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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밖으로

  • 작성자 양혜인
  • 작성일 2021-05-23
  • 조회수 585

흔히들 말하는 무기력 이였을까, 아님 우울 증이였을까.

소녀가 집밖에 나오지 않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창밖을 바라 본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한 달 전 소녀는 멀쩡한 학생이었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엔 그랬다.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으나, 늘 성실해 보였고, 항상 밝게 웃으며 학교를 다니는 것 같았다. 소녀는 큰 불만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했고, 그저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소녀의 이 행동이 시작 된 그 전날, 평범하게 학교를 다녀 온 후 자신이 제일 자주 입던 핑크색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웠다. 소녀의 부모는 소녀가 조금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소녀는 그날, 침대에 누워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두 눈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이 뺨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녀에게 엄청나게 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날도 그저 평범하게 지냈다고 하는데… 소녀는 왜 이렇게 변한 것이었을까.

그날 이후 갑자기 소녀는 누가 말을 건네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저 멍하니,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힘없이 축 쳐진 몸으로 침대에 몸을 기대일 뿐이었다.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만큼의 식사, 생리현상, 몸을 씻는 것을 제외하곤 하루를 침대에서 보냈다. 소녀의 눈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어딘가 슬퍼보였다. 소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말을 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사람들의 말에 반응도 하지 않았다.

*

이런 행동을 보인지 2주가 조금 지났을 어느 새벽에, 모두가 잠든 밤에 소녀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힘들어요. 하루를 버티는게.”

나지막하게 뱉은 한마디였다.

소녀가 이따금 뱉은 말들을 종합해보면 소녀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었다.

소녀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버거웠다. 사람들이 무심코 툭툭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소녀의 마음속에 쌓여 갔다. 억지로 웃어 야만 했고, 좋아하는 척을 해야만 했고,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해야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매일 꾹 참고 해내야 했다. 언젠가 이런 일상이 다 끝나지 않을 까, 소녀는 내심 기대했지만. 세상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날카로워졌다. 날 세운 세상에서 아픈 척을 하지 않으며 꿋꿋이 버텨 나가는 삶이 더욱 소녀를 괴롭게 하였다.

소녀는 세상이 늘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착하게 살고 배려있게 행동하면 자신은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라면서 이 생각들이 모두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소녀를 볼 때 소녀 그 자체 보다 성적을 먼저 보았다. 그 성적을 가지고 어른들은 소녀를 맘대로 판단해 버렸다. 소녀는 소고기처럼 자신이 등급을 매겨 진다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그리고 그 꼬리표가 자신에게 계속 묶여 있다는 것도 싫었다. 그래도 소녀는 열심히 살려고 했다. 내가 바꿀 수 있지 않을 까, 사람들은 언젠가 내 진짜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소녀가 착하게 살기로 마음을 먹을수록 어른들은 소녀에게 자꾸 날카로운 말을 건넸다. “그것도 모르니?” “네가 잘 못하니까 그렇지.” “변명을 하지 말고 실력을 키우지 그래?” “글쎄, 네가 할 수 있을까?” “정신 좀 차리고 다니렴.” 작은 실수에도 날아오는 말들이 소녀의 어린 마음에 맺혔다.

또래는 좀 다르지 않을 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학기 중 전학을 온 소녀는 늘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 맞춰진 퍼즐 사이로 억지로 들어가기 위해 낑겨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다 몇몇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다. 항상 친구들의 비위에 맞추려고 노력해야 했고, 싫은 것을 좋아하는 척 해야 했다. 친구들이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에 늘 불안 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되자, 소녀는 자기 자신이 못난 사람이 아닐까 고민했다. ‘난 정말 잘 하는게 아무 것도 없을까? 날 좋아 해주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을까?’ 이런 생각들은 소녀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결국 자기혐오로 빠뜨리게 했다.

한 번은 힘들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다 나아질 거라는 뻔한 위로만을 했다. 무언가 소녀를 자꾸 끌어내는 것 같았다.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자기 혼자 뒤로 가는 느낌이었다. 계속 버티다,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에너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생각할 힘, 말할 힘을 모두 다. 세상과 마주 하며 살아갈 용기마저 이젠 지쳐 다 사라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며칠 속앓이하다 툴툴 털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텐데. 소녀의 마음은 이미 너무 망가져 버려 회복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

시간이 흘러 소녀의 어머니가 소녀의 방에 어항 하나를 두셨다. 그 안에는 우아한 푸른 꼬리를 가진 구피 한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소녀는 멍하니 그 구피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구피는 수풀을 이리저리 피하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리고 구피는 가끔씩, 어항을 뛰쳐나올 것처럼 매섭게 물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소녀는 멍하니 구피를 지켜본다.

