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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앓았다

  • 작성자 아디
  • 작성일 2023-10-19
  • 조회수 725

01. 이상한 아이의 이상한 고백

 내가 사랑(恋)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정의한 것은 내가 15살이 되던 그 해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니다 15살에 자퇴를 했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는 일반적인 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교칙이나 환경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소수 인원이라는 것이다. 한 학년은 20~25명 남짓이었고 그렇기에 해가 바뀌어 반을 배정받더라도 작년 반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총 7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같은 친구들과 함께 했던 것이다. 

 나는 7살 때부터 또래 남자애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드센 성격에 몸집이 있었기에 남자애들은 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난 그런 남자애들을 한심하게 여기거나 툭하면 싸우기 바빴었다. 그래도 나는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것도 꾸준히.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흑역사이지만 그때의 나는 굉장히 진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상냥하게 굴거나 잘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투닥대며 싸우고, 시비 거는 대로 다 상대하고... 어쩌면 여자애들보단 남자애들과 비슷했는지 모른다. 왜, 남자애들은 좋아하는 여자애들을 못살게 군다고들 하지 않은가. 나 또한 그러했다. 초등학교 1학년 짜리가 뭐 그리 진지하다고 고백 편지도 썼다가 애들 앞에서 편지가 찢겼을 땐 수치심과 속상함에 얼굴이 빨개져 울었던 것 같다. 우리 학교는 교내교제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약 받아준다 한들 변하는 건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1, 2학년을 유치하고 부끄러운 짝사랑을 하다 어찌 보면 처음으로 정상적인 짝사랑을 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이 짝사랑은 내 인생을 여러모로 뒤바꿔놓았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4학년 때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해져 있었다. 친해지고 싶어 했던 아이들은 나를 따돌렸고, 나에게 다가오는 애들은 밀어내기 바빴다. 거기에다 원래도 좋지 않았던 남자애들과의 관계가 악으로 치달을 때였기에, 나는 관계적인 면에서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그 시기쯤 전학을 온 한 남자애가 있었다. 다른 남자애들보다는 조용하고 소심한, 어딘가 모르게 작아 보이는 모습이 있는 남자애였다. 그때까지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은 다들 밝고 활동적인 성격에, 장난기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그 애한테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 애와 친해지게 된 것은 처음 전학 온 그 애의 적응을 반장이었던 내가 도와주라는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 애는 보였던 그대로 조용하고 소심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좋아하고 행복해할 줄 아는 아이였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몇 안 되는 아이였기에, 그 애와 얘기할 때마다 나는 무언가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건.

 처음에는 호기심이었고, 두 번째는 관심이었고, 세 번째는 호감이었으며, 네 번째는 설렘이었다. 또래와 다른 듯한 모습이라던가 공부를 잘하는 점이라던가 어딘가 모르게 다정한 점 또한 그 시절의 내게 설렘으로 다가오기 충분한 것 들이었다. 그러나 그 애의 그런 모습은 나에게만 국한된 점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애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그 몇 안 되는 인원수 안에서도 꽤나 있었으며, 나는 그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친해지고자 하는 애들 중에도 있었고, 별로 친하지 않았던 애들도 있었고, 전부터 그리 사이가 좋지 않던 여자애도 그 애를 좋아했다. 그 가운데서 나는 별 볼일 없는 애였다.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요, 예쁜 것도 아니요, 뭐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좋아만 했었다.

 그랬던 그 애는 몇 번이고 고백을 받았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교내 교제는 금지된 사항이며,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 반 애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 주인공이 그 애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부담스러웠던 건지, 선생님께 말씀드린 것 같아 어딘가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애에 대한 마음이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여름 방학을 맞아서 집에 있었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온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던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그 애에게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 애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는 이야기가 이미 돌고 있었고, 그 대상이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여자애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고백을 한번 해보고자 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문자 고백이 형편없다고 얘기하지만 그 당시 나는 어딘가 이상했고 그날의 열기는 유난히 강했으며 몇 번째 돌려 읽던 로맨스 소설은 낯설었기에 나는 그렇게 했던 것이다.

