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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돌아보며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2-31
  • 조회수 494

 찬 바람이 불고 눈이랑 비가 트위스트를 추고 크리스마스 케럴이 들리다 멈춘 하루가 찾아오니 나는 2023의 마지막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지난 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올해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겠다.


{의미 없이 흘러보낸 겨울방학1-2월}

2022학년도가 끝나고 겨울 방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현재 기침 틱으로 의심되는 그런 기침으로 학원이 올 스탑이 되어 있었다. 일단 몸이 낫는데 집중을 하기로 결심하여 집에서 매일 매일 푹 쉬고 있었다.  그 것도 반려 동물 토리와 함께. 이렇게 의미 없이 쉬기만 했던 날의 연속이 방학을 금방 잡아먹었다. 2월 말이 다가오니 엄마와 나 불안에 잠겨 있었다. "기침이 괜찮아 지지 않으면 학교랑 상의해서 최소 수업 일수만 맞추거나 잠시 휴학 하자." 나는 이런 엄마의 말에 많이 불안했다. 불안에 떨던 중 반 배정이 나오는 날이 다가왔고 엄마는 할 수 없이 학교 교무부장 선생님이신 기술가정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엄마가 교무 부장 선생님과 통화하고 난 후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희찬이 기침 저도 수업시간에 들었어요. 학교에 나오지 못할 정도 아니면 나와도 되요.저도 수업 때 희찬이 기침에 주의깊게 살펴볼게요. " 난 이 말에 감동을 받고 불안을 잠시 잠재울 수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고 불안했던 3월}

 첫 등교날 나의 마음은 불안했다. 아마 기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같은 반 친구인 00이와 간단한 근황을 물어보았다. "아직도 하는구나. 괜찮아?" 이 말에 나는 웃음으로 답을 했다. 새학기의 첫 조회 종이 울리고 난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아는 선생님이 담임이 되셨으면:::" 문을 열고 들어오신 선생님은 1학년 때 과학을 가르쳐주신 과학 선생님이셨다. 나는 속으로 친했던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셔서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은 내 기침에 관련된 엄마의 편지와 내 상태를 보고 상담 때  성적보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1학년 때는 건강했는데 어쩌다::: 병원에서 뭐라고 하니?" 이후 선생님은 내 기침에 많은 신경을 써 주셨고 나의 자리를 창가 자리로 해 주셔서 먼지 알러지로 인한 기침을 최소화 시켜 주셨다. 또한 체육 선생님께 말씀을 해 주셔서 한 해 동안 수행을 제외한 나머지 체육 시간에 교실에 있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난 먼지와 관련된 기침이 학교에서 줄어들고 숨이 차서 기침이 많이 나와 수업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었다.


 3월달에 있던 또 하나의 큰 일은 바로 병원을 옮긴 것이다. 성 빈센트에서 아주대로 이동할 때 나는 반려 동물인 토리와 작별인사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주대에서는 내 기침을 자연적인 원인과 심리적인 원인이 같이 작용할 것 같다 판단하여 코데인정을 처방해 주셨다.


{내가 정신과를?4월}

 4월 담임선생님이 내게 다가오셔서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기침에도 심리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어." 이 말에 나는 동의 했다. 그래서 정신과를 가려고 마음을 먹었고 수원시에서 하는 상담 비용 지원과 관련 되어 상담 선생님과 다양한 검사를 했다.검사 결과를 보고 선생님이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기침에 고마워 해야해, 우울 수치, 불안 수치도 높고 공격성도 지금 높게 나왔어." 나는 이 말을 듣고 다행히라는 표정으로 정신과를 갔다. 우리 집 주변에 정신과가 없어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정자동 학원가 까지 버스를 터고 다녔는데 그 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도 매섭고 따갑게 느껴진다.


{엽서시 공모전과의 만남 5월-6월}

 정신과를 다니며 나의 우울함과 불안감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다만 버스를 타고 다닐 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을 제외하면 정신과 다니는 것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러면서 점점 옛날의 활기를 찾게 되었고 글 쓰기 공모전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이러브 콘테스트라는 어플을 만났고 그 중 엽서시 공모전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문학 공모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김유정 문학상, 만해 백일장,둔촌 백일장, 대교제단 청소년 문학 공모전등 많은 공모전과 백일장에 나갔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해 보지 못한 것을 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매달을 즐겼다.