“안녕.”

소녀는 입을 벌려 작게 인사했다. 구피는 그런 소녀를 지그시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한참을 구피를 바라보고 있을 때, 구피가 또다시 어항을 뛰쳐나올 것 같이 위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팔짝 하더니 물 밖을 잠깐 튀어나왔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구피의 두 눈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어항 밖으로 나가려는 구피의 의지가 이상하게 소녀의 두 눈에 자꾸 보였다. 구피는 어항을 나가면 죽는다. 근데 구피는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외로운 걸까, 그래서 그런 걸까. 소녀는 가끔씩 말도 걸어봤다. 물고기의 아이큐가 10이 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말을 걸어보았다.

“넌 어디서 온 거야. 가족은 있어...?”

 

*

구피 한 마리가 무기력한 소녀에게 무기력을 깰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았다. 소녀는 구피가 온 후로 침대 보다는 어항 앞에 앉아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었다. 말 없이 소녀는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어항을 바라본다. 사각형 모양의 어항에서 쉴 새 없이 헤엄치는 구피를, 그리고 구피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그리고 소녀는 구피를 보면서 자신을 겹쳐 보았다. 그렇게 구피와 소녀의 알 수 없는 동거가 계속 되었다.

 

*

소녀의 행동이 조금 씩 나아졌다고 느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소녀는 9시에 따사로운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한 달 전이라면 멍하니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어야 했지만 소녀는 이제 일어나 책상에 앉아 어항을 제일 먼저 쳐다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비비며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반듯한 직사각형 어항을 바라본다.

이상하다. 어항이 텅 비었다. 헤엄치며 먹이를 먹어야 할 구피는 온데간데없고 수초  만 물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구피…. 어디 갔어요?”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소녀가 소녀의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소녀의 엄마는 소녀의 물음의 목적 보다 소녀가 말을 한 것에 대해 초점을 두며 기뻐하고 있었다. 나중에 소녀의 부모님이 한 얘기를 듣고 소녀는 구피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구피는 소녀가 곤히 잠든 그날 밤, 어항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항 밖으로 튀어 나와 바닥에 떨어져 거친 숨을 쉰 채 죽어 갔다. 그걸 소녀의 부모님이 발견하고 구피를 땅에 묻었다.

그렇다, 항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던 구피는 그 목적을 달성해 버렸다. 그리고 죽었다.

“떠났구나, 넌 결국 해냈구나.”

소녀는 구피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찬 바닥을 보며 중얼 거렸다.

그 순간 소녀는 자리에서 벅 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는 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방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현관으로 향한다. 현관의 슬리퍼를 신고 나서 달칵, 차디찬 현관의 손잡이를 돌린다. 계단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소녀가 2달동안 침대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만 봤던 그 풍경에 소녀가 지금 서 있다.

소녀는 눈을 감으며 햇빛을 온몸으로 느낀다. 따갑게 그녀를 쏘고 있는 햇빛을 버티며 소녀가 우둑하게 서있다.

구피는 항상 어항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구피에게는 어항 밖으로 나가서 숨을 쉴 수 없는 아가미를 지니고 있었다.

소녀는 구피와 달랐다. 침대라는 어항을 나와 세상으로 나아갔다. 소녀에게는 아가미가 아닌 폐가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살 수 있는 건장한 폐가.

그렇게 소녀는 다시는 마주하지 않으려고 했던 세상에 부딪혔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떠 세상을 바라본다.

 

‘잘 가, 구피야. 나도 너처럼 어항 밖으로 나왔어.’

 

양혜인
양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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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현

    혜이나님 안녕하세요. 한 소녀의 성장을 잘 그려낸 소설이네요. 아쉬운 점을 언급하자면 갇혀있다라는 은유로 어항이라는 소재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신다면 퇴고할 때 다른 소재로 바꿔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1-06-15 08:17:01
    송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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