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첫 주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3-09
- 좋아요 1
- 댓글수 1
- 조회수 561
2024년 3월 3일 고등학교 입학 하루 전이다. 이 날 난 글을 많이 써보겠다는 마인드로 생활을 했다. 수필도 한 편, 소설도 한 편, 비평도 한 편 그리고 시는 타 공모전 것 까지 5편 이상 쓸 계획이었다. 왜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면 글을 쓸 여유가 적어지고 남들 다 공부하는데 홀로 글을 쓰며 공부를 느슨하게 하면 않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욕심에는 그 것을 막는 초기 단계들이 있다. 신은 우리가 욕심을 가지고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벨탑을 부스고 탐욕의 악마 바알제붑과 같은 것을 만들었다. 나도 이 막음 단계에 들어간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고등학교 입학의 불안이라는 아이를 낳게 되었다. "왜 시가 써지지 않아!"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럴 때는 쓰지 않는거야." 라고 답을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말에도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손과 몸이 떨리고 이상했다. 이를 엄마도 느꼈을까? "쓰지말고 어서 자. 너무 떨지마."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학교에 대한 불안이 많이 커져갔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4일 입학이다. 하늘은 무거운 것만 같았다. 나는 부들부들 떠는 몸을 가지고 아침밥을 먹었다. 그러나 소화는 평소와 달리 쉽게 되지 않았다. 아마 긴장이라는 아이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계속 "떨지마 그리고 눈치 보지 마. 어깨 펴!" 라고 말을 했다. 나는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엄마에게 보내고 집을 나가 버스에 발을 옮겼다. 버스에는 옛날 학원 친구였던 K가 있었다. K와 나는 가벼운 손 인사를 주고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 지금 내가 죽을 것처럼 많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무엇에 홀린듯 심장은 계속 지진을 만들고 숨은 계속 과호흡 상태가 되었다. 이를 막아보려고 숨을 크게 셔보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약간의 작은 눈물이 흘러나올 때 쯤 학교 앞 버스 문이 열렸고 나는 발을 땅에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마음을 가지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라고 말을 했다. 엄마는 나에게 "떨지 마. 괜찮아. 이 것을 이겨내야 해."라고 말을 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모르는 척 하고 싶다. 내가 무작정 학교와 친구들을 피하면 은둔형 외토리 즉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가 되기 싫었고 사회 생활을 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키기로 했다. 해결 방안은 바로 독서다. 나는 책가방에서 은유의 <해방의 밤>이라는 책을 피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시선과 내 기침{틱 성 기침+감기 기침}이 어울려져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2024년 3월 5일 긴장의 하루가 또 지난 새로운 불안의 날이다. 이 날은 7교시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버텨야 한다. 정신과에서 어제 받은 신경안정제를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그러나 내 불안도는 감소되지 않고 일정했다.7교시 영어 독서 수업 OT까지 끝나고나니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집까지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그러나 글틴 문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가니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는 글을 쓰지 못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어떤 글을 써도 좋은 글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6일 어느덧 글을 쓰지 못함의 4일이다. 글과 잠시동안 이별했다. 심신의 불안은 약간 죽는듯 보였으나 마음 한 편은 아직도 긴장과 불안 그리고 시선이 주연급으로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는 국어 시간에 더 큰 조명을 받았다. 국어 시간의 숙제는 첫날부터 있었다. 첫날은 수사법 조사하기 5일과 6일 그리고 7일의 숙제는 좋아하는 시 분석하기였다. 그런데 이 날 국어 시간에 발표를 시키셨다. 그 발표는 수사법 중 반어법에 대한 발표였다. 나는 발표하기 싫었다. 그러나 반어법을 탐구하고 조사해온 사람이 나 뿐이라 할 수 없이 내가 발표했다. 발표하는 순간에는 긴장의 신호가 깜빡 거렸다. 그러면서 기침의 센서가 작동을 했고 짧은 발표에 작은 기침이 흘렁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언제나처럼 멀게 느껴졌다. 선생님과 상담 후에 집으로 가는 골목의 바람은 차고 힘들었다. 마음의 짐이 덜어버린 것도 치워버린 것도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길에 서서 내가 과연 잘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계속 던지게 되었다. 선생님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라는 말이 과연 나에게도 효과 있는 약일까? 이 약의 부작용은 없을까? 그러다 나는 마음을 잡았다. 선생님 입장에서 내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시간이 약이라는 말 뿐인 것 같다. 제일 무책임하며 가장 정답인 이 말을 마음에 넣으며 집에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 잤다.