{점점 밝아지는 나의 모습 글틴과의 만남 7-8월}

 그렇게 엽서시 공모전에서 글을 공모를 하고나니 다가오는 3학년 1학기 기말고사. 나는 이 시험에서 과학,수학을 완전 망쳐버렸다. 그래서 너무 속상해 있었고 정신과를 오가며 느끼는 일반 사람들의 시선{버스안, 정신과 건물 안}이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우울해 졌는데 그 때 만난 것이 바로 글틴이었다.


 글틴을 하면서 나의 문학작품들이 성장해 가는 것을 느꼈다. 7월 처음으로 시 디바의 삶이 좋아요를 받아 기분이 좋았으며 시 안녕에 김선오 멘토님이 달아주신 조언에따라 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7월달은 멘토들의 조언으로 시와 소설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 생각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8월달에 올린 내 이야기를 담은 작은 아이라는 시가 월장원에 올랐다. 또한 까마귀 백조 사이라는 시에서 김선오 멘토님께서 시가 성장했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또한 8월에는 나의 소설 빨래를 통해 일상생활에 지친자들을 위로해 주려고 했었다.  이  글틴 활동들을 하면서 난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으며 밝아진 것 또한 느꼈다

{글의 정체기 9월-10월}

 이 때부터 난 내 글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확신을 가지고 난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최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 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 내 글이 약간 이상해졌다. 특히 소설이 그랬다. 대사가 확 많아졌다.특히 빨래2가 매우 심했으며 우물안에 핀 작은 불꽃에서 난 보지 못했던 빌리엘리엇이랑 내용이 비슷하다고 김병운 멘토님께서 그러셨다. 그래서 난 나도 모르는 사이 표절같은 것이 일어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난 잠시 슬럼프가 온 것 같았다. 대사와 관련되서는 그나마 10월부터 좋아지고 있지만 비슷한 결의 내용과 관련되서는 12월이 된 아직까지도 고민이 많아 잠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반면 시는 멘토님께서 좋은 평들을 남겨주셨다. 개인적으로 H 시리즈에 좋은 평들을 남겨 주셔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9월-10월은 내 글에 집중했던 시기인 것 같았다.


{슬픔이 오고 기쁨이 찾아오고 글에 죽고 글에 살고 다사다난한 11월}

 11월달은 내가 글틴 활동을 적극적이게 하지 못한 유일한 달이다. 그 이유는 내가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이다. 11월 초반 10월달에 수원시에서 개최했던 시 쓰기 대회의 장려상의 결과를 받고 매우 즐거워했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슬픔이 찾아왔다. 바로 시험에서 수학을 절반도 못 받았고 역대 받았던 점수중 최하점을 받았으며 수능 문제 풀 때 한 두개 틀렸던 역사에서도 하나 틀렸다. 사회는 1점차로 B가 되는등 시험을 너무 많이 망쳤다. 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나를 위로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글이 나를 죽였다.  틱을 조롱하고 정신질환을 공격하는 그런 영상과 댓글이 내 맘을 죽였다. 이 죽은 마음을 다시 퇴고하기 위해 쓴 작품이 내 거울 세상에더 아침이 오겠지다. 하지만 이 시 역시 내 맘을 도와주지는 못했다.그렇게 글과 담을 쌓아가던 중 드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를 보게 되었다. 이 드라마의 대사들 덕분에 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글로 죽은 마음 글로 다시 살아났다.


{글로 죽은 마음을 다시 풀고 다시 사랑하는 글쓰기 그리고 그 옆에 친구를 만난 12월}

 12월달은 다시 내 아픔을 써내려갔다. 소설로는 마음의 성장과 정신병동에 핀 민들레를 시로는 새벽에 서 아침을 기다리고,알약을 목에 넘길 때, 아침을 기다리는 새벽아이, 괴물이 된 H로 내 아픔을 다시 글로 승화시켰다.그러면서 내 아픔을 썼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관련 비평문이 글틴에 장원이 되어 무척 기뻤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아픔을 글로 승화해서 대견해."라는 식의 말을 해 주셨다. 나는 다시 글을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소설에서 마음의 성장이 나도 모르게 영화 인사이드 아웃과 비슷하다는 00의 평을 받아 또 비슷한 것을 창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 좀 더 신중하게 쓰다보니 소설에 자신과 확신이 없어졌었다. 하지만 바로 어제 글티너 ---와---의 조언으로 다시 소설에 대한 용기를 얻었으면 김병운 멘토님께서 또 다른 고향에 써주신 대댓글을 읽고 다시 힘이 생겼다.  


