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죽음과 한 뼘 가까이 [퇴고작]

  • 작성자 distodam
  • 작성일 2018-01-31
  • 조회수 589

https://teen.munjang.or.kr/archives/101040

고치기 이전 글입니다.

 

눈을 감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티끌들을 볼 수 있다. 그날 하루의 흔적들이다. 애써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지만, 형체는 핍진하다. 가끔은 가만히 눈감은 이 상황이 죽음이라 가정하곤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다면 잠자듯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가슴 한쪽이 아리며 숨이 막혀왔다. 그러면 무서운 공상을 멈추기로 했다. 대신 생이 끝난 뒤에도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안도는 잠깐이었다. 죽을 수 없다면 그것대로 끔찍하겠지, 그 수많은 사람이 부대낄 자리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몰려왔다. 또 숨이 막혀와서 이제는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끌어매었다. 며칠 동안 이런 상태를 반복하기만 했다. 학교에서 엎드려 잘 때도 그랬고 길을 걸을 때도 그랬다.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결같이 대답은 쉼표보다는 물음표였다. 그때만 해도 이 상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믿었지만, 그 생각이 우스워지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걱정이 사라질 수는 없으니 가장 좋은 삶은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란 친구의 말이 들어맞았다. 사실 새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걱정 같은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길로 다녔다. 의미 없는 지식을 남보다 더 채워 넣고 보상을 받았다. 잠은 부족해서 정신이 멍했고 눈만 감으면 꿈을 꾸었다. 잃어버린 사랑을 기억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문학마저 뒷전으로 치워버렸다. 이렇게 기계처럼 나를 죽이며 버텨내다 보니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일 같은 건 쉬이 망각해가고 있었다.

3년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계속 살아냈다. 하루는 길을 걸었다.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평소에 가던 길로 가다 보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가 외진 곳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등교 시간까지 맞추려면 걸어서는 아슬했다. 앞의 녀석도 학교로 가는 데도 샛길로 빠졌다는 건 그 길이 빠르다는 신호 같았다.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길 들머리부터 구불구불한 골목이었다. 길바닥조차 아스팔트가 아닌 오래된 콘크리트였다. 큰 교회가 보이는 지점부터는 왼쪽은 산기슭이었고 오른쪽에는 노후화된 주택가였다. 그때부터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계속 따라가서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예상보다 십 분은 더 이른 시각이었다.

학교가 파하고서 더듬거리며 왔던 길을 떠올려 집으로 걸어갔다. 다시 그 산기슭과 낡은 집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그곳이 평범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보였다. 내 지난 상념들이 덩어리져 있는 것 같았다. 공동묘지처럼 정갈하지도 않았고 문중의 묘처럼 단정한 석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에 묘가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이름 모를 산담은 죄다 홀로였다. 검은 돌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세우고, 각자의 구역을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무덤들은 최소한의 구획이나 기단석조차 없었다. 무덤이 있으면 그 옆에 무덤이 있었고, 그 위나 아래에 또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해가 떠오르며 비추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그만 흙산들은 햇빛을 머금고 풀을 돋우기만 했다. 그들은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모습이었다. 비석 이나마 세운 게 있으면 그나마도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한자로 학생 신위라 쓰여 있는가 하면, 한글로 ○씨 ○○지묘라 쓰인 비석도 있었다. 세월에 깎이고 이끼가 껴서 한때 글자가 존재했는지조차 모를 돌도 있었다. 몇몇 무덤은 땅이나 다름없이 완만했다.

처음 이곳이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적당히 양지바른 언덕에 누군가 주검을 묻고, 또 누군가가 밤새 몰래 봉분을 만들고. 그러기를 수십 년이 넘었을 것이다. 이제는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묻은 이는 분명 다른 이의 흙을 좀 빌려야 했을 것이다. 주로 아래쪽 무덤이 허물어져 가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을 테다. 찾아오는 이 한 명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언덕 맨 위쪽의 그나마 비석이 단정한 곳엔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무덤은 죽음에 가깝더라도, 그 가장자리에서 생은 버티고 있었다. 둔덕 왼쪽 구석에 푸른 그물을 친 곳이 있었다. 다른 부분들과 달리 평평한 땅이었다.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땅 위에 파랗게 솟은 건 배추였다. 사람이 직접 울타리를 치고 심었다. 그곳뿐 만 아니라 주변에 밭이 많았다. 거기 누운 사람들이 내게 실마리를 쥐여주었다.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살아내고 있다고. 죽은 자의 육체는 흙에 스며들고 그이를 머금은 땅은 작물을 길러 내고 사람을 살게 한다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알아볼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내가 본 대로만 판단해보자면, 죽음이 영원한 결말은 아니다.

