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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안의 몸

  • 작성자 슈뢰딩거
  • 작성일 2014-04-20
  • 조회수 413

품 안의 몸

 

요 며칠 전, 병원도 갈 겸 해서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병원을 다녀온 나는 그대로 안방에 들어가 누워 버렸다. 내 방이 있는 2층으로 가기도 힘들 만큼 지친 것이었다. 교복도 벗지 않고 불도 끄지 않은 채, 이불만 겨우 덮어쓰고는 잠들어 버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비몽사몽 간에 저만치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야, 큰오빠 왔나."

"오빠 안방에서 잔다. 깨우지 마라."

"안 깨울긴디....... 나도 오빠 옆에서 잘 끼다.“

 

저 기지배가! 하는 어머니의 고함이 멀어지고, 곧이어 뭔가 따뜻한 게 이불을 들치고 들어왔다. 오빠, 오빠 하면서 꼼틀대는 건 막내였다. 올해로 초등학생이 된 막내. 나는 이불 자락을 끌어다 덮어 주고는 다시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옆에서 자꾸 누군가 오빠야, 자나 하고 묻고 있었다.

 

내가 깨어난 건 세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어머니의 말씀을 빌리자면 '낮잠 한 번 징허게도 잤다'. 늦은 저녁을 받아먹고 나서 다시 향한 안방의 침대엔 막내가 두 팔을 벌리고 누워 있었다. 쬐끄마한 게 뭐가 피곤한지 벌써 코골이가 제법이었다. 나는 불을 끄고 문을 닫아주면서 7년 전의 겨울을 떠올렸다.

 

 

 

막내를 처음 마주한 건 그애가 태어나고도 이 주일이나 지나서였다. 막내는 어머니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었고, 젖병이 아닌 호스를 물고 있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던 나는 우리가 신생아실이 아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으레 신생아실에서 들릴 만한 힘찬 울음이라던가 칭얼거림 같은 것은 없었고, 온 사방에 가득한 소독약 냄새와 바쁘게 오가는 간호사 누나들의 발소리, 기계가 힘겹게 삑삑거리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던 둘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떤 일이 일어날 건지 어떤 짐작도 하고 싶지 않았다. 유리관 너머 동생을 들여다보는 우리 둘 사이에 진득한 침묵이 있었다. 저편에 서 계신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허락된 면회 시간인 오 분 내내 정적만 곱씹다가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둘을 의자에 앉혀 놓고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 주신 아버지는 끊으셨던 담배를 피우러 나가셨다.

 

 

그 날 오후,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태어나서 십몇 년, 처음으로 보는 당신의 무너진 모습에 둘째와 나는 뒷좌석에 얼어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아버지께선 그애의 장례식을 준비하라는 낭보까지 들으셨던 모양이었다. 아직 누워 계신 어머니,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두 형제를 세워 놓고 아버지는 가족 몫의 슬픔까지 다 짊어지고 계시던 것이었다. 나는 지금에 와서도 그때 당신께서 걸머져야 했던 슬픔의 무게를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다.

 

 

 

온갖 고비를 넘겨내고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집에 온 나의 기묘한 동거인. 수세미 같은 털모자를 쓴 채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막내는 내게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불러도 대답도 없고, 하는 거라곤 손발가락을 꿈지럭대거나 젖병을 빨아대는 게 전부. 그런 똥자루 같은 게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나로선 반가울 리가 없었다.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데 탐탁치 않을 수밖에.......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젖병을 물릴 때에도 일부러 그 꼬물거리는 입에 젖꼭지를 넣었다 뺐다 하며 심술맞게 굴고는 했다. 나이는 열 두 살 많은 주제에 하는 짓은 꼭 두 살짜리였다.

 

그렇게 입을 댓 발이나 내밀고 투덜대기 바쁘던 매일매일, 어느 날 저녁이었다. 막내를 보겠다는 친척들이 다녀가시고, 나는 거실 탁자 아래에 떨어져 있는 몇 장의 사진을 주웠다. 아마 어머니께서 미처 알아채지 못하셨던 것이리라. 나는 사진을 주워들었다. 보행기에 앉아 있는 똥자루였다. 짧아서 잘 펴지지 않는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는 게 꼭 비행 접시에 탄 외계인 같아서 나는 속으로 실컷 비웃어주었다.

 

"엄마, 은채 사진.“

 

거실 소파에 계시던 어머니께 사진을 내밀자 그게 거기 있었냐며 반가워하셨다. 내가 막 내 방으로 올라가려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부르신 것이었다.

