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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 작성자 카임
  • 작성일 2023-12-17
  • 조회수 599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말했다그래도 지구는 돈다영영은 말한다과장님 업무 다 끝냈습니다. 1이 사라지지 않는 메신저 창을 바라보며 몸을 뒤로 물렸다오랫동안 스크린을 바라본 눈꺼풀이 무거웠다뒤늦게 창밖을 바라보니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머리가 지끈거려왔다여전히 남아있는 1을 무시한 채 새 메시지를 입력했다저 이제 퇴근해보겠습니다.

흐트러진 양복 매무새를 다듬으니 영락없이 출근하는 직장인이었다영영은 목을 옥죄던 와이셔츠의 맨 윗단추를 풀었다그런다고 숨통이 트이진 않았다영영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을 느끼며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선거철이라 곳곳에 대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영영은 이제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걸 알았다태어나는 인구보다 탄생하는 관념이 더 많은 나라에선 매일 같이 새로운 관념들의 싸움이 울려 퍼졌다영영은 한갓 관념에 목숨을 바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사람은 사람답게 살기만 하면 충분하고 그것조차 지켜지지 않은 때에 인권보다 앞서는 관념은 환상에 불과하다영영은 후보 15번으로 끝맺어진 대선 포스터를 보며 새삼스러운 권태감을 느꼈다이런 지독한 공허 앞에서 지끈거리는 머리 정도는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회사 앞 지하철역은 한적했다영영은 잠시 벽에 등을 붙이고 기대섰다그때 바지에서 진동이 느껴졌다확인하니 과장의 답장이 뒤늦게 도착해 있었다그래오후에 보자라는 끔찍한 메시지에 따로 답장하진 않았다대화는 덧대어 갈수록 길어지기 마련이고 나중에는 끊어낼 수 없어지기 때문에어쩌면 과장과 주말 식사 약속을 잡고서야 끝맺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영영에겐 입사 초기에 이러한 수법에 휘말려 부장의 등산 메이트로 두 달을 보낸 전적이 있었다그때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 겨우 정상에 올랐었지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을 감았다장소는 다르지만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그때는 아마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던 중 저혈압으로 쓰러졌던 것 같다그 덕에 지금은 침묵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생각해보면 영영의 머리는 지끈거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그가 기억하는 최초의 과거는 이유 모를 두통으로 인한 입원이었다그렇다면 정말 이 감각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나언젠가는 고쳐질 것이라 생각한 믿음은 서른이 되어서야 점차 꺾이기 시작했다영영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생각했지만 언젠가 무당을 찾아간 적은 있었다그건 아마 스물 초반의 일로점을 보러 간다는 여자친구에게 응당 건네야 할 대답을 했던 결과였다나 이번 주 주말에 점 보러 가려고궁금하잖아오 그래 궁금하네(안 궁금했다). 같이 가줄까그곳에서 무당은 여자친구보다 영영과 눈을 먼저 맞추었다하지만 1인분의 돈을 지불한 그들에게 따로 2인분의 서비스를 할 필요는 없었다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면 으레 궁금해할 것들이를테면 학업이나 취업이나 혹은 연애와 같은 것들을 질문할 때까지도 무당은 답변에만 충실했다그러나 그곳을 나서려는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딱 한 단어를 발음했다영원.

그 영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지금 와서는 두통의 지속성에 관한 얘기였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여자친구와 대화하지만 곱씹어보면 끔찍한 일이었다이 지긋지긋한 감각다시금 머리가 지끈대는 걸 느끼며 영영은 뒤통수까지 벽에 기댔다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눈을 떴다스크린도어 너머로 지하철이 빠르게 달렸다영영은 지독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정신병자는 아니지만 때때로 그런 광경을 바라볼 때면 저 유리창을 깨부수고 싶단 생각을 했다그러나 영원히 생을 놓을 수는 없을 것이란 직감그런 생각이 들 때면 머리는 점차로 더 지끈거렸다영영은 여전히 스크린도어를 부수는 상상을 하고 그것은 파편화되어 영원을 기약하는 두통의 존재 증명이었다영원과 영영그것이 무한의 궤도를 걷는다어느 시간 선에서도 영원히 두통을 달고 살 사람바로 영영이다아마 어느 시간 선에서든 영영의 꾸준한 월급 지출원은 약국이고 타이레놀은 항상 구비될 것이다영영은 열린 문의 틈새로 쏟아지는 인파들을 바라보다 지하철에 올라탔다.

