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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부서진 밤에

  • 작성자 카임
  • 작성일 2023-11-25
  • 조회수 623

이야기 하나 해줄까.

옛날에 광대 하나가 있었다광대라는 게 너도 알다시피 으레 허연 얼굴에 빨간 코귀까지 찢어진 입술의 모양새가 아니냐걔도 다를 게 없었다얼굴은 허옇고 코는 괴상하게 빨갰고 입술은 누가 잡아 찢은 것처럼 째져 있었다그런데 그 꼴이 서커스 안에서는 먹혀서 보러 오는 관객마다 재밌다고 웃었다흉측한 얼굴로 공중그네를 타다 떨어져도 훈련 덜 된 호랑이한테 팔뚝을 물려도그게 그 사람들은 너무 재밌던 거다그게 다 개그인 줄 아는 거다그래서 광대는 웃었다허리가 나가고 팔뚝이 잘렸는데 웃었다여기까지는 서커스 안에서의 일.

그런데 너도 들어보지 않았냐피에로 괴담 같은 거광대는 서커스 안에서나 유쾌했다허연 얼굴에 코 대신 달린 빨간 구길게 찢어진 입술 같은 건 그 좁아터진 줄무늬 천막 안에서나 허용되는 것들이었다고광대라는 것의 인생이 원래 좀 기구하다사람들을 웃기는 데 충실했었는데 그건 몸담은 범위 안에서의 일이고 실상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피에로 괴담으로 불리는 꼬라지를 봐라너라면 허무하지 않겠니와중에 더 비참한 사실은 뭔지 아냐사실 광대랑 피에로는 다르다는 점이다피에로 괴담에 등장하는 입이 찢어지게 웃는 기괴한 얼굴은 피에로가 아니라 광대그런데도 광대 괴담이 아니라 피에로 괴담이라 불린다광대는 비참한 소문에서마저 제 이름을 빼앗기는말하자면 이 시대의 실패자라는 거다.

그런데 광대라고 실패자가 되고 싶진 않았을 거 아니냐그래서 광대는 입을 더 찢었다더 오래 웃었고 더 크게 웃었다그러면 사람들도 웃어줄 줄 알았던 모양이지그런데 막상 찢고 보니 사람들은 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괴담 같은 소문이 돌았고 서커스에선 쫓겨났지완벽한 실패자가 된 거야실패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는데 오히려 더 망해버렸다덫에 걸린 토끼가 빠져나가려 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입는 것처럼물고기가 벗어나려 헤엄칠수록 그물은 더 단단하게 물고기를 가두는 것처럼그러니까 너랑 내가 이 거지 같은 인생을 조금이나마 잊어보려 입을 종알대면 종알댈수록 더 비참해지는 것처럼

그만할까.

알았다조금만 더 할게.

완벽한 실패자가 된 그 광대는 사실 좀 울고 싶었다서커스 단원일 때야 제 역할이 남을 웃기는 것이니 실실 쪼개고 있음 되는 일이지만 이제는 뭣도 아니지 않냐그래서 울어도 될 거라 생각했다이때까진 슬퍼도 넘어져도 놀림 받아도 하물며 팔이 뜯겨나가도 웃고 있지 않았니그래서 울기로 했다그런데 울 수 있었겠냐평생 진솔한 감정 따위는 모르던 입 찢어진 인간이 울 수 있었겠냐울 수가 없어서 웃었다막 웃었다제 딴에는 내뱉는 소리가 흑흑이었는데 찢어진 입술 새로는 하하가 되어 흘러나왔다아주 깊은 숲속이었다그 웃음소리가 둥글게 둥글게 퍼져 나갔다

왜 숲속이냐고 묻지 마라광대가 술에 절어 비틀대며 그곳까지 기어갔을지아니면 아주 단단한 나뭇가지에 제 목을 매려고 했는지 내가 알게 뭐냐너도 내가 종종 비 오는 날이면 강가로 가 노숙하는 이유를 모르지 않냐나도 네가 멀쩡한 음식 두고 흙을 처먹는 이유를 모른다사람은 원래 다 이유 없는 고통을 품고 사는 법이다.

그러면 너도 이제 알겠지광대가 얼마가 고통스러웠는지를 말이야평생을 웃기만 하며 살게 될 실패자의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너는 알 거야어쩔 수 없는 일들이 운명처럼 몰아닥치는 인생을 너는 알 거다그러면 너는 이제 막 그 광대한테 동정심이 생기겠지사실 동정할 처지도 못 되면서 함부로 동정하고 연민하겠지그래그런 놈이 우리 말고 하나 더 있었다그게 바로 달이다.

너 숲에서 하늘을 쳐다본 적 있냐나는 있다강가에 가다가 길을 잃어서 그날은 숲에서 노숙을 했다그때 밤하늘이 무척 예뻤었는데… 짜증나게 예뻤었는데… 제일 예뻤던 건 뭔지 아냐빛나는 거였다빛나는 거제일 크고 동그랗게 빛나는 거숲속에 누워서도 거지 본성을 못 버려서 그 빛나는 게 그렇게 예뻐 보이더라.

