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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기침도 마르겠지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0-22
  • 조회수 845

 내가 요즘 글틴에 1일 1작품을 하지 못한 이유는 지독한 감기와 더불어 장어를 먹고 며칠간 속이 막혀 머리까지 아팠기 때문이다. 나는 요번 감기에 걸렸을 때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다. 그 이유는 원인 불명의 기침이 연속적으로 나온지 벌써 1년이 되었기 때문에 또 다시 기침이 심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기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겠다.


{처음의 시작은 중2 체험학습으로부터}

코로나19 때문에 나는 2년간 체험학습을 가지를 못했다. 이번 체험학습은 코로나19 이후 처음 가는 체험학습이었다. 체험학습 장소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놀이공원인 에**드였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친하게 지내고 몰려 다니는 아이들로 조를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체험학습에 대하여 기대가 컸다. 나는 그 당시 조에서 부조장을 하고 있었지만 작년 10월 20일 우리 조의 조장이었던 친구가 체험학습 날인 작년 10월 21일 개인사정으로 체험학습을 못 간다고 하여 내가 조장이 되었다. 나는 막심한 부담감을 안을 수 밖에 없었다. 조장이 되었다는 부담감 때문에 10월 21일 내 몸이 안좋았지만 조장이라는 이유로 친구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떠나러 출근길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에 내 몸을 실었다.

 "우와! 사람들 엄청 많다"

 역시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놀이공원이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닭장처럼 막 붙어 있었다.

"아,어지러워"

사람 멀미가 있는 나로서 사람이 많은 이 곳은 지옥이었다. 하지만 그이런 상태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 아이들을 챙기며 다녔다.두 가지의 놀이기구를 타고 아이들과 잡담을 나누다 보니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시간이 지나고 담임선생님과 학생 부장 선생님의 간단한 종례 이후 나는 퇴근길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이 내 몸을 옮겼다. 나와 친구들은 성대역에서 헤어져 나는 마을 버스에 내 몸을 실었다. 하지만 마을 버스를 잘못 타서 집까지 걸어 깄다. 집이랑 내가 내린 곳은 도보로 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춥고 어둡고 높은 가을 밤 나는 집으로 향해 20분간 걸어갔다. 이 때문에 그런지 집에 도착해서 저녁이었던 치킨과 떡볶이를 재대로 먹지 못하고 방에 들어가서 내 친구 침대와 인사를 나누며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


{체험학습 다음날)

나는 어제의 무리 때문인지 몸이 너무 한 겨울인 것 처럼 추었다.기침도 나왔다. 감기에 걸린 것이다.그래서 동네에 단골병원에가서 약을 처방 밨았다. 그 날과 일요일 계속 잠만 잤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도 화요일이 되도 몸이 괜찮아 지지 않았다. 

"원쌤 저 기침이 괜찮아 지지 않아요. 괜찮아질 때까지 쉴게요."

"그래, 그럼 잘 쉬고 괜찮아지면 보자."

다른 아이들에게도 피해가고 나 또한 많이 힘들어 잠시 원장 선생님과 통화하고 잠시 학원을 쉬기로 했다. 하지만 몸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역으로 학교에서 식은 땀을 흘리는등 몸의 상태가 안좋아졌다. 학교에서 이런 나를 보고 많은 선생님들이 중앙 자리에 앉아 있는 나에게 걱정을 하며 묻는다.

"괜찮아? 식은땀 아니야?"

"희찬아 괜찮은 것 맞아? 조퇴해야 하는 것 아니니?"

평소 친하게 지냈던 수학,영어,국어, 도덕선생님을 포함하여 2학년 담임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들도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걱정들을 하루 빨리 마르게 하고 싶어 병원을 계속 다녔다. 하지만 병원에서 11월달 돌아온 말은 이 뿐이었다.

"한번 대학병원 가보시는 것 어때요? "

그래서 할 수 없이 성 빈센트 병원으로 병원을 옮겼다.


