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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림고 시리즈-첫 번째 이야기(10월-12월중반)

  • 작성자 영 0
  • 작성일 2020-10-14
  • 조회수 905

첫 번째 이야기

0부터 99 까지

"체령아! 이체령! 일어나! 왜 안 일어나는 거야."

오늘은 6월 9일. 체령이와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체령이는 로움병에 걸렸다. 불과 한 시간 전만해도 우리는 놀이동산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리고 체령이는 방금전 고통을 호소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고통없이 편안한 얼굴로. 내가 만약 조금 더 빨리 아빠와 화해하고, 로움병에 대해 더 많이 알았으면, 아니 그보다도 체령이와 조금만 더 빨리 가까워졌어도 체령이는 덜 고통스러워 하지 않았을까? 나는 구급차를 부른 후 벤치 앞에 앉아 옛날 생각을 했다.

 

0 -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아니, 그 전에 '없다'라는 개념이 있었나? 그렇지 않다. 아무 개념없이 색, 형체, 공간도 없는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0  이곳에서 시작 된다.

물론 지금부터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도 여기서 시작된다.

1 - 자연수 중 가장 작은 수, 어떤 것을 세기 시작할때 가장 먼저 시작 되어야 하는 것, 무의 공간에 유의 개념이 채워지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개념이다.

그리고 여기 나 김송준도 탄생했다. 무럭무럭 자라 40주 후에 세상과 인사해야지.

2 - 종이는 앞 면과 뒷 면이 있다. 안경은 오른쪽 알과 왼쪽 알이 있다. 젓가락도 한 쪽만 있어서는 쓸 수 없고, 두 쪽이 모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부도 여자 혹은 남자 혼자 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듯 2는 짝을 이루어 주는 수 이다.

40주가 흘렀다. 이제 밖으로 나가야지.  밖에 나가니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 주시는 두 분이 있었다, 엄마 그리고 아빠.

3 - 수수깡과 바늘 등을 이용해 적당히 삼각형을 만들어 보아라.  아마 만들어진 삼각형은 모양이 잘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정 시킨 부분 중 한 부분을 풀면 그 삼각형의 모양은 마구잡이로 변한다.

 내가 태어난 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말을 할 줄 알고, 글을 쓸 줄 알고, 수를 읽을 줄 알고, 웬만한 연산은 암산으로 할 수 있다. 또 오늘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는 엄마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하셨다. 그들은 울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녔다. 엄마를 매장해야 하는 날 그들은 이내 눈물 샘이 바닥났는지, 울지는 않았으나 슬퍼했다. 반면 난 오랜만에 나온 바깥인지라 마음껏 뛰어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와 아빠에게 잘 살라며 응원해 주셨다.

4 - 死 (죽을 사) 이 수는 동양권 특히, 중국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집에 돌아왔다. 아직 해는 중천이었지만, 우리는 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나는 금새 잠에 빠져 들었다. 아빠는 엄마 사진을 끌어 안고서 울고 있었다. 엄마의 죽음은 아빠에게 굉장히 힘들었나 보다.

5 - 피타고라스 학파와 별을 이야기 하면 정오각형 속에 들어있는 별을 생각할 것이다, 황금비율을 만족하는 아름다운 도형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한낱 도형이니까. 물론 이 도형이 약 1:1.618의 황금비율을 만족해서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시간은 빨리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나는 반에 들어갔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고, 많고 많은 자리 중에 내 옆에 와 앉았다. 얼마 후 아이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아이는 청각 장애인 일 것이고,  1학년 때 입학할 때 부터 모두의 안목을 사로잡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청각 장애인이라서는 아닌 것 같지만... 뭐, 상관 없나.

6 - 고대에선 2는 남자, 3은 여자, 6은 결혼이나 부부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리고 6은 완전수이다. 완전수, 완전수란 자기자신을 제외한 모든 약수를 더했을 때 자기 자신이 되는 수 이다.하지만 난 생각한다. '완전한 것이 무엇일까?' 라고.

"이거 인수분해 해볼 사람?"

아, 또 지겨운 수업시간이다. 그것도 수학. 최악이다.거기다 2학년이 되자마자 1학년 수학 복습이라니!!!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새림고 합격 당시 받았던 프린트를 꺼내 보았다.

새림고 입학을 축하합니다.

