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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평균값에 가깝게 만들어주죠

  • 작성자 김줄
  • 작성일 2019-07-18
  • 조회수 605

공황이 올 듯 말 듯 미칠 거 같아 약을 먹고 잤다. 일어나 보니 김미음에게 문자가 와 있었고 나는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아파트 단지 흡연 핫 플레이스에 앉았다. 아무도 흡연 구역이라 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흡연 구역이 된 그곳은 비흡연자인 내게 환상적인 곳이다. 바람이 불어오고, 새 벤치를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앉을 때 새사람이 되는 기분이 든다. 난 늘 그곳에서 그 아이와 전화를 한다. 미음이와 통화를 끝낼 땐, 일방적으로 내가 재잘거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 그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란 생각이 날 장악하고, 나는 미안해진다. 그 다음날 다시 전화하면 나는 얘가 그저 좋아서 재잘거리게 된다. 이 걱정에 대해, 걱정 많으신 김미음 씨의 허락을 맡고 그의 일기를 베껴왔다.

갼갼-내가 내 친구를 부르는 별명이다!-은 전화를 하면 말을 많이 해준다! 나는 사실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들은 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는 방식이 나에겐 훨씬 편하고 좋다!
 그래서 말주변이 없는 사람과는 친해지기가 조금 힘들다...

그는 나를 갼갼이라고 불러준다. 난 “아 맞아 갼갼”하고 미음이가 말할 때면 나는 행복해진다. 일단, 그 친구만 나를 갼갼이라고 불러주는 것과 내가 묻지 않은 것에 대해 먼저 말해주는 걸 나는 좋아하니까.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된다. 뭐가 맞는지 모른 채로, 일단 맞다고 던져놓으면서.

어느 날, 나는 그 애와 전화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려고 필통을 열었다. 내 필통에 달린 랏소 베어 열쇠고리를 쥐고,

‘김미음이랑 난 왜 이렇게 친해진 거지? 우린 생각하면 공통분모가 많은 사람이 아닌데!’

흐린 눈으로 생각하며 랏소를 끝까지 당겼다. 툭, 하고 딸기 사탕이 떨어졌다. 그와 만남은 어디서 주운 지도 모른 사탕을 어딘지도 모른 곳에 넣어놓은 것처럼 시작되었다. 나는 이걸 우연이라 말하고 싶었고, 우린 우연처럼 서로를 알게 되었다.
처음 그 아이가 쓰는 말을 봤을 때 멍청하면서 똑똑해서 관심이 갔고, 카톡을 나누니 애가 너무 찬란해서 내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사회 이슈를 잘 아는 것도 존경스럽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관이 있으면서 타인의 가치관을 수용하려는 모습이 짜증 날 정도로 멋있었다. 그 당시 나는 엄청나게 편협한 사람이었으니까.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낯설었다.

우리 사이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내가 잠수를 잘, 그것도 자주 타는 잠수 왕이기 때문이다. 난 놀랍게도 내가 아픈 시기만 골라서 타는 능력이 있다. 감정에는 전염성이 있으니까 아픈 감정을 소중한 김미음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찬란한 김미음에게는  나 때문에 찬란함을 잃게 하기 싫어 더 자주 잠수를 탔다. 딸기 사탕처럼 연락처 속 한구석에 넣어두는 공백이 꽤 있었지만 김 미음 씨와 내가 서로 번갈아 가며 기억나면 서로를 꺼내어 주는 덕에 벌써 3년 가까이 그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사실 난 그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다. 난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김미음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줘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는 “안 가르쳐주면 날 안 좋아할 거니?”라고 귀엽게 말한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도 받은 게 많아서 영원처럼 그를 좋아할 것 같다. 아니, 사실 김미음이라서 좋아하는 것 같다. 근데 내가 좋아한다고 자주 말한 탓에 그가 질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불안함을 지니고 있긴 하다... 이렇게 깊이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이렇게 신뢰해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친구와의 관계를 보통 내 안에서 객관화하기 위해서 금전이나 내 몸에 대한 상해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 내 기준으로 급전이 필요하다 하면 얼마나 줄 수 있는지나 배에 칼정도는 대신 맞아줄 수 있다. 정도의 기준을 놓는다. 친구끼리 급을 나누는 건 안 된다고 하지만 무턱대고 모두에게 최선을 다할 수는 없는 데다가 급을 나누는 게 아니라 친분의 경중을 재는 것이다! 쪼금 친한 사람, 많이 친한 사람 정도의 애매모호한 기준을 세우듯이 나는 애매한 걸 없애기 좋아해서 이런 기준 등을 세워 버렸다.

