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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관한 추억들(2)

  • 작성자 neo
  • 작성일 2016-08-04
  • 조회수 875

  1. 수영장 안에서 있었던 일들

어쨌든 나는 수영장에 수영을 배우러 간 것이니 버스에서 일어난 일들보다 수영장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잠깐이었고 수영을 배우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버스 안에서 있었던 시간이 수영장 안에서 있었던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버스기사 덕분인가?

예전에 포항에 살 때에는 과거스포츠(가명)인가 다녔었는데 그때는 평영도 못 배우고 왔었다. 2년 전의 수영선생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나마 그곳 대전의 수영선생은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본 수영선생들은 남자 둘인가 셋이었고 여자는 한 명이었는데, 어느 날 여자선생이 나에게 영화 <타짜>를 보았냐는 갑작스런 질문을 하고(그 다음에 한 말은 ‘19금이니까 당연히 못 봤겠지.’였다) 남자선생은 애들 놀아주는 것을 즐거워하는 듯했다. 처음 갔을 때 나는 완전 생 초보여서 어린 초등학생들과 함께 배웠는데, 늘 수영장에 가면 있는 ‘킥판’이라는 물건을 들고 발차기 연습이나 자유형, 배영 등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평영까지 배우고 고급반인가 마스터반인가까지 올라갔는데 드디어 접영을 연습하게 되었고 다이빙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 모든 수영법이 다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자유형은 하면 할수록 숨쉬기가 힘들고, 평영은 느려터진데다 다리 벌리는 것이 짜증나고, 배영은 물이 튀어 코에 물이 들어가고, 접영은 팔을 끝까지 뻗으라고 해서 힘들다. 어쨌든 무슨 수영법이든 힘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러는 동안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생각해내서 한번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전부 짜내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과거 수영장의 추억을 글로 써 다시 되새기고자 하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수영장에 간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여선생이 모두에게 벌을 준다고 딱밤 한대씩을 먹였는데(벌도 참 단순하고 유치하군.ㅋ) 장난치는 수준이었고 딱히 별로 큰 벌 같은 것도 없었다. 여선생이 수영장 안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런지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반대로 수영장에 다녔던 애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수영장 애들은 아직도 얼굴과 체형, 행동들이 상세하게 생각나는데 그 중 하나는 초고도(뭐 초고도일 것까지야 없지만)비만으로서 딱 봐도 엄마가 살 빼라고 수영장에 보낸 것 같았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가끔씩(거의 자주) 과자파티를 하느라(태권도장에서 하는 것처럼) 살은 그대로였고 오히려 더 찔 뿐이었다. 불쌍하기도 하지.

또 그중 한 명은 앞의 애와 너무 비대 되는데 아주 비쩍 말라서 갈비뼈가 다 드러나 보이고(그건 나랑 동생도 마찬가지잖아!)무슨 생선가시 같았다. 해골 같지는 않았지만 수영장 모든 애들 중에서 제일 마른 편이었다. 나랑 내 동생도 꽤 마른 편이었지만, 적어도 좀비가 연상되는 체형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마른 게 찐 것보다 훨씬 낫지. 그 애는 같은 또래 애들보다 키가 더 컸으며 나랑 비슷했다.(내가 작은 걸까?ㅠ) 살을 빼면 키가 더 커지는 것이 사실인가 보다.

또 다른 애들은 대체로 살이 찐 편이었는데(살이 쪘으니 엄마가 보냈을 테고) 잘생긴 애가 단 한명도 없었고 그나마 잘생겨 보이는 애들(물론 다른 못생긴 애들과 비교해서 보면 말이지)은 아주 극소수일 뿐이었다. 나는 그 극소수 중 하나였고 내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ㅎㅎㅎ...(자뻑이 너무 심한 듯)

어떤 애는 너무 떠들고 어떤 애는 조용하고 또 어떤 애는 그저 그렇고 다 각각 생김새며 성격이며 달라서 무슨 가지각색 만화캐릭터를 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이 애들을 만화에 넣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버스를 타고 도착한 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만화에 그려 넣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한창 형 따라 A4용지에 연필로 만화를 그렸으니 말이다.