 안녕하세요?저는~~~~~~~~~~~~~~~~~~~~~~~~~~~~~~~~~~~~~~~~~~~~~~~~~~~~~~~~~~~~~~~~~~~~~~~~~~~~~~~~~~~~~~~~~~~~~~~~~~~~~~~~~~~~

~~~~~~~~~~~~~~~~~~~~~~~~~~~~~~~~~~~~~~~~~~~~~~~~~~~~~~~~~~~~~~~~~~~~~~~~~~~~~~~~~~~~~~~~~~~~~~~~~~~~~~~~~~~~~~~~~~~~~~~~

역시 굉장히 지겨운 서문이다.  물론 그 뒤에 오는 말은 끔찍하다. 요약하면 '꿈을 포기할래?', '빚쟁이로 살래?' 이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특기생에 한해서지만...... 새림고의 특기생은 새림고 만의 방식으로 뽑는다. 새림고의 입학전형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일반, 다른 하나는 특별전형다. 일반 전형은 지역단위 자사고랑 비슷하다고 보면 될거다. 하지만 특별전형은 일반전형과 다르게 학교 선생님이 먼저 지원해줘야한다. 참고로 이것은 무료로 진행된다. 어찌됐든 학생은 자신이 새림고에 응시했다는 것도 모르고 전형이 시작되다. 일단 여기까지는 떨어지는 이가 없고, 거의3-40명이 응시한다.  물론 다음 시험에서 우수수 떨어진다. 이도 학생한테는 부담이 없다. 사실 시험이라 하기도 그렇고, 단순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림재단에게 자신에 관한 조사를 받는다 생각하면 된다. 뒷조사일지라도, 단순히 사교육의 유무에 대한 것이다. 이건 복잡하긴 하지만 사실상 사교육을 하는 애들은 거의 다 떨어진다 보면 될거다. 마지막으로 이 시험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새림고에 응시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새림고에서 2차 합격 공문이 오고, 우리는 그 뒷장에 문제를 내서 보내야 한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그 문제를 평가한다. 참 재미있다. 물론 예체능 쪽은 작품을 첨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후 만약 최종 합격이 되었다면, 새림고에서 다시 한 번 공문이 온다. 여기에는 위처럼 끔찍한 것도 있으나 3년 동안의 사는 곳, 먹을 것등 모두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즉, 3년간 합격자들은 매우 럭셔리하게 살 수 있다. 실제로 나도 이 부분 때문에 온거다. 럭셔리한 건 바라지도 않는다. 아마 '빚쟁이로 살래?' 라는 질문은 아마 지금 쓴 만큼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말일 테니까. 그래도 나는 아빠라는 그 지옥같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엄마가 죽은 후 사업까지 망하자. 술과 도박에만 빠져 사신 아빠. 그렇기에 나는 도망쳐 나왔다. 그래도 매달 할머니가 주시는 용돈 10000원을 어떻게든 거의 50만원 정도로 불려 아빠에게 보낸다. 아빠가 나한테 준 새림고 진학 조건이었으니깐...... 일단 난  이 학교 생물학 특기생이다.

7 - 7은 외로운 수 이다. 1부터 10까지의 수를 어떤 두 집단으로 나눈 후 각각을 곱하였을 때 그  두 수는 절대 같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7을 빼 보고 해 보아라. 아마 1부터 6 그리고, 8부터 10을 곱하면 720으로 같은 값이 나올 것이다. 즉, 7만 이질적이다.

나는 어느 날과 다름 없이 방과 후 특기과목 수업을 듣기 위해 새림대 213실험실로 갔다. 솔직히 특기생이라고 별로 하는 건 없다. 뭐, 영재원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쉬울 거다. 근데 다른 점은 실제 대학원생 만큼의 연구성과를 내면 똑같이 학위를 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새림대학교도 있지만 새림고등학교 특기생반이 대학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기생들은 모두 검정고시를 이미 치뤄 고졸을 인정 받았다. 살짝 이해하기 힘든 구조이다. 참고로, 나는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연구주제는 13년전 모습을 감추신 이사배 박사가 연구하신 '노움병에 대하여'이다. 참고로 이사배박사는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솔직히 빨리 다시 학회로 나와주셨음하고 기다리고 있다.

강의실에 앉아서 3학년이 된 최현 선배와 1학년 신입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온건 1학년 신입생. 보아하니 약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길을 헤멨던 것 같다. 그녀는 나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백낟..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순간 혀를 씹었던 것 같았다. 나는 이때 해줄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괜찮다고 말하며 실험실 의자를 하나 꺼내 앉아 있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핫초코를 타러 갔다. 핫초코를 타며 어디선가 그녀를 보았던 것 같아 떠올려 보러했지만 떠오르지 않아 그저 초코가루가 우유에 녹는 것을 보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상관있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핫초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아이의 옆에 앉은 후 인사했다.

"안녕? 난 김송준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니?"

내가 생각해도 굉장히 형식적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는 내게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어른들이 묻는 첫 질문이었으니까...

" 아, 아, 전 백나미라고 합니다. 오늘 부로 생물학 특기생이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나미는 다급하게 말하고는 코코아를 홀짝였다. 음, 이정도 였나? 사실 여기에 특기생으로 온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는 잘하지만 사교성이 부족하거나 가난한 아이들이 주로 온다. 뭐, 나는 양쪽 둘다였지만, 이아이는 전자 쪽이었나 보다. 일단, 나는 이어서 질문 하나를 더 했다.

"저기, 근데 나한테 왜 죄송한거야? 혹시, 말해줄 수 있어?"

"아, 그, 아까 말하다가 혀 깨문거요. 다시 죄송해요."

나미는 거의 울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딱히 뭐라고 해야할 말을 생각해내지 못했기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잠시 창문으로 밖을 보았다. 아침에 봤던 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뭐, 상관없나?

8 - 8살은 한국에서 아이들이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나이이다. 학교, 공부를 가르쳐주는 교육기관. 그리고 그 이전에 사회성을 기르게 도와주는 장소. 그곳이 바로 학교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성을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

정적을 깬 것은 문을 쾅 열고 들어온 최현 선배였다.
"안녕? 벌써 다들 와 있었네! 넌 이름이 뭐야?"
나미는 한참동안 현 선배의 질문에 답해야만 했다. 참, 신기한 사람이다. 내가 앞에서 새림고에 특기생으로 오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배는 그 둘 양측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일단 새림재단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부자이고, 사교성도 상당히 좋았으니까. 나는 아직도 이 선배가 어떻게 이 학교에 오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고 물어보았자 이 선배는 금새 화제를 돌려버려 나는 물어볼 수 없었다.
현선배의 나미에 대한 질문이 어느 정도 끝난 후 우리는 간단한 생물학 특기생반의 OT와 간단한 실험을 하고, 해산했다. 강의실에서 나온 후 나미가 학교의 안내를 시켜 달라고 해 나는 그냥 적당히 돌아다니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벌써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나는 지난 학기에 까먹고 반납을 안 한 책이 있어 빨리 학교에 가 책을 반납했다.

9 - 내 감정지수이다, 아니, 였다. 보통 사람의 감정지수는 약 40이라 한다. 감정지수는 타인의 감정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즉, 나는 이에 대해선 완전히 꽝인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나는 다른이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내 감정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녀와 만나기전 까지는...

도서관에서 나왔다. 나는 집에 가려고 걸음을 한 발자국씩 옮겼다. 미술실은 불이 꺼져 있었으나 조그만 스탠드를 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 곧 폐교 시간이었기에 알려주려 노크하고 들어갔다.
"저기 곧 폐교 시간이에요."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기에 조금 다가갔다 다가가니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에는 아침에 보았던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거의 다 헤진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 아이는 연분홍 꽃 밭 위에 누워 있었다. 사실 누워 있다기 보다는 늪에 빠져 들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마치 삶을 포기해 버린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던 아이는 왼쪽 아래에 하얀 꽃잎 몇 개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그림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아이는 그림에서 붓을 떼었다. 그리고 붓을 볼에 대고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그리고 목을 뒤로 제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침에 봤던 아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어리 둥절해 하다가 얼굴이 홍당무 처럼 변해갔다.
"흐에에에ㅔㅔ~~~."
그녀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캔버스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도 그저 빤히 바라보았다. 3초정도 지난 후 나는 내가 온 목적을 깨닫고, 수화로 곧 학교 문이 닫힌다고 알렸다. 옛날 봉사활동에 가기전 배워둔 것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고..마...워."

예쁜 목소리 였다, 약간 떨리는 것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교실에서도 노트를 사용하였는데 왜 목소리를 사용하였는지는 이해할 수는 없었다. 뭐, 상관없나......

10 - 수가 꽉 차 넘쳐흘렀다. 더 이상 한 자리수로 부족하자 수 는 둘째자리수를 만들었다. 다른 말로 새로운 수의 시작이다.

나는 그 아이가 짐을 싸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짐을 다 싸고난 후 우리는 정문에서 헤어졌다.

다음날 마찬가지로 그 아이는 내 옆에 앉아 있다. 그 아이는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밀었다.

'안녕? 송준아!'

나도 그 밑에 적었다.

'그래. 안녕?'

그 아이도 밑에 적었다.

'왜 이름을 안 붙여. 어제 걔한테는 붙여줬잖아.'

음, 개는 나미를 말하는 건가? 나는 이런 의문은 뒤로 제쳐 두고, 그 아래에 적었다.

'이름을 몰라.'

그 아이는 분노, 질투,슬픔같은 감정들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아래에 적었다.

'이체령. 이게 내 이름이야. 앞으로 까먹지 마.'

체령이는 다쓴 후 나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고 했고, 잠시 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학교를 모두 마친 후 나는 나미와 함께 집으로 가려고 했다. 바로 옆집 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집은 진짜 집이 아니다. 새림고에서 마련해준 집, 그 집을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집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실험실을 나오자 마자 손을 흔들며 기다린 체령이 때문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체령이는 우리를 근처 카페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필담을 나누었다. 내용은 뭐, 그저 그런 얘기. 학교 적응, 자기소개 등 이런 것 말이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미는 내일 일반과목 수업준비물이 있다고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나랑 체령이 둘만 남았다. 밖의 어둠처럼 침묵이 짙게 깔렸다. 그저 누가 먼저 일어나는지 눈치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체령이였다.