대부분이 내린 지하철은 한산했다이제 남은 역에는 기껏해야 소기업 정도가 있을 뿐이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내릴 것이다피곤한 얼굴 뒤에는 아마 대기업 취직 같은 거창한 꿈이 자리할 것이고 누군가는 무당에게 취업운을 물어볼 수도 있다그러나 아마도 그중 가장 피곤한 것은 영영일 것이다영영은 장바구니를 감싸 안은 노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영영은 그들의 대기업 환상처럼 살 수가 없었다미친 야근과 녹아내리는 몸새벽마다 위장이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그런 걸 감수할 만큼 대중소의 분류가 중요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영영은 아침잠을 이겨내지 못해 피곤함을 매달고 지하철에 올라탄 사람들을 훑었다자리에 앉아 꾸벅거리기도 하고 손잡이를 잡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어쩐지 익숙한 기시감이 들었다실제로 매일 같이 보고 있는 풍경일 수도 있다영영은 남겨둔 두 알의 타이레놀을 물 없이 씹었다지구는 돈다갈릴레오 갈릴레이지하철도 돈다도시철도공사그러면 영영의 일상은끝없는 반복무언가 어긋났다면 돌이킬 수 없다그 실수는 무한으로 반복되니까영영은 텅 빈 타이레놀 상자를 가방에 집어넣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시집을 꺼냈다익숙한 감각으로 페이지를 가늠해 펼치면 뒤집힌 글자들의 나열이 영영의 시야로 들어왔다사이즈가 작은 책을 거꾸로 펼치는 건 드문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영영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읽어가기 시작했다이것은 지나친 야근으로 초래된 인식 능력의 저하 탓만은 아닐 것이다뒤집힌 어지러운 글자의 나열보다 더 어지러운 영영의 만성 두통거꾸로 들어도 읽히는 글자를 굳이 제자리로 돌려놓을 이유가 없었다영영은 계속 읽어나간다.

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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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코쿠료 묘

카미코쿠료 묘(1943.8.15.~1974.)는 한일 혼혈로 일제강점기에 한국으로 넘어와 죽을 때까지 일본 땅을 밟아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일본어엔 능숙했던 것으로 알려지며 누군가는 그런 그가 일본인으로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제강점기를 보낸 것을 안타깝게 평하기도 한다. 한국은 묘가 3살이 되던 해 해방됐다. 이후 한반도에선 철저한 종족 분류가 이뤄졌다. 이분법의 분류 체계 속에서 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다. 다만 양쪽의 피가 섞인 그가 한국에만 체류했던 까닭은 간단하게 설명된다. 카미코쿠료 묘에게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구매할 자격이 없었다.묘가 8살이 되던 해에 한반도에선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이는 그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 추정된다. 황폐해진 땅을 밟고 서는 데에는 이전과 다르게 자격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생존을 향한 지독한 인간의 본능만이 꿈틀댈 뿐이었다. 누구도 그의 출신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유일한 기회로 여겨진다. 허허벌판 위에서 누구도 접근하지 않았던 영역의 철학에 가닿기까지 걸린 기간은 단 1년. 이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생각의 폭을 넓히지 않았더라면 이루어낼 수 없는 성과라는 평을 받는다.한국전쟁이 끝나고 황무지 같던 땅은 다시금 색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은 묘가 황무지 같은 영역에서 자신의 철학을 구축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그의 사상은 온통 비유로 가득하다. 그것은 흡사 철학 서적보다는 허구의 소설류와 비슷해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인간, 양철, 지푸라기, 사자로 비유되는 사상의 전개는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며 그중 사자만이 배척된다는 점은 당시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철학은 기존의 분류 체계로는 구분될 수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 레오폴드의 생태윤리로, 무생물까지 도덕적 대상으로 봤다는 점에서 양철을 인간의 수용 범위에 포함한 묘의 윤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사자가 배척된다는 점에서 생태윤리의 완전한 분류는 곤란했다. 카미코쿠료 묘의 처음이자 마지막 철학은 그렇게 어느 곳에서도 분류되지 못한 채 한동안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남았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어린 시절부터 소속의 열망이 꺾여 자란 인간의 안타까운 무의식으로 묘사하기도 한다.사용되지 못하고 도태된 묘의 철학은 재밌게도 몇 년 뒤 정치계에서 다시 모습을 보였다. 기존의 분류 체계로는 분석될 수 없다는 한계를 완전히 벗은 그의 사상은 철학계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형성했다. 동물 배척주의. 무언가를 중심으로 삼았던 기존의 철학-이를테면 인간 중심, 동물 중심, 생명 중심 등으로 불리는 것들-은 그의 사상을 대변할 수 없었다. 차라리 배척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그러나 이런 네이밍에 묘의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동물 배척주의는 여론몰이가 필요할 때면 항상 등장했다. 제일 처음 그것이 사용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후의 일로, 뒤늦은 빨갱이 처단을 위해서였다. 그때 처음 묘의 철학을 인용한 정치인은 “그들은 우리와 같은 영역에 속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우리에게