 '나 사실 너 좋아한다 ㅋㅋ'

 나름대로 용기 내어 한 자, 한 자 꾹꾹 입력한 그 글자들이 보내졌을 때에는 버리고자 마음먹었던 설렘을 가지고 왔다. 답장이 없을지도 모른다며, 지금이라도 장난이었다 무를까 고민도 했지만 덜덜 떨리는 손과 뜨끈하게 달아오른 얼굴은 그 모든 생각을 외면하며 작은 액정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학칙으로 금지된 사항인 걸 알면서도, 그 애가 내가 아닌 다른 아이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나는 로맨스 소설이 가져온 그 작은 두근거림에 그만 이성을 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그 애한테서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답장이 왔다.

 '어... 니가?'

 그 대답을 보고 그만 웃어버렸던 것도 같다. 그 애의 반응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걸 드러내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남자애 앞에서 상냥해지거나 수줍어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연락 하나 없던 애한테서,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문자를 받은 그 애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여전히 궁금해진다. 

 나는 여전히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사실임을 말했다. 여전히 미치도록 떨렸다. 거절은 확실했지만 그래도 그 설렘과 두근거림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답장이 또다시 늦어지고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기대했다. 잠시 후 온 답장은 지극히 그 애다웠다.

 '미안해.'

 나는 그전보다 더 크게 웃었다. 너무나도 그 애 다웠다. 그 애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내 문자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을 그 애가 너무 좋아서. 예상했던 대답임에도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나는 그만 웃어넘겼다. 내가 더 미안하다고 남은 방학 잘 보내라는 형식적인 답장을 쓴 후 연락이 중단되었지만 내 미소는 떠나가지 않았다. 그날의 설렘은 뭔가 무거웠고, 그 거절에 담긴 그 애의 다정함이 좋아서. 이제는 예전처럼 지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래도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02. 바보는 어째서 바보가 되었나

 그렇게 방학이 끝나고, 나는 여전했다. 한 달이 지난 들 마음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고 여전히 그 애를 보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숨겼다. 내가 이걸 드러내는 순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그리하였다. 그 애와의 관계는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으나 그 애는 여전히 다정했고, 나는 내 마음을 완전히 가두었다. 그렇게 한 해가 흐르고 5학년이 되었을 때에 나와 그 애는 또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적은 인원이 두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라서 별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마저도 좋았다.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좋아했다. 차인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했었고 나 혼자만의 감정이니까. 그 애가 좋아한다던,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여자애는 4학년 때 한번 크게 싸운 이후로 다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 여자애를 좋아했지만, 동시에 질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여자애와 나, 그 애는 4학년 때 같이 다녔기 때문에, 여자애만 다른 반이 된 것은 세 사람 사이에 뭔가 어색하고 이상한 선이 놓인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와 그 애는 여전히 똑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애를 좋아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은 당연한 듯 내 가장 깊은 곳에 묻혀있었고, 나는 그걸 절대 밖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5학년이 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힘들어했다. 관계는 위태로웠고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매사에 죽기까지 노력해 인정받고자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나는 점점 망가져 갔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을 거짓으로 둘러싸 나를 완전히 감췄으며,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웃었다. 약한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 강한 척했고, 그런 내 모습에 상처받은 누군가가 있더라도 외면했다. 나는 겁 많은 바보였다.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몰랐으니. 

 그랬던 나는 정말 바보라도 될 것처럼 굴었다. 그 애에 대한 마음을 더 이상 몰래 품기가 힘들었는지 그 애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직도 후회하는 일이 있다. 나는 방과 후 동아리를 우리 반 교실에서 했는데, 그때 나와 함께 하던 애들은 순수하고 모르는 게 많은 애들이었다. 그랬던 그 애들이 나와 그 애의 관계를 언급하자 나는 멍청하게도 그 애에 대한 악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애들이 했던 말에 나는 충분히 웃으며 넘길 수 있었지만, 어딘가 많이 망가져 있던 나는 그 작은 균열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지나칠 정도로 그 애를 저주하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뱉었을 땐 주위가 조용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에는 그 애가 어딘가 상처받은 얼굴로 서있었고 나는 그를 보고 얼어붙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그 애였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괜찮냐고, 사과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약하게 보이기 싫었던 바보 같은 나는 사과할 필요 없다며 외면했다.