"저기 이거 받아. 어제 관심 있어하는 것 같길래.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 날 시간 비어놔."

역시 또렷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체령이가 건넨 조그만 사진과 한 종이를 받았다. 그곳에는 어제 체령이가 그리던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의 종이는 영화표, 추리영화다. 나는 펜을 들어 노트에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체령이는 노트를 치웠다.

"괜찮아. 말로해도."

"뭐?"

난 순간 이해가 따라가지 않았다. 분명 체령이는 청각장애인 이었기 때문이었다.

"너 혹시 청각장애인이 아닌 거야."

"응. 근데 이건 비밀이야. 그리고 나 외의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는 무조건 필담이어야해. 그래서 하려던 말이 뭔데?"

"아, 알았다고 하려고 했어."

"뭐야, 그거였어. 그럼 토요일날 11시에 역 앞 토끼 조각상 앞에서 만나자."

"응."

체령이는 내 말을 듣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나갔다. 나는 잠시 거의 식어버린 커피를 몇 번 홀짝이다가 집으로 향했다.

11 - 1이라는 막대기 2 개가 나란히 서 있다. 그런데 꼭 이렇게 나란히 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궁금증을 가졌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오늘은 3월 7일 토요일이다. 나는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갈 준비를 마치자 9시였다. 역시 나는 시간 감각이 부족하다. 나는 벽에 기대 앉으며 한숨을 쉈다.

"후..."

그리고 옆에 충전중이던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잠시 주식관련 앱을 열어 주가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내가 돈을 넣어놓은 회사중 하나를 빼고는 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나는 주식사이트로 주가가 떨어진 주식을 팔았다. 거의 10000원 가까이 떨어졌으니 많은 사람이 투기할 것이다라는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10분안에 팔렸으니까. 그후 나는 과학관련기사들을 몇개 찾아보았다. 한 세 네개 정도의 기사를 읽은 후 나는 노트북화면 너머의 벽걸이 시계를 보았다. 시계의 시침이 10과 11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끄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초봄이어서 그런지 찬 바람이 내 볼가를 스쳐지나갔다. 그때 바로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나미다.

"그래 안녕?"

나는 인사를 받아 주었다.

"선배 어디가세요?"

나미는 나에게 나긋이 질문해 왔다.

"그냥 역 앞에 약속이 있어서."

나는 질문을 받아주었다.

"어, 진짜요! 저 거기서 영화보려고 나가보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같이 가요."

나미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체령이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약속에 늦거나 하는 건 아니었기에 허락했다.

"그럴까?"

"네."

나미는 기분 좋게 대답했고, 우리는 간단한 담소를 나누며 역으로 갔다. 10시 55분이다. 조금 일찍 나왔기에 나는 토끼 조각상 앞 벤치에 앉았고, 나미도 어차피 1시쯤에 시작한다며 옆에 앉았다. 잠시 후 시계를 확인하니 11시2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체령이는 오지 않았다. 체령이가 온건  그 후 2분정도가 지나서였다. 체령이는 우리에게 다가와 손을 흔들고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무언가 적어 보여주었다.

 '안녕? 내가  조금 준비하느라 늦었어. 사죄하는 의미로 점심은 내가 사줄게. 저기 맛있는 가게가 있는데 같이가자. 너는 빼고.'

나미는 옆에서 그것을 같이 보고는 체령이에게서 펜과 노트를 뺏어서는 빠르게 글을 적고 펼쳐 윤서에게 자신의 입모양을 가린채 보여주고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설마 약속상대가 여자분이신 건가요?"

"응."

"어째서죠. 어째서 선배도 저를 버리시는 건가요?"

나미는 노트를 놓고,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하, 아니다. 선배는 저 분과 사귀시는 거죠. 제가 여기 끼면 안 되는 거였네요."

그렇게 말하는 나미의 눈에는 약간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체령이와 사귀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미의 팔을 잡아 해명해보려 하였지만, 나미는 빨리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렇기에 나는 해명할 수 없었다. 나는 나미가 멀어지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체령이는 나미가 달려가고 나자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한참 뒤 나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사귄대. 어때 진짜로 사귈래?"

"딱히, 내가 이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감정을 느끼질 못해. 그러니 좋아하는 감정도 이해를 못하지. 그런 나와 사귄다는 것은 너에게 크나큰 실례인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오늘부터 사귀는 거야!"

체령이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사귀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웃고 있었다. 저렇게 기분 좋은 미소는 처음 보았다. 나는 연구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저런 웃음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12 - 시간을 나타내는 것 중에는 12와 관련된 것이 많다. 12개월, 12간지, 그리고 아날로그 시계에 적혀 있는 12까지의 수.등등등

우리는 식당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영화관에가 팝콘 하나와 음료 2개를 샀다. 체령이는 팝콘을 씹으며 좋아했다. 우리는 영화가 시작하기 5분정도 전에 들어가 앉았다.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봤다. 중간중간 음료수도 마셨다. 팝콘을 먹는 중간에 팝콘통 안에서 손이 겹쳤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쳤다. 내가 먼저 손을 뺐다. 그리고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이윽고 영화가 끝났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3 - 13공포증에 대해 아는가? 동양권에서 4공포증이 잘 알려져 있듯이 서양권에서는 13공포증이 잘 알려져 있다. 왜 13이었을까? 4는 죽을 사와 발음이 같아서였다. 그럼 13은 왜그런것인지 의문이 갈 것이다. 나는 잘 모르겠으나 중세 시대가 시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을 제외한 약수들의 총합이 자신 보다 큰 과잉수 12보다 1이 더 크다는 이유도 있지만...

우리는 출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우리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 저기"

나미였다.  어째선지 눈가에 눈물자국이 있었다. 영화는 전혀 슬프진 않았기 때문에 왜 눈물자국이 있는지는 궁금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다. 그때 꼬르륵 소리가 났다. 보아하니 점심도 굶은 것 같았다.

"뭐라도 사줄까? 나가서 핫도그라던지 빵이라던지..."

나는 일단 생각나는 데로 말했다. 그녀는 뭐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체령이가 내 손을 잡고 사람들 속으로 끌고 들어갔고, 동시에 많은 인파에 휩쓸려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영화관 로비로 나왔다. 체령이는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했다. 잠시후 나미가 보였다. 나미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의 얼굴을 잡아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그러고선 얘기했다.

"선배, 선배는 체령선배랑 사귀는 건가요?"

"Yes나 No 둘 중 하나로만 답해야 한다면 Yes겠네."

"역시 그런 건가요? 선배는 예전부터 계속 저 분과 사귀셨던 것이죠. 그럼 제가 여기서 끼어드는 것은 괜한 민폐겠네요."

나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앉고 어깨에 기대왔다.

"잠시만, 잠시만 이러고 있어주세요. 1분만이라도. 제가 포기할 시간을 주세요. 잠깐은 괜찬잖아요."

나는 나미에게 오해가 있다고 말하려 했지만 왠지 말했다가는 오히려 피곤해 지기만 할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그리고 나는 체령이를 기다렸다. 1분, 2분, 3분이 지나도 체령이는 오지 않았다. 여자 화장실에는 줄도 없었거니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나미에게 화장실에 가 체령이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나미는 사람을 막 부리지 말라며 툴툴거리며 들어갔다 나왔다. 나미는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온 후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고만 얘기했다. 나는 순간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른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윤서가 걸어간 쪽에는 화장실이 한 곳 밖에 없으며, 아마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분명 있어야 했다. 나는 너무 꺼림직 했다. 여자화장실 앞까지 왔다. 나미가 말한대로 아무도 안에 없었는지 센서로 작동하는 화장실 불은 꺼져 있었다. 내가 나의 자존감을 버리고 들어가보자고 다짐한 순간 옆에서 쾅소리가 들렸다. 아마 소리로 보아 비상 계단의 철문에 어떤 물체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그쪽으로 한 발자국씩 옮겨 갔다. 뭔지 모를 공포때문에 온 몸이 떨려왔다. 그래도 조금씩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14 - 14살 땐 난 EQ지수 검사를 받았다. 난 문제의 답변을 고를 때 무척 고민했다.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과 내가 실제로 할것 같은 일중에서 결론적으로 난 내가 원하는대로 적어냈다. 그리고 나온 결과로 난  다른 애들 사이에서 기계인간 취급을 당했고, 그때쯤 아빠의 사업도 부도가 났기에 굉장히 힘들었다. 아, 그리고  나는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다른 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연기하고 있다.

나는 조심스레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비명소리가 울려 굉장히 크게 들렸다. 나는 문듬으로 상황을 살펴보았다. 근육질의 남자 두명이 보였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체령이는 안 보였는데 아마 문에 가려져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내가 제조했던 수면가스 하나가 만져졌다. 나는 슬며시 수면 가스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 제낀 후 안으로 수면가스를 터뜨렸다. 이 수면가스는 인체에는 무해하나 아마 10시간은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화재 경보기가 벨을 울려 신고해 줄거라 생각하고, 나는 체령이의 손을 잡고 띄기 시작했다. 체령이는 한 두 대 맞았는지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옷깃은 살짝 찢어져 있었다. 난 하는 수 없이 겉 외투로 상처를 가려주었다. 한참을 달려 어느 공원에 도착했을 때 체령이가 멈춰달라고 했다. 우리는 근처 벤치에 앉았다. 우리는 숨을 고랐다. 체령이는 잠시 후 피곤하다며 내 다리를 빌려 달라고 하며 잠에 빠져 들었다. 아마 아까 수면 가스를 조금 마셨나 보다. 체령이는 어느새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약간 고양이 같았다. 나는 잠시 벌써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다 나도 약간 피곤했기에 말뚝잠을 청했다.

