나 유사점이 많았다 바다를 싫어했지만 그 넓은 품으로아이들을 품었고어느 날에는 폭풍우 치듯역정을 토해냈으며 또 가끔은 자취를 감추다가 종국에는 거품 같은 것을 가득 물고 뼛속까지 퍼렇게 식어버렸으니 그는 가짜 혹은 바다의 모조품 연어의 뱃가죽을 가를 때마다 거품을 머금은 입 속이 떠올랐다 바다에 데려가야 해 어리석은 공상이었으나 가짜는 진짜의 실재에서비로소 그 존재를 각인시키니그에게 갔다 그와 함께 비릿한 냄새가 스친다 가누지 못하는 몸을 끈다 바다옆에 엎어져마침내 바다가 아니게 되었으니이제 바다를 보며 당신이라 우길 일은 없겠지집에 돌아와 질깃한 연어를 씹고페퍼민트향 치약으로 이를 닦는다그날 꿈에 그는 싫어하던 바다에서 춤을 추었고 침대에서는 하루종일 짠맛이 났다
- 세빈
- 2024-07-27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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