{성 빈센트 병원에서}

 대학 병원에 갔을 때 많이 떨렸지만 나를 전담해 주신 김 교수님께서  동내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해 주셔서 긴장은 서서히 갈수록 풀렸다.나는 성 빈센트 병원을 다니면서 별의 별 검사를 했다. 코 사진, 가슴 사진 찍기,CT 촬영,백일해 검사를 포함하여 결과가 나왔던 알러지 검사와 천식 검사까지 {이 검사에서 천식과,고양이 알러지가 나왔다. 그래서 반려묘 토리를 할머니 댁으로 보냈다.}까지 했다. 그에 따른 약도 처방 받았다.하지만 약 빨이 드는지 안드는지 모르겠을 만큼 상태는 그대로였다. 역으로 호흡기인 벤토리 에보힐러를 사용 했을 때 심장 두근 거림이 있었고 세레타이드 디스커스트를 사용 했을 때 구내염이 장난 아니게 많아졌다.설상가상으로 12월말 나는 독감에 걸려 기침이 더 심해졌었다.  하지만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넓은 배려로 나는 2학년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방학에도 지속 되는 기침}

2학년을 잘 마무리 했지만 기침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물에 젖은 빨래가 시간이 지나 바람에 몸이 마르는 것 처럼 기침도 시간이 지나면 머지리라 생각을 하며 집에서 잠을 자고 글을 쓰며 의미 없이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개학까지 1주 정도 남았을 때가 되니 마음이 촉박 해졌다. 엄마는 2학년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했지만 다른 학교로 가셔서 할 수 없이 교무 부장 선생님이신 현재 기술 가정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와 엄마를 마음을 한 결 놓게 만들었다. 

"학교에 못나올 정도가 아니라면 나와도 됩니다."

 우리가 이 말에 마음을 안심했던 이유는 근처에 사는 사촌 형이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별의별 이유로 민원을 너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래서 3학년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의 조언}

3학년 반 구성에서 다행히 나와 1,2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고 3년간 같은 반이 되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걱정을 한 숨 덜었다. 또한 담임 선생님도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과학 선생님이시고 나의 상황을 잘 아는 수학,국어,체육,사회,기술 선생님께서 개셔서 다행스럽다 생각이 들었다. 나를 처음 보신 선생님들은 나를 보고 놀랐고 2학년 때 나와 같이 공부하고 나를 소문으로 듣던 선생님들은 아직도 안 좋아졌냐며 걱정을 하셨다.많은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침이 낫지 않아 병원을 옮겨 아주대 병원으로 갔다.설상가상으로 두통과 약 코데인의 부작용으로 변비까지 몸이 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3학년 1학기 수행,중간,기말 고사 모두 망했다.나는 좌절에 빠졌다. 하지만 좌절이라는 우물속  나는 한 가지 알아냈다. 먼지와 냄세가 내 기관지를 자극 한다는 사실을. 이 사실은 우물 속 피어오르는 불꽃과 같았다.그래서 난 체육시간에 활동을 않고 있다{체육 활동을 하면 기침이 더 나와 다음 시간 수업에 영향이 가기 때문에 안하고 있다.}이를 본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오시며 말을 건내셨다.

"희찬아, 이런 말 하기 조금 조심스러운데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 내 오빠가 정신과 전문에서 일을 하는데 기침이 심리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데,그리고 중국어 선생님 학교에서도 너와 같은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심리적인 진단을 봤았어.일단 기침을 멈추게 하려면 무슨 일이라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나와 부모님은 상의를 했다.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가 지금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판단하여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정신과 치료를 받기로 했다. 약으로는 틱 약인 캡베이와 아빌라이인가 아필라이인가 그 약을 복용했지만 바로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아니면 약효가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침이 한 결 좋아진 것 같다.