수영장 안에서의 일과 수영장 들어올 때의 일은 또 달랐다. 일단 도착하면 애들은 우루루 몰려가고 들어가기 전에 꼭 카드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가자하고 확인을 하지 않는 애들도 꽤 있었다.(여러 번 그러다가 들킨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그러래!) 들어가면 훨씬 더 혼란스러웠는데 내가 여자탈의실에 안 가봐서 모르지만 그때가 디즈니 애니메이션<겨울왕국>이 한창 유행했을 때라 남자애들이 줄창 "렛잇고~ 렛잇꼬우~"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니 여자애들은 얼마나 심했겠는가. 버스 타고 집에 돌아갈 때쯤은 여자애들이 항상 뒤쪽에 줄줄이 앉아 합창을 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귀가 썩어서 파고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쩌랴, 버스는 타야하고 소리는 들리는 것을.

탈의실 안에 들어가면(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고난의 시작인데) 눈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연주황색 살덩어리들의 향연이 있어 많이 보기 괴로웠다.(되도록이면 흐리게 보이게 안경을 벗는 요령도 배웠으니 말이다) 샤워장에 들어가면 더했는데 애들이 수영복을 입고 목욕탕에 들어가 옆의 할배들이 갑(甲)질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거기서 첨벙 첨벙대며 꺄르륵 꺄르륵 시끄럽게 떠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마구 갑질을 퍼붓고 싶은 충동이 일어 몇 번 하긴 했으나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후에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뭐라 하기도 귀찮다)

수영복을 모두 착용하고 시간이 되면 그제야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조지 오웰 <1984년>에 나오는 ‘2분간 증오’ 노래처럼 끔찍하게 국민체조 음악이 틀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 음악이 <2분간 증오>보다 훨씬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1984년>처럼 그 음악에 따라 스트레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도저히 끔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춤, 체조 좋아하는 애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정말로 1분 1초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옆의 애들이 하는 것을 보고 차차 따라 하기 시작했었다. 그러고 며칠 지나니 조금씩 익숙해졌고, 그 끔찍한 시간이 끝나면(사실 채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애들은 우르르 몰려가서 각자의 ‘킥판’을 가지고 수영을 하러 물에 풍덩 빠지기 시작했다. 그럼 그때부터 수영 연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고 있으면 잠수복을 입은 여선생이나 항문과 음모가 거의 다 보이게 아슬아슬한 수영복(거의 삼각팬티 수준)을 입은 남선생이 등장했는데, 그 남선생을 보면 언제나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저 수영복(팬티인지 수영복인지)이 언젠가는 벗겨져서 그 부분의 음모가 다 드러나겠지....’하고 말이다. 수영선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튀어나온 배, 근육은 하나도 없고(식스 팩은 무슨 이 팩도 안 되었다.) 전부 다 지방과 비계, 거의 항문이 보일락 말락 하는 수영복을 입은 남선생은 보면 볼수록 구역질이 나왔다. 내가 다 창피해 죽겠네. 부끄럽지도 않나?...... 어쨌든 와서 수영을 가르쳐주긴 가르쳐주는데 제일 싫은 것 중에 하나가 내 몸을 만지는 것이었다.(물론 가르쳐주려면 어쩔 수 없이 만져야겠지) 그리고 하다가 킥판으로 물을 쳐댈 때면 팡 꽝 하고 큰 굉음이 났었다.(수영장이 넓고 잘 울려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럴 때면 가끔씩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수영선생들이 크게 말하거나 소리를 지를 때면 내가 뭘 잘못 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뚱뚱한 애들은 도대체 수영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고 앞에서 말했듯이 가끔씩 과자파티를 하기 때문에, 더러운 비곗덩어리들이(나는 비만을 증오한다. 물론 증오하는 것이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얽힌 사연을 말하는 건 나중 일로 하기로 한다.) 더러운 과자 찌꺼기를 더러운 손에 묻히고 더러운 냄새를 풍길 때면 온몸이 두드러기라도 난 것처럼 근질거리고 토악질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내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 중 하나가 바로 애들이 과자 먹고 묻힌 손 냄새다) 과자파티 할 때에는 수영장에서 과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애들이 각자 한명마다 하나씩 갖고 와야 해서 번거로운데다 귀찮고 짜증난다. 다른 애들은 모르지만 과자파티하기 싫은 나랑 동생도 어쩔 수 없이 과자를 사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부당하고 화딱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자를 가져오지 않으면 과자 못 먹는 다나 어쨌다나?(어쩌라고 어차피 우리들은 과자를 먹기 싫어하는데) 어쨌거나 내 동생과 함께 과자를 가져가서, 수영장이니까 식탁, 의자 그런 가구도 없이 그냥 바닥에다가 신문지 같은 것만 깔아놓고 거기다가 봉지를 뜯어서 과자를 놓아둔다. 거기 모인 모든 애들이 쭈그려 앉아 매우 불편한 자세로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애들이 가지고 오는 건 대부분 다 값싸고 싸구려인 질소봉지과자이고, 그것을 그대로 뜯어다가 흡입한다. 표현이 이런 게 아니라 진짜 ‘흡입’하는 것이다. 나는 먹기 싫어서 그저 몇 개만 주워 먹는 셈이지만, 다른 애들은 귀중한 보물 하나라도 더 챙겨야 한다는 듯이 과자 쟁탈전을 벌이면서 폭풍 흡입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애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한데 모여서 팬티 같은 수영복만 입은 채 손과 손끼리 닿으면서(웩) 게걸스럽게 우적우적 거리는 것을 보면 좀 많이.... 그렇다. 다 먹고 나면 손과 온 몸이 찝찝하고 끈적거리고 몹시 불쾌한데다 씻고 나면 두 레일(앞에서 설명을 안 한 것 같은데, 수영장은 네 레일 정도로 나뉘어 있다)이나 세 레일에서만 수영하고 물놀이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좁은 공간에서 과자 묻은 애들과 수영을 함께 해야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환경 참 더러웠다)

