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어느 홈스쿨러의 독백

  • 작성자 neo
  • 작성일 2017-05-06
  • 조회수 913

누군가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3년 동안 뭘 했을까? 공부를 했나 효도를 했나 돈을 벌었나? 친구를 만들었나? 나 자신을 잘 돌보았나, 남을 잘 돌보았나? 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할 수밖에 없다. 나의 학력은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뿌듯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뿌듯하지 못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놀기만 했다. 놀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 놀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다. 나는 사람 사귀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 무지하고 미숙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도중에 중학교가 보이곤 했는데, 거기엔 나와 같은 나이의 청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곳이 무척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갔으면 왕따를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땠을까'였다. 내가 저기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보다 공부를 잘했을까 체력이 좋았을까 아니면 훨씬 괴롭고 우울했을까. 저 애들은 행복할까. 나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저기 갔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학교는 항상 범접할 수 없는, 베일에 싸인 미지의 장소였다.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이자 타지였다. 나는 학교 다니는 애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애들을 만났을 때 나는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얘기하고 싶었지만 얘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다니는 학교와 그들의 이야기를 책 또는 영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학교는 공포와 폭력의 세상으로 표현되었다. 나는 영상물을 볼 때마다 학교에 가지 않은 게 정말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범죄와 학대로 이루어진 곳이라 생각했다. 내가 학교를 갔으면 무서운 일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소심해서 친구는커녕 왕따만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물론 행복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가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왕따 당하는 애들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도 행복할 때가 있고 불행할 때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행복할 때가 많느냐 불행할 때가 많느냐였다.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울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사귈 수 있었을까. 애들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공부를 못해서 괴로워했을까. 그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져 그들과 관심사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간다 해서 친구가 생기지 못하는 걸까. 내가 노력을 안해서일까. 모든 게 그 때문일까. 그곳에 갔으면 나도 지금쯤 졸업을 했을까.

 

나는 아직 몽정을 하지 못했다. 물론 늦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꿈에서는 아니, 나는 꿈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딜 가나 가족이 따라온다. 가족은 내 인생의 99%다. 내 무의식 속에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 몽정을 할 수 없다. 가족들이 막는다. 나는 살면서 가족 외에 다른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다. 내 고민을 들어준 사람도, 가족이 아니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나는 나 혼자 내 속으로만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분노를 표출하지 못해 속으로만 욕을 했다.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을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에게만 말했다. 나 혼자 상상했다. 나 혼자 생각했다.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나는 너무 속이 좁았다. 나는 나밖에 몰랐다. 제일 친한 가족, 아버지 혹은 동생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 혼자서만 묵혀둘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나 혼자서 떠올렸다. 나는 친구가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남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너무 게으르고 무식하다.

나는 가끔씩 내가 정말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나 싶다. 내가 진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나 혼자라도 열심히 쌩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핑계로 만들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소설 하나 쓰지도 않았다. 용기 있고 과감하게 친구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소심했고 변명이 많았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하나의 삶을 더 살아서, 학교를 다니는 삶을 살았다면, 그 삶이 행복했을까 이 삶이 더 행복했을까. 물론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는 교회 수련회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역시 사람은 많이 만나 봐야 아는 거구나. 그래야 내가 더 다가갈 수 있구나.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구나. 그런데 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핑계로 수련회를 피했다. 나는 그들과 친해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친해지지 않은 것이다. 교회에 있는 애들은 모두 달랐다. 나는 너무 예외적이었다. 다들 무척 심성이 좋고 마음씨가 착했다. 다들 너무 잘 대해줘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나만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예배가 끝날 때마다 나는 그냥 나왔다. 나와서 밥만 먹고 집으로 갔다. 그들의 모임에도 귀찮아서 가지 않았다. 늘 형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도피했다. 나는 너무 귀찮아했다. 모든 것을 귀찮아했다. 나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 쓰고 있다. 이제 나는 늦게 잤다고 한소리 얻어먹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늦게 자더라도, 문장이 엉망이어도 쓰고 잘 것이다.