 

distodam

추천 콘텐츠

더는 볼 일 없지만

싫어서 발버둥 친다고 벗어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있을까. 태어나면서 들고 왔던 이를 죽을 때까지 쓰는 이로 바꾸는 과정만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싫어했던 일들이 대개 그러했듯 언제나 끔찍하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구강 검진만 하러 가지만 어렸을 때는 이를 뽑으러 두세 달에 한 번은 치과에 가야 했다. 혼자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 형과 함께였다. 나와 달리 형은 충치가 잘 생기는 편이었다. 내 이가 흔들리면 형 이도 까맣게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 이를 뽑는 겸 형의 충치 치료도 했다. 이를 뽑으러 가는 치과는 걸어서 5분이면 가는 상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1층 약국 빼고는 꼭대기까지 병원만 있는 건물이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어야 했는데,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실내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발에 맞지 않아도 억지로 신었다. 이름이 불리면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면 통유리 너머로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삼 층 건물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은 평온하게 삶을 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나는 상관없다는 듯 그들은 걷고 뛰었다. 간호사는 몇 번 입을 살핀 뒤 의사를 불렀고, 의사는 수 초 안에 이를 뽑았다. 어금니가 아니면 피가 많이 나거나 아픈 기억은 없다. 거즈를 물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치과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이를 뽑은 뒤에 있었다. 나는 만화를 좋아했지만 어머니는 집에 만화책이 꽂혀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집에 만화라고는 학습만화뿐이었다. 그런데 치과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만화책이 서가 한 쪽에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형의 충치 치료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그동안 나는 입을 앙다물고 빠르게 만화책 책장을 넘겼다. 한 권이 끝날 때쯤이면 얄밉게도 형이 걸어 나왔다. 집에서는 만화책을 볼 수 없었기에 어머니가 계산하는 동안에도 나는 만화에 코를 박고 있었다. 이가 흔들리면 이를 빼러 가는 괴로움보다도 만화책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초등학교를 지나면서는 영구치가 자리 잡으면서 이를 뺄 일이 없어졌다. 치과에 발길을 들이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검진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했고, 지정된 치과에서만 진찰을 받았다. 언젠가부터는 만화책이 집 서가에 꽂혀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만화보다 다른 일이 더 재밌어졌다. 이렇게 되니 나는 그 치과 앞 건물은 자주 지나쳤지만, 치과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2층에 있는 다른 병원에 가고 1층의 약국에서 약을 샀지만 3층 계단을 오른 적은 없었다. 계절이 몇 번 돌고 돌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검진하러 그 치과에 들렀다. 어릴 때 신던 실내화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얀 벽지나 가구는 바뀐 것이 없었다. 손님은 나뿐이어서 곧바로 검진에 들어갔다. 지난날에는 침대 커버에 신발이 닿아서 더러워질까 봐 신발을 벗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의사가 옆에 앉았다. 침대가 뒤로 젖혀지고 주황색 불빛이 보였다. 의사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 없이 이를 들추어

