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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의 대화, 그 후.

  • 작성자 평범한 생명체
  • 작성일 2020-03-27
  • 조회수 644

밤에 아빠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는 분업화와 자신의 생각 속에 갇히신 분 같았다.

자신의 말이 다 맞다고 인정할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으실 것만 같았다.

또, 자신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얘기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대해, 자신의 생각으로, 남의 생각을 유도하게끔, 의식하며 말하려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또, 중간 중간 상대가 자신의 말에 유도되었는지 점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아빠가 아니다.

아빠와 비슷한 점이 있을진 몰라도 나는 아빠와 다른 사람인 것이다.

아빠의 생각은 나의 생각이 아니다.

나는

그냥 나이다.

 

나는 아빠의 얘기를 듣는 도중에 ‘모모’라는 책이 생각나서, 아빠의 말을 끊지 않고, ‘‘모모’라면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책 속 모모처럼 아빠의 말씀을 계속 듣기만 했다.

처음에는 나의 생각도 말씀드렸었지만, 자신의 경험과 생각 속에 갇히신 아빠는 내 말을 모두 부인하시고, 내 생각이 마치 위험하다는 것처럼 반응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마치 법칙과 같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그것이 맞다는 식으로 밀어붙이셨다. 결국 나는 나의 말이 아빠의 마음 속엔 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모모처럼 계속 들었다. 들으려고 노력했다.

 

책 속 모모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대화를 보면, 모모는 검정색 눈으로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계속 상대의 이야기만을 듣고, 상대는 모모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결국 상대는 자신이 한 말들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모모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 상대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얘기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도 ‘아빠가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그런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잠자코, 내 의견을 표출하지 않고, 중간 중간 눈도 맞추려고 노력하고, 중간 중간 리액션(반응)도 하고, 아빠의 말씀에 대해 질문도 했다.

 

모모 속의 시간을 지배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나의 생각에 대해 표출하지 않으면, 상대는 계속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잘못하면 이러다가 날이 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모모’라는 책 속에서 모모는 일주일 내내 상대에게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다고 했다. 소설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모모가 아니었다.

 

모모처럼 일방적으로 상대의 말만을 듣다가는 내가 정말로 상대의 생각에 갇혀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저히 안돼겠다 싶어 결국,

“아빠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그런 습관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아빠도 말씀하셨지만,

상대방이 아빠의 생각이 다 맞다고 할 때까지 말씀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래서 비로소 대화가 마무리 됐다.

아빠는 내 방에 들어오셔서 요즘 왜 이렇게 늦게 자고, 늦게까지 무엇을 하냐고 물어보시고, 내 책상에 꽂혀있는 ‘수능 특강’이란 책을 보시더니, 수능 완성, 수능 개념과 같은 수능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셨고, 내가 수능 개념이란 책을 아빠께 다시 보여드리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아빠께서 나에게 “이 (수능 개념)책들을 방학 때 다 봤다고?”라고 물어보시는 말씀에, 그렇다고 답했고, “그렇게 공부해서 그냥 서울 대학교에 가 버려라.”이러셨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고, 아직 현재 진심으론 그 쪽에 관심이 없다는 나의 마음에 대해 얘기했다.

그랬더니,

내 말에 이해를 못하신 아빠께선,

나의 마음에 대해선 귀 기울이지 않은 채,

마음보다, 그 마음을 억제하고,

주어진 시간표와 계획표에 맞춰나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맞는’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대학과 그런 것들에 대한 당신의 경험과 생각과 느낀 점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말씀하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생각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하고, 자신의 생각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았다.

 

아빠는 학창 시절에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는 않으셨다.

결국 아빠의 그 심오한 생각들은 생각으로만 그치고 만 것이다.

그것도 후회하는 생각들로.

왜냐하면 아빠가 말씀하시길,

아빠가 그 당시 생각했던 생각은, 결국 돌고 돌아, 처음 생각했던 주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생각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현재 한 편으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아빠는 스스로를 생각에 가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장 중요한 소통은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 당시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 의해 터치된 것이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의견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빠 말씀으론 스스로 상반되는 의견들을 생각했다고 하셨지만.. 그것을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완벽하진 않다.)

아빠는 자신의 생각에 갇힌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엄청 확고하게.