15 - 난 15살때 한 번 같은 반 여자애한테서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나의 답은 없었다. 그저 무시하고 뒤돌아 집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뒤돌아 가며 울음소리와 그 아이를 달래는 소리, 그리고 나에 대한 욕, 욕을 못하게 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난 고등학교 2학년 4월이 될때까지 그 아이랑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할지 그리고 체령이가 나에게 향한 감정이 그 아이가 나에게 향한 감정인지 고민하곤 했다.

"앗 차가워!"

나는 차가운 무언가가 목뒤에 닿는 것이 느껴져 일어났다.벌써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싱그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잘 잤어?"

체령이였다. 체령이는 내 겉옷을 입고 있었고,  양 손에 사이다 2캔과 빵 두봉지가 들려있었다.

"자, 같이 먹자!"

체령이는 빵봉지 하나를 뜯으며 앉은 뒤 나에게 빵을 건넸다. 나는 빵과 사이다를 받아 든 뒤 빵 한 입을 베어 물었다. 달았다. 달달한 빵이 입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게 느껴졌다. 우리는 벤치 앞 호수를 보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는 그 빵과 사이다를 다 먹은 후 월요일에 보자고하며 헤어졌다.

16 -내가 14살때 보았던 EQ테스트에서 16번 문제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만약 주위에 협박을 당하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어떡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주관식 문제였는데, 그 전날 도덕 선생님께서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한다고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내가 피해를 조금 입더라도 그 친구를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 보장된 상황에서 그 친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간단한 응원만 해줄 것이다. 그리고 피해를 입을 것 같으면 응원조차 하지 않고 그저 모른척 지나갈 것이다. 내가 피해받는 것은 질색이니까.'

띠리릭. 도어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쓰려졌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려고 했을 때 나는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체령이가 주었던 그림 사진 이었다. 아마 어제 나가며 떨어뜨렸나 보다 생각하고, 나는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사진을 들고 일어나 의자에 걸터 앉았다. 나는 저번에 미술실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꽃이 눈에 익어 옆에 있던 꽃 도감을 꺼내 살펴보았다. 찾아보니 분홍 꽃은 메꽃 하얀 꽃은 치자꽃이었다. 나는 메꽃과 치자꽃의 꽃말을 떠올려보았다. 메꽃의 꽃말은 속박, 치자꽃의 꽃말은 영원한 즐거움 또는 순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체령이는 이 꽃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무언가에 속박되어 있다. 또는 저번의 경우처럼 자신의 순결을 헤치려는 이가 상시 따라다닌다는 말이겠지. 나는 피곤했기에 사진을 책상위 아무데나 던져 놓고, 이불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내일 체령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며 잠들었다.

17 - 17살 이 나이는 한국에서는 고등학생이 될 때이다. 다른 말로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시간이고, 엉덩이 싸움이란 말이 나올 때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 그러지 않았다. 내가 똑똑하기에 전과목 성적 상위4%를 유지하였고, 안그래도 기계같은 나 였기에 더 기계가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공부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을 했다. 약품만들기나, 폭탄물 설계등을 말이다. (최근에는 간단한 수학연구도 하지만...) 그리고 그 수는 개량형을 제외하면 17개나 된다. 물론 이것을 쓸 일은 없지만... 수면가스 하나는 호신용으로 들고 다닌다. 굉장히 심여를 기울여 인체에 무해하게 만들었으니까.

휘이이잉... 열어둔 책상 앞 창문으로 시원한 아침 바람이 들어온다. 나는 어제 새벽에 일어났다. 뭐, 그렇게 자 놓고 안 일어나면 양심없는 일 이지만... 나는 시간을 보고 잠시만 더 자려고 했으나 그냥 포기하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잔 탄 후 일출을 기다렸다. 잠시 후 해가 떠 올랐고, 또 얼마 후 알람이 요란 스럽게 울렸다. 나는 그제서야 알람을 끄며 자리에서 일어나 토스트기에 빵을 넣고, 접시를 꺼내려 선반에 손을 올려 접시를 잡았으나 잘못잡아 접시는 땅으로 자유낙하운동을 했다. 그리고 접시는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한 숨을 쉬며 집에 있는 조그만 빗자루로 쓸어담고, 새 접시를 꺼냈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먹기 전까지 간단한 가계부(?)를 작성했다. 사실 가계부라기 보다는 주식으로 번 돈, 어른들이 주신 용돈, 아빠에게 보내야 할 돈, 내가 쓴 돈을 적은 것이다. 내가 쓴 돈은 학교에서 내 주지만 이자를 붙여 졸업할 때 받기에 나는 이자까지 친 값으로 적어 놓았다.

나는 토스트가 구워지자 마자 약간 식어버린 커피와 함께 아침을 마치고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했고, 반에 도착했다. 반에 도착하니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저번주 목요일인지 금요일인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회장으로 뽑혔던 것 같은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이 부르신다고 교무실로 가보라고 했다. 교무실에 가니 선생님과 교장선생님, 체령이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고, 교장선생님의 설교가 시작되었고, 교장선생님의 설교가 끝나자 마자 바로 선생님의 설교로 이어졌다. (이때 청각장애인 연기를 하는 체령이는 딴청을 피우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연기 실력이 나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용은 공부할 시간에 어딜 놀려갔는지에 대한 것이다. 전혀 우리가 겪었던 일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잠시 후 경찰들이 왔고, 우리는 그들을 따라 학교 교무실에서 피신했다. 경찰서에 도착한 후 경찰들은 우리에게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고, 이것저것 답했다. 거의 끝나갈 즈음에는 역시 가스에 대한 것도 물어봤다. 나는 주머니에서 가스탄하나를 꺼내며 이거라고 했고, 인체에 전혀 무해한 수면가스라고 설명해 주었다. 물론 그 뒤에 있던 일은 이 가스탄의 압수와 개발 금지 였다. 제작방법이 머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밖에 노을이 질 때서야 파출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체령이는 먼저 나갔고, 나는 경찰 서장 아저씨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셨기에 체령이에게 조심해서 가라고 인사했다. 잠시 후 그 아저씨는 웃으시며 아까는 만든 가스에 대해 매우 혼냈지만, 대단하다며 칭찬했다. 아마 앞의 답은 모두의 앞이니 형식적인 말이었고, 지금은 경찰모두가 밖에 나가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나도 웃으며 넘겼다. 그리고 경찰아저씨는 한동안 몸조심을 당부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경찰분들이 지켜주겠다는 호의를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3분정도 잡혀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저녁바람이 내 귓가를 스쳤고, 경찰분들은 우리를 학교 앞까지 태워다 주신 후 돌아가셨다. 나도 체령이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며 뒤돌아서 집으로 갔다. 아니 집으로 갔어야 했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아 쓰러졌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느낌을 받은 후 의식을 잃었다.

18 - 이 수는 한국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욕으로 통한다. 물론 나는 18도 굉장히 예쁜 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이 수를 욕으로 말하고 싶었다.

나는 시간적 감각을 잃었다. 아침, 점심, 저녁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거의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나는 납치당했는데 범인은 체령이였다. 체령이는 중간중간 나에게 밥을 가져다 주었고, 나의 손, 발을 다 의자에 묶어놓았기에 직접 떠 먹여 주었고, 심지어는 기저귀까지 채워, 앉아서 용변을 처리하게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곳의 한 부분에 텐트를  피고는 자기까지 했다. 뭐, 옛날 부터 그래온 것 같긴 하지만.......  그리고 가끔씩 주사를 놓았다. 주사를 맞은 후 온몸에 힘이 풀렸는데 일종의 진정제 같았다. 나는 약을 맞을  수 록 점점 피폐해져 갖다. 주위는 어두컴컴한 오래된 창고 같았는데 이곳에서 광원이라고는 여러 감시카메라에서 수신된 화면을 모아 놓은 커다란 컴퓨터 화면에서 나오는 초록빛 광원 뿐이었다.

이 날도 그러한 나날 중 하나였다. 뒤편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환한 빛이 잠깐 들어왔다가 닫혔다. 체령이였다. 체령이는 창고에 들어와 먼저 컴퓨터 앞으로 가 감시카메라를 빠르게 돌려보고는 내 앞으로 와서 섰다. 그리고 내 품으로 억지로 파고 든 후 고개를 제껴 내 목의 체취를 맡으며 말했다. 나는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가만히 있어야 했다.

"준아, 준아, 여기 아무도 안 왔었지. 오면 꼭 얘기해 줘야 돼."

체령이는 한참을 그렇게 있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사실 그때 나에게 한 말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몸의 힘이 다 빠져 있었으니 들을 기운도 없었던 것 같다. 체령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내 무릎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약간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텐트로 가서는 이불을 꺼내 내 앞쪽으로 들고 왔다. 그러고는  다시 내 앞에 섰다.

19 -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이때 어른의 계단을 넘을 뻔 했다.

체령이는 내 앞쪽으로 다가와 나의 몸에 감겨있던 여러 개의  자물쇠를 풀었다. 그러고는 굉장히 약해진 나의 몸을 반쯤 들고서는 이불위에 뉘어놓았다. 그러고는 내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잠시 볼을 내 가슴에 비비더니 자신도 옷을 벗어버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추론이다. 나는 계속 위를 보고 있었을 뿐 고개를 돌릴 힘도 없었으니까... 잠시 후 체령이는 내 배위에 올라 앉았다. 그러고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얘 지금 아이를 만들면 아무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할 거야. 그니까 괜찮지."

그러고는 한손을 내려서 나의 바지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했다. 저항이라 해 봤자 입을 뻥긋이는 것이었지만, 억지로 힘을 내 약간 소리를 냈다.

"시히..."

아주 작은 숨소리랑 착각될정도의 소리였지만, 다행히 채령이는 이 소리를 알아차렸고, 하던 짓을 멈추고, 다시 나에게 물어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이....마."

