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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잔상

  • 작성자 아가씨
  • 작성일 2023-08-09
  • 조회수 716

*

아이는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그런데도 시야가 가려지지 않는 것 같아 눈가 위로 두 손을 덮었다.

 

엄마눈을 감아도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아자꾸 뭐가 보여.”

아이가 말했다.

그건무서운 게 아니고 빛의 잔상이야네가 이미 빛을 보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거지그러니 기억하렴너는 날 때부터 빛을 많이아주 많이 보았으니 완전한 어둠 같은 건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거란 걸.”

엄마는 땀에 미끄러지는 아이의 손을 추켜 올렸다.

엄마.”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대답했다엄마의 일그러진 얼굴은 눈을 감아 보지 못했고떨리는 음성은 여기저기 떨어지는 폭탄 소리에 묻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터지는 소리와 터뜨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고아이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가끔 모든 소리가 멈출 때마다 군화 소리와 철컥이는 총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다행히 아이를 향한 게 아니었다소리의 방향을 확인한 엄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때 아이는 가만히 앉아 풍겨오는 담배 냄새가 가까워지지 않길 기도했다.

 

한참 줄담배를 태우던 군인들은 예상보다 이르게 멎은 폭탄 소리에 다급히 사라졌다그들이 있던 자리엔 대충 밟아 불씨를 꺼트린 담배와 타다 만 잔디가 남아 비명을 내질렀다.

아이는 또 한참을 기다리다 모든 비명이 멎음을 느끼고 눈가를 가리던 손을 내렸다그리고 볼품없이 누운 채 힘겹게 미소 짓는 엄마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눈물이 눈동자를 씻어버리면 다시는 엄마를 못 볼 것 같았다대신 엄마의 입꼬리가 더 이상 떨리지 않을 때까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마침내 모든 떨림이 멎은 엄마의 모습도 담고 또 담은 아이는 코끝에 스쳐오는 담배 냄새를 맡으며 늦은 기도를 올렸다엄마가 마지막 잠은 편히 잘 수 있도록 덮을 것을 가져오는 동안담배 냄새가 더는 짙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

시간이 흘러 아이가 아니게 된 아이는 그날을 떠올리며 생각한다아마도 엄마는 그때 내게 말하고 싶었을 거라고지금 눈앞이 깜깜한 것 같아도 어딘가 빛의 잔상이 남아있을 테니 포기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아이의 빛은 엄마였다그날 아이가 덮을 것을 구하러 떠난 사이 끝내 순찰하던 군인에게 발각된 엄마는 유품 하나 남기지 못한 채 기름에 젖어 활활 타버렸고아이가 힘겹게 담았던 엄마의 잔상마저 재에 뒤덮여 완전한 어둠을 만들었다.

 

아이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내어준 따스한 이불을 덮고 병실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마지막으로 기도했다이번에는 이름 모를 신이 아닌 하늘로 올라가 빛의 여신이 되었을 엄마에게정말 잔상이라도 좋으니 깜깜한 나의 어둠을 밝혀달라 빌었다.

 

그날 밤간절한 기도를 두 번이나 거절당한 아이를 불쌍하게 여긴 빛의 여신이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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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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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씨
  •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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