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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羽化

  • 작성자 슈뢰딩거
  • 작성일 2014-05-06
  • 조회수 478

羽化

 

학교 근처의 박물관에 봉사를 간 적이 있다. 생물을 잘 하는 아이로 뽑혀 갔지만 정작 하는 일은 없었다. 허벅지께에 오는 꼬마들에게 곤충 모양 배지를 만들어 주고, 뒤집혀 버둥대는 장수풍뎅이를 집게로 제 자리에 돌려놓고 하는 소일거리가 전부였다.

 

그래도 지하 일 층에는 매 달 특별 전시물이 있었다. 매 주 갈 때마다 유리장 안의 곤충들이 바뀌었다. 눈 아프도록 번쩍이는 아칸소풍뎅이였다가, 날개가 투명한 유리창나비였다가, 날개 한 쪽이 내 손바닥만한 나비가 꽂혀 있거나 했다. 그 때는 누에였다. 뽕밭 할 때 그 누에. 관장님은 유리장을 세 구획으로 나누어 놓아서, 한 쪽에는 두 잠 잔 누에를, 가운데는 다섯 잠짜리 누에를 잔뜩 올려놓으셨다. 누에들은 저마다 바삐 뽕잎을 퍼먹었다. 허리를 꿈틀대며 잎에 고개를 처박다가 좀 쉬고, 다시 먹기를 반복했다. 내가 가만히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 관장님이 말을 거셨다.

 

꿈이 과학자라고 했었지.

네.

어디 분야?

생물학이요.

과 잘 정해서 가야겠구나. 생각해 둔 게 있니?

뇌과학 공부하고 싶습니다.

 

관장님은 한창 말 없이 맨손으로 누에들을 뒤적였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뽕잎만 찾았다. 관장님은 죽은 누에를 몇 마리 골라내면서 중얼거렸다.

 

내 조카도 뇌과학 해. 맥킬대 연구실 다녀.

맥킬 대학교요.

미국에 있는 거다. 너도 뭘 하려면 꼭 미국에 가야 돼.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몇 번 접힌 휴지가 나왔다. 관장님은 죽은 누에들을 휴지에 싼 다음 다시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머니 속에서 애벌레들이 터지거나 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는 자기 일이 다 끝났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거 고치 좀 치워둬라.

예?

세 번째 칸에, 저기 갈라진 거 버리라고.

왜요?

조금 있으면 나방 나온다. 날아다니기 전에 버려야지.

 

관장님은 계단을 올라가며 내게 말했다. 지하 계단에 그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나는 그제서야 세 번째 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계란을 담을 때 쓰는 이십 오 칸짜리 판에 고치가 다섯 개 정도가 놓여 있었는데, 그 중 두 개 정도가 갈라져 있었다.

 

아니, 터져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나머지 세 개는 그냥 멀쩡했다. 적어도 눈으로 보기에는. 터진 두 개도 마찬가지였다. 끝이 조금 찣어져 있을 뿐이지 뭐 별다른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금방 나방이 나온다니, 궁금증이 치밀어올랐다. 마침 사람이 없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나는 나방이 고치에서 나오는 걸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정말 진 빠지는 일이었다. 나올 듯 말 듯, 고치는 죽은 듯 가만히 있다가 조금 흔들거릴 뿐이었다. 관장님의 '조금'은 십 분, 이십 분이 되어 갔다. 나는 유리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굼벵이에게 물도 뿌려줘야 했고 애사슴벌레가 또 뒤집어져 있었다. 한 바퀴 전시실을 돌고 혹시나 해서 다시 유리장 앞에 섰을 때였다.

고치 하나에서 나방이 힘겹게 몸을 내밀고 있었다. 수컷일까? 더듬이가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머리, 다리 한 짝, 다리 한 짝 하는 순으로 천천히 몸을 내밀었다. 정말 느렸다. 얇고 보잘것없는 다리 하나를 내미는 데 어림잡아 삼 분이 걸릴 정도였다. 나는 슬그머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네가 나와야 버리든 말든 할 거 아냐, 하면서.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그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추어 서 버렸다. 날개를 반쯤 내민 채 고치와 함께 멈춘 것이었다. 나는 집게 끝으로 슬쩍 계란 판을 흔들어 버렸다. 죽은 것이었다.

나는 오히려 안도하면서 집게로 고치와 나방을 집어 가지고서는 화장실 변기에 빠트렸다. 그는 물 위를 가볍게 동동 떠다녔다. 나는 변기 뚜껑을 닫고 레버를 내렸다. 하수구가 나방을 꼴깍꼴깍 삼키는 소리를 냈다.

 

 

 

그건 작년 여름, 고등학교 이 학년 여름 방학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몇 주 전, 고등학교 삼 학년의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사 자리였고, 내 옆에는 둘째가 맞은편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 막내가 앉아 있었다. 막내는 내 몫으로 나온 파전을 빼앗아 먹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는 농담하듯 입을 여셨다.

 

너 요즘 피곤하거나 그러지 않아?

고삼이니까 맨날 그러죠.

그런 거 말고, 막 죽을 듯 그러는 거.

그런 거 없어요. 왜요?

목에 혹이 생겼대.

네?

유전적인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애들도 다 검사해보라 하시대.

혹이 왜요......, 어디에요.

갑상샘에.

 

나는 일부러 침묵을 부수었다.

 

양성이에요 음성이에요?

모르지.

