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하루아침에 뮤즈가 사라진 일에 관한 고찰

  • 작성자 카임
  • 작성일 2022-01-14
  • 조회수 1,027

사랑을 먹으며 자란 사람은 사랑을 내주며 사는 법 아닌가? 오 년간 뮤즈로 삼았던 사람의 사회적 죽음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나니 울컥 배신감이 밀려왔다. 닿을지의 여부도 모르는 두 장짜리 편지를 쓰고, 한 마디 한 마디를 필사하고, 다이어리 한켠을 채웠던 기억. 사방으로 날아드는 사랑을 받았을 사람이 사랑을 되돌려주는 법은 몰랐나 보다. 그 결과 나의 오 년간의 기억이 똥이 되어 돌아왔다. 십칠 년 인생, 십이 년을 남기고 모두 배설물로 전락.

 

캐릭터가 확실한 사람이라 글을 쓸 때 참고하는 일이 잦았다. 하얀 피부 가느다란 손 푸석한 머리카락…. 그간 썼던 글을 분해해 캐릭터를 분석하면 대부분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하얀 피부 비실한 몸 푸석한 머리카락. 그 평범한 듯 독특한 특성은 어느 역할에 갖다 박아도 잘 어울렸다.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기가 불가능해졌다. 다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나의 첫 뮤즈였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단 걸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글쓰기 생활도 청산할 생각이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아녔다. 유효기간 없는 사랑이라 생각했기에 놓는 건 나일 거라고, 하지만 놓는 순간이 지금은 아닐 거라고 믿었다. 나는 이유 없고 깨끗한 사랑을 전했는데 돌아오는 건 어째서 이리도 잔혹한가? 사랑은 멍청하고 사람은 멍청하다. 다 놓아버렸다고 생각한 일말의 애정, 그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또 뮤즈가 출연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 미치도록 멍청하다.

평범한 팬의 심정으로 좋아했으니 이제는 함부로 미워해 보겠다, 평범하게 돌아선 팬의 심정으로. 멋대로 뮤즈 삼은 건 나였지만 누군가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는 것도 어지간한 사랑의 힘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단 걸 알는지. -모르겠지 알면 그래선 안 됐다. 글을 쓰지 못하게 됐다. 정확히는 오랜 기간 내 눈앞에서 버티고 있는 단단한 벽 때문이지만, 뮤즈가 사라진 탓으로 돌려본다. 실상 기나긴 슬럼프 중 간만에 구상하던 글 속 주인공도 그를 떠올리며 짰으니, 글을 못 쓰게 됐다는 것이 과장만은 아니다. 그가 출연한 내 글을 파기했다.

 

아직 곳곳에 그의 흔적이 있다. 벽에 커다랗게 붙은 포스터라던가, 무탈히 사랑할 거라 믿고 제작한 수제 달력이라던가, 그가 주인공이 된 소설을 필사하던 공책들. 놓지 못한 건 그가 아니다. 그를 좋아하던 내내 행복해했던 나, 그가 올린 트윗에 구멍 뚫린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면서도 머리가 노랗고 키가 큰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그를 떠올렸던 나, 어쩌면 그가 신의 환생이라 믿었던 구원자라고 믿었던 나. 그리고, 그가 주인공이 된 삭제하지 못한 나의 소설.

때때론 사회적 죽음이 생물학적 죽음보다 잔인하다는 것을 아는가? 내가 사랑하기도 전에 먼저 그를 사랑하고 있던 이들이 모두 뒤돌아섰을 때, 그가 몇 개의 추억을 져버렸는지 생각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고 그간의 시간들은 참 행복했다, 따위의 감상이 불가능해졌지 않나.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으며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말을 부적처럼 간직하던 사람이 다짐한다. 다시는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겠다. -사회적 죽음 대신 정말 죽어버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좋아하게 됐다는 아이러니.

 

빛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묻지 않고

빛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연구하는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다.

그도 빛과 함께 사라져서,

우주적인 안녕을 해야만 했고

- <빛에 관한 연구>, 하재연

 

외계인을 닮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구 뮤즈에게. 이따금 구두로 전해주던 사랑에 행복했다. 뿌리에 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던 모습이 엉뚱했었고, 무생물에 연민을 느끼는 모습이 독특했었고, 그런 모습들이 좋아서 내내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글을 썼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소설들에 출연시켰다. 그가 정말 외계인이었다면 빛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연구했을 테지, 그리고 나는 빛과 함께 사라진 나의 구 뮤즈와 작별한다. 우주적인 작별. 몇 광년을 지나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는 빛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묻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불을 켜면 발생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것은 다신 주인공이 될 일 없는 나의 구 뮤즈에게 바치는 어쩌면 마지막일 기록이다.