  • 카임
  • 2024-01-15
해피벌룬 레볼루션

고하은 형은 혁명가 기질이 있었다. 애초에 하느님의 은총이란 이름을 달고 꼬박꼬박 절에 다닌 것부터가 그랬다. 하느님이 알면 니 뒤통수 한대 후리고도 남겠네. 라는 말은 언젠가 실종된 형의 룸메이트가 남겼다. 그러면 형은 무감한 얼굴로 하느님은 그렇게 쪼잔하지 않으셔. 하고 대꾸했는데 그러면서도 나무아미타불 하는 염불을 외우는 버릇을 버리진 못해서 결국 형은 이름을 바꿨다. 고나무. 물론 그건 형식적이라기보단 암묵적인 것이었고 대한민국은 형을 고하은으로서 통계를 낼 터였다. 왜냐하면 형은 성선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순자, 홉스, 그리고 고나무. 출판사에선 형의 생애를 인터뷰해달라는 요청을 수백 번도 넘게 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거절한 건 언젠가의 형이 말했듯 인간은 항상 남이 가장 방심한 순간에 뒤통수를 후리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뒤통수 같은 거 안 후릴 테지만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므로 후릴 수 있는 여지가 왕왕 있다는 것이 논리의 시작과 끝이었다. 물론 그 말투는 룸메이트에게서 옮아온 것으로 실제로 형은 그리 과격한 언어를 자주 사용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도통 ‘성악설을 믿은 고하은, 그는 대체 누구인가’ 따위의 인터뷰에 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형은 성선설을 믿었으므로. * 사람 좋은 인상의 남자가 카페로 들어온다. 180이 한참 넘어 보이는 거구의 남성은 멀뚱히 앉아 있는 내 얼굴을 발견하곤 크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살짝 올라간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는 게 보였다.“안녕하세요~ 이건우 님 맞으시죠?”“네.”“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저 정말 연락받고 깜짝 놀랐잖아요. 누가 요청을 해와도 거절하신다고 들었는데 먼저 연락이 올 줄이야.”“이제는… 그만 썩힐 때도 됐죠. 부패하기 전에 놓아주고 싶어서요.”“잘 생각하셨어요. 저희 출판사가 소설류의 허구에는 좀 약하지만, 이런 사실 기반 평전 같은 건 기깔나거든요. 쓸데없는 편집도 없고.”알고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나는 몸을 반쯤 접어 내려둔 가방에서 힘겹게 노트북을 꺼내는 인터뷰어의 옆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잘 먹고 잘 자며 굴곡 없이 살아온 사람의 분위기 같은 게 그에겐 있었다. 노트북 세팅을 마치고 마우스를 몇 번 딸깍이던 그는 곧 휴대폰 녹음기를 틀고 눈알을 반짝인다.“그럼 시작할까요?” * 형을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죽음을 언급해야 합니다. 그건 꼭 형이 살인자였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제 쪽에 가깝죠. 생과 사, 그건 형을 가장 잘 표현하는 키워드가 될 겁니다. 그날은 많이 지쳤습니다. 평소랑 똑같은 노동이었음에도 유독 가라앉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얼른 돌아가서 씻고 싶었습니다. 아니, 씻기 전에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휴식이 절실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룸메이트가 목을 맨 날이었어요.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곳은 가출한 놈들 몇몇이 살던 아지트 같은 곳이었는데 지나는 사람도 없고 관심 두는 이도 없었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니요. 룸메이트의 이름이 병으로 끝나던가. 아무도 그 애를 죽이지 않았을 겁