 

나는, 그 애들을 그 학교를 부러워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궁금해 했던 걸까. 길을 가다가 학교 교복을 입은 남, 여학생 연인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학교에 갔으면 저렇게 될 수도 있었을까.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지나가면 나도 저렇게 어울려 다닐 수 있었을까.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제정신이 아니었다.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다. 뒤에서 형제들이 불러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를 쳐다보고 있었다.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내가 학교를 다녔다면 저기 갔겠지. 내가 학교를 갔다면, 내가 학교를 갔다면……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 하는 곳인 줄도 알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에 비해 천배 만 배는 더 할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전교 꼴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내가 학교를 갔으면 저런 애들을 매일 봤을 것이라고.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나는 학생들과 함께 다니며 어울릴 수도 있었을 거라고. 매일 형제들이 아닌, 또래 애들과 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내 어머니와 시장을 갈 때 후줄근한 차림으로 그들과는 다른, 교복이 아닌 다른 옷으로 어머니와 함께 다니면 뭔지 모를 부끄럼 민망함 창피함 그런 것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과 같은 나이의 애인걸 알까? 나는 왜 매일 어머니와 함께 다녀야만 하는 걸까? 왜 아버지와 손잡고 다니고 형제들과 이야기하면서 다니는 걸까. 나는 누구를 위해서 후회하는 걸까. 누구를 탓하고 있는 걸까. 부모님이 걱정하는 걸 나는 더 걱정하는 걸까. 나는 단지 또래 애들 때문에 이러는 걸까. 만날 사람이 없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이러는 걸까. 내 넋두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일까. 16년 동안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아직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풀지 못할 수수께끼다.

 

나는 언제 철이 들까.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제일 큰 문제다. 나는 언제 자신 있게 살 수 있을까. 언제 나 자신에게 뿌듯하게 모두에게 뿌듯하게 살 수 있을까. 그들과 이야기하면 어떤 기분일까. 또래 애들과 얼마나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고작 아는 애의 몇 마디 말에 좋아하는 걸까. 나는 나 이외의 모두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에게만 들려준다. 나는 나만 안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부모님이 나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결국엔 내가 아는 것 전부를 알지 못하듯이.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나? 꿈이 뭔가? 너무 배가 불러서 꿈이 있는데 알지 못하는 건가 너무 광대해서 고르지 못하는 걸까? 한가하게 이거할까 저거 할까 그러고 있나? 다른 애들이 꿈이 없어 우울해할 때 나는 꿈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심하게 킬킬거리고 있나?

언젠가 문화센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학생 한 명이 다른 한명에게 말했다.

-너는 꿈이 뭐야?

-몰라. 없어.

매우 짧고 간단한 답이었다. 나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몰랐다. 그들을 동정하는 건가? 나는 내가 고를 수 있는 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뻐기고 있나? 다른 애들을 조소하고 깔보고 있나? 그들이 불쌍하다고? 학업에 열중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애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건가? 모르겠다. 지금 대답할 수 있는 문제인지. 감정이입을 하니 눈물이 나온다. 눈물샘이 자극돼서 그런 것이다. 무엇 때문에 자극되었나. 내가 허심탄회한 고백을 해서? 거짓이 없어서 아니면 남에게 말하지 못한 것을 글로써 풀어서? 내가 은밀하게 생각했던 것을 사실대로 말해서? 내가 꿈속에서 여자를 만지려고 할 때마다 그 여자는 사라져버린다는 것 때문에? 여자와 자려고 할 때마다 가족이 나타나서 방해한다는 것 때문에?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아서 후회되나 누나에게 욕을 하지 못해서 후회가 되나? 누나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서? 그런 악한 생각을 품어서? 아니면 누나가 자신을 죽이려했다는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품어서? 어쩌면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나가 너무 짜증만 내고 스무 살이 넘었는데 일도 안하고 돈도 안 벌고 집도 안 나가서? 형 때문에 아니면 두 동생,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어렸을 때 우산으로 빗자루로 파리채로 맞은 것 때문에? 내가 맞지 않으려고 온갖 잔꾀를 부린 것 때문에? 나는 내가 반항하는 사춘기의 나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나? 지금 한시가 넘었는데 나는 내 할 말을 다 못했나.

