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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5-26
  • 조회수 779

 우리는 모두 사는 방식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각자의 성격, 취향, 행동들이 다른 것이다. 한 마디로 개인이라는 내면적 국가가 있고 사회는 이 국가에 들리는 타국인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있어 효율적이고 기쁨이겠지만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너무 힘들다. 특히 남들과 달리 지병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이는 더 잔인하고 무서운 상호작용 방식이다. 나는 나와같이 내향적이고 남들과 다른 사람을 외향, 내향이 함께 어울리는 개인 국가 사이의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이라고 말을 한다.

 

이방인의 사전적 개념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방인은 남들과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진 사람, 즉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까뮈의 <이방인>은 남들과 달리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뫼르소가 겪는 일을 서술한 책이다. 여기서 이방인의 개념은 타국인이 아닌 대중적인 사고와 생각이 다르거나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난 이방인은 단순 외국인이 아니라는 것과 평범하지 않은 비평범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사고적 개념을 확립했다. 그래서 난 남들과 다른 나를 이방인이라 칭한다.

 

올해 3월 본례 지병인 기침이 있던 나는 고등학교 적응이 힘들었다. 이방인이라는 자의적 인식 때문일까? 나는 반 친구들과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개학 첫날에는 소화도 되지 않고 미친듯 몸이 떨렸다. "떨지마, 눈치 보지마, 어깨 펴."라는 엄마의 말도 솔직히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내가 그당시 의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책 뿐이었다. 그래서 그 주간에는 은유의 <해방의 밤>을 읽었지만 그 내용들은 스쳐지나가 지금은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다음날도 그 다다음날도 나는 친구들이 무섭고 두려워 말을 잘하지는 못했다.  


 3월은 매일,매일 힘들어 지옥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3월 13일 글틴에 잠시 들어왔는데 2월달에 쓴 시 <숲 속 민초 아이스크림 집의 창을 닦으면>이 장원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시는 내향적인 사람이 살아가는 마음을 서술한 시로 지금의 내 모습을 과거에 본듯 그린 것 같았다. 반 친구들이 무서웠지만 또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쉽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이 모습이 내가 과거에 쓴 시에 잘 담아져 있어 보는동안 신기했다. 그리고 잠시 내가 이방인이 아니었다면이라는 우울감도 함께 몰려왔다.  이후 19일날은 내 문우 필명 김희수가 글틴 소설부분 장원을 했다는 소식에 기뻤다. 그러나 이 기쁨도 학교가 끝나고 난 이후 피로를 이기지는 못했다. 31일 나는 박서련 멘토의 책 <더 셜리 클럽>을 읽고 독후록을 작성했다. 위 책에는 내가 알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 바로 "가끔 생각나요. 나에게 차가운 얼굴을 보여 준 사람들. 그렇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사람들이 내게 냉담한 표정을 지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런게 아니었을까"라는 구절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빠져 나에게 다가오는 친절을 보지 못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잔인한 계절 4월이 왔다. 나는 친구들과 조금 친해지려고 노력을 생각으로만 했고 실천은 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이방인이라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의 깊이는 3월처럼 깊지는 않았다.  그저 잠깐의 우울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때마침 수학부장인 친구 K{개학 첫주에 나온 K와 다름} 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하게 되었다.  K는 일명 인싸라고 불리지만 MBTI가 I형인 친구였다. 그래서 우리 둘은 나름 잘 맞았다. 사실 5월 말인 지금 생각을 해보면 K가 나에게 다가온 것은 3월 중순부터였다. 그러나 3월인 그 때도 그렇고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잠겨서 그를 외면하고 혼자 있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둘은 서로 이야기 하면서 서로 잘하는 분야와 못하는 분야가 딱 맞게 떨어지는 것을 알았다. K는 수학을 잘하고 국사를 어려워했고 나는 국사를 잘하고 수학을 어려웠기에 서로의 약점을 보안을 했다. 우리 둘이 더 친해질 수 있었던 배경은 4월 말 미술 모둠 프로젝트 수행 때 K가 날 부조장으로 선택함으로서 우린 더 친해졌고 나도 남에게 피해만 주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부셨다. 


 4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된 1차 지필이 끝나고 나는 피해를 주는 이방인이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도 다가가려고 생각 뿐 아니라 노력을 하는 중이다. 국어 독서 논술 수행 때 친구들이 읽을 도서를 고르지 못하면 진로와 사회문제를 이어서 추천해 주고 친구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나름 반 친구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미술 프로젝트 발표 수행 때 내가 쓴 대본과 K와 다른 조원의 발표로 우리 조가 발표 공동 1위를 먹었다. 