힘이 딸렸기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아무리 체령이가 매일 밥을 가져다 주었다 한들 양은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의 식사정도 밖에 안 되었고, 심지어 매일 같은 음식이었다. 약간 채소며, 과일이며,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갈아서 반죽으로 만든후 구운 빵 같은 느낌이 났다. 어찌 됐든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때 내가 한 말은 기억하지 못한다. 의식이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체령이가 물러났고, 체령이는 나에게 먹을 것을 조금 가져다 주었다. 나는 손이 풀려있었지만 들기는 무리였기에 체령이가 준것을 받아먹었고, 오랜만에 편히 잘 수 있었다.

20 -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간만에 몸에 힘이 돌아왔음을 인지하며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자고 있는 체령이의 얼굴이 보였다. 바로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내가 잔 이후로 체령이는 내 머리맡에서 말뚝잠을 잔 것 같았다. 저번 토요일과 반대로 나에게 무릎을 빌려준 채로... 나는 체령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은근 인형같았다. 그 순간 체령이는 눈을 번쩍 떴다. 우리는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체령이도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내 한쪽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자 이제 됐지, 너도 내 몸을 마음대로 해도 돼. 그러면 양쪽다 좋으니까 괜찮지!"

다행히 나는 힘이 어느정도 돌아와 있었기에 체령이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아니. 난 책임 못져."

나의 이 답변에 체령이는 내게 몸을 들이 대며 더 치명적인 답변을 했다.

21 - 2월 1일은 내 생일이다. 뭐, 난 생일을 챙겨 본 적이 없다. 사실상 그 날이 엄마가 돌아가신 날 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저 난  이맘때쯤이 되면 그저 해를 바라보고 싶어한다. 해는 뭐랄까 기분 좋고 마음이 진정되는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까...

"괜찮아. 내가 전부 책임질게. 그니까, 나 너의 아이를 갖고 싶어. 그러니까 안돼. 응? 거기다가 남자들은 이런 거 좋아하잖아."

나는 이 말을 듣고 체령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바지에 지릴뻔 했다. 체령이는 죽은 눈을 하고 있었고, 입에는 약간 미소를 띄고 있었는데, 옆에 칼이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나를 찌를 것  같았다. 나는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령이를 옆으로 살짝 밀며 일어났다.

"누가 남자들이 그런거를 다 좋아한데, 기본적으로 남자들은 그런 행위를 하게 되면 자신의 단백질이 나가니 오히려 더 힘들다고. 그리고 아마 너 혼자는 책임 못 질거야. 만약 너 혼자 아이를 양육한다 할지라도 그 아이는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잘못 클 수 있어. 그리고 나도 미안한 마음때문에 신경쓰일 거고, 내 그 미안한 마음은 너가 책임질 수 없을 거야. 알았지? 그니까 우리 이제 그만 여기서 나가자."

나는 슬쩍 체령이에게서 피하듯 일어났다. 그리고 문으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다 여러 약봉투가 정돈 되지 않고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밝은 햇빛의 냄새를 마음껏 마음껏 맡고 싶었기에 성큼성큼 문으로 향했다,

22- 2는 얼핏 보면 호숫가에 앉아있는 백조같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2로 이루어진 수들을 보면 아름다운 것들이 생각난다.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자연의 냄새를 잠시 만끽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체령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나와."

체령이는 여기저기 흩어져 줍고 있던 정체모를 약들을 한쪽으로 던지고, 나를 잠시 쳐다 보더니 슬며시 밝은 곳으로 나왔다. 체령이는 잠시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슬며시 내쪽으로 체령이를 끌어 당겼다. 체령이는 내 옆에 섰다. 우리는 창고 앞에 있던 산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

"저.."

동시에 말이 튀어 나왔다.

"너 먼저 말해."

내가 말했다.

"저기... 미안..., 내가 막무가내 였지. 그래도 좋아해 줄거지? 싫어하진 않을 거지?"

"아, 그건 괜찮아. 그런데 다음부터는 이렇게하진 말아줘. 나도 사랑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건 제대로 된 표현방식이 아니라 생각해. 그니까... 음... 사랑이랑 소유욕이랑 다르잖아. 그래서... 사랑은 음... 호수에 떠있는 백조처럼 우아하고 멋지다고 하는 것 아닐까?"

체령이는 답이 없었다. 그저 우리는 그곳에 서서 해가 질때까지 기다렸다가 창고가 있는 언덕을 내려갔다. 그 긴 시간동안 대화는 오가지는 않았으나 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그리고 나는 진짜 몇년 만인지는 모르겠으나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동안 심장이 멈춰 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23 - 나는 이 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가장 안 좋은 순간들이 뭉쳐있는 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시각 23시, 내가 중 2당시 따돌림을 당했던 반, 2-3, 그리고 그 해 3월 23일, 그때 부터 나를 죽이기를 시작하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연기하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다시 진정한 나의 심장이 뛴다고 느낀지 1주가 흘렀다. 뭐, 그때 잠시 뛴 것이지만... 어쨌든 난 집으로 돌아와 푹 쉬고, 몸상태는 좋아졌다. 아니 그랬어야만 했다. 집에 돌아와 방전되었던 핸드폰을 켰을 때 나에게 있어서 악재의 수인 23이 들어간 3월 23일 23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문자는 230건이 와 있었으며, 내용은 대충 레포트 작성및 출결 문제 등이어서 그 후 1주는 지난 13일동안 감금당했던 때보다 더 힘들게 돌아갔다. 심지어 13일 동안 안 본 주식들의 가격도 투자해 놓았던 주식들중 23개 주는 폭락했으니... 앞이 깜깜 했다. 진짜 거짓 1도 없이 체령이에게 전화해 다시 감금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나는 간신히 모든 일을 처리하고, 원래의 본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4 - 하루는 24시간이고, 86400초이다. 이는 간단한 계산을 하면 알 수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하곤 한다. 진짜 86400초와 24시간이 같을지를. 사람이 수 하나를 세는데 걸리는 시간이 1초라고 한다면 고작 86400만 세면 된다는 얘기니까... 뭐, 요약하면 나는 시간감각도 조금 부족한 편이다. 뭐, 정확히 말하면 계산은 빠르나 수에 대한 감각은 무르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특별반 교실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앞에는 따뜻한 녹차하나가 타져 있었고, 앞에는 수학 특별반에서 부탁한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아. 참고로 말하면 나 같은 경우 새림고 입학당시 수학 선생님과 화생선생님이 추천서를 내셨고, 양쪽 모두 합격했다. 그 후 나는 내가 존경하는 이사배박사가 연구하시던 로움병을 연구하고 싶어 생물학부로 온 것이다. 뭐 이후 나는 학교에 빚을 최소한 적게 만들고 싶었고, 그 와중에 안내판에 붙어있던 수학문제를 보내달라는 말에 시험삼아 보내 보았다. 그 이후 어찌저찌해 알바 느낌으로 가끔 수학문제를 보내드리고 10만원정도를 받고 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노트를 덮고 일어나 미리 뜨겁게 해놓았던 물을 컵에 따르고, 녹차 티백을 하나 넣어 가져와  다시 앉았다.

"감사합니다. 아, 아까 현이 선배는 만났는데 조금 늦으신다고 먼저 하고 있으래요."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실험도구 보관함을 열기 위해 다시 일어나려 했으나 나미는 내가 책상위에 올려 놓았던 팔을 잡았다.

"에이 선배 진짜 먼저 하시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죠."

"아니, 진짜 하려고 했는데... 내가 현선배를 배려할 필요가 없잖아. 안 그래?"

"에이... 그래도 이 기회에 놀면되죠"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미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을 보고 잠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나미는 불과  4주 정도 전만해도 굉장히 낯을 많아 가리고, 사회성이 굉장히 안 좋아 보이는 애 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나미는 4주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앞에 앉아있었다. 다행히 따돌림 당하지 않고 잘 적응한 것 같았다. 뭐, 기본적으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 오는 곳이어서 그런가... 아, 여기서 잠시 새림고 일반전형에 대해 말하면, 일반전형은 여러 조건이 있으나 일일이 말하기 힘드니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교우관계에서 크나큰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오는 곳이다. 어쨌든 나미가 잘 적응해서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미가 가방안에서 꺼낸 종이를 보았다. 벚꽃놀이 홍보 포스터였다.

"송준선배, 우리 이번 주말에 여기 가요."

25 - 아마 우리학교 그러니까 새림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25일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새림고가 세워진 날짜이며, 새림재단이 이날 만들어졌으니까. 그리고 매달 25일은 큰 행사를 하니까 더더욱... 참고로 3월에는 나들이, 4월에는 전후 하루를 두고 단체 휴업을 한다. 물론 방학은 없다... 그리고 5월에는 단체로 밖에 나가지 않고, 들어가 있던 건물에서 하루를 보내야하는데, 그래서 5월 24일 새림인들은 무조건 직장이나 학교등에서 벗어나려하고, 그 날 업무량은 다른 날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리고 6월 25일에는 6.25전쟁을 기리기 위해 전체 단식을 하고, 뭐 그 외에도 여러 행사를 한다. 참고로 제일 좋은 것은 10월(할로윈으로 연휴)과 12월(크리스마스+새해맞이 행사)이다. 이유는 즐기지는 않아도 학교에서 안 앉아 있어도 되니까......

나는 전단지를 들었다. 3월23일~27일 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는 행사였으니 나는 그 전단지를 돌려주며 주말에는 끝나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미는 약간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도로 가방에 전단지를 넣었다. 전단지를 집어 넣은 후 나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실험도구를 꺼내려 갔다. 이번에는 내가 나미를 붙잡았다.

"저기 너가 이럴 때는 노는 거라면서... 아니야?"

나미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해왔다.

"아,,.괜찮아요. 어차피 놀러갈 계획세워봐야 못가는데..."

"아, 그건 괜찮아.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내일모레 우리 학교 쉬는 날이야. 우리학교에는 25일마다 하는 행사가 있거든. 음, 신입생 요강에 안 적혀 있었나?"

"아.... 그..거....에 적혀...있었.....나.....요? 헤....헤......헤......... 그거....너무 두.....꺼워서 대충.......읽고 .......버렸는데........"

나미는 검지손가락을 서로 맞물리며 살짝 왼쪽아래로 시선을 내릴채 말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노트를 꺼냈다.

26 - 나는 옛날 미국의 록밴드 Paramore의 26이라는 노래를 가끔 찾아듣는다.  지금이 2038년이니 벌써 나온지 21년이나 된 노래이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건 다름 아닌 가사에 있다, '넌 날 꿈속에서 꺼내 주었어'라는 가사. 나는 이 가사에서 너라고 지칭한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내 껍질을 쓰고 다른 사람 연기를 하고 있는 나로부터 진짜 나를 꺼내줄 사람을...