2024년 3월 7일 이 날은 다행히 버스에 사람이 없어 학교로 들어갈 때 떨림이 덜했다. 그러나 주연들의 연기는 끝나지 않았다. 수업은 나름 떠는 풍경으로 나쁘지 않게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국어 시간. 선생님께서 숙제 검사를 하지 않으셔서 직접 묻고 숙제 자료를 보여드리니 "넌 이걸로만 세특 써도 될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반 친구들이 내가 분석한 시와 내용을 보러 달려들었다. 하나, 둘 내가 시를 분석하고 탐구한 것을 보니 다 놀랐다. {시 분석에 내 시와 타인의 시를 보고 분석하며 배울점을 탐색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말을 거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겼지만 내게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작은 목소리로 "모르거나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봐."라고 말을 끝냈다. 이 때문인가? 이 날은 너무 춥고 힘들었다. 틱성 기침과 감기성 기침이 더 심해졌다. 평소 같았다면 글로 이를 풀었겠지만 너무 힘들어 글도 써지지 않았디. 그래서 엄마와, 동생도 병원을 간다하여 나도 따라가 진료를 받았다. 그러면서 지금 글을 써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큰 고민에 빠져 글틴에 도움을 요청했다.
2024년 3월 8일 어제는 조퇴를 했다. 기침이 계속 심하게 나오고 몸은 지속적으로 떨리며 주연들의 연기는 더 과하게 움직였다. 몸에 누가 타거나 맞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1교실 미술은 참고 수업하고 2교시 체육은 보건실에 가서 쉬었다. 그러나 몸은 괜찮아질 생각을 하지 않고 몸의 아픔이 온 몸으로 전파 되었다. 나는 결국 2교시 끝나고 담임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렸다. 조퇴를 해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또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몸이 아파서인지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주연들의 떨림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니 12시가 거의 다 되었다. 그러나 나는 밥 생각이 없었다. 물론 학교에서도 밥 맛이 없었지만 어제는 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한 숨 푹 잤다. 11시 50분부터 12시 40분까지 잤다. 거의 1시간 잤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고 또 잤다. 오랜만에 편히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4시 다 되어 일어나니 몸이 한 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안의 연기가 잠시 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좀 쉬었다가 노트북을 켜고 지난 일주일간 내가 겪은 불안과 공포를 시로 녹여냈다. 그 작품이 어제 글틴에 올린 <민들레가 만든 다시 어항>이다.
이로서 1주일간의 글 없는 시절의 불안을 잠시 이별할 수 있었다. 물론 일요일이 되면 다시 주연들이 일어나 연기를 할 수 있지만 현재는 조금 편하다.
추천 콘텐츠
"선생님, 저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어요." 상담 선생님께 이 말을 하니 선생님이 많이 당황하셨다. "진짜 태어나서 처음인 거야?"라고 역으로 질문하셨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17살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여기서 놀라는 포인트는 친구와 혼자가 아니라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17살이 되기 전, 늦어도 12살에는 친구를 스스로 혼자 만나야 사회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관점에서 볼 때 사회화가 잘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내가 17살이 되도록 친구를 혼자 만나지 못한 것은 내 내향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친할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내게 친구의 단점을 계속 말하며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빠 친구 OO이는 이 짓거리 때문에 아직 결혼도 못 갔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 말을 한 번만 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자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제가 되었다. 나는 그로 인해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었지만, 완전한 친구, 즉 의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 번도 친구들과 혼자 만나서 논 적이 없다.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정확히 내가 원인 불명의 기침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더 작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있을 때 편했던 친구는 중2 때 만난 S(의 S와 동일인물이다.)라는 친구다. S는 나와 매번 맨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와 나는 많이 친해졌고, 그는 내가 중2 때 갑자기 시작된 기침 때문에 시끄러웠을 것 같은데도 아무 말 없이 나에게 "괜찮아? 몸 안 좋은 것 같은데."라고 물으며 걱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S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져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은 서로 알려주며 지냈다. 그래서일까? 중3에 올라가서 반이 달라졌음에도 우리는 만나면 재미있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게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이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와 S는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 때문에 더 위축되었으며 기침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타난 친구가 바로 K(의 K와 동일인물이다)다. 그는 내게 먼저 와서 말을 걸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저절로 K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이야기를 하며 서로 모르는 문제를 연구하며 잘 지냈다. 그러나 올 6월부터 감기가 들어 기침이 심해졌다. 잦은 조퇴와 건강 악화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자퇴하기 전 K에게 이 소식을 미리 전할까 고민했지만, 시험 기간이라 분위기가 흐려질까 걱정되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퇴 날 개인톡으로 연락했다. 그러자 K는 나에게 "나도 너 덕분에 학교생활 잘 적응했어.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등 나에게 좋은 말과 감동적인 말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다시 다잡을
- 송희찬
- 2024-09-29