강요가 없어서인가. 부모님 말대로 나는 강제로라도 교육을 받았어야 했나. 무엇이 문제인가 먹고 자고 싸고 문제없이 건강하고. 나는 밖에 나가서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지 않았나, 버릇없게 행동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줄 행동을 하지 않았나, 누군가 나를 나쁘게 보지는 않을까 예의 없는 애로 보지는 않을까. 나는 잘 행동한 걸까 잘못한 걸까 예의 있어 보이는 걸까 싸가지 없어 보이는 걸까. 증자는 하루가 끝나고 세 가지 점을 돌아본다고 했다. 친구와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적이 없는가, 남을 위해 일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적이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적이 없는가. 나는 친구가 없으므로 첫 번째 사항은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남을 위해 일한 적이 없으므로 두 번째 사항도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힌 적이 수없이 많으므로 세 번째 사항은 그냥 상투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터무니없고 헛된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 스스로를 과대망상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까 유일한 사회 공간이 교회라서 그런 것일까.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교회 사람들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다른 홈스쿨 집안이나 우리에 대해서. 애들은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부러워한다. 그만큼 나는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나의 삶이 그들의 삶보다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나도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가 더 나은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도 모르겠다.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속이 상할 때마다 나 자신만의 가상세계에 빠진다. 내가 상담의사를 만나 그에게 내 속을 털어놓는 것.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해서 억울하고 속상해요. 부모님도 내 말을 안 듣고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너무 억울해요. 나는 누군가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한 건가. 얼마나 털어놓지 못한 일들이 많았으면 상상을 해서라도 뱉어내려고 하는가. 눈물이 나옴과 동시에 코도 나온다. 코를 닦으니 코가 아프려 한다. 너무 세게 닦았나. 이제 자야 하나. 잠이 올까. 아주 잘 올까. 나는 무엇에 안식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 무엇을 통해서. 애들을 통해서? 나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아니면 영화 보는 것으로?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인가? 그렇게 내가 스트레스가 많았나? 많다고 해서 학교 다니는 애들처럼 많을 수 있을까? 그들이 나보다 스트레스가 많을까 적을까? 그들마다 다르겠지? 나는 나를 너무 추하게 보고 나는 나를 너무 낮게 바라본다. 낙천적이고 싶다. 나는 너무 비관적이다. 누군가에 의해서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누군가에 의해서겠지. 아니면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내가 공모전에 당선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랑하고 싶어서인 것도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타기 위해서다. 돈을 타서 공부는 안 해도 잔소리를 듣지 않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돈이 무슨 소용인가. 너무 빨리 사라져버리고 너무 빨리 시들어져 버리는데. 돈은 너무나 속절없고 부질없는 것인데. 나는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셋째는 공부를 안 한다고 그래도 문화상품권이라도 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누구를 탓하나? 공부를 안 한 나를 아니면 공부를 억지로 안 시킨 어머니를?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공부는 안 해도 돈을 벌면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로 돈을 벌어야지. 지금 할 수 있는 것으로. 공모전에서 돈을 벌어야지. 알바 공고가 붙어있을 때 내가 성인이었다면 저것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나 저거 해보겠습니다 세상 경험도 하고 힘든 일도 해볼게요 하고 말할 생각을 했다. 내가 형처럼 성인이었다면 저런 걸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힘들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런 걸 할 배짱이 있나 생각했다. 시급 만원이라는데 난 주일에 교회도 안가고 가족들과 놀러가지도 않고 혼자 일해서 간신히 일해서 그것도 운이 좋아서 채용돼 몇 시간 일해 삼만 원쯤 벌면 집에 왔을 때 가족들에게 돈벌어왔어요 하고 내 하루를 거기에 쏟아 붓나. 그리고 밥을 허겁지겁 먹은 다음 방안으로 가서 자나. 주일마다 그렇게 살 배짱이 있나.