 

"이거 막내가 아니고 너야.“

 

다시 한 번 들여다보니 정말로 그건 나였다. 사진 뒤의 인화 날짜가 1996년이었던 거다, 2007년이 아니라. 나는 아연해졌다. 사진 속 나는 지금의 똥자루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구별이 가능한 건 머리숱 정도였다.

 

"고모가 큰일났다 그러더라, 응? 여자애가 큰오빠를 닮아가지고....... 기왕이면 잘생긴 작은애나 닮을 것이지 하면서.......“

 

어머니의 장난스러운 말소리가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애가 세상에 나온 지 몇 달이 지난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애는 이방인이 아닌 내 동생이라는 걸, 한 살도 되기 전에 수많은 고통과 죽음의 고비를 넘어가면서 내 곁에 온 나의 막내라는 걸.

 

 

그 때로부터 7년이 지난 오늘, 초등학생이던 나는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으며 젖병을 빨던 막내는 어엿한 초등학교 일 학년이 되었다. 성별과 나이만 다르다 뿐이지 빵틀로 구워낸 것처럼 닮은 우리가 가족이 된 지 7년인 거다. 내가 좋아하던 책을 읽고, 내 침대였던 곳에 몸을 누이고, 심지어 바삭한 치킨 껍질을 좋아하는 것까지 똑같은 나의 막내. 기숙사에 들어가 3년 가까이 헤어져 있는 지금 가장 그리운 것은 막내의 얼굴이다.

 

 

 

"오빠야, 나 이번에 한자 경시 봤다."

"잘 봤나."

"두 개 틀렸는데......."

"저거 저 기지배 칠구다, 칠구.“

 

학교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식사 시간에 막내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는 중이었다. 김치찌개를 뒤적이며 고기만 골라 먹고 있던 둘째가 톡 끼어들었다.

 

"칠구?"

"일곱 칠이랑 아홉 구를 바꿔 썼다 말이다."

"작은오빠야, 말하지 마라!"

"엄마한테 칠구라고 한참 혼나고....... 아야! 왜 때리나!“

 

둘이 한참을 툭탁대자, 결국 어머니께서 목소리를 높이시고 말았다.

 

"점마들 왜 지랄이가! 밥이나 묵어라.“

 

치이, 하고 기가 꺾였던 둘이 조용해진 것도 잠시였다. 막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오빠 쫌 이따 또 학교 가나."

"응."

"치이......."

"또 큰오빠 밥까지 다 묵을라고 그러나."

"아냐!"

"형아야, 칠구 밥 좀 고만 묵으라 해라. 얼굴 엄청 커졌어.“

 

아니야, 아니야를 연발하면서 칭얼거리던 막내가 식탁 아래를 기어와 내게 안겨들었다. 작은오빠 말 다 거짓말이지, 나 얼굴 안 크다 하고 웅얼이는 작은 몸을 꼭 안아주면서 나는 웃었다. 얼굴이 크건 아니건, 아홉 칠이건 일곱 구건 상관없는 일이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았던 작은 생명이 이렇게 커져서 나를 오빠라고 불러주는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막내의 오빠라서 다행이라고. 나는 언제까지라도 막내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클 테고, 그러면 항상 이 품 안에 그애를 꽉 끌어안아 줄 수 있을 테니까.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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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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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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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래 여동생을 예뻐하는 오빠가 있네요. 부러워라.

    • 2014-04-22 16:14:4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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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처음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막내 동생을 본 슈뢰딩거님은 처음 보는 광경에 낯설어하기 했고, 우렁찬 '울음 소리'가 아닌 차가운 기계 소리 때문에 무섭기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물에 왠지 모르게 슬픈 상황임을 알 수 있었죠. 그런데 그런 급박한 상황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머릿 속에 중환자실이 떠오르고, 아버지의 눈물, '나'의 당혹스러움까지 펼쳐졌지만, 이 모든 것들을 '고비'라는 단어로 요약하니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글을 통해서 최대한 직접 체험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수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고비를 넘긴 동생과 초등학생이 된 동생 사이에 많은 이야기들이 빠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주고, 동생으로 있어줘서 고마운 마음은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고비를 넘긴 동생에서 또 다른 고비가 있었다던가, 보통 아기들과 다른 생활을 경험했다든가 등의 내용을 넣었으면 자연스럽고 알찬 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의 성장과정을 본 슈뢰딩거님의 시선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이 글을 다 읽고나서 동생을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슈뢰딩거님의 마음과 가슴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 2014-04-20 21:31:4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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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부분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설명 좀 부탁드려요^^

    • 2014-04-20 21:20:4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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