 또한 12월달은 학교에서도 고등학교 관련해서 많아져서 기침 틱 때문에 있을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잡생각이 많이 들어 잠을 편히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여러번 잠에거 깬다. 하지만 여러 글티너들의 조언으로 최대한 잡생각이 들지 않게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다. 또한 요즘은 글친구가 생겨 나의 고민을 말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2023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글로 2023을 써 보니 참 많은 일이 글과 함께 있었던 것 같다. 내년에도 힘든일이 있으면 글과 문우들과 함께 시련을 이겨내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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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선생님, 저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어요." 상담 선생님께 이 말을 하니 선생님이 많이 당황하셨다. "진짜 태어나서 처음인 거야?"라고 역으로 질문하셨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17살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여기서 놀라는 포인트는 친구와 혼자가 아니라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17살이 되기 전, 늦어도 12살에는 친구를 스스로 혼자 만나야 사회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관점에서 볼 때 사회화가 잘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내가 17살이 되도록 친구를 혼자 만나지 못한 것은 내 내향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친할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내게 친구의 단점을 계속 말하며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빠 친구 OO이는 이 짓거리 때문에 아직 결혼도 못 갔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 말을 한 번만 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자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제가 되었다. 나는 그로 인해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었지만, 완전한 친구, 즉 의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 번도 친구들과 혼자 만나서 논 적이 없다.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정확히 내가 원인 불명의 기침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더 작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있을 때 편했던 친구는 중2 때 만난 S(의 S와 동일인물이다.)라는 친구다. S는 나와 매번 맨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와 나는 많이 친해졌고, 그는 내가 중2 때 갑자기 시작된 기침 때문에 시끄러웠을 것 같은데도 아무 말 없이 나에게 "괜찮아? 몸 안 좋은 것 같은데."라고 물으며 걱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S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져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은 서로 알려주며 지냈다. 그래서일까? 중3에 올라가서 반이 달라졌음에도 우리는 만나면 재미있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게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이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와 S는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 때문에 더 위축되었으며 기침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타난 친구가 바로 K(의 K와 동일인물이다)다. 그는 내게 먼저 와서 말을 걸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저절로 K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이야기를 하며 서로 모르는 문제를 연구하며 잘 지냈다. 그러나 올 6월부터 감기가 들어 기침이 심해졌다. 잦은 조퇴와 건강 악화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자퇴하기 전 K에게 이 소식을 미리 전할까 고민했지만, 시험 기간이라 분위기가 흐려질까 걱정되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퇴 날 개인톡으로 연락했다. 그러자 K는 나에게 "나도 너 덕분에 학교생활 잘 적응했어.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등 나에게 좋은 말과 감동적인 말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다시 다잡을