 다음날 그 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파서 그렇다고 하셨지만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죄책감과 불안함에 잠기고 있었지만, 나는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평범한 척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날 오후에 선생님은 나를 불러내 어제 일을 물으시곤, 그 애가 내 말로 힘들어한다며 그로 인해 오늘 학교 오기를 거부했다고 말씀하셨다. 죽을 만큼 힘들었고 창피했다. 한순간의 바보 같은 선택으로, 어쩌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강해 보여야 한다'는 바보 같고 멍청한 생각 때문에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무언가를 스스로 깨부쉈다. 

 왜 그렇게까지 센 척하며 살았는가 생각해 보면 나는 더 이상의 상처를 받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약해져 있다는 걸 들키는 순간 누군가 나를 에워싸고 무시할 것 같았다. 강해지고 당당해져야지만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 약점이 너무도 싫어서 그걸 감추려 둘러싸고 둘러싸고 포장하니 그 안에 더 이상 '나'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작은 마음 하나를 담고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입을 막아서 더 말하지 못하게 할 텐데. 적어도 달려 나가서 사과할 텐데. 진심이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고.



03. 사랑하려면 성장해야 해

 그 애한테 사과를 하고 나서 그 애와의 관계는 더욱더 이상해졌다. 잘 지내는 듯해도 우리는 어딘가 깨질 것 같은 유리판 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애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좋아했다. 참 멍청하고 미련했다. 제 손으로 깨부수고 상처 준 관계를, 사람을 놓거나 회복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붙잡아두고 있었으니. 

 그렇게 이상하게 한 해가 가고 나는 6학년이 되어 여자애들로만 이루어진 반에 속하게 되었다. 나는 4, 5학년을 겪으면서 '또래남자'라는 존재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어서 새로운 반 배정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그 애랑 떨어지면서 나는 그 애를 생각하거나 신경 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사실 그때 확실하게 마음을 정리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나는 여전히 바보같이 약했고, 그런 나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그러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조금씩 나를 둘러싼 거짓들과 이상한 무엇들을 벗겨내려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애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이상했고, 사람들 앞에서 완벽해 보이고 싶었으며, 위태로웠지만 뭔가 바꾸고자 하는 작은 균열이 나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남에게 나만의 무언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주로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은 때로는 친구나 언니처럼 다가올 정도로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함께해 주셨다. 아마 내가 많이 성장한 데는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선생님과 얘기하고 친구들이랑 조금씩 어울려 지내면서 나는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그리 친하지 않던 애들한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내 주변의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때는 사실 그 여자애-그 애가 좋아한다던 여자애. 편하게 G라 부르겠다.-랑 정말 많이 싸웠다. G는 생긴 것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고양이 같았는데, 외동이라 그런 건지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G는 다른 친구들이랑 갈등이 자주 생기는 아이였다. 사실 학년 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G는 친구라 부를만한 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G를 열심히 챙겨주려 애썼는데, G는 다행히도 날 정말 좋아해 줬다.

 문제가 생긴 것은 1학기가 끝나갈 무렵인데, 나는 이때 친해지고 싶은 다른 아이들이랑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G를 챙겨주는 것을 종종 잊고 지냈다. 게다가 G는 우리 반 애들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 친구들은 G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되게 비겁했다. 정말 내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G를 챙겨줘야 헸을 텐데, 나 또한 G를 외면하곤 했기 때문에 G는 완전히 고립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그런 G를 안타까워하셔서 친구들에게 G를 잘 챙겨달라 부탁하셨지만, G의 성격 때문에 친구들은 G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렸다. 

 나는 그 과정에서 G를 안타까워 하기보다는 성격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 G에게 짜증을 느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G는 그나마 자신을 챙겨주는 내가 다른 친구들이랑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G는 어렸다. 나는 그런 G를 이해할 만큼 성장해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G를 무시하면서 그를 멀리했다. 그러다 보니 나와 G는 자주 갈등이 생겼다.