 

무엇이 걱정인가. 군대 아니면 사람관계 아니면 돈 아니면 공부 아니면 운동 내 허약함 내소심함 뭐. 너무 놀면서 세월을 보냈다. 노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놀았다. 너무 공부를 안했다. 누가 나에게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수학 문제 또는 다른 문제를 내면 나는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만큼 모른다. 책 좀 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머리맡에 두고 읽다가 잠들 정도로 많이 읽지는 않았다. 영화를 많이 본다 하지만 영화를 제대로 만든 적이 없다. 모르겠다. 지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모르고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SNS에 올라온 애들의 글을 보고 혼란스러워졌다. 부러워해야할지 내 가진 삶에 만족해야할지 축하해야할지 ‘좋아요’를 눌러야할지 뭘 해야 할지 나는 나 자신에 너무 소홀하고 남에게 너무 소홀하다. 남을 신경 쓸 줄 모른다. 나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다. 남들과 얘기할 때 내 일에만 너무 집중한다. 억지로라도 그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나 싶었지만 그런 건 더더욱 싫었다. 지금 한시 25분이고 벌써 2월 9일이 되었다. 그리고 배가 고픈 것 같다. 저녁을 적게 먹은 것 같다. 심란하다. 아는 형,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있다. 그 형이 ‘좋아요’를 누른 글을 봤다. 누가 그러는데 우울하지 않으면 진지한 글이 안 써진 댄다. 맞는 말이다. 김원일도 아는 동생이 죽어가는 와중에 우울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실제로 친동생 한 명이 죽은 적이 있다) 조지 오웰도 병환 중에 1984를 썼다. 그런데 나는 우울한가? 내 글에서 진지함을 볼 수 있나? 나는 모범생, 예의바르고 모범적인 아이처럼 행동한다. 너무 위선적이다. 이게 다 부모님 때문이라고 탓하기는 싫다. 탓할 수 없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결국엔 내 문제, 내 문제이기 때문에 누가 끼어 들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내가 진솔한지 않은지 모르겠다. 이제 생각하기는 여기서 그만해야 하나. 쓸 건 다 썼나 아니면 아직도 가슴속에 묻어놓은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는 건가. 내가 어렸을 때 뭣 모르고 저지른 죄? 해서는 안 될 짓들? 속으로 쌍욕을 해대며 요즘도 그러고 다니고 있는 나? 실컷 욕을 못하니까 숨어서 욕하고 숨어서 엿을 날리나? 누구를 향해 나를 향해? 어렸을 때 그런 짓을 하면 죄책감을 느꼈는데 이제는 수치심마저 사라졌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욕을 중얼거린다. 예전에 차에 타서 반수면 상태에 이르렀을 때 옆에 동생이 부스럭거리자 나도 모르게 시발 어쩌구 할 뻔했다. 그냥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아마 아주 작은 소리로 웅얼웅얼했을 건데 못 알아들었겠지. 나는 잠꼬대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큰일 날 뻔했다 생각했다. 꿈속에서 말하려고 하면 깬다. 나는 두서없이 글이 무엇을 아니,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쓰고 있다. 이제 그만 쓰련다. 자야한다. 계속 쓸 순 없다. 내일 부모님이 온다. 뭐 했니 물으시면 나는 절대 공부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보고 산책하고 운동하고 그랬어요 하겠지 늘 그랬듯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한 대사긴 하지만.