아무튼 과자파티는 정말 최악이었고 그래서 먹는 척만 하고 하나도 안 먹은 적이 있었다. 자기 먹느라 바빠서 아무도 눈치 못 채더라는 것.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는데, 전에(한 5년 전인가)'김현민(가명)'이라는 장애인 같은 애가(사실 장애인인데 그 장애인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 있어서 몇 번 만나다가 이사 가면서 소식이 없어졌었다. 그런데 그 뒤로 수영장에 몇 달쯤인가 다니고 있었을 때 그 김현민과 정말 닮은, 진짜 장애인 같이 생긴 애가 타 있었던 것이다.(어쩌면 진짜 장애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애가 처음 와서 버스를 탔을 때, 버스 기사가 "너 어디 살아?!"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나보다 더 커 보이는 그 애는 "코아요."(엑스포코아를 줄인 말) 라고 했고, 애들 떠드는 소리에 시끄러워서 잘 못 들은 아저씨는 "뭐라고?! 안 들려!" 라고 했다. 그래서 그 애는 다시 조금 더 작게(?)말했는데,(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민동이요.." 라고 하는 것이다. 갑자기 엑스포코아에서 전민동으로 간격이 더 넓어졌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버스기사는 또 "뭐라고? 안 들려! 어디 산다고??"라고 했고, 그 장애인 같은 애는 다시 "대, 대전이요..." 라고 말할 뿐이었다. 엑스포코아에서 전민동으로, 전민동에서 대전으로.... 아이의 대답은 점점 더 분포지가 멀어지고 버스기사의 질문도 더욱 절박해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충청북도인가? 대한민국? 지구? 은하계? 결국엔 우주?? ㅋㅋㅋ 그렇게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나만 웃었던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 김현민 비슷하게 생긴 애는 수영장 나올 날을 빼먹는 경우가 잦았고, 그 사건 이후로 다시는 보지 못했다. 또한 수영장에 관한 별로 좋지 않은 추억들은 이 애들뿐만이 아니다. 수영을 하고 나면 늘 온 몸이 뻐득거리는데, 그 이유는 바로 락스와 물을 함께 섞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입이 자꾸 마르고 냄새도 이상하게 나고 하지만, 수영장 하줌마(아줌마와 하마를 병합한 언어)와 온몸이 쭈글거리는 할매의 더러운 때를 덜어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어쩌면 물에 락스를 섞은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수영장에 있는 끔찍한 것들은 많은데, 수경을 끼고 물속에 들어가서 자세히 보면 가래 같은 물질이 둥둥 떠다니거나 흔히 보이는 밴드가 흘러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찌꺼기들이 헤엄을 치기도 한다. 형은 물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탐폰’을 본 적도 있다고 한다.(물론 피가 묻은 상태는 아니었고...)