 G와 나는 어릴 적부터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을 정도로 성격이나 취향이 비슷했다. 그렇기에 잘 맞을 때는 정말 잘 맞았지만, 너무 닮은 나머지 싸우기도 너무 자주 싸웠다. 자석의 N극과 N극은 같은 모양과 성질을 가졌지만, 서로 붙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너무 잘 알았다. 내가 G를 무시한 것 또한 G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G는 나와 그 애와 다른 반이 되었을 때도 우리 둘만 놀고 자신을 버렸다며 불만을 제기할 만큼 친하게 지내던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그런 G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관계에 있어서 한번 끊어진 관계는 확실히 끊어내고, 잘 이어져 있는 관계는 웬만한 상황에서는 계속해서 완만하게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이어진 관계에 집착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려 하지 않는 G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매번 G와 싸우길 반복하던 나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한 해가 끝나갈 때쯤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 사실 내가 G를 멀리했던데는 유치하게도 질투가 섞여있었다. 그 애에게 차이고 나서 이미 거절당한 관계를 잡고 있는 건 나이지만 그런 관계 속에서 G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남몰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G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G와 그 애와의 관계를 놀리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어리고 바보 같았다. 사실 G는 나와 그 애의 관계에 있어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G를 미워하고 G에게 상처를 줬다. 내가 가진 상처를 G가 조금이나마 가졌으면 해서.

 나는 여전히 그 애와 관련된 일에서는 바보 같았다. 그 애한테 잘 보이려 괜히 과장하면서 나섰으며, 그 애가 좋아한다던 G에게 이유 없는 질투를 했으니 말이다. 나는 미련했다. 나 혼자만의 감정을 품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자책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한숨을 내쉬어도 버리려 애를 써도 나는 여전히 그 작은 호감과 설렘 하나가 가슴속에 이상하게 자리 잡아있었다. 스스로도 끊어낼 수 없는 이상한 모양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작은 것부터 바로잡으려 했다.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마음은 뒤로 두고 나 스스로를 먼저 바꾸려 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더라도, 조금의 비웃음을 듣더라도 일단 나는 나로서 솔직해야겠다며 작은 다짐을 했다. 더 이상 나를 감추고 망가트리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기 전에 나 자신을 고쳐놓고자 했다.

 그렇게 G와의 관계도 회복해 나갔다. 내 잘못을 먼저 드러내고 사과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약점을 먼저 드러내고 인정한 것은. 그에 G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나는 항상 남의 사과를 받기 전까지 먼저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G와 엉엉 울면서 서로 사과하고 나서야 우리는 6년 동안의 관계를 다시 써내려 가고자 했다. 

 내 마음이 너무 바보 같아도 일단은 내가 가진 소중한 감정이니까. 지금 당장 버리진 못하더라도 남에게 상처는 주지 말자고 다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남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이 감정을 빛낼 수 있도록.



04. 성장통인가요?

 중학교에 올라가고도 나는 여자 반이었다. 아마 이 해가 내가 그 애를 가장 신경 쓰지 않은 해가 아닐까 싶다. 다른 반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정말 성장하고자 했다. 관계나 감정에 묶여 있기보다는 조금이나마 성장하고 싶었다. 여전히 감정은 남아 있었고 나는 어렸기에 완전하진 못했지만 나는 좀 더 나 자신에 집중하고 싶었다. 사실 6학년을 겪으면서 생각이나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크게 변한 건 내가 조금은 더 나다워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답지 못해서 남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나다워지기로 했다. 

 그렇게 새 학기를 지나고, 나는 급격히 지치기 시작했다. 사실 이유를 아직까지 모르겠다. 주변의 기대나 스스로의 기준이 나를 옥죄기도 했고, 너무 힘들게 보냈던 시간들이 갑자기 한 번에 밀려와서 나를 짓눌렀다. 그러다 나는 처음으로 학교를 빠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관계가 위태로운 것도 아니었고 학업이 부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그날따라 눈물이 너무 났다. 그렇게 학교를 빠지고 같이 나가자는 친언니와 함께 경복궁에 가게 되었다.

 학교를 빠졌다는 생각은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그날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세상이 흘러가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누군가의 기대나 스스로의 걱정 때문에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는, 오로지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유로웠다. 자유롭고 싶었기에 자유를 택했다. 내 감정이나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게 굉장히 기뻤다. 누군가는 학교를 빠지고 놀러 나갔다는 것을 질책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날 그 시간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다시 학교에 나갔을 때는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때부터 은연중에 자퇴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학교에서 남들의 기대에 맞춰지려 아등바등 애쓰기보다 세상을 겪으면서 좀 더 나 자신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몸이 안 좋아지면서 학교에 나가지 않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글을 읽었다. 문학, 수필, 에세이, 시 등등 가리지 않고 읽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자퇴를 결정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너무 흔쾌히 그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대답이 기분이 좋았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을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이렇게까지 기쁜 일일 줄 몰랐기에.