 지금 3월과 4월을 생각하면 날 너무 이방인이라는 것에 가둔 것 같다. 친구들이 나에게 다가오려고 했던 신호를 내가 외면을 했던 것이다. 지난 5월 24일 반 친구들은 에버렌드에 갔다. 나는 기침이 시작한 곳이 이 곳이라 가지는 않았지만 우리 반의 K와  또 다른 한명도 가지 않아서 학교에서 나름 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K와 웃으며 다음주에 있을 수행을 이야기 했다. 앞으로의 우정도 함께 이어갔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 이상 날 이방인이라는 벽에 가두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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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선생님, 저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어요." 상담 선생님께 이 말을 하니 선생님이 많이 당황하셨다. "진짜 태어나서 처음인 거야?"라고 역으로 질문하셨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17살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여기서 놀라는 포인트는 친구와 혼자가 아니라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17살이 되기 전, 늦어도 12살에는 친구를 스스로 혼자 만나야 사회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관점에서 볼 때 사회화가 잘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내가 17살이 되도록 친구를 혼자 만나지 못한 것은 내 내향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친할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내게 친구의 단점을 계속 말하며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빠 친구 OO이는 이 짓거리 때문에 아직 결혼도 못 갔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 말을 한 번만 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자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제가 되었다. 나는 그로 인해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었지만, 완전한 친구, 즉 의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 번도 친구들과 혼자 만나서 논 적이 없다.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정확히 내가 원인 불명의 기침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더 작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있을 때 편했던 친구는 중2 때 만난 S(의 S와 동일인물이다.)라는 친구다. S는 나와 매번 맨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와 나는 많이 친해졌고, 그는 내가 중2 때 갑자기 시작된 기침 때문에 시끄러웠을 것 같은데도 아무 말 없이 나에게 "괜찮아? 몸 안 좋은 것 같은데."라고 물으며 걱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S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져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은 서로 알려주며 지냈다. 그래서일까? 중3에 올라가서 반이 달라졌음에도 우리는 만나면 재미있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게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이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와 S는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 때문에 더 위축되었으며 기침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타난 친구가 바로 K(의 K와 동일인물이다)다. 그는 내게 먼저 와서 말을 걸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저절로 K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이야기를 하며 서로 모르는 문제를 연구하며 잘 지냈다. 그러나 올 6월부터 감기가 들어 기침이 심해졌다. 잦은 조퇴와 건강 악화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자퇴하기 전 K에게 이 소식을 미리 전할까 고민했지만, 시험 기간이라 분위기가 흐려질까 걱정되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퇴 날 개인톡으로 연락했다. 그러자 K는 나에게 "나도 너 덕분에 학교생활 잘 적응했어.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등 나에게 좋은 말과 감동적인 말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다시 다잡을

  • 송희찬
  • 2024-09-29
샤이닝

별은 스스로가 빛나는 것을 모른다. 그 이유는 별이 빛을 내고 폭발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스스로 빛나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특히, 많은 부담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빛나는 사람이다.나는 지난 6월부터 기침이 심해져 9월 10일 자퇴 서류를 작성했다. 자퇴서를 쓴 후, 선생님께서 "지난 6개월간 함께한 친구들에게 인사할래, 아니면 톡으로 남길 거야?"라고 물으셨다. 친구들을 보고 인사하면 감정이 북받쳐 울 것 같아 톡으로 남기겠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그래서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미안함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썼다.편지에는 기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회상이 담겼다. 또한 영어독서,국어 부장과 팀장 역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포함되었다.이 편지를 쓰면서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감정을 다잡지 못한 채 반톡 화면을 뚜러져라 바라보며 눈물이 날려는 날 참았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따뜻한 택스트들로 이 마음은 약간 괜찮아지려고 했다.톡을 올린 지 5분 정도 지나자, 중학교 동창이자 2학기 학급 반장이 반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고마웠어, 희찬아." 이 말을 시작으로 몇몇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과학 탐구 실험 조의 친구는 "그동안 학교 생활 수고했고, 앞으로도 힘내길 바랄게"라고 했다. 특수반 친구는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었다.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였던 친구도 "우리 반을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이후 개인톡으로 몇몇 친구들이 나를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날을 응원할게"라는 내용이었다.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친구는 수학부장 K였다. (K는 의 K와 동일인물)K 덕분에 나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결석이나 조퇴 시 필기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아픈 것을 덜 참아도 됐다. 그래서 K에게 개인톡으로 "K야, 너 덕분에 학교 생활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할 수 있었어. 그리고 네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해준 게 없어 미안해.그리고 고마워."라고 전했다. K는 내 메시지를 보고 5분 후에 답장이 왔다. "나도 너 덕분에 학교 생활 잘 적응했어. 내 사소한 질문에도 항상 진지하게 들어줘서 고마워. 네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나는 이 문자를 보고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친구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많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퇴를 서둘렀던 지난 죄책감이 미웠다.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짊어진 무게와 운명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폭발할 때 빛난다. 우리는 언제나 빛나는 별이며, 삶을 살아가는 길 중에 폭발이 있을 뿐이다.

