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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작은 기억 속에 S를 주머니에 넣으며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2-18
  • 조회수 628

{위 노래를 들으며 읽기를 바란다.https://www.youtube.com/watch?v=fsMzaOtaLtQ}


현존하는 엘레지의 여왕이라 평가되는 가수 이미자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에서 이미자는 본인의 인생에 언제나 노래가 있었음을 밝혔다. 누군가 내게 "위 노래를 부른 이미자처럼 너도 힘들고 기쁠 때 늘 함께 해준 것이 있니?"라고 물으면  나는 당당하게 "글 쓰기."라고 답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을 바꿔 "함께 해준 사람이 있니?"라고 물으면  "친구 S"라고 답할 수 있을 것같다. 


S와 나의 만남은 중2 때부터 이어졌다. 나는 중학교 3년동안 서기로 출석부를 관리했다. 그래서 난 맨 앞 중앙자리가 편했었다. 그 이유는 선생님들이 출석부를 쓰는지 않쓰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부담스럽게 만들어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반 출석부는 매일 깨끗했다. 이를 20대 담임 선생님께서 아셔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교육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1년 내내 원하는 자리에 앉게 만드셨다.  그 덕분에 나는 맨 앞 중앙자리에 계속 앉을 수 있었다.  많은 친구들은 맨 앞자리를 피하고 계속 다른 자리에 앉았지만 나와 옆에 앉은 S는 1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았다.나는 이에대하여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S에게 질문을 했다.  "S야 너는 왜 계속 이 자리에 앉아?"라고 물으니 그의 답은 "옮기기 귀찮아서 옮기지 않았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S가 내게 역으로 물었다."희찬아, 너는 왜 맨 앞 중앙에 앉는거야?" 나는 출석부 때문에 앉는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약간 어색한 대화가 오갔다. 그 이유는 아마 우리 둘 모두 MBTI I형이기 때문인 것 같다.서먹 서먹했던 우리의 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취미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한 둘이 잘하는 과목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를 보안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고민상담 등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중2의 어느 시절 우리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정확히는 나에게 고난이 찾아왔다. 그 고난의 이름은 기침으로 학교에서 지속 되는 기침 때문에 많은 걱정을 했다. 친하게 지낸 친구 사이도 멀어지고 반 친구들과 나쁜 사이가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는 나의 잡생각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괜찮아?"라고 물었다. 그럼 나는 애써 괜찮은 표정으로 "괜찮아."라고 답을 했다. S 또한 내게 먼저 괜찮냐 묻고 걱정을 해줬다.  또한 중2 시험들이 끝나고 집에 갈 때마다 "몸은 좀 어때?" 라고 물었고 나는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시험점수도 나쁘지 않게 나와서 너무 좋아." 라고 말을했다. {그 당시 수학, 영어, 가정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이 올 100이었다.}그러면서 웃으며 지난 시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즐겼다. 기침으로 힘들었던 내 정신 세계의 일종의 빛이 되어줬다.


 하지만 우리는 중3이 되면서 반이 달라지며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이어져갔다. 그리고 나는 S 덕분에 용기도 얻게 되었다. S는 내게  스포츠 수업시간에 앉을 수 있는 용기를줬다. 중 3 때는 먼지로 인한 기침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하게 체육시간에 교실에만 앉아 있었다. 또한 내가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스포츠 시간만큼은 나갔다. 기침이 심해져도 나가서 자리를 지켰다. 그 이유는 스포츠가 맨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고 S가 나의 말동무가 되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서 스포츠 시간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물론 나와 S가 이야기를 한 것은 스포츠 담당 선생님들의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린 스포츠 시간에 우리는 옛날에 하지 않았던 다양한 고민과 과거를 이야기했다. 특히 나는 용기를 내서 S에게 내가 초등 5학년-6학년 시절 있었던 우울의 암흑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우리 가족과 S, 상담.진로 선생님과 정신과 선생님 뿐이다.} 이 시절 때문에 밝았던 E인 내가 어둡고 조용한 I가 되었다는 그런 사소하지만 내게는 큰 이야기를 했다. 이를 듣고 S는 많이 놀랐다. "지금보다 더 어두웠다는 생각을 하면 감이 잡히지 않아"라고 말하며 "지금은 괜찮아?"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빠른 시간내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속으로 "말하길 잘한 것 같아."라고 독백했다.  S와 대화를 하면 그 때만큼은 내가 밝아지고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잠시나마 말하며 잊을 수 있었다.


나에게 S는 내가 제일 추한 모습까지 보여준 유일한 친구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사귄 많은 친구 중에 제일 기억에 많이가고 도움이 많이 된 친구다. S는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만든 나름의 이유가 되고 내가 한발짝 나갈 수 있게 만든 길이었다. 그런 S와 이제 이별을 해야한다. 고등학교는 비록 떨어졌지만 우리의 추억은 언제나 가까운 거리에 있을 것이다. 아니라도 그렇기를 바란다. 잊지 않을 것이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이유로 S를 기억할 것이다. 


내 삶의 작은 기억 속에 S를 주머니 속에 넣으며 지나간 S에게 마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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