나한테도 예뻐 보였으니 나보다 불쌍한 광대는 그게 얼마나 더 예뻐 보였겠냐손을 뻗으면 꼭 잡힐 것만 같았겠지 않냐그런데 어라그게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거다거기서 광대는 한 번 더 좌절했다이제껏 욕심이랄 것 없이 살아왔는데 고작 처음 품는 욕심 따위도 신은 들어주지 않는 거다이름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얼굴도 버리고 팔뚝도 버리고 심지어 감정과 마음까지도 모조리 버렸는데남은 거라곤 찢어진 입술과 웃음소리밖에 없는데달 하나를 못 주겠다고 신이라는 작자가 쪼잔하게그래서 막 울음이 나왔다그런데 내가 아까 뭐랬냐흑흑도 하하가 된다고 하지 않았냐광대는 또다시 울지 못하고 웃었다.

그러자 그 해괴한 꼴을 본 달이 말하기를왜 웃기만 하냐는 거야왜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냐고무슨 이유에서 그러냐고너 정말 행복하냐고달이 그리 물었다그러니까 광대는 사실을 말했겠지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처지에 대해 말하고 쓰레기 같은 인생에 대해 말하고 숲까지 오게 된 이유를 말하고 마침내 자신은 실패자라고 말했겠지그랬더니 그걸 들어주던 달이 어땠겠어불쌍하지 않았겠냐함부로 동정하고 연민하는 너처럼달도 동정하지 않았겠냐그래서 달이 광대 얘길 한참 들어주다가 이제는 자기 이야기를 했다크고 동그란 모양을 얘기하고 노랗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얘기하고 뱃속에 품고 있는 토끼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말을 하는 거야자신의 뒷모습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거야빛을 받지 않아 회색인 낯빛과 모공이 푹푹 생긴 거친 피부에 대해서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뒷모습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광대는 달의 모든 면을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이 됐다황홀하게 빛나는 앞면이 아니라 비참하고 못생긴 뒷면까지도 광대는 알게 됐단 말이다그러니까 어땠겠냐기뻤겠지홀렸겠지나한테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까지 드러내 보여주는 그 달이 너무 사랑스러웠겠지그래서 말이야달이랑 광대가 결혼을 한 거 아니겠냐결혼하는 날 처음으로 광대가 울었던 거 아니겠냐.

광대는 못 운다고 하지 않았냐고찢어진 입으로 어떻게 우냐고?

바보야설마 달이 숲으로 떨어졌겠냐광대가 달이 있는 곳으로 간 거지서커스 천막에서 숲속으로 간 것처럼 어떤 연유로 달이 있는 곳까지 당도했겠지그리하여 광대는 그제야 본 모습을 찾지 않았겠냐울 줄도 알고 화낼 줄도 아는 그런 멀쩡한 모습을 되찾지 않았겠냐입이 찢어지기 전팔뚝이 잘리기 전광대가 되기 전가족을 잃기 전비굴해지기 전그러니까 아주 태초의 상태를 찾지 않았겠냐고.

이야기 끝났다이제 자자.

자라고 얼른.

달이 할 일이 없어서 나를 홀리겠냐남은 다 홀려도 우리는 안 홀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자라얼른.

카임
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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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코쿠료 묘

카미코쿠료 묘(1943.8.15.~1974.)는 한일 혼혈로 일제강점기에 한국으로 넘어와 죽을 때까지 일본 땅을 밟아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일본어엔 능숙했던 것으로 알려지며 누군가는 그런 그가 일본인으로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제강점기를 보낸 것을 안타깝게 평하기도 한다. 한국은 묘가 3살이 되던 해 해방됐다. 이후 한반도에선 철저한 종족 분류가 이뤄졌다. 이분법의 분류 체계 속에서 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다. 다만 양쪽의 피가 섞인 그가 한국에만 체류했던 까닭은 간단하게 설명된다. 카미코쿠료 묘에게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구매할 자격이 없었다.묘가 8살이 되던 해에 한반도에선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이는 그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 추정된다. 황폐해진 땅을 밟고 서는 데에는 이전과 다르게 자격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생존을 향한 지독한 인간의 본능만이 꿈틀댈 뿐이었다. 누구도 그의 출신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유일한 기회로 여겨진다. 허허벌판 위에서 누구도 접근하지 않았던 영역의 철학에 가닿기까지 걸린 기간은 단 1년. 이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생각의 폭을 넓히지 않았더라면 이루어낼 수 없는 성과라는 평을 받는다.한국전쟁이 끝나고 황무지 같던 땅은 다시금 색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은 묘가 황무지 같은 영역에서 자신의 철학을 구축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그의 사상은 온통 비유로 가득하다. 그것은 흡사 철학 서적보다는 허구의 소설류와 비슷해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인간, 양철, 지푸라기, 사자로 비유되는 사상의 전개는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며 그중 사자만이 배척된다는 점은 당시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철학은 기존의 분류 체계로는 구분될 수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 레오폴드의 생태윤리로, 무생물까지 도덕적 대상으로 봤다는 점에서 양철을 인간의 수용 범위에 포함한 묘의 윤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사자가 배척된다는 점에서 생태윤리의 완전한 분류는 곤란했다. 카미코쿠료 묘의 처음이자 마지막 철학은 그렇게 어느 곳에서도 분류되지 못한 채 한동안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남았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어린 시절부터 소속의 열망이 꺾여 자란 인간의 안타까운 무의식으로 묘사하기도 한다.사용되지 못하고 도태된 묘의 철학은 재밌게도 몇 년 뒤 정치계에서 다시 모습을 보였다. 기존의 분류 체계로는 분석될 수 없다는 한계를 완전히 벗은 그의 사상은 철학계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형성했다. 동물 배척주의. 무언가를 중심으로 삼았던 기존의 철학-이를테면 인간 중심, 동물 중심, 생명 중심 등으로 불리는 것들-은 그의 사상을 대변할 수 없었다. 차라리 배척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그러나 이런 네이밍에 묘의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동물 배척주의는 여론몰이가 필요할 때면 항상 등장했다. 제일 처음 그것이 사용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후의 일로, 뒤늦은 빨갱이 처단을 위해서였다. 그때 처음 묘의 철학을 인용한 정치인은 “그들은 우리와 같은 영역에 속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우리에게

