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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쓴 시

  • 작성자 슈뢰딩거
  • 작성일 2014-06-26
  • 조회수 593

 

효원아 학교 수위실에 좀 가 봐.

네?

이불이랑 책 제본한 거랑 맡겨뒀으니까, 응? 저녁 먹고 가.

 

 어머니를 못 본 지도 벌써 일 주일이 다 됐다. 6월 모의고사를 보고 나간 외박을 마지막으로 나는 수능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집에 갈 수 없다. 앞으로 144일, 하고 헤아리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 저편에 있을 어머니는 날 못 보실 텐데도.

 

안녕히 들어가세요.

그래. 밥 꼭 먹고. 비타민도 먹어.

 

 그녀의 음성이 뚝 끊겼다. 나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한 어머니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은 지도 두 주가 넘어가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셨다. 수화기에 귀를 아프도록 꼭 붙여야 겨우 들릴 만큼 여린 속삭임뿐만이었다.

 

 그래도 외박을 가 집에서 지낸 주말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신 편이었다. 어머니의 입원으로 집은 어수선해져 있었고, 며칠 전에야 퇴원한 어머니는 조금 움직이는 것도 힘에 부쳐 하셨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무거운 김치통도 번쩍 들어 올리시고, 청소기를 마구 휘두르시곤 했었기에, 내게 그녀의 무력함은 몹시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안방 불을 끄고 문을 닫고 거실로 나오면서, 나는 벽에 붙어 있었던 종이쪽을 떠올렸다. 갑상선 수술 환자를 위한 체조, 하루 다섯 번씩 따라 하세요. 고개를 왼쪽으로 오 초. 오른쪽으로 오 초. 나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그 체조를 따라해 보았다.

 

 어머니는 주말 내내 집에 계셨지만 그래도 목에 두르신 스카프를 풀지 않으셨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알았다. 빗장뼈의 한가운데 오목한 곳, 거기에 뭐에 물린 것마냥 둥그런 실밥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었다.

 

 

 토요일의 저녁식사 자리였다. 내일이면 다시 학교로 가야 하는 나를 위해서 할머니께선 갈비를 끓여 오셨다. 가족이 우글우글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은채, 서효진, 아버지, 유지연, 유시연, 외숙모와 외숙부, 소미 외숙모, 큰외숙부, 에머슨과 줄리아 그리고 어머니까지. 할머니께선 내가 키가 좀 더 큰 것 같다고 생각하셨고 숙모는 내 시험 성적을 궁금해 하셨다. 나는 그럭저럭 잘 봤어요, 하고 대답했고 다들 즐거워했다. 사실 내가 완전 망했어요, 라고 말했더라도 같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워했을 것이다. 사람이 열 명 넘게 사는 집이지만 다 같이 모여 식사하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가족 모두가 들떠 있었다.

 

 그때 소란을 뚫고 지나가는 정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기침 소리였다. 할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시고 나서 하시는 잔기침이나, 숙부가 담배를 피우고 나서 뱉는 기침과는 달랐다. 훨씬 더 날카롭고 차가운, 쟁쟁 울리는 소리. 탁자 위를 침묵이 훑고 지나갔다.

 

 

아유, 또 이러네. 다들 신경쓰지 마요. 밥 식을라. 괜찮다니까.

 

 줄리아는 슬슬 눈치를 보더니 에머슨에게 영어로 뭐라 속삭였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 둘 뿐만이 아니라 그 식탁에 앉은 모두가 '괜찮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젓가락을 꿴 내 오른손이 떨렸다. 나는 맑은 토란국에 반들반들 비치는 내 형상을 내려다보았다.

 

먹어요, 빨리. 자기도, 응?

엄마.

응?

말하지 마세요.

모두의 당혹스러워하는 눈길이 나를 쿡쿡 찔렀다. 나는 눈을 내리깐 채 말을 이었다.

말씀하시면 목이 아프잖아요.

괜찮다니까. 이건 감기 걸려서 그래. 상처도 다 아물었고. 봐, 응.

 

 맞은편에 앉아 있던 어머니께서 목에 감긴 손수건을 들어올렸다. 거기 있었다. 웃는 입모양처럼 둥그렇게 째진 자국이 있었다. 반투명한 살색 반창고 아래 가려진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었다.

 

괜찮다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게 일주일 전이었다.