안녕.

카임
카임

추천 콘텐츠

디어 마이 포춘

스물의 3월이다. 어렴풋하던 성인의 경계가 조금 더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글틴에 더는 글을 올릴 수 없어지는 날도,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 카임이라는 닉네임과도 작별이다. 글틴 헌정의 수필을 쓰고 싶어졌던 건 그래서이다. 글틴에 존재하는 나의 모든 행운들에게. 나는 나의 닉네임을 아주 많이 불러보았다. 대개 이름이란 상대가 자신을 호명하기 쉽도록 붙여진 것으로, 정작 그 이름을 지닌 본인은 그것을 불러볼 일이 적다는 게 특징이지만. 카임이란 닉네임의 유래는 처음 글틴에 가입하던 당시, 읽고 있던 웹소설에서 시작된다. 그 웹소설의 주인공은 오래오래 (작품 내에서) 미움을 받았던 아이돌 캐릭터였고 카임은 그의 활동명이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도 사주팔자를 모두 고려하는 마당에, 사랑받지 못하는 캐릭터를 나의 이름으로 내세운 까닭은 단순했다. 카임이 작품 속에서 받지 못했던 모든 사랑을 내가 대신 받아주겠어!그를 생각하며 썼던 시는 아직도 글틴의 데이터 속에 남아있다. 제목은 <동경>. 언제부터인지 저는 소설 속 인물을 동경하였습니다.무엇에 끌렸던 걸까요.비현실적인 풍경, 비현실적인 사건, 비현실적인 캐릭터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 있습니다.그곳에서 주인공은 영영 죽어버렸지요.그러나 그 인물이 독자의 마음속에 영영 살아있을 수 있다면그것은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아마도 저는 이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소설 속 인물을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죽지 않았음에도 모든 이들에게 잊히는 내가죽었음에도 모두의 마음속에 품어진 그들을 동경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요. 아아, 차라리 내가 사는 이곳이 소설 속 어느 한 페이지라면 좋겠습니다.모두의 마음속에 홀로 남아 내 이름 석 자 새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아직 카임이란 이름으로 그 어떤 것도 쟁취하지 못했던 때. 마지막으로 치달은 소설의 끝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명백히 새겼다. 그것이 부러웠다. 본래 의도와는 달리 내가 그의 이름 버프를 받으며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는 카임이라는 이름이 나의 것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진짜)카임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며 실은 카임이 아닌 내 이름 석 자로 활동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가짜)카임으로서의 그 모든 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행복했고 후련하다. 이제 카임으로서 모든 숙명을 다 해낸 것 같다. 글틴을 떠나기 전 그간의 기록들을 살폈다. 잊었던 작품은 없다. 그 어떤 것도 지금의 나를 구성하지 않는 글이 없다. 처음 올렸던 소설은 <여름의 초상>이다. 열여섯의 내가 쓴 열여덟 소년의 이야기. 당시에는 일상의 로맨스를 담았던 소설인데 다시 읽으니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어 어쩐지 판타지 소설로 읽힌다. 하지만 자주 가출의 충동을 느끼는 주인공 의현의 모습은 여전히 반영이 잘 되어 있는 듯하다. 나는 열여덟은 무슨, 스무 살이 되고도 종종 가출을 했고, 부모님 속이 다 썩어갈 때쯤 집에 돌아오는 게 취미였다.반면 <종