  • 카임
  • 2023-11-28
모든 것이 부서진 밤에

이야기 하나 해줄까.옛날에 광대 하나가 있었다. 광대라는 게 너도 알다시피 으레 허연 얼굴에 빨간 코, 귀까지 찢어진 입술의 모양새가 아니냐. 걔도 다를 게 없었다. 얼굴은 허옇고 코는 괴상하게 빨갰고 입술은 누가 잡아 찢은 것처럼 째져 있었다. 그런데 그 꼴이 서커스 안에서는 먹혀서 보러 오는 관객마다 재밌다고 웃었다. 흉측한 얼굴로 공중그네를 타다 떨어져도 훈련 덜 된 호랑이한테 팔뚝을 물려도, 그게 그 사람들은 너무 재밌던 거다. 그게 다 개그인 줄 아는 거다. 그래서 광대는 웃었다. 허리가 나가고 팔뚝이 잘렸는데 웃었다. 여기까지는 서커스 안에서의 일.그런데 너도 들어보지 않았냐, 피에로 괴담 같은 거. 광대는 서커스 안에서나 유쾌했다. 허연 얼굴에 코 대신 달린 빨간 구, 길게 찢어진 입술 같은 건 그 좁아터진 줄무늬 천막 안에서나 허용되는 것들이었다고. 광대라는 것의 인생이 원래 좀 기구하다. 사람들을 웃기는 데 충실했었는데 그건 몸담은 범위 안에서의 일이고 실상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피에로 괴담으로 불리는 꼬라지를 봐라. 너라면 허무하지 않겠니. 와중에 더 비참한 사실은 뭔지 아냐. 사실 광대랑 피에로는 다르다는 점이다. 피에로 괴담에 등장하는 입이 찢어지게 웃는 기괴한 얼굴은 피에로가 아니라 광대. 그런데도 광대 괴담이 아니라 피에로 괴담이라 불린다. 광대는 비참한 소문에서마저 제 이름을 빼앗기는, 말하자면 이 시대의 실패자라는 거다.그런데 광대라고 실패자가 되고 싶진 않았을 거 아니냐. 그래서 광대는 입을 더 찢었다. 더 오래 웃었고 더 크게 웃었다. 그러면 사람들도 웃어줄 줄 알았던 모양이지. 그런데 막상 찢고 보니 사람들은 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괴담 같은 소문이 돌았고 서커스에선 쫓겨났지. 완벽한 실패자가 된 거야. 실패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는데 오히려 더 망해버렸다. 덫에 걸린 토끼가 빠져나가려 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입는 것처럼, 물고기가 벗어나려 헤엄칠수록 그물은 더 단단하게 물고기를 가두는 것처럼, 그러니까 너랑 내가 이 거지 같은 인생을 조금이나마 잊어보려 입을 종알대면 종알댈수록 더 비참해지는 것처럼…그만할까.알았다, 조금만 더 할게.완벽한 실패자가 된 그 광대는 사실 좀 울고 싶었다. 서커스 단원일 때야 제 역할이 남을 웃기는 것이니 실실 쪼개고 있음 되는 일이지만 이제는 뭣도 아니지 않냐. 그래서 울어도 될 거라 생각했다. 이때까진 슬퍼도 넘어져도 놀림 받아도 하물며 팔이 뜯겨나가도 웃고 있지 않았니. 그래서 울기로 했다. 그런데 울 수 있었겠냐? 평생 진솔한 감정 따위는 모르던 입 찢어진 인간이 울 수 있었겠냐? 울 수가 없어서 웃었다. 막 웃었다. 제 딴에는 내뱉는 소리가 흑흑이었는데 찢어진 입술 새로는 하하가 되어 흘러나왔다. 아주 깊은 숲속이었다. 그 웃음소리가 둥글게 둥글게 퍼져 나갔다…왜 숲속이냐고 묻지 마라. 광대가 술에 절어 비틀대며 그곳까지 기어갔을지, 아니면 아주 단단한 나뭇가지에 제 목을 매려고 했는지 내가 알게 뭐냐. 너도 내가 종종 비 오는 날이면 강가로 가 노숙하는 이유