 

그냥 거기까지였다. 나는 뭔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소고기 숯불구이를 퍼먹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먹었다. 입을 말이 아닌 고기로 채우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나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새벽 한 시에 자고, 다섯 시에 일어나는 생활. 몇몇 친구들에게는 지나가듯 말을 해 놓았지만, 그들도 나도 별 걱정은 없었다. 나조차 그 날 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금방 잊어버렸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갔다. 고 삼의 시간은 적어도 두 배쯤 빨라서, 내 기억 속에선 그 저녁이 얼마간 흐려져 있었다.

 

교보에 담아놓은 책만 사 주면 돼요.

그래. 딴 건 없고?

응.

밥 꼭 먹고, 잘 쉬고.

엄마도 쉬세요. 목도 안 좋잖아.

목?

기묘한 정적이었다. 나는 멋쩍어져서 말을 더듬었다.

엄마 갑상선.......

동생이 말했니?

아니, 엄마가 밥 먹을 때.......

 

얄팍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편에서 어머니가 숨을 들이쉬었다.

 

네가 농담으로 알아들은 거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지.

진짜에요?

아직 검사 결과 안 나왔으니까 모르는 거지.

그래도.

너 이럴까 봐 말 안하려고 한 거야. 응? 걱정하지 말고, 가서 공부 해.

 

어머니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적어도 나는 코끝이 시큰했다. 전화가 끊겼고, 나는 핸드폰을 베개 아래로 밀어넣었다. 이층 침대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서 나는 부러 숨을 쉬지 않았다. 방 안엔 나 혼자뿐이었고 교실로 가면서도 아무도 마주치지 못했다. 내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고 나서야 숨이 턱 막혔다. 샤프가 덜덜 떨렸다. 아니, 내 손이 자꾸 떨었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처음 꺼낸 건 다음 날 점심 시간에서였다. 나는 불러다 놓고 대뜸 말을 건넸다.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라고.

내가 그녀가 알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선 그녀가 내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년 전의 여름 내가 그녀의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어서기도 했다.

 

나는 사실 그녀에게서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별 일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 그건 별로 큰 병이 아니야. 나는 그런 말로 걱정을 지워버리고 싶어서 그녀에게 매달린 것이었다. 그 때의 그녀와 비교하면 정말 끔찍한 겁쟁이였다.

 

 

이 년 전에,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나는 그녀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을 오래도록 탔다. 나는 처음 한 두 시간은 숙연했지만, 이내 마음이 들떴다. 우연히 좋아하던 여자아이 옆에 앉아서였다. 평소 말이 없었던 그애와 이것저것 대화하며 나는 심지어 웃고 떠들기까지 했다. 절친한 친구의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며 즐거워하던 것이었다.

 

거기서도 그녀는 덤덤했다. 아니, 적어도 덤덤해보였다.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을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힘내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랬던 주제에 나는 그녀로부터, 그리고 그녀를 제외하고도 내가 말을 건네는 모두에게로부터 동정과 위안을 바라고 있었다. 열 살짜리 어린애처럼.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가 내년에 스무 살이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 걱정에 어머니가 당신의 병을 제대로 알리시지도 못하는 스무 살. 열 살이나 다름없는 스무 살.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데도 갑작스레 어른의 길목에 놓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병을 비롯해, 내 삶을 가로지를 모든 가시밭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그 동안 내게는 별 고민도 고통도 없었다. 이십 년 짧은 삶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은 적었다. 입고 먹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랬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 달라고 하면 그만이었고, 용돈도 달라는 대로였다. 별 생각 없이 잘만 살아 왔던 거다. 어머니가 차린 밥을 먹고, 골라 주신 옷을 입고, 좀 더 커서는 급식을 먹고 교복을 입었다. 여태껏 그냥 몸뚱이만 불려 왔을 뿐이었다.

 

나는 슬퍼하는 법도 몰랐다. 너무 쉽게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되도록 알려주지 않으려 들었고, 나 역시 부러 겪으러 들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것은 그 동안 내 몫이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타인의 모든 것도 하찮아 보였다. 내 가시밭길을 걸어 본 적이 없으니 다른 이의 가시밭길을 알 리가 없었다. 글 몇 자 읽었다고, 나는 젠체하며 책들을 무시하곤 했다. 별 것 아닌 일을 질질 늘여 쓴다, 감상적이다 하면서. 그러나 나는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슬픔도 고통도 알지 못했다. 나는 남이 겪었을 모든 불행을, 슬픔을, 탄생과 절망과 기쁨을 고작 몇 줄로 이해하려 했고 그것마저 지겹다며 하품해대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스친다. 그 나방은 날개를 말리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비상을 준비하고 있던 그의 생명을 짓눌러 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랜 애벌레 시절 동안 뽕을 씹으며 하늘을 나는 꿈을 꿔 왔을 그를 하수구에 빠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토록 어리석은 내게, 어머니는 당신의 병이라는 부담을 지울 수 없으셨을 거다. 내가 묻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끝까지 당신의 병을 말하지 않으셨을까.

 

나는 과연 고치에서 나갈 자격이 있는 걸까, 날개를 말릴 자격은 있는 걸까. 두렵다.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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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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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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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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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뢰딩거님 박물관 봉사활동 참 멋진걸요. 벌레를 뒤집다니 호호. 이런 거 배워보고 싶어요. 이젠 안 하나요? 슈뢰딩거님께 설명도 듣고 싶어요.

    • 2014-05-18 21:16:1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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