 

이 글은 나의 모든 것을 담은 글이 아니다. 절대로. 누가 보면 정신병자 글인 줄 알겠지만…… 그냥 이제 자련다. 들어가서 안경 벗고. 꿈을 꾸지 못하더라도 꿈을 꾸고 싶은 꿈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꿈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기를. 괴물이 나온다 하더라도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기를. 늦은 밤 아니 이젠 오전, 꽤 긴 글 쓰느라 고생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젠장 한시 43분. 누가 이 글을 보면 어떡하냐고? 상관없다. 아무도 내 컴퓨터를 켜서 이 글을 클릭해 보지 않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겨. 그런 거지. 읽어봤자 내 넋두리인걸. 내 생각인걸. 나의 진심을 담은 생각인걸. 그냥 끝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내 소원이다. 너무 장황한걸 아무튼, 잘 거다. 학교 졸업한 분들 모두에게 축하를 드린다. 나는 얼른 검정고시나 졸업해야겠다. 대학을 가든 안 가든 검정고시는 졸업하고 봐야겠다. 아무튼 졸업하신 모든 분에게 축하드리고 나는 자야겠다. 너무 나만 알고 나밖에 몰라서 죄송하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이제 좀 내 감정이 가라앉은 것 같다. 너무 토해내듯 내뱉었다. 아 맞다 잔다고 했지. 잘 자라. 내일 보자.

 

 

 

수필은 오랜만에 올리는군요. 이 글은 제가 2월 9일 한밤중에 쓴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뭔 생각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제가 진심을 담아서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때까지 수필이란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쓴 적이 없었습니다. 수필쓰는 법을 모르기도 했고 유치찬란한 일기 쓰듯 대충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달랐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진심을 담아 썼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읽기 불편한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허물없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원제도 '어느 홈스쿨러의 독백'이 아닌 '진솔한 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필을 읽고 제가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저의 안 좋은 점만 잔뜩 담겨져 있기 때문에 혹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우려되지만, 제가 이 글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솔직해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필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수필은 진솔한 수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을 올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여러분에게 솔직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은 글틴 여러분에게 처음 공개하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읽겠냐마는, 제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논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 글을 제 가족들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을 좀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의치 않으렵니다. 저는 이 글을 컴퓨터에 묵혀두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이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친구도 생겼고, 내성적인 성격도 고치고 있습니다. 비관적인 집념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형제를 증오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저는 더 이상 저를 증오하지 않습니다. 요즘 저는 평화롭고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공모전을 준비하느라(핑계일지 모르겠지만) 최근 제 글틴 활동이 뜸해진 것 같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것입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무얼 하든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진솔한 글'을 올려봅니다. 읽다가 불쾌한 대목이 등장하면 중단하셔도 됩니다. 여러분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제게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쓴 것이니까요. 이 수필이 넋두리에 불과한 자아도취 글로 그칠지 모른다는 걱정은 그대로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 글은 진심을 담아 쓴 진솔한 글입니다.

 

 

 

neo

추천 콘텐츠

기록사랑 백일장에 다녀오다

2017. 6. 11   어제 백일장에 다녀왔다.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엔 요령을 몰라서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원고지에 바로 썼는데, 가족들 말을 들어보니 그곳에서 나눠준 또 하나의 원고지에 휘갈겨 쓰고 옮기는 방법이 훨씬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 왜 그랬지, 다음에는 미리 써두고 옮겨야겠다 싶었다. 친구와 함께 두 번째로 백일장에 갔을 때는 고려해둔 대로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일이 옮겨 적는 게 힘들었다. 물론 친구는 미리 쓰다가 바로 본지에 썼음에도 나보다 늦게 끝났지만. 그리고 그 두 백일장 모두 떨어졌다. 처음엔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글이었고 두 번째엔 이번엔 전보다 잘 썼는데? 했으나 이야기 구성이 너무 허술해 낙방했다. 억지로 지어낸 소설이어서 그렇기도 했고 어떻게든 짜맞추려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명문고를 다니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학생들이 과외를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 탈락한 게 틀림없었다.   그 뒤로 다시 백일장을 찾았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성남시였지만 상관없었다. 경북이나 목포 같은 먼 지역만 아니면 경험을(그리고 상금?) 위해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날 난생 처음 빨간 버스를 탔다.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오고 의자도 앞쪽을 향해 으리으리하게 빛나는 고급 좌석이었다. 요금도 비쌌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초록 버스는 최근에 720원으로 할인됐지만 이 버스의 요금은 청소년 카드 기준으로 무려 1360원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뒤로 쭉 기대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으니.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김윤아 4집 수록곡 '꿈'을 들었다. 유튜브에서 잊고 있던 자우림 노래를 찾다가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노래가 이렇게 좋을 수 없었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주는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고 꿈을 꾸었네 작고 따뜻한 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 (…)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마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잔잔하다가 갈수록 격해지고 급기야는 응어리진 한이 터져 나오는 듯한 김윤아의 목소리는 터널 속에서 빛을 발하며 울려 퍼졌다. 나는 노래제목처럼 꿈꾸듯 감상했다. 너무 극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노래가 좋은 건 사실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곡조였는데 어쩌면 가수 김윤아의 목소리가 익숙해서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누가 작곡했을까 궁금해져 검색해보았는데 놀랍게도 김윤아 본인이었다. 역시…… 흔히 말하는 대단한 '싱어송라이터(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다)'인가. 여하튼 독자 여러분은 시간 나시면 한번 들어보시길.   버스에서 내려 한차례 갈아탄 다음 서울기록관