아무튼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왜 나에게는 이렇게 '수영장 안은 더럽고 지저분하다'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걸까? 수영장이 원래 더러운 걸까, 내가 오버하는 걸까, 아니면 관리를 소홀히 해서 그런 걸까?...... 그렇게 생각한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결론은 시설이 썩었다는 것. 정부가 관리를 하지 않아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답은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사실이긴 했다.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부정할 수도 없고 당연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더욱 화가 뻗칠 뿐이었다. 돈 내고 다니는 수영장에 억울하게 더럽혀져야 하는 것이다.(물론 이 부분은 조금 과장한 것도 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그래서 만약에 독자 여러분이 수영장을 다니고 싶다면 오래 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피부가 뻑뻑해지고, 머리카락이 탈색되고, 아토피에 걸릴 수도 있고, 지나가는 할매의 더러운 몸에 닿을 수도 있고, 목이 굉장히 말라질 테니까. 그래도 수영장을 다녔을 때 좋은 점도 있다. 뭐든지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그래서 나는 혹시나 다른 좋은 추억이 있는지 떠올려보기로 했다.(물론 좋고 깨끗한 수영장도 있겠지만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할배들이 삿대질한 것, 애들이 지르는 굉음을 들은 것, 수영선생의 배를 본 것 등등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좋은 점도 있긴 하다. 수영장의 최대 장점은 바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 외에는 딱히 다른 게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수영장 밖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3에 계속)

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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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랑 백일장에 다녀오다

2017. 6. 11   어제 백일장에 다녀왔다.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엔 요령을 몰라서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원고지에 바로 썼는데, 가족들 말을 들어보니 그곳에서 나눠준 또 하나의 원고지에 휘갈겨 쓰고 옮기는 방법이 훨씬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 왜 그랬지, 다음에는 미리 써두고 옮겨야겠다 싶었다. 친구와 함께 두 번째로 백일장에 갔을 때는 고려해둔 대로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일이 옮겨 적는 게 힘들었다. 물론 친구는 미리 쓰다가 바로 본지에 썼음에도 나보다 늦게 끝났지만. 그리고 그 두 백일장 모두 떨어졌다. 처음엔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글이었고 두 번째엔 이번엔 전보다 잘 썼는데? 했으나 이야기 구성이 너무 허술해 낙방했다. 억지로 지어낸 소설이어서 그렇기도 했고 어떻게든 짜맞추려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명문고를 다니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학생들이 과외를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 탈락한 게 틀림없었다.   그 뒤로 다시 백일장을 찾았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성남시였지만 상관없었다. 경북이나 목포 같은 먼 지역만 아니면 경험을(그리고 상금?) 위해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날 난생 처음 빨간 버스를 탔다.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오고 의자도 앞쪽을 향해 으리으리하게 빛나는 고급 좌석이었다. 요금도 비쌌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초록 버스는 최근에 720원으로 할인됐지만 이 버스의 요금은 청소년 카드 기준으로 무려 1360원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뒤로 쭉 기대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으니.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김윤아 4집 수록곡 '꿈'을 들었다. 유튜브에서 잊고 있던 자우림 노래를 찾다가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노래가 이렇게 좋을 수 없었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주는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고 꿈을 꾸었네 작고 따뜻한 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 (…)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마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잔잔하다가 갈수록 격해지고 급기야는 응어리진 한이 터져 나오는 듯한 김윤아의 목소리는 터널 속에서 빛을 발하며 울려 퍼졌다. 나는 노래제목처럼 꿈꾸듯 감상했다. 너무 극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노래가 좋은 건 사실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곡조였는데 어쩌면 가수 김윤아의 목소리가 익숙해서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누가 작곡했을까 궁금해져 검색해보았는데 놀랍게도 김윤아 본인이었다. 역시…… 흔히 말하는 대단한 '싱어송라이터(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다)'인가. 여하튼 독자 여러분은 시간 나시면 한번 들어보시길.   버스에서 내려 한차례 갈아탄 다음 서울기록관