또 마치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아빠는 평가하는 것을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등,

“아빠가 서울 대학교와 같은 대학들을 얘기하는 이유는 정말 대학이 중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결국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생각을 이끄려 하신 데에서 등,

나를 자꾸 틀에 갇힌, 교육이 잘된 사람으로 또 다시 만들어 가시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아빠는 나를 위한다고 하시는 말씀이시겠지만, 사실 아빠의 그 말씀이 나를 더 가두고, 옥죄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내가 자꾸 현실이라는 것을 두려워해야하고, 긴장하고, 경계해야할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려고 하셨다.

신이나 약육강식의 얘기까지 하시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의 나의 마음은, 어린아이와 어른이 다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이 사회에 순응되고, 세뇌되고, 마음이 죽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같이.

아빠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부정적인 얘기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지만,

얘기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아빠께서 더 부정적이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를 더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 같았다.

 

아빠는 이 기록을 보면, 이 기록을 없애고 싶어 하실 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아빠의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아빠의 생각과 너무 다른 생각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자신과 다른 생각이 있으면, 절대로 그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생각의 존재를 이해하고, 그 생각을 받아들이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할 때까지 말씀하시고, 말씀하시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없애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든다.

수많은, 다양한 생각들이 이 세상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시는 것 같다.

그 다양한 생각들도, 결국 하나의 진리를 찾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진리를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물론 옆에서 항상 자신을 바라보고 계시는 신과 함께.

아빠의 생각대로 이 세상을 생각하면,

이 세상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진다.

두렵게 느껴진다.

이 말을 듣거나 보면, 두렵게 느끼지 말라고 그러실 것이다.

자신이 두렵게 만들어 놓고서.

그러면 또 그것이 아닌 이유를 설명하고 계실 것이다.

 

가끔 “클래식을 모르겠다.”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아빠의 말씀을 듣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현실, 주변에 너무 찌든 (세뇌되어 버린) 그런 사람.

그리고 동심이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절대로 과학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맨 날 통계 하고, 분석 하고, 법칙 찾고, 증명 하고, 왜 틀렸는지 검토 하고, 분석 하고, 법칙 찾고..

아빠를 보며 느낀 점이 있는데,

그리고

아빠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아주 많이 있을진 모르겠는데,

대체로 교수, 법 쪽 계통에서 일하는 분 등

전문직에서 그러는 것 같은데, (전문직.(=분업화에 적합한 직업.)

통계 자료와 결과를 ‘아주’ 중요시 여긴다는 사실이다.

무조건 그런 것만을 추구하는 그런 마음은

나에게 있어,

진정한 마음이 죽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기록도

어떤 시나 도, 군에서 주최하는 어떤 글쓰기 대회나, 어떤 대회에서 상을 받은 기록이라면,

아빠는 아주 높게 평가할 것이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런 걸 느꼈었다.

.

.

평범한 생명체,

주변의 반응에 있어서 너무 흔들리지는 말자.

그리고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살자.

강요하진 말고.

그리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유연하게 하려고 노력하자.

그러나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존중하자.

나는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잘 안다.

평범한 생명체, 사랑한다.

유연하되, 마음을 굳건히 하자.

이리 저리 휩쓸리지 않게.

동심은 아름다운 것이다. (초기의 나의 마음가짐이기 때문에)

잊지 말자.

그리고 그게 가장 본질적인 나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어렸을 때,

‘로보트 태권V'를 좋아하셨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아빠는 정의롭고, 남에게 도움이 되고자하는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 안에서의 영웅.

가족 구성원들을 통제하시려 하고, 가족 구성원들 각 각의 일들을 사사건건 간섭하시기 때문이다. 매일 그러시는건 아니지만 종종 그러신다. 왜 그러시는 것일까? 그리고 아빠가 화 나 있을 때는 아무도 아빠 말에 대응을 하지 못한다. 아빠는 화가 나면 통제가 안되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장악하신다. 아빠는 그것을 알고 그러시는 것일까? 그래서 아빠한테는 아빠가 기분이 좋은 상태에 있을 때만 나의 의견이나 이런 것들을 아빠께 말씀드릴 수 있다. 화 나 있을 때와 화 나 있지 않을 때가 너무 다르다.

.

.

아빠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말씀하신 것인데,

나는 그 말씀이 이렇게 받아들여졌다.

평범한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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