  • neo
  • 2017-07-26
몇 달 전 이야기

오늘 나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헛다리짚었다. 교회 주보에서 '김화영'이라는 이름을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나는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를 참 좋아해서 카뮈 관련 서적을 찾다보니 김화영 평론가의 <문학 상상력의 연구>를 읽게 되었고 카뮈 작품을 번역한 사람이 김화영 평론가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주보에 '김화영', 그 이름이 딱 적혀있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때 설마 하고 넘어갔다. 동명이인이겠지, 김화영이라는 이름은 많으니까, 하고. 그런데 주일날 김화영 평론가를 무척 닮은 사람을 목격한 것이다. 전체적인 외관도 그렇고 눈 툭 튀어나온 것도 그렇고 머리숱 적은 것도 그렇고…… 김화영 평론가보다 약간 나이가 적어 보였지만 나는 사람 알아보는 눈이 꽤 있기 때문에(감히 자부해본다) 진정 김화영 평론가일 수 있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 그럴 수 있잖아! 평론가가 글 쓰면서 교회 다닐 수도 있지! 이렇게 멋대로 추측하면서 나는 점점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증거와 몽상을 이리저리 갖다 붙였다. 만약 김화영 평론가가 맞다면, 카뮈에 대해 궁금한 것을 마음껏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조언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김화영 평론가가 서울에 살 확률이 있으니, 내가 다니는 교회에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주보의 김화영에게 문자를 보내기로!(참 무식하다. 하필 택해도 그런 방법을 택하나) 만약 평론가가 맞다면, 그는 매우 놀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가 아니라면 무시하거나 그냥 아니라고 하겠지.   그래서 보냈다. 아주 조심스럽게 써서. 한 10분 뒤 돌아온 말. 자기는 평론가는 아니란다. 내 추측과 망상은 그렇게 끝났다. 너무 섣불리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화영이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에이, 진짜 김화영 평론가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그는 그저 교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흑.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멋대로 추측해본다. 그 사람이 너무 겸손해서, 평론가 맞는데 그냥 자신은 교수일 뿐이라 생각해 '평론가는 아니다'고 한 건 아닐까?  

  • neo
  • 2017-07-12
수영장에 관한 추억들(2)