  • 카임
  • 2024-03-16
내 장례식엔 당신이 오면 좋겠어

나는 사람이란 가장 약한 순간에 진심을 드러내는 법이라고 믿는다. 올해는 버거운 한해였다. 대한민국에서 고삼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살아가는 것이 무릇 그렇듯. 평소에도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내게 고삼은 권력이기 전에 바이러스였다. 집안에서 고삼부심을 부려보기도 전에 온몸에 퍼진 유해함. 아주 많이 나약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죽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죽는 상상을 했다. 아침이 되어 날 깨우러 온 가족들이 생기 없는 내 얼굴을 마주하는 상상을 했다. 나는 가족들을 아주 사랑한 것도 아주 미워한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가족의 온도. 그게 내가 우리 가족을 대하는 태도였다. 사실 사춘기 때는 우리 가족을 좀 많이 미워한 것도 같다. 그건 아마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에서 하는 거라곤 소리를 꽥 지르고 가출하기, 비명을 지르다 경비실에서 신고 들어오기, 일주일에 네 번 조퇴하기. 온갖 기괴한 사춘기는 다 겪으며 엄마와 아빠를 미워했었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엔 사이가 돌아왔지만, 여전히 싸울 때가 있었고 그런 날에는 가출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는 상상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가족들일 줄 몰랐다. 너무 식상했다. 동시에 속상했다.3월엔 모두가 잠든 밤에 옷장 안에서 숨을 참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면 내 방문 한 번을 열지 않는 가족들이 미웠다. 바로 옆 방에서 딸은 죽어가는데 쿨쿨 자는 아빠가 미웠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어 싸늘해진 내 얼굴을 발견할 표정을 생각하면 미안했다. 나는 아빠가 미워서 죽는 게 아니었는데. 엄마가 미워서도 아니고 언니가 미워서도 아니고 동생이 미워서도 아니었는데. 그러나 뭐가 됐든 처참할 내 꼴을 마주할 사람은 가족들이었다. 사춘기 때는 죽으려는 생각을 할 때면 어린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죽지 못했다. 좀만 더 크면 작은 언니의 존재조차 잊을 저 아이가, 언젠가 엄마에게 나한테도 작은 언니가 있었냐고 물어볼 그 아이가 생각이 나 죽지 않았다. 그 애에게 얼굴도 모르는 자매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 애는 오래오래 나를 기억할 만큼 컸다. 이제 나를 잊을 가족들은 없을 텐데…. 고삼이 된 나는 그날 죽지 못했다. 미안해서 죽지 못했다. 내 인생의 가장 비참한 모습을 마주할 가족들에게 미안했고, 나를 따라 죽고 싶어질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6살일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아주 오래오래 사랑한다고 말해준 할머니에게 내 부고 소식을 알려야 할 상황이 미안했고 더는 내 방문을 열어보지 못할 언니에게 미안했다. 숨을 쉬었다. 켁켁 거리며 쉬었다. 구토감이 몰려왔고 숨이 조금 쉬어진 뒤에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그날은 다이어리에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가족들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는 편지를 썼다. 죽지 않는 이상 나만이 볼 수 있을 그 편지를. 중간고사 무렵에는 내 처지가 비참한 순간이 많았다. 대학이 인생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기에 잘 챙겨주지 않기로 소문이 난 선생님이 담임이었다. 그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우울해졌다. 종종 학교를

  • 카임
  • 2023-11-18
번아웃 신드롬즈의 노래를 좋아하다 번아웃이 온 사건

아무래도 이건 좀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을 3주 앞두고 별안간 번아웃이 닥친 건,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1 번아웃은 꼭 우울처럼 찾아왔다. 내 하루에 밑바탕처럼 은은히 깔려있다가도 어느 날엔 덩치를 불려 일상을 통째로 잡아먹는, 아주 예의가 없는 놈이었다. 언제쯤 나를 괴롭게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매일 두려움에 떨도록 했다. 처음 번아웃 증세가 나타난 건 기말고사가 3주 하고도 조금 더 남았을 무렵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무언가 나를 꾸욱 짓누르고 있단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잠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무거운 걸음을 옮겨 화장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을 맞고만 있었다. 열기에 익은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침이니 머리를 깨울 필요가 있다. 태블릿을 연결해 노래를 틀고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가 그 위로 그대로 엎드려 울었다. 무언가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단순히 입버릇처럼 늘어놓던 하기 싫다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무작정 거실로 뛰쳐나왔다. 거실에서 엄마를 붙들고 하소연했다. 하기 싫다, 못 하겠다, 말을 하며 울었고 속으로는 이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험은 고작 3주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말했다. 어차피 안 되는 공부를 붙들고 있지 말고 차라리 잠을 더 자라고 말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 대신 책상으로 향했다. 공부는 여전히 되지 않았다.   2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수학 문제는 풀 수가 없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수학 문제를 앞에 둔 채 울기만 했다. 비참하고 초라한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았는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순간을 노래로 기억하는 내가 그 당시 무슨 노래를 듣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노래 역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그때 내 머리는 백지처럼 하얬다. 머리를 쓸 수 없으면 강의라도 듣자고 생각했다. 머리 굴릴 일 없이 불러주는 설명과 눈에 보이는 판서를 필기하기만 하면 되는 가성비 좋은 공부. 윤리 강의을 틀어놓고 노트를 폈다. 정확히 5초간 들었다. 음성을 듣자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피로해졌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어떤 기관을 거치지 않고 아주 거대한 공처럼 몸을 부풀려 머릿속을 가득 채운 문장, 못 하겠다. 처음으로 엄마의 말을 들었다. 이럴 시간에 잠이라도 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다.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울었다.   3 공부도 할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는 시험 기간의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시 엄마를 찾아갔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 말대로 잠을 자려고 했는데 잠조차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잠이 안 와요. 계속 눈물만 나와요. 공부도 못 하겠어요. 엄마는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그건 옆에서 내 사정을 함께 듣던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울었고 둘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내가 원했던 말은 공부 같은 거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 카임
  • 2022-09-05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