 2학기가 되고 나서는 심리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했던 정서안정 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분류가 되었기 때문인데, 나는 이 상담 또한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상담사 선생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나를 좀 더 세워 나갈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다양한 고민들 속에서, 내가 담아두고 있던 다양한 감정들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연약함을 감추려 했던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더욱더 성장할 수 있음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 애는 여러모로 나한테 이상한 기회를 주었다. 그 애는 내가 나를 돌아보게 했고, 직면하게 했고, 나아가게 했다. 그 애가 준 감정이, 그 작은 울림과 고민이 나를 성장시켰다. 초등학교 4학년 짜리 여자애가 겪은 그 작은 일들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 생겼다. 그 감정은 설렘이었고, 두근거림이었고, 아픔이자 약점이었고, 균열이었으며 울림이었다. 이 모든 말들이, 생각이 나를 성장시켰다. 

 어느 여름날의 울림이 한 사람의 세상을 바꿔놓았다.



05. 나 너 정말 좋아했어

 그다음 해에 나는 자퇴를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자퇴를 한 나는 열심히 놀기 시작했다. 7년을 달렸고, 이제는 잠시 멈춰 서서 쉬고 싶었다. 친했던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면서 나는 한 마리의 베짱이처럼 여유를 부렸다. 8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공부를 하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그런 쉼을 즐기기 바빴다. 

 그런 내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은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꿈에 그 애가 나왔다.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좋아했고, 꿈속에서 그 애와 나는 연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중1 때 그 애에 대한 마음을 거의 접었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고, 이제는 학교를 나와버려서 그 애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애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도 웃긴 모양새였다. 그러나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하던가. 내 꿈에서 그 애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왜 얘를 좋아하지? 사실 지금의 이상형은 그 애와 정반대였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또한 그 애와 공통점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했다. 여전히 그 애는 내 꿈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왔고, 나는 그 꿈을 '행복하게' 꾸었다. 심지어는 학교 친구들을 통해 그 애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면 이상하게 웃고 있기도 하였다. 그 애가 다른 여자애와 잘 지낸다는 얘기를 들으면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애가 싫었다. 학교를 나와서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차라리 다녔더라면 그 애의 모습을 직접 보고 마음이라도 정리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 애는 여전히 내 추억 속에 남아있는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그 애가 아닌 과거의 내가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그 애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 같고 미련했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좋아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에게 얘기하기도 이상한 이 고민의 끝에서 나는 결국 네이버 지식인에 고민을 늘어놓았다. 

 지식인에 질문을 올리고 올라온 답변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기엔 나는 차인 지 4년이 지나도록 그 애를 좋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내가 그 애를 놓을 수 있을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운명의 상대라 불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나는 그 애를 좋아하고 있을 것이 참 이상했다. 별 특별한 것 하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애 하나를,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그 애 하나를 나는 왜 놓지 못하고 있는가. 도대체 그 작은 울림이 도대체 무엇이었길래, 4학년 여름날 겪은 그 이상한 감정이 무엇이었길래. 더 이상 이루어질 수도, 품고 있을 수도 없는 그 이상한 마음을 나는 계속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애는 그 후로도 꽤나 자주 내 꿈에 연인으로 나왔다. 그럴 때마다 어찌나 심란했는지 모른다. 분명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던 애가 내 꿈에서 내가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 나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게, 그런데 나는 그 꿈을 꾸면서 행복해한다는 사실이. 시간이 흘러도 내게서 이 감정과 그 애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당시의 나는 고민했던 것 같다. 정말 운명의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이 이상한 감정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어딘가에서 오늘을 살아갈 그 애가 내 추억에 머문 채로 남아있지 않은 순간이 올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오히려 너무 내 마음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도 든다. 이 감정이 부도덕한 감정이 아님에도, 더 이상 이 감정이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음에도 나는 이 감정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어렸다. 그 애를 좋아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애를 좋아했던 그 시절을 내 추억의 한편에 잘 놓아두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그 감정을 외면했고, 묻으려 했다. 그것이 좋지 않은 방법임을 이미 겪어봤음에도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나는 그 애를 좋아하지 않기에 당당히 그 감정을 직면하고 말할 수 있다. 