수영장 안에서 있었던 일들 어쨌든 나는 수영장에 수영을 배우러 간 것이니 버스에서 일어난 일들보다 수영장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잠깐이었고 수영을 배우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버스 안에서 있었던 시간이 수영장 안에서 있었던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버스기사 덕분인가? 예전에 포항에 살 때에는 과거스포츠(가명)인가 다녔었는데 그때는 평영도 못 배우고 왔었다. 2년 전의 수영선생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나마 그곳 대전의 수영선생은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본 수영선생들은 남자 둘인가 셋이었고 여자는 한 명이었는데, 어느 날 여자선생이 나에게 영화 <타짜>를 보았냐는 갑작스런 질문을 하고(그 다음에 한 말은 ‘19금이니까 당연히 못 봤겠지.’였다) 남자선생은 애들 놀아주는 것을 즐거워하는 듯했다. 처음 갔을 때 나는 완전 생 초보여서 어린 초등학생들과 함께 배웠는데, 늘 수영장에 가면 있는 ‘킥판’이라는 물건을 들고 발차기 연습이나 자유형, 배영 등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평영까지 배우고 고급반인가 마스터반인가까지 올라갔는데 드디어 접영을 연습하게 되었고 다이빙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 모든 수영법이 다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자유형은 하면 할수록 숨쉬기가 힘들고, 평영은 느려터진데다 다리 벌리는 것이 짜증나고, 배영은 물이 튀어 코에 물이 들어가고, 접영은 팔을 끝까지 뻗으라고 해서 힘들다. 어쨌든 무슨 수영법이든 힘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러는 동안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생각해내서 한번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전부 짜내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과거 수영장의 추억을 글로 써 다시 되새기고자 하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수영장에 간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여선생이 모두에게 벌을 준다고 딱밤 한대씩을 먹였는데(벌도 참 단순하고 유치하군.ㅋ) 장난치는 수준이었고 딱히 별로 큰 벌 같은 것도 없었다. 여선생이 수영장 안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런지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반대로 수영장에 다녔던 애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수영장 애들은 아직도 얼굴과 체형, 행동들이 상세하게 생각나는데 그 중 하나는 초고도(뭐 초고도일 것까지야 없지만)비만으로서 딱 봐도 엄마가 살 빼라고 수영장에 보낸 것 같았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가끔씩(거의 자주) 과자파티를 하느라(태권도장에서 하는 것처럼) 살은 그대로였고 오히려 더 찔 뿐이었다. 불쌍하기도 하지. 또 그중 한 명은 앞의 애와 너무 비대 되는데 아주 비쩍 말라서 갈비뼈가 다 드러나 보이고(그건 나랑 동생도 마찬가지잖아!)무슨 생선가시 같았다. 해골 같지는 않았지만 수영장 모든 애들 중에서 제일 마른 편이었다. 나랑 내 동생도 꽤 마른 편이었지만, 적어도 좀비가 연상되는 체형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마른 게 찐 것보다 훨씬 낫지. 그 애는 같은 또래 애들보다 키가 더 컸으며 나랑 비슷했다.(내가 작은 걸까?ㅠ) 살을 빼면 키가 더 커지는 것이

  • neo
  • 2016-08-04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익명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가요? 제가 자유게시판에 쓴 글에 달아주신 댓글 잘 읽었어요. 그저 넋두리하듯 적은 글이었는데 누군가는 주의깊게 읽고 있었다니 괜히 쑥쓰러워지네요. 홈스쿨링 중이신 것 같은데, 사회가 정한 틀에 맞춰 차근차근 진학해온 저로서는 굉장히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모로님이 겪은 고민들을 제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로 다른 환경 탓으로) 안타까워지기도 해요. 하지만 저 역시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에 차서 한없이 불안정한 나날을 보냈던(보내는 중인) 사람으로서 모로님이 느꼈을 감정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답니다. 이마도 그런 경험들이 글을 써 나가는 데 양분 역할을 해 주는 것이겠지요. 시간이 흘렀으니 달라진 지금의 모로님의 모습이 궁금해져요. 부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인생이라는 장거리 경주를 완주하게 되길 바래요. 멀리서 응원할게요.

    • 2017-06-23 00:05:20
    익명
    0 /1500
    • 0 /1500
  • 모로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데요, ㅎㅎ 저는 전부터 쭉 잘 살고 있었고 그때도 잘 살고 있었고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저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지금은 정말 많이 변했지요. 용기도 많아졌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도 많이 고쳤습니다.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고요. 더 이상 이상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당.ㅎ

    • 2017-05-15 17:21:32
    모로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