그의 일기다. 우리는 서로 일기를 조금씩 공유하는데, 보통 미음이의 일기엔 사회 문제, 사회에 자신이 어떤 영향을 줄 있을지 고민하는 게 많고, 나의 일기엔 일상에서 포착한 예쁜 쓰레기에 대한 감정을 많이 쓴다. 가끔 그 아이의 일기를 갈고 닦으면 평론이나 비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현실을 마주하는 데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현실을 외면하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고! 이렇게 일기 쓰는 것도 현실을 보는 것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된 걸까?

저 일기를 보여준 그는 내게 “그래서 나는 너라면 배에 칼 정도는 대신 맞아 줄 수 있을 거라 딱 떨어지게 생각하고 있어”라고 말해줬다. 나는 좀 울었다. 나도 애매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관계를 자주 비유하며 경중을 따지는데, 그래서 잘 아니까 더 울었다. 보잘것없는 내게 과분한 최선을 다해주고 있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받았으니까. 사실 평소에도 그가 내게 최선을 다 하는 걸 알고 있다.

“우리 어른 되면 여행 같이 가자”나 “우리 나중에 같은 대학 가서 네가 후배 해” 하는데 이 말들이 자꾸 내가 희망을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늘 열망에 날 지치게 할 것 같은 두려움에 딱히 커다란 희망을 쥔 적이 없는데, 덕분에 실눈 뜨고 보던 희망을 점점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자꾸 살고 싶어진다. 열망을 작게나마 손에 쥐게 된다. 저승 문 앞에서 “쟤가 나한테 뭐 하자고 해서 못 죽어요” 떼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최선에 나는 이른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주, 그가 나와 닮아간다는 말을 해줬다. 나와 닮아가는 것 같다는 부분은 두 가지였는데,

“막 되게 사람 좋아하게 되고”
“막 안아줬으면 좋겠고”

아, 이제 얘가 나처럼 타인을 갈망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구나! 기뻐졌다. 그렇게 타인을 갈망해서 타인으로부터 뭔갈 받는 기분을 알게 되겠구나. 그리고 나도 그에게 “너를 닮아가고 있어” 말해줬다. 계산이나 걱정이라는 브레이크 없이 감정적으로 나아가던 내가 점점 이성적으로 계산을 해보고 현실에 눈뜨기 시작했으니까. 그를 닮아가는 모습에 ‘자주 놀란다’고 말해주니, 그는 상상도 못 한 답을 내놓았다.

“괜찮아 이제 평균값이 될 거야”

그 말을 듣자 평균을 어떻게 구하는지 기억나지 않아 평균의 뜻을 찾아봤다.