  • 송희찬
  • 2024-09-29
샤이닝

별은 스스로가 빛나는 것을 모른다. 그 이유는 별이 빛을 내고 폭발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스스로 빛나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특히, 많은 부담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빛나는 사람이다.나는 지난 6월부터 기침이 심해져 9월 10일 자퇴 서류를 작성했다. 자퇴서를 쓴 후, 선생님께서 "지난 6개월간 함께한 친구들에게 인사할래, 아니면 톡으로 남길 거야?"라고 물으셨다. 친구들을 보고 인사하면 감정이 북받쳐 울 것 같아 톡으로 남기겠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그래서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미안함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썼다.편지에는 기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회상이 담겼다. 또한 영어독서,국어 부장과 팀장 역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포함되었다.이 편지를 쓰면서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감정을 다잡지 못한 채 반톡 화면을 뚜러져라 바라보며 눈물이 날려는 날 참았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따뜻한 택스트들로 이 마음은 약간 괜찮아지려고 했다.톡을 올린 지 5분 정도 지나자, 중학교 동창이자 2학기 학급 반장이 반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고마웠어, 희찬아." 이 말을 시작으로 몇몇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과학 탐구 실험 조의 친구는 "그동안 학교 생활 수고했고, 앞으로도 힘내길 바랄게"라고 했다. 특수반 친구는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었다.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였던 친구도 "우리 반을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이후 개인톡으로 몇몇 친구들이 나를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날을 응원할게"라는 내용이었다.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친구는 수학부장 K였다. (K는 의 K와 동일인물)K 덕분에 나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결석이나 조퇴 시 필기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아픈 것을 덜 참아도 됐다. 그래서 K에게 개인톡으로 "K야, 너 덕분에 학교 생활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할 수 있었어. 그리고 네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해준 게 없어 미안해.그리고 고마워."라고 전했다. K는 내 메시지를 보고 5분 후에 답장이 왔다. "나도 너 덕분에 학교 생활 잘 적응했어. 내 사소한 질문에도 항상 진지하게 들어줘서 고마워. 네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나는 이 문자를 보고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친구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많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퇴를 서둘렀던 지난 죄책감이 미웠다.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짊어진 무게와 운명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폭발할 때 빛난다. 우리는 언제나 빛나는 별이며, 삶을 살아가는 길 중에 폭발이 있을 뿐이다.

  • 송희찬
  • 2024-09-28
학교 하교

지난 8월 말,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부르셨다. "희찬아 잠깐 나 좀 보자."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순간 겁이 막 올라왔다. 나는 분명 잘못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부르셔서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갔다. 교무실은 시험기간이라 조용하고 엄숙했다. "희찬아 3년을 버틸 수 있겠어?" 선생님의 첫 마디가 정적을 깼다. 대화는 10 정도였지만, 대화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있었다. 나는 이 말이 "이제 버티기 힘들 것 같다. 희찬아."라고 들렸다. 한 마디로 자퇴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놀랐기 보단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침 때문에 학교 생활을 오래 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 뒤에는 약간의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속상함이 가득했다. 내가 기침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닌데. 나는 22년 10월부터 다양한 원인의 기침을 앓고 있다. 정신과에서는 틱으로 보고 대학 병원에서는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보고 있다. 23년에는 증상이 줄었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나서 다시 심해졌다. 그러다가 6월에 감기가 들어오면서 기침이 악화됬고, 6월의 절반 이상을 조퇴, 결석, 지각으로 보냈다. 2학기가 시작된 8월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매주 조퇴를 2~3번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이 자퇴 이야기를 하신 것은 이해가 갔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의 끝자락을 물고 온 말을 듣고 나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고 기침이 더 심하게 나왔다. 선생님은 "이러다가 네가 너를 잡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몸에서 땀이 계속 흘렀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이명과 함께 수업 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은 부담임 선생님이신 국어 선생님의 수업이었다.나는 급히 상담을 마무리 하고 빨리 교실을 향했다. 내 몸은 몸살에 걸린 것처럼 더 힘들었고 마음 역시 몸살에 걸린듯 무거웠다 수업에 들어가자 국어 선생님이 나에게 "희찬아 무슨 일이야? 왜 늦었어?" 라고 물으셨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무겁게 답을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어서요."그렇게 시집을 읽었지만 시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수업 시작 전 5분은 시집 읽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답답했지만 어찌저찌 이 날의 모든 수업을 끝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해야되나 봐." 엄마에게 이 말을 할 때 내 감정은 억울함, 허무감, 우울함, 배신감 등이 몰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나는 꾹 참았다.엄마는 의외로 덤덤했다. {아니면 내 앞에서 덤덤한 척을 한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반응에 다시 무너졌다. 그렇지만 울지는 않기로 다짐했다. 집에 도착하니 선생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희찬아,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주말동안 쉬렴." 선생님의 문자에 나는 한 번 더 흔들렸다. 결국 나는 위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여러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감정 정리는 어려웠다. 우울함이 더 몰려왔다. 엄마는 이런 내가 안쓰러웠을까? 상담

  • 송희찬
  •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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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요즘 계속 글을 쓸 때 흥분이 되요. 그래서 글이 잘 써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한 해 동안 좋은 말씀 남겨주신 멘토님 감사드리고 신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저는 신년에 더 좋은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 2023-12-31 14:02:31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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