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 작성자 가엘
- 작성일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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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1
- 조회수 838
1.
이따금 겨울이 되면 사무치게 가슴 아픈 날이 있다. 그런 날들이면 나는 어쩔 줄 몰라 옥죄이는 가슴만 부여잡으며 앓는다.
하늘에서 시린 눈 한송이조차 내리지 않는데 내 마음 공간에는 얼어붙은 눈이 무릎께까지 쌓여 있기에 그 차이가 날 아프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마음 공간에 쌓인 눈이 나를 괴롭게 하는 걸 알지만 나는 눈을 치울 수 없다. 아니, 치워본 적이 없다.
눈이 쌓이지 못하게 막으려는 노력은 포기한 지 오래이다.
새로운 눈이 쌓일 때면, 나는 두려운 눈으로 한 걸음 물러나 지켜볼 뿐이다.
어느새 이리 쌓였나. 중얼거림은 입김이 되어 눈 속에 파묻힌다.
2.
녹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은 녹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굳어진 그 눈들은 이제 마음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익숙하다 느껴도 갑자기 찾아오는 아픔에는 언제고 앓는다.
누구 날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때때로 의미 없는 말을 내뱉는다. 허공에서 사라질 걸 알면서도.
3.
이제는 눈이 가슴께까지 차올랐다. 나는 눈 속에 파묻혀 나오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 상태로 며칠을 있었던가.
4.
한기가 서려있는 마음 공간 위쪽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내 코에 떨어졌다.
이게 무엇이지?
오랫동안 눈의 한기만을 느꼈던 나는 곰이 동면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알아챘다.
눈. 눈이 녹은 거야.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거렸다. 눈에서 여러 섞인 감정이 흘렸다.
5.
눈이 모두 녹은 마음 공간.
나는 사무치게 가슴 아프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온기가 도는 마음 공간을 둘러보았다.
고인 물웅덩이 속 나를 부르는 빛이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눈가에 고인 반짝이는 눈물을 훔치고 걸어갔다. 시린 기억들로부터 나를 구원한 그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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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었다가 마른 휴지처럼 일그러진 모습으로나는 무감각이란 호수에 몸을 던졌다. 망막을 뚫고 들어오는 물에 눈을 맡긴 채상에 맺히지 못한 것들을 반사라는 이름으로 흘러 보냈다 난 무엇을 간직하고 있던 걸까모조리 풀리는 기억이 금세 형체를 잃고 영영 사라지는 중에나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기억에 다시 손을 뻗고 싶다는명치깨가 아팠다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굳고 풀리길 반복하며 일그러짐으로 정의되어내가 가진 기억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난 감히 얕은 호수에 손을 뻗지 못했다.이미 내 정신은 물속에 잠겨 사고하지 못하게 된 지 오래기에 물 속에서 모든 감정은 제 빛이 풀어졌고나는 사라져 가는 감각의 형체를 볼 수 있었다이제는 모르는 감각들이 눈앞을 스치고 동심원이 몸 위에그려지고 흐려지다가 사라졌다
- 가엘
- 2024-06-25
문득 깨달았다손을 뻗으면 하늘이 다 덮였던 것은사실 하늘이 내 손만해져서 나와 맞닿았기 때문이었단 걸멀어지는 거리만큼 작아지는 것들,그러나 하늘은 멀어질수록 더 커지기만 한다커지고 커지고온 세상을 덮고도 더 커지는그 아득함에 손을 대어 본다새의 날갯짓을 닮은 날카로운 구름이 스친 곳에서하얗게 응고되는 것들에 손을 대어 본다그 작은 손짓에도금방 몸을 굽히는 하늘여전히 손에 들어오는 하늘에내가 널 잘 몰랐구나 하고 말해본다
- 가엘
-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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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엘
-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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