별은 스스로가 빛나는 것을 모른다. 그 이유는 별이 빛을 내고 폭발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스스로 빛나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특히, 많은 부담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빛나는 사람이다.나는 지난 6월부터 기침이 심해져 9월 10일 자퇴 서류를 작성했다. 자퇴서를 쓴 후, 선생님께서 "지난 6개월간 함께한 친구들에게 인사할래, 아니면 톡으로 남길 거야?"라고 물으셨다. 친구들을 보고 인사하면 감정이 북받쳐 울 것 같아 톡으로 남기겠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그래서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미안함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썼다.편지에는 기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회상이 담겼다. 또한 영어독서,국어 부장과 팀장 역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포함되었다.이 편지를 쓰면서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감정을 다잡지 못한 채 반톡 화면을 뚜러져라 바라보며 눈물이 날려는 날 참았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따뜻한 택스트들로 이 마음은 약간 괜찮아지려고 했다.톡을 올린 지 5분 정도 지나자, 중학교 동창이자 2학기 학급 반장이 반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고마웠어, 희찬아." 이 말을 시작으로 몇몇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과학 탐구 실험 조의 친구는 "그동안 학교 생활 수고했고, 앞으로도 힘내길 바랄게"라고 했다. 특수반 친구는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었다.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였던 친구도 "우리 반을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이후 개인톡으로 몇몇 친구들이 나를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날을 응원할게"라는 내용이었다.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친구는 수학부장 K였다. (K는 의 K와 동일인물)K 덕분에 나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결석이나 조퇴 시 필기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아픈 것을 덜 참아도 됐다. 그래서 K에게 개인톡으로 "K야, 너 덕분에 학교 생활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할 수 있었어. 그리고 네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해준 게 없어 미안해.그리고 고마워."라고 전했다. K는 내 메시지를 보고 5분 후에 답장이 왔다. "나도 너 덕분에 학교 생활 잘 적응했어. 내 사소한 질문에도 항상 진지하게 들어줘서 고마워. 네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나는 이 문자를 보고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친구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많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퇴를 서둘렀던 지난 죄책감이 미웠다.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짊어진 무게와 운명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폭발할 때 빛난다. 우리는 언제나 빛나는 별이며, 삶을 살아가는 길 중에 폭발이 있을 뿐이다.
- 송희찬
- 2024-09-28
지난 8월 말,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부르셨다. "희찬아 잠깐 나 좀 보자."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순간 겁이 막 올라왔다. 나는 분명 잘못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부르셔서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갔다. 교무실은 시험기간이라 조용하고 엄숙했다. "희찬아 3년을 버틸 수 있겠어?" 선생님의 첫 마디가 정적을 깼다. 대화는 10 정도였지만, 대화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있었다. 나는 이 말이 "이제 버티기 힘들 것 같다. 희찬아."라고 들렸다. 한 마디로 자퇴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놀랐기 보단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침 때문에 학교 생활을 오래 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 뒤에는 약간의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속상함이 가득했다. 내가 기침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닌데. 나는 22년 10월부터 다양한 원인의 기침을 앓고 있다. 정신과에서는 틱으로 보고 대학 병원에서는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보고 있다. 23년에는 증상이 줄었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나서 다시 심해졌다. 그러다가 6월에 감기가 들어오면서 기침이 악화됬고, 6월의 절반 이상을 조퇴, 결석, 지각으로 보냈다. 2학기가 시작된 8월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매주 조퇴를 2~3번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이 자퇴 이야기를 하신 것은 이해가 갔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의 끝자락을 물고 온 말을 듣고 나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고 기침이 더 심하게 나왔다. 선생님은 "이러다가 네가 너를 잡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몸에서 땀이 계속 흘렀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이명과 함께 수업 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은 부담임 선생님이신 국어 선생님의 수업이었다.나는 급히 상담을 마무리 하고 빨리 교실을 향했다. 내 몸은 몸살에 걸린 것처럼 더 힘들었고 마음 역시 몸살에 걸린듯 무거웠다 수업에 들어가자 국어 선생님이 나에게 "희찬아 무슨 일이야? 왜 늦었어?" 라고 물으셨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무겁게 답을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어서요."그렇게 시집을 읽었지만 시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수업 시작 전 5분은 시집 읽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답답했지만 어찌저찌 이 날의 모든 수업을 끝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해야되나 봐." 엄마에게 이 말을 할 때 내 감정은 억울함, 허무감, 우울함, 배신감 등이 몰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나는 꾹 참았다.엄마는 의외로 덤덤했다. {아니면 내 앞에서 덤덤한 척을 한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반응에 다시 무너졌다. 그렇지만 울지는 않기로 다짐했다. 집에 도착하니 선생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희찬아,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주말동안 쉬렴." 선생님의 문자에 나는 한 번 더 흔들렸다. 결국 나는 위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여러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감정 정리는 어려웠다. 우울함이 더 몰려왔다. 엄마는 이런 내가 안쓰러웠을까? 상담
- 송희찬
- 2024-09-2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