 00아! 나 너 정말 좋아했어!



06. 사랑을 앓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애가 내 첫사랑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그처럼 아프지만 행복한 사랑은 없었기 때문에 그 애는 내 첫사랑이 되었던 것 같다. 참 지독한 첫사랑이었다. 미련하고 바보 같은.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랑이 좋았다. 첫사랑을 흔히들 처음 느낀 사랑이라 하지 않던가? 처음은 이상하고 중에는 아프고 끝에는 어이없을지언정, 맺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애가 주었던 그 낯선 울림이 내게는 첫사랑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살풋 웃음이 난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첫사랑이 나답지 않던 내가 낯선 울림으로 시작된 그 감정 때문에 조금 더 나다워지는 성장통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성장을 하기 위해 성장통을 겪지만 그 상장통에 매여있지는 않듯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내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 감정을 앓았던 그 기억이 내가 지금의 나를 다시금 나답게 하는 기억이기에, 아팠음에도 그를 앓을 때 너무도 행복했기에. 내가 나다워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경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감정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처음 겪는 성장통에서 꿋꿋이 나아가려던 내가 기특해서.

 내가 그 애를 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애가 나의 첫사랑임을 인정한 이후였던 것 같다. 첫사랑이기에 마음 깊숙이 남아있고, 처음 느껴 본 그 낯선 울림을 기억하고, 여전히 그 애는 내가 좋아했던 아이임을 인정한 후에는, 그 애가 내 꿈에 나올지 언정 그저 웃고 넘길 수 있었다. 지독하게 앓았던, 지독하게 아팠던 첫사랑이었기 때문에 더 깊게 남아있음을 아니까. 그래도 그 애를 좋아했던 그 시절이 나를 더 성장시켰으니 나는 그 애 덕분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새삼 고맙다. - 

 이는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언제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우리는 사랑을 앓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랑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다. 어느 날 느끼는 그 작은 울림이, 그 울림으로 인한 감정이 나를 지독히 앓게 만들 테지만, 그 사랑을 앓는 동안 나는 나다워질 수 있고 그 사랑을 앓음으로 사무치게 아플지라도 그를 이겨내는 행복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앓고,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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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과잉시대

누군가 당신에게 ‘분노는 그 자체로 죄악인가?’ 하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떠한 답을 할 것인가? 분노(憤怒)란 ‘분개하여 몹시 성을 냄. 또는 그렇게 내는 성’을 가리키는 말로, 대표적인 부정적 감정 중 하나이다. 인간은 감정을 지닌 존재이기에 어떠한 상황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특히 분노는 우리가 날 때부터 지니는 ‘일차정서’의 하나로서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가지는 지극히 일반적인 감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분노는 나쁜 것인가? 생각해 보면 인간은 누구나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렇게 다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아간다. 그렇다 보니 어떠한 상황과 현상에 대해서 서로 대립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면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가 옳지 않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그 옳지 않음을 바로잡기 위해 일으킨 것이다. 이때의 분노는 분명 부정적인 감정임이 분명하지만 그가 일으킨 변화는 그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우리가 어떠한 범죄에 분노하는 것 또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의도가 결코 선하지 않고, 그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분노는 과연 옳지 않은 것일까? 우리가 분노할 때는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분노한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 안에서 일어나기도 하며, 때로는 사회와 현상에 대해서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의 이해관계는 충돌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힐 매상황에서 이것이 옳은가를 판단할 기준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우리의 이해관계 또한 이 옳고 그름의 기준을 통해 세워진다. 만약 이 기준이 스스로 명확하게 존재한다면 우리는 정당한 ‘분노’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인간이 홀로 깨닫기 쉽지 않다. 때문에 ‘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우지 않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 현장에선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을 배워나갈 기회를 잃은 청소년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갈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옳고 그름의 기준선이 명확하지 않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나친 경쟁과 개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는 스트레스로 가득 차있다. 인간이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우리 몸은 이미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게끔 한다.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스트레스의 직접적인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 특히 학생층이 겪는 학업 스트레스의 경우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개인이 제거하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완화하고자 하는데, 여기에 ‘분노 표출’이 있다. 우리는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 아디
  •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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