{미래를 향한 고민과 기침}

오늘은 10월 22일 내가 연속 되는 기침의 시발점이 되는 날이다. 지금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고등학교가 걱정이 된다. 일반고를 가더라도 기침 때문에 민원이 들어와 휴학이나 자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2023년이 2달 남은 지금 시점에서 걱정이 된다.  하지만 빨래가 제 몸을 바람에 실리는 것처럼 나도 내 몸을 시간에 실어보려고 한다. 너무 성급하게 마음을 가지지 말고 차분하게 마음을 먹어보려고 한다. 기침을 시작한지 1년이 된 지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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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선생님, 저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어요." 상담 선생님께 이 말을 하니 선생님이 많이 당황하셨다. "진짜 태어나서 처음인 거야?"라고 역으로 질문하셨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17살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여기서 놀라는 포인트는 친구와 혼자가 아니라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17살이 되기 전, 늦어도 12살에는 친구를 스스로 혼자 만나야 사회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관점에서 볼 때 사회화가 잘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내가 17살이 되도록 친구를 혼자 만나지 못한 것은 내 내향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친할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내게 친구의 단점을 계속 말하며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빠 친구 OO이는 이 짓거리 때문에 아직 결혼도 못 갔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 말을 한 번만 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자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제가 되었다. 나는 그로 인해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었지만, 완전한 친구, 즉 의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 번도 친구들과 혼자 만나서 논 적이 없다.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정확히 내가 원인 불명의 기침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더 작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있을 때 편했던 친구는 중2 때 만난 S(의 S와 동일인물이다.)라는 친구다. S는 나와 매번 맨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와 나는 많이 친해졌고, 그는 내가 중2 때 갑자기 시작된 기침 때문에 시끄러웠을 것 같은데도 아무 말 없이 나에게 "괜찮아? 몸 안 좋은 것 같은데."라고 물으며 걱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S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져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은 서로 알려주며 지냈다. 그래서일까? 중3에 올라가서 반이 달라졌음에도 우리는 만나면 재미있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게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이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와 S는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 때문에 더 위축되었으며 기침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타난 친구가 바로 K(의 K와 동일인물이다)다. 그는 내게 먼저 와서 말을 걸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저절로 K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이야기를 하며 서로 모르는 문제를 연구하며 잘 지냈다. 그러나 올 6월부터 감기가 들어 기침이 심해졌다. 잦은 조퇴와 건강 악화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자퇴하기 전 K에게 이 소식을 미리 전할까 고민했지만, 시험 기간이라 분위기가 흐려질까 걱정되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퇴 날 개인톡으로 연락했다. 그러자 K는 나에게 "나도 너 덕분에 학교생활 잘 적응했어.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등 나에게 좋은 말과 감동적인 말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다시 다잡을

  • 송희찬
  • 2024-09-29
샤이닝

별은 스스로가 빛나는 것을 모른다. 그 이유는 별이 빛을 내고 폭발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스스로 빛나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특히, 많은 부담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빛나는 사람이다.나는 지난 6월부터 기침이 심해져 9월 10일 자퇴 서류를 작성했다. 자퇴서를 쓴 후, 선생님께서 "지난 6개월간 함께한 친구들에게 인사할래, 아니면 톡으로 남길 거야?"라고 물으셨다. 친구들을 보고 인사하면 감정이 북받쳐 울 것 같아 톡으로 남기겠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그래서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미안함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썼다.편지에는 기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회상이 담겼다. 또한 영어독서,국어 부장과 팀장 역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포함되었다.이 편지를 쓰면서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감정을 다잡지 못한 채 반톡 화면을 뚜러져라 바라보며 눈물이 날려는 날 참았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따뜻한 택스트들로 이 마음은 약간 괜찮아지려고 했다.톡을 올린 지 5분 정도 지나자, 중학교 동창이자 2학기 학급 반장이 반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고마웠어, 희찬아." 이 말을 시작으로 몇몇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과학 탐구 실험 조의 친구는 "그동안 학교 생활 수고했고, 앞으로도 힘내길 바랄게"라고 했다. 특수반 친구는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었다.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였던 친구도 "우리 반을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이후 개인톡으로 몇몇 친구들이 나를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날을 응원할게"라는 내용이었다.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친구는 수학부장 K였다. (K는 의 K와 동일인물)K 덕분에 나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결석이나 조퇴 시 필기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아픈 것을 덜 참아도 됐다. 그래서 K에게 개인톡으로 "K야, 너 덕분에 학교 생활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할 수 있었어. 그리고 네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해준 게 없어 미안해.그리고 고마워."라고 전했다. K는 내 메시지를 보고 5분 후에 답장이 왔다. "나도 너 덕분에 학교 생활 잘 적응했어. 내 사소한 질문에도 항상 진지하게 들어줘서 고마워. 네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나는 이 문자를 보고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친구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많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퇴를 서둘렀던 지난 죄책감이 미웠다.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짊어진 무게와 운명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폭발할 때 빛난다. 우리는 언제나 빛나는 별이며, 삶을 살아가는 길 중에 폭발이 있을 뿐이다.