‘자료 전체의 합을 자료의 개수로 나눈 값 [출처 : 초등수학 개념 사전]’

그럼 나는 자료1 너는 자료2 우리를 더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라는 자료로 나누면 우리가 되는 건가? 김미음과 갼갼이로?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 생각이 평균을 구하는 공식과 거리가 멀지만, 우리의 평균을 구하는 방법은 너와 나를 더해서 이 세상 사람들 모두로 나누면 되는 거야!’라고 우겼다. 이걸 시로 쓰고 싶었지만, 이미 일기에 써버렸다. 그리고 소중한 너라면 내 시에 넣기 싫으니까. 내시는 너무 못난 모양이니까. 그리고 시집보단 수필집에 훨씬 어울리는 내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겨서 나는 평균값이 되었다. 세상의 평균값이라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세상의 평균값에 가까워졌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타인을 갈망하는 법을 배우며. ‘보통’ 또는 ‘평균’이라고 하는 전혀 모르는 평범함에 다가가는 게 아닐까, 이걸로 좀 더 부드럽고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평균값이란 단어를 들은 날, 나는 ‘이렇게 찬란한 애랑 날 더해서 현실로 나누니 이렇게 평균값이 되는구나!’라는 문장으로 일기를 시작했다. 그날 나는 수없이 이른 죽음을 생각한 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저 세상의 평균값에 가까워지는 것 하나로.

김줄
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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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에 무능한

담당의와 매주 금요일 오후, 면담한다. 무슨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날짜나 시간이 변하지 않는다. 담당의와의 면담은 슬라임과 강철 칼의 싸움 같다. 주로 내가 슬라임 역할을 맡는다. 담당의는 반질반질한 말투로 나의 능력치를 감소시킨다. 보통 내가 능력으로 쓰이는 것은 ‘회피’다. 어디로든 숨고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잘 쓰이는데, 내가 불리하거나 버림받을 거 같은 개똥 같은 직감을 느끼면 잠수를 타거나 연을 끊는다. 인터넷에는 이런 나 같은 유형을 회피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보통 나는 애정을 피하고자 노력한다. 애정을 누군가 주면 무작정 숨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런 대단한 능력을 담당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올바른 방식으로 직면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직면하게 한다. 그러면 나는 ‘모르겠어요’. ‘다음 주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면담 때 그 주제를 꽁꽁 숨기면 괜찮으리라 생각하지만, 담당의는 어쨌든 기억해서 내게 그 주제를 묻는다. 보통 주제는 내가 사랑과 애정을 주는 것은 잘해도 직면하는 것, 받는 것을 못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인데 그러면 나는 담당의가 괜히 의사가 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직면에 무능하다. 늘 마주치는 것을 못 해서 시비만 걸고 도망간 적이 너무 많다. 꼭 사랑받는 것도 그렇다. 사랑받으려고 울고 착한 짓은 엄청나게 하지만 막상 받으면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이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는 순간이 생긴다. 도망치기 아까울 만큼 타인을 너무 사랑하거나, 타인이 귀를 파줄 때. 정말 회피 무능 상황이다. 누군가가 귀를 파줄 때는, 그의 숨소리 리듬을 알고, 그의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귓속의 귀지를 찾아내기 위해 귀 끝을 세우고, 당겨 나도 모르는 나의 속이 밝혀진다. 세상에서 외면을 제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일만은 외면하지 못한다. 자칫 잘못 피하다가 여린 곳을 다칠 수도 있으니까. 이런 회피 무능의 상황에서 나는 불안해한다. 이렇게 애정을 받아도 되는지 걱정이 드니까. 애정을 받으면 마치 내가 큰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짝꿍은 귓속에 면봉을 넣고 속을 더 기울여 본다. 그러면 나는 이 정도로 귓구멍이 들춰지는 것쯤이야 괜찮다 생각이 든다. 이것쯤이야, 라고 생각하며 직면했더라면 담당의와 말씨름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쯤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도망친다. 부디 다음 주에는 담당의가 반질반질한 말을 하지 않고 짝꿍이 귀를 파주었으면 좋겠다.