우리는 30분정도 걔속해서 계획을 짰고, 현이 선배가 들어온 이후로도 그냥 같이 놀러갈 계획을 짰다. 오늘 보고서는 비축분이 있었기에 그냥 그거로 냈다. 아무튼 다다음 날 그러니까 3월 25일이 되어 우리는 벚꽃 놀이 장소로 찾아갔다. 솔직히 그곳이 아니더라도 볼 곳은 많았지만, 그곳에는 다양한 군것질 거리를 팔았기에 일부러 그쪽으로 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재미나게 놀았다. 그리고 밤이 되어 어둠이 내려 앉았고, 하늘에는 다양한 색의 불꽃이 춤을 추었다. 불꽃놀이가 한창일 때 나미는 나에게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거절했다. 뭐, 이때 기억은 솔직히 잘 나지를 않는다. 아무튼 우리는 그 후 헤어졌다. 다음날 학교도 가야하니까.

27-...........................

삐이이요오오옹 삐이이요오오옹

나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고개를 옛날 생각을 하던 것을 멈추었다. 구급차에서 소방대원 한 분이 내리시더니 나에게 환자가 있는 곳을 안내해 달라고 했고, 체령이를 가리키며 빨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나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옆집에 살고 있는 나미한테 연락을 해 내 짐을 조금 가져와 달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대신 현이 선배에게 연락했다.

"선배"

"왜?"

"아, 선배 안 바쁘시면 혹시 제방에 가서 그 옷좀 ♦♦병원으로 가져와 주실 수 있나요? 그 옷장에 걸려있는 거 아무거나 가져와 주시면 되요. 속옷은 음... 그냥 갈아입지 말죠. 근데 옷은 조금 많이 더러워져서요..."

"왜 무슨일인데? 아니다. 그냥 가서 물어보지...뭐."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구굽차는 시원하게 밤의 길을 내달렸다. 나는 내 마음도 이렇게 뻥 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28-28은 두번째 완전 수 이다. 나는 지금와서 다시 완전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아마 완전한 것은... 음... 한 마디로 정리하긴 어려울 것 같다. 만약 내가 완전하다고 가정한다면 더 완전한 이가 눈에 보일 테니까

구급차는 병원에 도착했고 체령이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동안 병원 관계자 분의 안내를 받으며 입원절차를 마무리했고, 주식을 팔아 병원비를 댔다. 잠시 후 현이 선배가 왔다. 한 손에는 내 옷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방이 들려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왔는지 삼각김밥 몇개가 들려있었다. 선배는 말 없이 내 옆에 앉더니 삼각김밥 하나를 까 내 손에 들려주었다. 나는 삼각김밥을 받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어제 아침이후로 하나도 먹지 않았고, 벌써 새벽 2시 였으니까 거의 18시간 택을 컵라면 하나로 버텼으니 그럴만 했다. 현이 선배는 말 없이 하나를 더 까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도 받아들고 천천히 한 입 한 입 베어물었다. 선배는 내 취향을 기억하고 있으셨던 것인지 삼각김밥안에서 약간 차가운 불고기가 씹히는 것이 느껴졌다.

"맛있어?"

선배가 물어왔다.

"네."

나는 짧게 답했다.

"이거 나미가 만든 거야."

선배가 말했다.

"그런가요?"

내가 답했다.

"아, 그리고 여기"

선배는 옷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내가 감사인사를 했다.

"그리고 좀 있다 나미도 온대."

선배가 말했다.

"그런가요?"

내가 말했다.

"응."

그 말이 끝나고 나는 옷을 들고 화장실로 향해 옷을 갈아입었다.

29 - 그때 그 아저씨에게 전해 듣기로 체령이의 생일은 이번 달 그러니까 6월 29일이었다. 옆에서 더 챙겨주면 좋았울 텐데...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이미 나미는 와 있었다. 나미는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 오더니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어떤 일 있으셨죠. 눈에 생기가 없어요. 마치 세상이 망한 것 같은 표정이에요."

나미가 말했다. 나는 답하지 않고 나미를 나에게서 떨어뜨렸다.

"음, 구지 묻지 말아달라는 거죠. 체령선배랑 관련된 거니까. 나랑 상관 없는거니까."

나는 이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삼각김밥은 잘 드셨나요?"

나미가 물었다.

"응. 맛있게 잘 먹었어. 고마워."

나는 이제서야 답샜다.

그리고 다시 조용한 병원로비가 되었다. 이따금 병실에 있기 답답해 나온 환자들의 링거거치대를 끌고 다니는 드르륵 거리는 소리와 병원 스크린 도어의 드르륵거리는 소리 빼고는 아무말도 오가지 않는.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30 - 4월 4월은 30일까지밖에 없다. 내 생각에 4월의 날씨는 사계절의 으뜸이라 생각한다. 가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날씨는 따뜻하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우며, 가을은 쌀쌀하고, 3월은 꽃샘추위와 황사, 그리고 5월은 더워지기 시작하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내 마음대로 달력을 짤 수 있다면 4월을 늘리고 싶다.

어느덧 4월이 되었다. 학교화단에는 다양한 색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뭐, 나랑 상관은 없지만...

나는 교실로 올라갔다. 교실로가 창가쪽 내 자리로 가 앉아 팔을 괴고 밖을 바라보았다. 한 여자 아이가 보인다. 체령이. 체령이는 그 사건이후로 거의 한 달동안 나를 피해 다녔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책가방을 싸들고 미술실로 전력질주해 문을 잠갔다. 뭐, 다른 미술과 학생들은 다 자퇴하고, 선생님은 출장을 가신다 하셨으니... 상관은 없긴 했지만... 뭔가 내 가슴한 쪽이 아려오는 것 같았디.

잠시 후 수업이 시작했고, 체령이도 어느새 교실에 들어와 있었다. 기나긴 수업 시간이 끝난 후 나는 특별반 수업을 듣기 위해 교과서를 서랍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 손을 집어 넣어보자 봉투 하나가 잡혔다. 나는 그 봉투를 뜯어보았다. 안에는 끝나고 미술실에 들려달라는 체령이의 메세지가 들어있었다. 나는 현이선배에게 연락해 조금 늦는다고 해 두었고, 미술실로 갔다.

31-1945년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만들어진 한 아이스크림 회사는 31일마다 한 가지 맛이라는 슬로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똑똑똑

나는 노크를 하고 미술실에 들어갔다. 전에 왔었을 때보다 상당히 많은 캔버스가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아마 혼자 쓰기에 정리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여러 캔버스들중 한 곳에 앉아있는 체령이가 보여 그 캔버스 앞으로 가 손으로 살짝 그림을 가렸다.

"안녕? 오랜만이야."

체령이는 내 인사에 잠깐 놀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손을 올려 인사하고는 미술실 구석으로 가 아이스크림을 두 개 가져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아직 밖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나는 그냥 받았다.

"자, 이건 사과의 의미야."

체령이는 우선 자신이 한입 베어물고는 말했다. 나도 아이스크림을 까 한입 베어 물었다. 시원한 기운이 입속 전체로 퍼져 나갔다.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체령이와 나는 말없이 서로 다른 그림에 눈을 고정한 채로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 체령이는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는 수많은 캔버스들 중 가장 작은 것 하나 앞으로 갔다. 내가 그려져 있었다.

"이거 너 줄까? 심심해서 그려본건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이것 때문에 불러낸 거야."

나는 상관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인 후에 고맙다고 했다. 그 후 우리는 체령이가 그린 그림을 구경했다. 그림들 중에는 한층 더 완성된 저번 내게 준 사진의 주인공도 있었다. 어찌 됐든 한 30분정도 지났기에 이만 가봐야 겠다고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체령이는 내 한쪽 옷깃을 잡았다.

"어?"

"저... 기...있잖아...  나.... 널..  계속.... 좋아.....할    자...격.......이      있...는       걸.......까?"

의외의 질문이었다. 전에도 그냥 날 멋대로 따라다닌 거니까... 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그때의 감정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32 - 수학에는 이항정리라는 것이 있다. 이를 조합론적으로 해석하면 n개중 0개를 선택한 것, 1개, 2개, 3개, 이런식으로 n개까지 선택하는 경우의 수의 총합이 각각의 물체를 선택하는지 아닌지로 센 것의 경우의 수와 같다는 정리이다.

나는 잡힌 손의 반대손을 올려 체령이의 이마에 딱밤을 한대를 때렸다.

"바보 아냐."

체령이는 금방이랃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 내가 너를 싫어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좋아할 이유가 더 많잖아. 음... 중요한 것 5개정도만 해볼까? 음.. 일단 첫 번째, 분명 넌 날 납치했었어. 나에게 고통을 줬으니 -1 하지만 이것 덕분에 나는 내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으니 +1로 zero, 그리고 굉장히 활발해서 지치는 것도 있지만 그것 덕분에 내 마음 한쪽이 치유되는 부분도 있으니까 +-1로 영. 마지막으로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언제나 나를 위하고 생각해 주니까 +1, 그래서 +인데...... 32가지 케이스 중 +가 나올 케이스는 16개 밖에 안되는데 그 중 하나잖아. 그러니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아? 뭐, 다음은 사귀면서 알아가면 되지?"

그 순간 나는 체령이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았다.

33 - 물론 이 수가 333은 아니지만, 333은 천사를 나타내는 수 이다.

체령이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사귄다. 사귄다. 사귄다. 사귄다. 사귄다. 사귄다...."

잠시 나는 생각했다. '사귄다.' 그 순간 나는 아차했다. 체령이는 방금 전 나한테 좋아해도 되는지 물어봤지 사귀자고 하지는 아니었다. 즉, 방금 난 아이들이 흔히 말하는 고백을 한 것이었다. 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나는 확인사살을 했다.

"그래, 사귀자고!"

그 말을 듣고 체령이는 천사를 본 것 마냥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34 -15살때 내가 한 아이를 울린 적이 있다는 얘기는 이미 했을 것이다. 그 일은 3-4시쯤 하교할 때 있었던 일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아이의 이름은 파도 일 것이다. 그당시 나는 그 아이가 운 이유를 모르긴 했다. 지금은 알고 있지만...... 나는 지금 저 중환자실 안에 있는 체령이가 운 이유룰 알고 싶다. 아니,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처럼 우는 친구를 뒤로하고, 실험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최현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안으로 들어가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미도 있었다. 둘은 오랜만에 실험실을 쭉 두르고 있는 약품을 정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현선배는 보던 시약을 내려넣고 내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말했다. 사실 말이 어깨동무지 헤드락에 가까웠다.

"왜 늦었냐?"

"음, 선배가 하실 말씀은 아닌것 같은데... 작년에 그니까 여기 남자들만 있었을 때는 교수님이나 다른 분들의 참관 수업때 뻬고는 매일 1시간 이상씩 늦지 않았나요? 3시간 중에서... 솔직히 저랑 이미 졸업한 현태형이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아니면 형 유급하실뻔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뭐... 그건 그렇지만 왜 늦은 건데? 난 이유는 다 있었잖아."

"아, '놀러' 이것이 다 이유였나요? 어쨌든 저 오늘 친구가 미술실로 오라고 해서 갔다 왔어요."

"뭐!"

너무 크게 말해 저 교실 반대편에 있던 나미도 쳐다 보았고, 이쪽으로 오며 말했다.

"선배, 늦게 오셨으면 적당히 농땡이 피우고 일하시죠! 그리고 실험실에서 이래도 되는 거예요! 위험하잖아요! 이번 주 금요일 부터 다음주 화요일 까지 휴일이라서 이거 비품정리 해야한다고 누가 말했던것 같은 데 누구였을까요? 설마, 일 시킨 분이 지각하고 거기다가 노시는 건 아니겠죠."

"알았어. 지금 할게."

우리는 이야기를 중단하고, 우선 비품을 정리했다.