  • 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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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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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벌룬 레볼루션

고하은 형은 혁명가 기질이 있었다. 애초에 하느님의 은총이란 이름을 달고 꼬박꼬박 절에 다닌 것부터가 그랬다. 하느님이 알면 니 뒤통수 한대 후리고도 남겠네. 라는 말은 언젠가 실종된 형의 룸메이트가 남겼다. 그러면 형은 무감한 얼굴로 하느님은 그렇게 쪼잔하지 않으셔. 하고 대꾸했는데 그러면서도 나무아미타불 하는 염불을 외우는 버릇을 버리진 못해서 결국 형은 이름을 바꿨다. 고나무. 물론 그건 형식적이라기보단 암묵적인 것이었고 대한민국은 형을 고하은으로서 통계를 낼 터였다. 왜냐하면 형은 성선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순자, 홉스, 그리고 고나무. 출판사에선 형의 생애를 인터뷰해달라는 요청을 수백 번도 넘게 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거절한 건 언젠가의 형이 말했듯 인간은 항상 남이 가장 방심한 순간에 뒤통수를 후리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뒤통수 같은 거 안 후릴 테지만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므로 후릴 수 있는 여지가 왕왕 있다는 것이 논리의 시작과 끝이었다. 물론 그 말투는 룸메이트에게서 옮아온 것으로 실제로 형은 그리 과격한 언어를 자주 사용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도통 ‘성악설을 믿은 고하은, 그는 대체 누구인가’ 따위의 인터뷰에 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형은 성선설을 믿었으므로. * 사람 좋은 인상의 남자가 카페로 들어온다. 180이 한참 넘어 보이는 거구의 남성은 멀뚱히 앉아 있는 내 얼굴을 발견하곤 크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살짝 올라간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는 게 보였다.“안녕하세요~ 이건우 님 맞으시죠?”“네.”“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저 정말 연락받고 깜짝 놀랐잖아요. 누가 요청을 해와도 거절하신다고 들었는데 먼저 연락이 올 줄이야.”“이제는… 그만 썩힐 때도 됐죠. 부패하기 전에 놓아주고 싶어서요.”“잘 생각하셨어요. 저희 출판사가 소설류의 허구에는 좀 약하지만, 이런 사실 기반 평전 같은 건 기깔나거든요. 쓸데없는 편집도 없고.”알고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나는 몸을 반쯤 접어 내려둔 가방에서 힘겹게 노트북을 꺼내는 인터뷰어의 옆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잘 먹고 잘 자며 굴곡 없이 살아온 사람의 분위기 같은 게 그에겐 있었다. 노트북 세팅을 마치고 마우스를 몇 번 딸깍이던 그는 곧 휴대폰 녹음기를 틀고 눈알을 반짝인다.“그럼 시작할까요?” * 형을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죽음을 언급해야 합니다. 그건 꼭 형이 살인자였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제 쪽에 가깝죠. 생과 사, 그건 형을 가장 잘 표현하는 키워드가 될 겁니다. 그날은 많이 지쳤습니다. 평소랑 똑같은 노동이었음에도 유독 가라앉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얼른 돌아가서 씻고 싶었습니다. 아니, 씻기 전에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휴식이 절실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룸메이트가 목을 맨 날이었어요.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곳은 가출한 놈들 몇몇이 살던 아지트 같은 곳이었는데 지나는 사람도 없고 관심 두는 이도 없었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니요. 룸메이트의 이름이 병으로 끝나던가. 아무도 그 애를 죽이지 않았을 겁

  • 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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