  • 송희찬
  • 2024-09-28
학교 하교

지난 8월 말,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부르셨다. "희찬아 잠깐 나 좀 보자."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순간 겁이 막 올라왔다. 나는 분명 잘못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부르셔서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갔다. 교무실은 시험기간이라 조용하고 엄숙했다. "희찬아 3년을 버틸 수 있겠어?" 선생님의 첫 마디가 정적을 깼다. 대화는 10 정도였지만, 대화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있었다. 나는 이 말이 "이제 버티기 힘들 것 같다. 희찬아."라고 들렸다. 한 마디로 자퇴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놀랐기 보단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침 때문에 학교 생활을 오래 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 뒤에는 약간의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속상함이 가득했다. 내가 기침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닌데. 나는 22년 10월부터 다양한 원인의 기침을 앓고 있다. 정신과에서는 틱으로 보고 대학 병원에서는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보고 있다. 23년에는 증상이 줄었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나서 다시 심해졌다. 그러다가 6월에 감기가 들어오면서 기침이 악화됬고, 6월의 절반 이상을 조퇴, 결석, 지각으로 보냈다. 2학기가 시작된 8월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매주 조퇴를 2~3번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이 자퇴 이야기를 하신 것은 이해가 갔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의 끝자락을 물고 온 말을 듣고 나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고 기침이 더 심하게 나왔다. 선생님은 "이러다가 네가 너를 잡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몸에서 땀이 계속 흘렀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이명과 함께 수업 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은 부담임 선생님이신 국어 선생님의 수업이었다.나는 급히 상담을 마무리 하고 빨리 교실을 향했다. 내 몸은 몸살에 걸린 것처럼 더 힘들었고 마음 역시 몸살에 걸린듯 무거웠다 수업에 들어가자 국어 선생님이 나에게 "희찬아 무슨 일이야? 왜 늦었어?" 라고 물으셨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무겁게 답을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어서요."그렇게 시집을 읽었지만 시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수업 시작 전 5분은 시집 읽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답답했지만 어찌저찌 이 날의 모든 수업을 끝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해야되나 봐." 엄마에게 이 말을 할 때 내 감정은 억울함, 허무감, 우울함, 배신감 등이 몰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나는 꾹 참았다.엄마는 의외로 덤덤했다. {아니면 내 앞에서 덤덤한 척을 한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반응에 다시 무너졌다. 그렇지만 울지는 않기로 다짐했다. 집에 도착하니 선생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희찬아,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주말동안 쉬렴." 선생님의 문자에 나는 한 번 더 흔들렸다. 결국 나는 위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여러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감정 정리는 어려웠다. 우울함이 더 몰려왔다. 엄마는 이런 내가 안쓰러웠을까? 상담

  • 송희찬
  •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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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리

    저도 은연중에 제가 이방인 같은 존재라고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네요. 이방인이라는 말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발전하고자 하는 태도가 정말 감동적이에요, 송희찬님 글은 늘 변함없이 순수함이 묻어나서 보기 좋습니다

    • 2024-05-29 02:31:02
    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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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예리 님 오랜만이에요~^^ 제 이야기로 위로를 받으셨다니 기쁘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05-29 16:12:06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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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조

    숨김없고 훈훈한 글이라, 보는 내내 기분 좋게 감상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이 말처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전부 다르고, 결국 우리 모두는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 즐겁고 설레는 일들이 많은게 아닐까 싶어졌어요. 어쩌면 '이방인'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좋은 말일지 모르는 것이, 작가님처럼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 본인만의 개성 등을 놓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다채롭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문이 되어주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해보았습니다. 한편 최근 한국 문학을 자주 읽고 있는데, 작품 속에서 언급된 <더 셜리 클럽>도 시간이 날 때 꼭 읽어보겠습니다. 인용해주신 문장이 너무 맘에 듭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 2024-05-29 01:56:08
    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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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글조 님 안녕하세요~^^ 박서련 멘토님의 작품은 문채 하나,하나 음미하는 맛이 있어서 추천해요.^^ 그리고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05-29 16:13:53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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