35- 나는 이번 휴일이 3일에서 5일이 된 것이 너무 짜증난다. 왜냐하면 매일  매일 기행문 비슷한 것을 쓰고 제출해야하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오랜만에 고향 친구 준혁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좋기는 하다.

우리는 정리를 모조리하고 난 후 근처 카페로 갔다, 우리는 음료 세 잔과 각자 케이크하나씩을 시키고, 자리에 앉아 휴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잠시 후 로봇이 쟁반을 들고 왔고, 우리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조금씩 먹었다. 선배는 조금 먹은 후 나에게 아까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어지간히도 궁금 하셨나 보다.

"근데 아까 미술실 갔다왔다고 했나?"

"네, 그런데 무슨 문제 있나요?"

"거기 청각장애인인 그 2학년 예쁜 애 있는 특벼반 교실 이잖아."

나는 잠시 잊고 있던 체령이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답했다.

"뭐, 청각장애인이긴 하죠. 근데 무슨 문제라도."

"아니 너 그거 몰라, 우리학교 수많은 남학생들이 그 애한테 고백했다가 다 차였다는 거."

"체령이가 그런 애인가요?"

"그래 맞아, 그 친구."

나는 선배도 실연당했는지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럼 선배는요?"

"나? 나는 진작에 포기해 실연하지는 않았지. 후후. 그나저나 너 한 번 고백해 보는 건 어때?"

이때 나미가 끼어 들었다. 아마 계속 듣고 있기 싫다는 말투였다.

"저기 선배님들 그 선배가 예쁜 건 알겠는데 지금 그 얘기를 여자아이 앞에서 하고 싶으세요?"

나는 되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나저나 아까부터 예쁘다, 예쁘다 하는데 의미가 뭐야? 잘 모르겠는데..."

나미와 선배는 마시던음료를 도로 뱉어냈다. 사실, 그냥 입에서 흘러 나왔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지만... 잠시후 선배는 냅킨으로 입주위를 딱고는 말했다.

"됐다. 됐어. 그냥 휴일얘기나 하자."

36 - 36계줄행랑

우리는 그 후 휴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첫날 어떻게 할 것인지 부터 얘기 했는데. 보니 우리 셋 모두 고향으로 갈 것이고, 현이 형은 이미 알았지만 나미와도 방향이 같았다. 아니, 그냥 같은 동네였다. 그리고 기차시간을 얘기했는데, 다행인것은 선배가 먼저 내려간다는 것이고, 불행인것은 나미와 같은 차라는 것이었다. 사실 선배같은 경우에는 작년에 같이 내려갔었는데, 그 당시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자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미는 다른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모를까 나나 현이 형처럼 잘 알고 있는 사람끼리 만나면 상당히 시끄러웠고, 심지어 바로 앞 두 자리를 예약했기에 계속 얘기하며 내려가야할 것 같았다. 왜 두 좌석이나 예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 후로도 한참 얘기했다. 우리가 음료와 케이크를 다 먹고 슬슬 일어나려고 할때 로봇이 새 음료 네잔과 케이크 네 개를 가져왔다. 그리고 뒤에는 한 명의 여자아이가 따라들어왔다. 그 아이는 한 손에 노트와 그림 한 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노트를 펼쳤다.

'안녕하세요? 송준이 여친인 이체령이라고 합니다. 이 음식들은 그냥 제가 쏘는 거니 부담갖지 마시고 드셔주세요."

잠시 후 상황 파악이 된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눈은 한참은 운 것처럼 보였고,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아 화장실로 도망치고 싶었다.

37 - 37도는 사람과 사람이 접촉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온도다. 따뜻한 온도.

체령이는 나미에게 눈길로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참고로  우리는 벽쪽에 붙어있는 자리를 골랐고, 나미는 소파쪽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안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었으니 벽쪽에 짐을 놓고 앉아있었다.

나미는 그 눈빛을 보고는 한쪽에 쌓아두었던 짐을 반대편으로 빼고는 체령이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이 다리를 슬쩍 체령이쪽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체령이는 계속해서 눈짓을 주었다. 반면 나미는 체령이가 청각장애인이지 않았다면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을 했을 것만 같은 눈빛으로 체령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결국은 체령이가 이겼다. 물론 나미가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단지 글을 쓰려고 할 때 자연스레 체령이가 노트를 들었고, 나미는 쓰지 못했을 뿐이다. 아무튼 잠깐의 신경전이 끝나고, 우리 셋은 현이 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절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5분 정도 지나자 현이 형이 깨어났다. 현이 형은 일어나자마자 다시 체령이를 보았고, 다시 기절할 뻔 하다가 다행히 제대로 인사했다.

"아...안 녕? 아... 아 맞다. 청각장애인 이었지!"

현이 형은 가방에서 자신의 노트를 꺼내 날려 적었다.

'안녕'

체령이도 자신의 노트에 글자를 적었다.

'안녕하세요'

나도 내 노트를 꺼내려 하는데 체령이가 말리며 내 손에 펜을 쥐여주었다. 체령이의 손은 따뜻했다. 아무튼 나는 그 밑에 적었다.

'체령아, 여긴 어쩐일이야.'

그밑에 글이 적혔다.

'이거 놓고 간거 줄려고 왔어.'

체령이는 아까 내가 놓고 간 그림을 내밀었다. 나미도 어느새 노트를 꺼내들고 무언가를 적은 후 체령이의 노트앞에 내밀었다.

'그래서 이 커피숍은 어떻게 아신거죠? 은근 슬쩍 저와 선배의 데이트도 방해하시고, 이제 선배 여친이긴 해도...'

체령이는 나미의 노트를 치우더니 아래에 적었다.

'아, 신기한 정보네. 원래 그림 주는 거 내일로 미루고 집으로 가려다가 저 선배랑 너희들이 들어가는 거 보고 미술실가서 그림 들고 온거야. 그런데 송준아, 어떻게 사귄지 몇 시간 밖에 안 된여친을 낳두고 다른 여자애랑 바람을 필 생각을 한 건지 듣고 싶은데... 한 번 해명해 볼래?'

나는 이 밑에 이렇게 적었다.

'아, 데이트는 아니야. 그 증거로 여기 계신 최현 선배 있잖아.데이트의 사전적 의미가 '이성끼리 교제를 위하여 만나는 일. 또는 그렇게 하기로 한 약속'인데 약속도 아니고 교제를 위함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쫑파티야. 쫑파티'

우리는 그 후 한 참 필담을 나누었고, 휴일에 대한 결론은 기차역에서 나랑 나미랑 체령이 셋이서 11시까지 만나 간단히 밥을 먹고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목적지가 모두 같다는 것이었다.

38 - 옛날에 한반도 한복판을 가르던 38선이 있었다. 이 38선은 마을도 가르고, 산도 가르며 물도 갈랐다. 그리고 38선이 그려진지 얼마 후 38선 북쪽의 사람들과 아래쪽의 사람들은 죽기살기로 싸웠다. 그리고 둘다 지쳐 숨을 고르자고 수십년간 싸움을 중단했다 그러다가 몇 년전 윗쪽 동네 지도부가 붕괴해 둘은 화해했다.  그 후 제2의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 통일 후 회복기간은 1년도 체 안 걸렸으며 2년 정도 지난 후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심지어는 북한의 핵시설까지 이용해 군사력을 대폭 상승 시켰으며 주한미군들도 모두 철수해 동아시아의 실세가 되었다. 그에 따라 일본과 중국은 각각 독도와 간도땅의 영유권주장을 포기하고,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우리 조상분들을 내려주었으며 일본 외무부장관과 총리가 직접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의 묘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죄송하다고 거듭 빌었다. 뭐, 이런 좋은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양지만 늘어놓았으면 좋았겠지만, 음지도 늘어났으니... 뭐, 예로 새림재단이 있다.

 띠리리링띠리리링 

나는 잠에서 깨어나 손을 올려 알람을 끄고 시계를 보았다. 7시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 11월 24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핸드폰 잠금을 풀어 기차시간을 확인하고, 일정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아침밥을 차리고는 먹었다. 먹으면서 주가 변화를 보았는데 이번달에는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조금 힘을 냈더니 50000원이었던 돈이 1000만원이 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밥을 우선 다 먹은 후 어제 싸 놓은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층계를 내려가니 나미가 있었다.

"선배, 지금 가시게요?"

"응. 잠시 편의점 들렀다 갈건데 같이 갈래?"

"아니에요 됐어요. 아직 저 짐을 안 챙겨서요."

나는 나미 옆에 있는 짐들을 바라보았다. 짐이 거의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는 말했다.

"아. 알았어. 그럼 좀 있다가 역에서 만나자."

그러고는 나는 편의점에 가 기차에서 먹을 만한 간식들을 조금 쌌다. 뭐, 그냥 기차에서 사 먹어도 되긴 하겠지만 비싸기 때문이었다. 무튼 나는 기차역에 도착했다. 저번과는 다르게 체령이가 먼저 와 있었다. 나는 조심히 체령이 앞으로 다가가 놀래켜 주려 했지만 무산되었다. 체령이가 그전에 노트에 글을 써 내 앞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 아직 10시 50분인데 일찍왔네.'

노트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체령이였다.

39 - 옛날 퀸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의 제목 중 39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를 옛날에 한 번 들었던 적 이 있다. 뭔가 슬픔이 들어 있었던 노래라고 기억한다.

우리는 잠시 후 나미가 와 같이 밥을 먹은 후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체령이는 내 기차 좌석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옆자리였다. 아무튼 우리는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뭐 체령이의 알지 모르는 사정 때문에 말을 하며 가기는 그랬기에 그냥 퍼즐을 서로 만들어 풀며 고향으로 내려갔다. 물론, 어느정도 어울려 주다가 멀미가 나 그냥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하나 던져주고 잠들었지만... 한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체령이가 옆에서 나를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체령이였다. 일어나 보니 나미는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체령이는 이제 곧 내려야 된다고 노트에 적은 후 나미를 깨우기 전에 내 귓가로 와 속삭였다.

"지금부터는 절대로 내가 소리를 듣는 것 같이 행동하지마."

그 말엔 약간의 슬픔이 섞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체령이는 내 얘기를 들은 직후 앞에 자고 있는 나미를 전혀 친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깨웠다, 발로 차서...

 

 

다음 내용은 아래 주소에서 연결 됩니다.

https://teen.munjang.or.kr/archives/121619