  • distodam
  • 2018-12-31
죽음과 한 뼘 가까이

쉽사리 잠들지 못하던 날들이 많았다. 주로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신도 내세도 믿지 않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다면 잠자듯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눈감은 이 상황이 죽음이라 생각했다. 숨이 일순간 막히곤 했다. 그러면 무서운 공상을 멈추었다. 암울한 생각 대신 생이 끝난 뒤에도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영원히 살면 그것대로 끔찍할 거란 기분이 들었다. 그 수많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체념이 몰려왔다. 또 숨이 막혀와서 이제는 눈을 떴다. 며칠을 내내 이런 상태였다. 학교에서 엎드려 잘 때도 생각했고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결같이 대답은 쉼표보다는 물음표였다. 그때만 해도 이 상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믿었다. 그 생각이 우스워지는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걱정은 해결해도 또 다른 형태로 생겨나므로 가장 좋은 것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란 친구의 말. 들어맞았다. 기계처럼 나를 죽이며 버텨내다 보니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일 같은 건 쉬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멍하니 계속 살아냈다. 하루는 길을 걸었다.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평소에 가던 대로 가다 보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녀석이 어떤 샛길로 빠졌다. 등교 시간까지 맞추려면 걸어서는 빠듯했다. 앞의 녀석도 학교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샛길로 빠졌다는 건 지름길로 간다는 신호다.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샛길 초입부터 구불구불한 골목이었다. 길바닥조차 아스팔트가 아닌 오래된 콘크리트였다. 큰 교회가 보이는 지점부터는 왼쪽에 둔덕 오른쪽에 오래된 주택가였다. 그때부터는 적당히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도착하고 보니 예상보다 십분은 더 이른 시각이었다. 기억해 두기로 했다. 학교가 파하고 더듬거리며, 왔던 길을 떠올리며 걸었다. 다시 그 둔덕과 빌라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둔덕이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그건 내 지난 상념들이 뭉쳐진 것과도 같았다.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덤들이었다. 무슨 공동묘지처럼 정갈하지도 않았고 문중의 묘처럼 단정한 석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에 무덤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어쩐지 더 쓸쓸했다.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이름 없는 무덤들은 죄다 홀로였다. 검은 돌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세우고, 각자의 구역을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무덤들은 최소한의 구획조차 없었다. 줄 맞추기나 기단석 따위도 없었다. 무덤이 있으면 그 옆에 무덤이 있었고, 그 위나 아래에 또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해가 떠오르며 비춘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그만 흙산들은 햇빛을 머금고 풀만 돋우었다. 무덤들은 어느 하나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비석 하나 세운 것이 있었다. 그나마도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한자로 학생ㅇㅇㅇ신위라 쓰여 있는가 하면, 한글로 ㅇ씨ㅇㅇ지묘라 쓰인 비석도 있었다. 세

  • distodam
  • 2017-12-31
편린들

가로수 사지가 잘린지는 좀 되었다. 도시에는 보도블록 위로 창백한 가로수가 서있다. 크기나 종도 제각각이다. 그도 생물이어서, 죽지 않으면 자란다. 뿌리가 벽돌을 뚫고 조그만 오르막을 만들기가 예사다. 가지는 조금씩 자라 사람들 눈을 감춘다.   동네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사거리가 있다. 좌우로 나뉜 횡단보도를 기준으로 여기는 2단지, 저기는 3단지 식으로 구별한다. 곳곳에 가로수는 많이도 심겨있다. 2단지 쪽에 세워진 나무가 하나 있다. 잎이 둥근 종이라 겨울이면 삭막해진다. 겨우살이나 가끔 신세질 뿐, 앙상한 가지만 무성하다. 어느날 보니 그 나무에 사람이 올라갔다. 자세히 보니 사다리를 탄 것이다. 사람이 올라간 후 나무는 한풀 멋이 꺾였다. 그나마 빽빽하던 것이 잘렸다. 짧은 잔가지는 덜어냈다. 긴 가지는 뭉텅 잘리었다. 주위를 보니 다른 나무도 마찬가지다. 사철 푸르지도 못하고 사지를 잘리는 이 시지푸스들이 가련하다. 그러든 말든,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쳐간다. 기실 나무에 신경쓰기는 너무 바쁜 우리네다. 나만 해도 우연히 나무를 본 것이다. 그 전에는 저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나무가 어떤 기분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무는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썰린 나무를 보고 착잡한 마음으로 가던 길을 걸었다. 길섶 울타리를 보았다. 울타리는 풀이 덮었다. 그 중 풀 한 포기가 막대기처럼 솟았다. 서리도 없는 따뜻한 겨울에 그것은 홀로 길게 자랐다. 사람 키의 곱절은 되었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나는 자연의 신기함을 생각해보았다. 그것도 잠시 잘리워진 나무를 떠올렸다. 무리에서 특출난 것이 화를 당하는 일이 많지 않은가. 풀도 그 사례가 될 것만 같았다. 긴 풀은 사람들 시선에 빽빽한 나무 만큼이나 눈에 잘 띌 것이다. 곧 작업복에 야구모자 쓴 이가 큰 집게로 풀을 썩둑 자르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러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풀이 솟은 울타리는 항상 지나는 길이다. 어제 보아도 오늘 보아도 그대로, 자랑스러이, 인간을 내려보듯 서있다. 사람들은 나무에 비해 풀에 관대한 듯 하다.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나무가 자라면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풀은 거들떠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실용을 좇고 귀찮은 일을 벌이기 싫어한다.   글을 쓰는 지금은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다. 해마다 봄이 지날 즈음이면 풀냄새가 진동한다. 여름을 대비해 풀을 깎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저 군계일학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 distodam
  • 2017-02-28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