  • 김줄
  • 2020-12-01
안녕, 소리

나의 안경 렌즈 끝자락에 뾰루지가 났다. 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뾰루지를 긁으며 끔찍해 했다. 소리가 들리면 나는 병적으로 고통스럽다. 소리에 대한 고통을 피부에 대한 고통으로 묻어가려는지 뾰루지를 긁었다. 그러면 언젠가 뾰루지에서 노란 눈물이나 빨간 눈물이 날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늘 병원에 다녀오며 잡다한 소리를 들은 바람에 볼을 자주 긁어버렸고, 결국 빨간 눈물이 나버리고 말았다.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몇 달째 조이 선생님에게 말했다. (내 담당의, 이름의 자음만 긁어모아 별명을 지었다.) 조이 선생님은 별 것 아닌 것으로, 괜한 스트레스로 넘기고 있었지만 나는 머리 위에 기둥을 세우는 기분이 들었다. 집 안에서 엄마가 달그락거리며 설거지 하는 소리, 동생이 화장실에서 비누를 쓰고 놓는 소리, 아빠가 어푸어푸 씻는 소리 까지도. 소리가 무겁게 다가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곤 어느날 안경 렌즈 끝자락에 붉게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뾰루지가 다 자랐을 쯤엔 집에서 들리는 소리가 괴로워 폐쇄병동 입원까지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어떤 앵무새 같은 남자가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하여 나는 대놓고 화를 냈고, 조이와 조소는 오히려 입원으로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했는지 퇴원을 서둘렀다.   빨간 눈물까지 볼에 흘린 오늘, 나는 모든 소리가 듣기 싫다고 조소 선생님께 말했다. (내 주치의, 성과 이름의 자음 하나를 긁어모아 별명을 지었다.) 그러자 조소 선생님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 없어요 가은씨. 가은씨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라, 타인이 바뀌길 기다리는 것보다 가은씨가 이 상황들을 아프지 않게 보내는 것이 더 가은씨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거예요” 조소 특유의 맑은 눈빛으로 낮은 산을 등산하거나 산책, 노래 듣기, 이어플러그를 꽂길 바랐다.   오늘은 조소를 본 이후 조이를 봐야하는 날이었다. 나는 병원 9층으로 올라섰고, 조이를 기다리는 동안 조소와 한 말을 말풍선에 보라색 만년필로 정리했다.   조이와의 면담은 퇴원 후 처음이었다. 조이는 나와 이야기 한 것을 복습하기 위해 녹음한다고 했고, 안타깝게 나는 녹음이란 것을 경찰 조사와 해바라기 센터에서 했기에 거부했지만 병원인지라 밖으로 노출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 했다. 나는 조이를 믿었다.   조이와 이야기 하며 문 밖에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나는 말을 멈췄다. 박스를 거칠게 내려놓는 소리 꽤 두꺼운 비닐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 여자와 남자가 대화하는 소리 남자가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소리   나는 모든 소리가 창문이 깨지는 파열음처럼 들린다. 창문이 깨지며 유리조각이 나를 뚫고 가는 것 같다.   소리, 소리, 소리, 뾰루지, 뾰루지, 뾰루지 나는 반복했다. 소리가 날 때마다 뾰루지를 긁었다. 뾰루지의 눈꺼풀은 얇아졌다.   타인이 지닌 유리와 나의 틀이 유리창을 만들고, 타인과 내가 번갈아 가며 부수어 소리를 내는 것만 같다. 파편은 내게 자꾸만 튀어 오