  • neo
  • 2017-07-26
몇 달 전 이야기

오늘 나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헛다리짚었다. 교회 주보에서 '김화영'이라는 이름을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나는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를 참 좋아해서 카뮈 관련 서적을 찾다보니 김화영 평론가의 <문학 상상력의 연구>를 읽게 되었고 카뮈 작품을 번역한 사람이 김화영 평론가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주보에 '김화영', 그 이름이 딱 적혀있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때 설마 하고 넘어갔다. 동명이인이겠지, 김화영이라는 이름은 많으니까, 하고. 그런데 주일날 김화영 평론가를 무척 닮은 사람을 목격한 것이다. 전체적인 외관도 그렇고 눈 툭 튀어나온 것도 그렇고 머리숱 적은 것도 그렇고…… 김화영 평론가보다 약간 나이가 적어 보였지만 나는 사람 알아보는 눈이 꽤 있기 때문에(감히 자부해본다) 진정 김화영 평론가일 수 있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 그럴 수 있잖아! 평론가가 글 쓰면서 교회 다닐 수도 있지! 이렇게 멋대로 추측하면서 나는 점점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증거와 몽상을 이리저리 갖다 붙였다. 만약 김화영 평론가가 맞다면, 카뮈에 대해 궁금한 것을 마음껏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조언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김화영 평론가가 서울에 살 확률이 있으니, 내가 다니는 교회에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주보의 김화영에게 문자를 보내기로!(참 무식하다. 하필 택해도 그런 방법을 택하나) 만약 평론가가 맞다면, 그는 매우 놀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가 아니라면 무시하거나 그냥 아니라고 하겠지.   그래서 보냈다. 아주 조심스럽게 써서. 한 10분 뒤 돌아온 말. 자기는 평론가는 아니란다. 내 추측과 망상은 그렇게 끝났다. 너무 섣불리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화영이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에이, 진짜 김화영 평론가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그는 그저 교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흑.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멋대로 추측해본다. 그 사람이 너무 겸손해서, 평론가 맞는데 그냥 자신은 교수일 뿐이라 생각해 '평론가는 아니다'고 한 건 아닐까?  

  • neo
  • 2017-07-12
어느 홈스쿨러의 독백

누군가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3년 동안 뭘 했을까? 공부를 했나 효도를 했나 돈을 벌었나? 친구를 만들었나? 나 자신을 잘 돌보았나, 남을 잘 돌보았나? 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할 수밖에 없다. 나의 학력은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뿌듯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뿌듯하지 못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놀기만 했다. 놀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 놀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다. 나는 사람 사귀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 무지하고 미숙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도중에 중학교가 보이곤 했는데, 거기엔 나와 같은 나이의 청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곳이 무척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갔으면 왕따를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땠을까'였다. 내가 저기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보다 공부를 잘했을까 체력이 좋았을까 아니면 훨씬 괴롭고 우울했을까. 저 애들은 행복할까. 나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저기 갔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학교는 항상 범접할 수 없는, 베일에 싸인 미지의 장소였다.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이자 타지였다. 나는 학교 다니는 애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애들을 만났을 때 나는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얘기하고 싶었지만 얘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다니는 학교와 그들의 이야기를 책 또는 영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학교는 공포와 폭력의 세상으로 표현되었다. 나는 영상물을 볼 때마다 학교에 가지 않은 게 정말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범죄와 학대로 이루어진 곳이라 생각했다. 내가 학교를 갔으면 무서운 일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소심해서 친구는커녕 왕따만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물론 행복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가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왕따 당하는 애들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도 행복할 때가 있고 불행할 때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행복할 때가 많느냐 불행할 때가 많느냐였다.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울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사귈 수 있었을까. 애들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공부를 못해서 괴로워했을까. 그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져 그들과 관심사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간다 해서 친구가 생기지 못하는 걸까. 내가 노력을 안해서일까. 모든 게 그 때문일까. 그곳에 갔으면 나도 지금쯤 졸업을 했을까.   나는 아직 몽정을 하지 못했다. 물론 늦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꿈에서는 아니, 나는 꿈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딜 가나 가족이 따라온다. 가족은 내 인생의 99%다. 내 무의식

  • neo
  • 20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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