  • 카임
  • 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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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해서 제 언니가 좋아해서 많이 들어봤던지라 제목을 보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딱 떠올라서 홀린 듯이 들어와봤어요 카임 님 글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매번 카임 님의 색깔이 들어가 있다는 거에요 문장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절 놀랍게 만들어요 정말 글을 사랑하시는 게 눈에 보이고 완성도 있어요 저도 아직 저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부럽기도 하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어떤 글로 돌아오실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말 잘 보내세요

    • 2023-12-30 21:30:25
    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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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임

      @난바다 난바다 님, 안녕하세요! 꽤 오랜만에 글틴에 접속했는데 감사하게도 따뜻한 댓글이 달려 있어 굉장히 기쁘답니다! 저 역시도 이 글을 쓸 때 당연하게도..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떠올렸답니다. 사실 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라는 일본 밴드를 떠올렸지만.. 결국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귀결되는 것은 같으니까요..^_^ 제 글을 읽어주시고 감상평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곧 글틴을 졸업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이런 따뜻한 댓글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저도 아직 저만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지만, 제 색깔이 있다고 말씀해주시니 기뻐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2024-01-15 23:42:46
      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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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1500
  • 네셔

    카임님, 오랜만입니다. 이번에도 참 좋은 글이군요. 말 그대로 저희는 영원을 살아갑니다. 고작 100년 호흡할 남짓인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우습지만, 정말로 저희의 일상은 영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글에서 묘사되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 재미로 씹고 넘길 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유머에 가까운, 쓴 웃음 짓게 되는 이야기죠. 저로서는 특히나 느껴지는 점이 많군요 수많은 이가 작품활동을 포기하는 이 업계에서 내일이 기대된다는 말은 무책임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대학에 입학해 글을 쓰며, 카임님처럼 재능이 넘치는 학생들의 글을 다듬고 푼돈을 벌고 있습니다. 무책임을 미덕으로 삼아 생을 연장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카임님은 곧 성인이 되시는군요. 저와 마찬가지로 문예창작과에 입학할 수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느쪽이든 저는 카임님의 글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정말로 무책임하지만, 내일이 기대되는 글이랄까요. 미숙하기에 얼핏 드러나던 매력이, 점차 완성되는 당신의 글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몇몇 선배와 동기는 순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곤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상품성의 죽음이 곧 의미의 상실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미소짓습니다. 저희는 글을 씁니다. 자본과 노동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그것은 무책임한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무책임 역시 미덕이 될 수 있지는 않을지, 조용히 고민합니다. 잡설이 길어졌군요. 요는 결국 카임님이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저희는 때때로 문학이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그것이 무책임하다고 느낍니다. 소설 속 영영처럼 틀어진 선택에 들어섰다고 느낄 때마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입니다. 저희는 글을 씁니다. 이미 그것은 무책임이며, 미덕이고, 무의미하기에 의미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건필해주시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댓글 한통 남겨봅니다.

    • 2023-12-19 14:12:00
    네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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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임

      @네셔 네셔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닉네임이 살짜쿵 바뀐 것 같은데 속으로 발음해보고는 금방 알아차렸어요:-)!! 반가운 닉네임으로 달린 정성어린 댓글을 읽으니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저도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고 싶지만 요즘에는 조금 고민이 됩니다. 대학의 네임벨류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언제까지나 이상을 가지고 낭만적으로 살고 싶었는데 막상 현실이 덮쳐오니 대학의 이름을 봐야 하는지, 학과를 봐야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배울 것인지 세상을 쓸 것인지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글은 계속 쓸 것 같습니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렇기도 해요. 사실은 이번에 시험에서 떨어지고 다시는 글을 쓰기 싫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날 밤에 이렇게 된 거 입시글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테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이 미워서 도망치고 도망쳐도 결국 글로 귀결될 삶인가봐요.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고요. 최근엔 이제와서 놓아버릴 수도 없는 이 애매한 재능에 자주 비참해지곤 하는데.. 네셔님 댓글에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네셔님도 글틴에는 글을 올리지 못하지만 계속 글을 쓰고 계시겠죠? 언젠가 각자의 이름 뒤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문단에서 만나는 날이 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_^ 따뜻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2023-12-22 13:04:15
      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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