  • 김줄
  • 2020-03-19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사촌 오빠의 게임기로 동물의 숲을 자주했다. 나는 사촌들이 게임 속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없는 일을 했다. 사촌들은 눈사람을 만들어 가구와 바꿔먹고, 과일을 줍거나 낚시를 해서 죽어라 빚을 갚고, 집을 키웠다. 그에 비해 나는 지나가다 강 속에서 떠다니는 유리병 속 편지를 줍고, 너굴 상점에서 유리병 속 편지지를 사서 편지를 쓰고 강에 던졌다. 편지 속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다. 학교에 들은 소문을 쓰기도 했고, 괜히 게임 속 동물의 소문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편지의 끝은 늘 ‘이 편지를 받게 된다면 답장 꼭 해줘!’라는 문장으로 끝이 났지만, 내가 띄운 편지의 답으로 보이는 편지는 사촌 오빠가 게임기를 잃어버릴 때까지도 볼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동물의 숲에서 사서 편지를 띄워 답장을 기다리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주변 사람들에게 손 편지를 쓰게 한다. 내심 내가 준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게 한다. 길 가다 이야기를 지어내 메모장에 쓰게 하고, 매일 밤 일기를 쓰게 한다. 작년과 다르게 지금의 나는 작가가 되겠단 생각이 줄었다. 생각이 없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다. 절실하지 않다. 쓰면서 고뇌하는 시간을 잘 갖지 않고, 곁에 문학을 두고 즐기기만 한다. 과거의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 쓰는 것이라 생각한 것과, 좋은 시를 써내기 위해서 감히 내 인생을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 편협해 보일정도로.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야기를 생각해낸다. 길가다 보이는 사물의 일생을 지어내보기도 하고, 내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생각을 지어내보기도 한다. 그 일생과 생각을 이어서 한 이야기를 만든다. 거기에 일생과 생각이 배경이 될 시간을 만들어내고, 그 시간 속 대다수의 인물이 갖는 일생과 생각을 또 생각해본다. 풀어낼 힘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 놀이를 일기장 안에서 핸드폰 메모장 안에서 해댄다. 마음에 들면 뿌듯해 하면서. 이런 내 모습의 이유엔 인간의 본능 중 하나에 서사 만들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반을 바꿔도 소문을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씩은 꼭 있었다. 소문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소문을 만들고 전하고 그러다 꼭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곤 하는 친구가. 내가 그 한 명이 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을 이용해 이야기를 짓고 싶지 않아졌다. 내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악한 영향력을 주고 싶지 않으니까.거짓말이고, 내 마음속에선 내 이야기가 사실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무드 인디고’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시각적인 요소에 쉽게 현혹당하는 나를 저격하는 듯, 화려한 색상들이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준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빠지게 한  영화 ‘무드 인디고’의 첫 장면에 나오는 문구를 나는 사랑한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해냈으므로 이 이야기는 완전히 사실이다 -보리스 비앙’. 이 문장이 작년의 나를 시와 인생을 뒤바꿔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크게 기여한 문장이다. 시 속 나름의 이야기를 사실이라 생각할 수 있는 핑계가 생긴 기분을 만들어주고, 내게 의미가 깊다. 이

  • 김줄
  • 201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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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성현

    안녕하세요 김줄님. 반갑습니다. 작자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풀어주고 상대의 의견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네요, 대화와 일기장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가는 과정이 독자의 입장에서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그와 상대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 거시적이고 현실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그와 미시적이고 감성적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나, 대화하는 방법과 일기장 내용으로 상대와 나의 다른 점들을 강조해 주는 묘사도 좋았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서로의 차이들을 강조하다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게 되는 모습들이 의미있게 느껴졌습니다. ‘평균값’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때로는 우리의 삶이 단어 하나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글이었습니다. 상대에 대한 호칭이 그, 그 아이, 너, 친구, 미음이, 김미음, 김미음씨 등으로 다양하네요.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이 상황에 따라 달라져서인지요? 이야기의 서두와 결론이 시간상으로 더 유기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자를 받고 전화통화를 한 그날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별개로 흐른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발단과 결말이 서로 유기적이면 마지막 문장에 더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2019-07-24 17:04:45
    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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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줄

      시간의 흐름과 사건이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는지 아닌지를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멘토님 덕에 고민해보게 되네요! 정말 생각의 흐름에 따라 쭉쭉 써내려간 글이라 그런가봐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과분한 코멘트를 받아서 기뻐요! 감사합니다 멘토님! 7월의 남은 날 잘 마무리하시고 다음에 또 뵈어요:)

      • 2019-07-25 04:11:53
      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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