  • 송희찬
  • 2024-09-28
학교 하교

지난 8월 말,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부르셨다. "희찬아 잠깐 나 좀 보자."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순간 겁이 막 올라왔다. 나는 분명 잘못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부르셔서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갔다. 교무실은 시험기간이라 조용하고 엄숙했다. "희찬아 3년을 버틸 수 있겠어?" 선생님의 첫 마디가 정적을 깼다. 대화는 10 정도였지만, 대화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있었다. 나는 이 말이 "이제 버티기 힘들 것 같다. 희찬아."라고 들렸다. 한 마디로 자퇴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놀랐기 보단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침 때문에 학교 생활을 오래 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 뒤에는 약간의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속상함이 가득했다. 내가 기침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닌데. 나는 22년 10월부터 다양한 원인의 기침을 앓고 있다. 정신과에서는 틱으로 보고 대학 병원에서는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보고 있다. 23년에는 증상이 줄었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나서 다시 심해졌다. 그러다가 6월에 감기가 들어오면서 기침이 악화됬고, 6월의 절반 이상을 조퇴, 결석, 지각으로 보냈다. 2학기가 시작된 8월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매주 조퇴를 2~3번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이 자퇴 이야기를 하신 것은 이해가 갔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의 끝자락을 물고 온 말을 듣고 나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고 기침이 더 심하게 나왔다. 선생님은 "이러다가 네가 너를 잡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몸에서 땀이 계속 흘렀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이명과 함께 수업 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은 부담임 선생님이신 국어 선생님의 수업이었다.나는 급히 상담을 마무리 하고 빨리 교실을 향했다. 내 몸은 몸살에 걸린 것처럼 더 힘들었고 마음 역시 몸살에 걸린듯 무거웠다 수업에 들어가자 국어 선생님이 나에게 "희찬아 무슨 일이야? 왜 늦었어?" 라고 물으셨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무겁게 답을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어서요."그렇게 시집을 읽었지만 시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수업 시작 전 5분은 시집 읽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답답했지만 어찌저찌 이 날의 모든 수업을 끝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해야되나 봐." 엄마에게 이 말을 할 때 내 감정은 억울함, 허무감, 우울함, 배신감 등이 몰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나는 꾹 참았다.엄마는 의외로 덤덤했다. {아니면 내 앞에서 덤덤한 척을 한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반응에 다시 무너졌다. 그렇지만 울지는 않기로 다짐했다. 집에 도착하니 선생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희찬아,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주말동안 쉬렴." 선생님의 문자에 나는 한 번 더 흔들렸다. 결국 나는 위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여러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감정 정리는 어려웠다. 우울함이 더 몰려왔다. 엄마는 이런 내가 안쓰러웠을까? 상담

  • 송희찬
  •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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