 

 달포 전 나는 어머니의 암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고 떨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으려 애쓰며,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어머니가 수술실로 들어가던 그 날 밤에도 나는 기숙사 침대에 웅크려 잠에 들려 애쓰고 있었다. 아무 일 없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내일 아침에 전화해야지, 하면서. 그러나 그 때도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요행히 수술은 별 탈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내게 몰래 전화해 가르쳐 주셨다. 갑상선 말고도 오른쪽 림프절을 다 떼어 냈다, 혹시 몰라 방사선 치료를 받을 계획이다. 너는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생물 시간에 배웠던 림프에 대해 떠올렸다.

ㄱ. 판막이 있다.

ㄴ. 순환계의 일부이다.

ㄷ. 면역 작용의 터전이다.

ㄹ. 림프구의 일종으로 2차 면역 반응에서 B림프구를 활성화시켜 형질 세포로 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보조 T세포를 비롯, 세포성 면역 반응의 중심이 되는 킬러 T 세포는 림프절 흉선Thymus에서 성숙된다.

 

 내가 깨달은 것이라고는 어머니가 평생 감기 하나를 무서워하시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 그리고 머리카락이 빠질 거라는 사실 그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것조차 모르고 계셨다.

 

 

 나는 저녁을 먹고 경비실로 향했다. 운동장 끝, 학교 정문 앞을 차지한 경비실은 기숙사생들에게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다. 우리들에게 들어오는 택배는 모두 그 곳을 거친다. 어머니들은 자주 짐을 맡겨 놓으시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저씨가 아는 체를 했다.

 

잘 왔네.

안녕하세요.

저거 다 들고 갈 수 있어?

 

 커다란 코스트코 백 하나, 비닐봉투가 두 개였다. 나는 어깨에 짐을 짊어졌다. 커다란 가방에 든 건 이불이었고 다른 건 책들이었다.

 

어유 장사네.

이불이라서 안 무거워요.

그래.

안녕히 계세요.

 

 짐이 커다란 탓에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로 기숙사로 난 길을 걸었다. 등으로 문을 밀치고 방에 들어가 주저앉고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짐을 풀었다. 얇은 이불과 베개 커버, 시트가 있었다. 비닐봉투 안에는 책과 라면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나는 책 표지에 붙어 있던 종이쪽을 잡아떼었다.

 

 

효원아

침대패드는 여름이라

땀이 많이 나니까

침대 위에 깔고 써라.

보라색 스프레드는

이불 대신으로 쓰렴.

베개커버도 바꿔 쓰고.

수 1 A형 상, 하는

중고거래되는 대로

학교로 보내도록 할께.

이번주말 부터

장마비가 온다고 하니까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넘어지지도 말고 잘 지내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였다. 나는 그만 고개를 숙였다. 눈꺼풀이 따끔따끔하고 코가 콱 막히는 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할게, 가 아니라 할께이고 장맛비가 아닌 장마비였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사랑이었다. 넘치고 흐르는 어머니의 사랑이 거기 있었다.

 

 한 글자 한 줄을 읽을 때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고 코끝이 막 시큰거릴 정도로 아름다운, 사랑으로 쓴 글. 내가 자라서 아이를 갖고, 내 아이를 먼 곳에 보내고, 그의 안위를 걱정하며 짧게나마 편지를 쓰는 날까지 나는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글은 쓰지 못할 것이었다.

 내가 당신을 생각함이 당신이 나를 사랑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한 마디 한 마디 쉰 목소리로 시를 쓰는 이상, 나는 장맛비 내리는 날에도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

이번 년도 EBS 교재 국어 B형 N제에 피천득 씨의 수필이 실려 있어요.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餘韻)이 숨어 있다.
수필의 빛깔은 황홀 찬란(恍惚燦爛)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頹落)하여 추(醜)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 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率直)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讀者)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소설이나 시와는 또 다른 일상의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게 수필이 아닐까 생각해요. 결국 문학이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제일 삶에 가깝다는 점에서 수필의 위치는 참 특이한 것 같아요.

저도 어머니처럼 절로 입꼬리가 씰룩이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글을 쓰고 싶어요 ㅎㅎ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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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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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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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딩거
  • 201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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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아휴,,,

    • 2014-06-30 10: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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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사랑 행복하죠.

    • 2014-06-27 22: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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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님의 병이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없는 사랑이 애절하게 담긴 편지 한 편. 내가 당신을 생각함이 당신이 나를 사랑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한 마디 한 마디 쉰 목소리로 시를 쓰는 이상, 나는 장맛비 내리는 날에도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이 제일 마음 속에서 맴돕니다. 어머님에게서 솔직함과 삶의 향기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 2014-06-27 14:21:0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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