(장편소설 (새림고 시리즈 1의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이야기까지)로 갈 예정입니다. 아직 편집중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만약 '윤서'라는 이름이 보인다면 아래 댓글로 알려주세요. 처음에 이름을 정할 때 임시로 윤서라는 이름을 쓰다가 나중에 이름을 제대로 지으면서 주인공들 이름을 바꾸었는데, 아직 체령이의 이름같은 경우에는 입에 붙지 않아 간혹 실수를 하기에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윤서라는 이름은 체령의 엄마의 이름으로 이에 대한 건 스포라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영 0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글을 씁니다. 프사는 함스타좋아 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https://crepe.cm/@HAM_J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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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병원 침대에 앉아 창밖을 본다. 햇빛이 이불덮은 발을 간지럽힌다.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멀찍이 들려온다. 들릴 것 같으면서도 안 들리는 수다쟁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정자에서 화투치는 소리도 들려온다. 이따금 뻥, 뻥 거리며, ‘뻥이요!’ 하는 기계의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수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 단정지을 수 있을 정도로 명쾌한 것이었다.아마 이것은 수빈의 어머니의 탓이 클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혼자 이 병실을 나서지 말라고 하셨다. 이유는 위험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굴러 떨어질 수도 있고, 링거걸이를 끌고가다가 링거걸이가 쓰러질 수도 있었다. 대신 수빈의 어머니는 병실에 책을 가져다 놓으셨다.“엄마랑 아빠, 회사 다녀올테니까, 낮에 이거 읽고 있어.”수빈은 그 말을 들으며 아빠에게 구원의 신호를 내보냈지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드는 아빠를 목격했다. ‘아, 아빠도 엄마의 걱정증후군은 포기하셨군.’ 이라며 단념한지 수빈은 오래였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책이 너덜너덜해졌다는 것.솔직히 수빈에게 이 책은 재미가 없었다. ‘아마 또래 애들도 이딴 책은 안 보겠지.’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그 책은 또래 애들의 수준은 아득히 상회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수빈은 모험을 하기로 했다. 읏차 읏차 발을 휘저어 침대 밑의 신발을 찾는다. 신발이 느껴진다. 수빈은 신발을 꺼내고, 침대에 올라서 링거를 5발 링겔대에 건다. 그러고는 신발을 신고, 첫 발을 내딛는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그리고 한 발을 뗀 후의 느낌, ‘아, 기분 좋아!’ 링겔대를 잡고 천천히 천천히 움직인다. 우선 창가쪽으로 향해본다. 귀로만 듣던 것들이 그저 병원의 담쟁이 덩굴만 비추던 창문이 사람들을 비춘다.“와아아아~~~”흰 색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 언니 오빠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나간다. 좋아하는 뻥튀기를 튀기는 기계도 보인다. 그리고 마음에 쏙 든 것이 보인다. 알록달록한 책을 가득 실은 트럭이 병원 한 쪽에 주차되어 있었고,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 소녀가 느낄 것 같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수빈은 그대로 ‘뒤로 돌아!’ 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위를 살피자 아무도 없다.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도 소리가 울릴 것 같은 복도다.수빈은 누가 오기 전에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링거걸이를 잡고 달린다. 바퀴의 마찰음이 날카롭게 전신을 할퀴어 왔다. 그때 앞에서 간호사 언니 한 분이 웃으시며 나타났다. 그녀는 수빈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간호사분들이 쉬시는 공간으로 데려가셨다.“그렇게 뛰면, 넘어진단다.”수빈은 그저 입술을 삐쭉 내민채로 벽을 바라봤다.“수빈아, 사탕 먹을래.”사탕, 마법의 단어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안돼.“흥.”“왜? 왜 삐진 거니? 어디 가려고 한 거니? 같이 가자.”“책.”“책?”“...”“아, 오늘 병원에 입원한 수빈이한테 책 선물해 준다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창문으로 봤구나. 같이 나가볼래?”“아니에요. 제가 혼자 갈게요.”“길은 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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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1
산다이바나시 주제:탄산음료, 노트북, 우정

친구... 친구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정을 나누는 존재, 뭐 그것도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정은 무엇이냐? 글쎄... 누군가와 만나 함께 수다를 떨거나 뛰어 논다거나 그런 행동을 하며 편암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하지만, 시오는 느끼지 못했다, 우정이라는 것을. 아무리 친구와 같이 돌아다녀도 편안함이라는 감정을 들지 않았다. ‘도대체 왜?’라고 머릿속에 수없이 많이 외쳐보기도 했고, 노트북으로 ‘친구를 사귀는 법’ 이라던가 ‘친구가 많아지는 패션스타일’ 이런 것도 찾아보았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학년을 시작하고 나서 2주 정도가 지난 시점, 그러니까 모두가 서먹서먹한 시점을 지나는 순간 시오는 다시 외톨이가 되어 모두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만 갔다. 교실 구석에서 지금처럼 탄산음료를 홀짝이고 있어도 아무도 그 조그마한, 외소한 그의 몸뚱아리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당연히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도 모르지는 않았다.하지만, 그에게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그는 환상 속으로 도망쳤다. 그래도 환상 속에는 늘 친구가 있었다. 조그마한 장난감 병정들이 있을 때도 있었고, 참새모양의 구름과 지구 반대편 구름공주에게 편지를 전해주려 간 적도 있었다. 어떨 때는 탄산음료 바다 위에서 표류하기도 했다.때로는 그는 자신의 학급의 아이들에게 환상 속 아이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환상에 빠지면, 빠질수록 아이들은 멀어져 가기만 했다. 왜? 어째서? 그런 의문을 던져도 아이들은 멀어져만 가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저 놈 또 이상한 소리 하네.’라고 하며 멀어질 뿐이다.그래서 시오는 마음의 문을 닫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점 말은 하지 않게 되었고, 당연하다싶이 말은 점점 더 나무늘보가 쓸 것같이 어눌해졌고, 버려진 고양이처럼 새침해지고, 항상 날을 세우고 있다. 이대로 아마 그는 어디까지든 썩어버릴 것이다. 아니, 썩어야 낫는 병일 수도 있다. 무사와 악사의 일규의 말처럼 이 세상은, 적어도 시오의 관점에서는 썩고 있기에 괴로우니 더 이상 썩을 것이 없어지면, 평화로워질 수도 있다.하지만, 그것은 망상일 뿐 모든 것은 톱니바퀴처럼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그의 번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그렇다면, 그 톱니바퀴에서 하나가 어긋난다면, 이 세상은 변할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그렇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그래, 용기다. 용! 기! 하지만, 단 이 두 글자에는 수없이 많은 것이 들어가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자리에서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좀 더 자세히는 그 한 발짝 한 발짝마다, 또 할 말을 생각하는 것, 거기에다가 입을 벌리는 것, 주목되는 친구들의 시선, 천천히 목에서 나오는 소리 이 모든 것이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아니, 더 있다. 훨씬 더 많다. 그 뒤에 아이들이 그것에 대해 흉을 볼지도 모른다...그러한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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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4
소녀의 이야기(feat.창영소)

<소녀의 이야기>나는 자고 있다.“히로, 히로, 일어나봐. 식사 시간이야.”자그마한 소녀의 간지러운 목소리가 아른거리고, 맛있는 스튜의 향이 코를 찌른다. 눈을 뜨자 은발의 소녀가 스튜를 젖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소녀는 스튜를 두어번 더 젓더니 내 앞으로 가져왔다.“맛있게 먹어.”나는 그저 받아들었다. 숟가락을 든다. 평범하니 맛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여기가 어디지? 그저 이곳도 바위, 저기도 바위 온통 바위뿐이다. 소녀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몇 번 더 소녀에게 스튜를 받아먹으니 소녀는 이내 자리를 뜬다. 나는 잠이 온다.나는 자는 중이다.“히로, 히로, 일어나봐. 식사 시간이야.”자그마한 소녀의 간지러운 목소리가 아른거리고, 맛있는 스튜의 향이 코를 찌른다. 눈을 뜨자 은발의 소녀가 스튜를 젖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소녀는 스튜를 두어번 더 젓더니 내 앞으로 가져왔다.“맛있게 먹어.”나는 그저 받아들었다. 숟가락을 든다. 평범하니 맛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여기가 어디지? 그저 이곳도 바위, 저기도 바위 온통 바위뿐이다. 소녀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몇 번 더 소녀에게 스튜를 받아먹으니 소녀는 이내 자리를 뜬다. 나는 잠이 온다.나는 잠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히로, 히로, 일어나봐. 식사 시간이야.”자그마한 소녀의 간지러운 목소리가 아른거리고, 맛있는 스튜의 향이 코를 찌른다. 눈을 뜨자 은발의 소녀가 스튜를 젖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소녀는 스튜를 두어번 저을 것이다. 소녀는 스튜를 내 앞으로 가져 온다.“맛있게 먹어.”나는 그저 받아들었다. 숟가락을 든다. 평범한 맛이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여기가 어디지? 그저 이곳도 바위, 저기도 바위 온통 바위뿐이다. 당연한 건가? 소녀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몇 번 더 소녀에게 스튜를 받아먹으니 소녀는 이내 자리를 뜬다. 나는 잠이 온다.음... 곧 잠에서 깰 것 같은 기분이다.“히로, 히로, 일어나봐. 식사 시간이야.”자그마한 소녀의 간지러운 목소리가 아른거리고, 맛있는 스튜의 향이 코를 찌른다. 음, 뭐랄까 은발의 소녀가 스튜를 젖고 있을 것 같다. 그 소녀는 스튜를 두어번 저을 것이다.“하, 히로, 히로, 일어나라니까!”소녀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다. 눈을 뜨자 소녀는 밝게 웃으며 내 코에 그릇을 가져다 댄다.“맛있게 먹어.”나는 그저 받아들었다. 숟가락을 든다. 평범한 맛이다. 여기는 바위밖에 없다. 뭐 당연한 감상이다. 소녀는 누구보다 맛있게 평범한 스튜를 먹어 주는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몇 번 더 소녀에게 스튜를 받아먹으니 소녀는 이내 자리를 뜬다. 나는 잠이 온다.자, 일어나 있자. 아마, 곧 은발의 소녀가 올 것이니 놀래켜 주자.“어, 히로 일어났네.”소녀는 스튜에 들어갈 재료를 손질중이다,“도와줄까?”“아니, 괜찮아.”소녀는 열심히 칼질을 하고 불을 내고, 조미료를 넣는다. 간은 안 봐도 되는 것인가? 아무튼, 생선도 넣고 각종 재료를 넣고 팔팔 끌인다. 나

  • 영 0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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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현

    장편소설이라니 기대됩니다! 숫자로 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한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99번까지 있을 것 같은데, 꼭 마무리까지 쓸 수 있길 응원합니다. 다만 새림고라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조금 더 특별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살짝 익숙한 전개처럼 느껴지네요. 그럼,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다리겠습니다!

    • 2020-11-07 22:17:28
    송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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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시험기간이라 작성을 못 하고 있었는데 최대한 빨리끝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의 내용 기대해주세요.

      • 2020-11-09 11: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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